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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총리 후보자는 병역 면제자다. 두드러기 질환의 일종인 만성 담마진으로 1980년 7월 면제를 받았다. 이완구 전 총리는 보충역 제대자다. 4년여에 걸쳐 3차례 신체 검사 끝에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그의 병명이던 '부주상골'은 검색어 순위에 등극했다.

그 직전, 문창극 후보자 역시 특혜 의혹에 시달렸다. 해군 장교로 복무하며 서울대 대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최장수' 정홍원 총리의 아들은 1급 현역 판정 후 4년 만에 허리 디스크가 발병했는지, 이를 이유로 면제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 첫 총리 후보였던 김용준 후보자는 두 아들의 병역 면제 등의 이유로 낙마했다.

현 정부 들어 6명의 총리와 총리 후보자 중 본인과 아들들의 병역 문제에서 자유로웠던 인물은 안대희 후보자 단 한 명이었다. 병무청에 따르면, 일반인의 병역 면제율이 6%대라고 한다. 재벌가 자제들은 5배가 넘는 33%(삼성가는 70%대). 19대 남성 국회의원의 면제율은 21%라고 한다. 병무청은 연간 1000여 명에 달하는 기피자 명단을 올해 7월부터는 공개할 예정이다.   

유승준의 사과 인터뷰가 또 다시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27일 오전, 지난 19일에 이은 두 번째 인터뷰인데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헌데, 그가 이런 군 면제 관련 소식을 접한다면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 것 같다.

혹자는 면제와 기피는 다르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마다 끊이지 않은 최고위급 인사 청문회에서 도마 위에 오르는 각종 의혹들을 보고도 33%라는 저 재벌가의 수치를 보고도 그리 단정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유승준의 눈물어린 사과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아 보인다. 왜 그럴까.

병무청은 왜 하필 유승준에게만 유독...?

지난 19일 아프리카TV를 통해 심경 고백을 한 유승준
 지난 19일 아프리카TV를 통해 심경 고백을 한 유승준
ⓒ 신현원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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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사과에도 타이밍은 중요한 법이다. 굳이 '인생은 타이밍'이란 말을 꺼내들지 않더라도, 시점이나 횟수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할 터. 그것이 '국민'을 향한 사죄의 형식이라면, 더욱이 법적인 문제와 결부됐다면 엄격해질 수밖에 없는 문제이리라. 눈과 귀가 여럿인 탓이요, 공(그리고 법)적인 영역과 개별 감정의 영역이 혼재되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유승준에 대한 극렬한 입국 반대 정서를 100% 동의하지 못하는 축이었다. 유승준이 인천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한 것이 2002년. 당시엔 '왜 하필 그에게도 유독'이라는 느낌이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병무청도 대단하구나' 정도로 바뀌었다랄까. 

몇 가지 이유에서 그러했다. 병무청의 그 철벽같은 완고함은 수 많은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한 국적 포기'자를 향한 선전포고식 괘씸죄 적용인가. 아니면 예나 지금이나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군 문제를 호도하기 위한 미국 국적인 연예인을 활용한 방패막이인가. 그도 아니면 2002년 병무청을 배반한 유승준 개인에 대한 보복인지 말이다.

군 문제에 유독 민감한 국민 정서에 편승했다고 보진 않는다. 다만, 이러한 정서가 병무청이 13년이 지난 지금에도 단호한 방침을 고수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승준이 결코 병무청의 논리는 물론이요, 작금의 반대 정서를 뒤집진 못할 것 같다. 역시나 눈물로 호소한 이번 사과 인터뷰에서의 해명에도, 납득이 가진 않는 부분만 꼽아보면 대략 이러하다. 

'의혹'은 못 풀고... '감정'에만 호소한 유승준

첫째, 유승준은 왜 '대한민국 육군 소장' 개인과의 통화로 그토록 중요했을 병역 문제에 대한 문의를 마무리했나. 한국의 지인을 통해 연락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상황을 이해하기 보다 그의 순진함이 놀라울 정도다. 그의 위치라면, 또 그 정도의 절박함이라면 최소한 국내 변호사와의 협의를 거쳐 병역법을 제대로 숙지하고 병무청에 공적으로 문의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 아니었을까.

이미 그도 파악했겠지만, 2002년과 지금의 분위기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 특히나 윤 일병 사건과 같은 군 사건 사고로 군 문제에 대한 피로감이 훨씬 높아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병무청이 "제대로 문의 한 적 없다"고 반박하며 여론을 악화한 데 대한 책임은 유승준 측이 더 커 보인다.

둘째, 왜 하필 지금인가. 그의 말을 십분 이해해, 하필 지인에게 문의한 것이 지난해였다고 하자. 만 37세 나이에 관한 혼선도 오비이락이라고 치자. 미국 세법을 피하기 위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중국과 미국에 세금도 성실히 납부하고 있다고도 해명했다. 헌데 이번 인터뷰에서 눈의 띄는 내용은 다른 곳에 있다.

"성룡과 소속사 만료가 돼 입국하려고하고 있다는 의혹"에 관한 질문에 대해 "2008년 성룡 형님 회사와 5년 계약을 했고 2년 전에 계약 기간이 만료됐다"고 답했다. 이후 재키찬 그룹에서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협조'와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진출 이후 유승준의 음악 활동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성룡의 <대병소장>을 비롯해 대여섯 편의 중국 영화에서 조·단역을 거쳐 주·조연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영화 활동이 성공적인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평가가 보이지 않는다.

시원찮은 중국 활동에 이어 그가 한국 국적을 취득 뒤 한국에서의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혹이 가시질 않는 것도 납득이 갈 만하다. 무엇보다, 그 활동 시기 동안 사과하고 병무청에 문의할 시간은 차고도 넘쳤다. 

셋째, 공적인 영역과 감정적인 호소. 인터뷰 후반부, 유승준은 "(사과) 시기를 계산하고 할 만큼 영악하지 못하고, 그 정도 계산을 하고 나올 의도가 없었다"고 했다. 대신 질문은 아이들이나 가족들, 지금의 심정 등에 치중됐다. 오히려, 여론을 돌리기 위해 필요한 의혹에 관한 질문과 답은 충분치 못했다. 이성보다 감성에 치우친 인터뷰였다랄까.

하다못해 예정돼 있다던 병무청과의 공개 인터뷰에 대한 내용마저 빠져 있었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비단 감정적인 호소와 같은 여론전일까. 먼저, 왜 하필 지금 인터뷰를 진행했는지 외에도 병무청과의 문의나 협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돼가고 있고 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지가 선행돼야 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에게 드렸던 상처와 아픔만큼 최선을 다해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와 같은 수사는 아무리 진심이라 하더라도 때가 늦어 보인다는 얘기다.

유승준 피로감 줄이려면 군 면제자 황교안 후보자부터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국무총리에 내정된 황교안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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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 논란이 주는 피로감은 바꿔 말하면 '국민 정서'로 치환되는 듯하다. 그러나 이 국민 정서만큼 두루뭉술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표현도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 국민 정서가 군 문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동의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3월 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국회 출입기자단과 오찬 간담회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새누리당엔) 군대 안 갔다 온 분들도 많은데 입만 열면 안보를 최고로 생각하는 것처럼 야당을 상대로 종북 몰이를 하는데 그럴 자격이 없다", "(현 정부) 국무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국정원장 등이 줄줄이 다 군대를 안 갔다 왔다" 등등 박근혜 정부 주요 인사들이 안보에 무능하고 자격도 없는 이유에 대해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측에서 즉각 반박을 했다. 19대 국회의원 중 새누리당 소속 남성 의원의 병역 면제율은 19.7%, 새정치민주연합은 27.3%였다는 것이다. '도찐개찐'(도긴개긴)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게 아닐까. 허나, 박근혜 정부의 '총리 잔혹사'를 보면, 분명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5명의 총리, 총리 후보자와 아들들이 줄줄이 면제를 받거나 특혜 의혹을 받은 것만 봐도 자명하다.

분명 병무청의 입장과 유승준의 입장 차는 뚜렷할 수 있다. 유승준이 해결해야 할 몫도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 '국민 정서'와 결부된 피로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유승준에게만 과도하게 투사하는 일은 분명 경계해야 마땅하다. 1차적인 피로감을 더하는 존재들이 우리 사회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황교안 총리 후보자가 먼저 나서서 병역 의혹부터 철저히 해명할 필요가 있다. 병무청이 먼저 할 일 역시 유승준에 대한 원칙을 공고히 하는 것보다 청문회를 위해 총리 후보자의 면제 사유와 당시 정황에 대한 자료를 모으는 일일 터다. 한국 사회의 원칙을 세우고, 군 문제에 대한 피로감과 상대적 박탈감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이는 유승준이란 연예인 한 사람보다 국정을 조율하는 국무총리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유승준의 억울함도 사그러들지 않을까. 


태그:#유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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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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