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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를 하려는데 이 드라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MBC 특별기획 <화정>. 그 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다뤄졌던 광해군 시대를 소재로 하는데, 50부작이라는 장편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광해가 아니라 정명공주(貞明公主, 1603~1685)다. 핏빛 권력투쟁 속에서 죽은 사람으로 위장한 채 살았던 정명공주의 삶을 통해 17세기 조선 정치사를 들여다본다는 드라마의 기획의도가 흥미롭다.

하지만 역사왜곡은 피해갈 수 없었나보다. 드라마 초반 광해군을 피해 죽은 사람이 된 정명공주를 일본 유황광산의 노예로 전락시켰다가 조선 '화기도감'의 유황장인으로 변모시키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관계없는 완벽한 허구다. 그렇다면 진짜 정명공주는 누구인가.

'화정'은 어떻게 탄생했나... 비극은 공주를 단련시켰다

MBC <화정> 속 정명공주(이연희 분)
 MBC <화정> 속 정명공주(이연희 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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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죽음, 광해군 집권, 계축옥사, 인조반정, 병자호란, 소현세자 죽음, 효종, 현종, 숙종까지 이어지는 혼돈의 역사를 살다간 여인. 그녀는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광해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조선시대 최장수 공주이면서 조선 최고의 여성 서예가이기도 한 정명공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 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했던 역사 저술가 박찬영의 <화정 :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기술>이 바로 그것.

죽음에서 부활해 비정한 권력투쟁 속에서도 83세까지 살았던 정명공주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이 모든 것의 열쇠가 생전에 그녀가 남긴 '화정'(華政)이라는 글씨에 숨어있지 않을까 추론한다.

광해군의 이복 여동생인 정명공주는 드라마 속 표현대로 하자면 '순혈의 피'다. 선조와 인목대비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는 왕실의 첫 번째 적통으로 사랑을 독차지했고 이복 오빠인 광해군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정명공주의 뒤를 이어 영창대군이 태어났지만 세자로 삼기에는 너무 어렸다. 선조가 승하하고 마침내 왕좌에 오른 광해군은 1614년 '7서의 옥'이라는 역모 사건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어린 영창대군을 처형한다. 광해군은 1618녀 인목대비를 '서궁'으로 강등했고 정명공주 또한 옹주로 강등돼 어머니와 함께 경운궁에 유폐됐다.

출처: 간송미술관
▲ 정명공주가 석봉체로 쓴 '화정' 출처: 간송미술관
ⓒ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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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폐 생활은 비참했다. 끼니를 제대로 이을 수도 없었고 경운궁은 돌보는 이가 없어 쥐와 벌레가 들끓는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살아남았으나 살아있다는 사실을 드러낼 수 없어 죽은 듯 지내야 했던 정명공주는 서예에 몰두했다. 자식과 권력을 모두 잃은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정명공주는 한석봉 필법을 수련하는 데 정진했다고 한다. 공주가 남긴 작품인 '화정'(華政)은 가로세로가 73센티미터에 이르는 크기로 남자도 쓰기 힘든 대작이다.

"비극은 공주를 단련시켰다. 그 단련의 결과가 바로 '화정'이었다. 정명공주는 '화려한 정치'가 아닌 '빛나는 다스림'을 가슴 속에 새기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당장은 '화려한 정치'가 자신을 핍박하더라도 언젠가 자신을 다스렸던 '빛나는 다스림'이 그 빛을 드러낼 것이기에, 정명공주에게 몸만 간신히 뉘일 수 있는 방 안은 세상 끝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었다."(본문 154쪽)

정명공주의 처세술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침묵'이다. 그녀는 서궁에 유폐된 고난의 시기에도, 광해군의 실각 이후 공주 신분으로 복귀돼 부귀영화를 누리던 시기에도 스스로 움직여 정적들의 표적이 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침묵의 기술을 구사했다.

저자는 "조선사회에서는 선과 선이 부딪쳤을 때는 어느 한 쪽이 결국은 죽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으로 변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악순환을 깨는 방법이 있다, 한 걸음 물러나 상대가 움직일 여지를 주는 빛나는 다스림이다"(본문 103쪽)라고 '화정'의 의미를 해석했다.

"내가 원하건대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었을 때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입에 올리고 정치와 법령을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내 자손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경박하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숙종 8년 정명공주가 80세 되던 해 막내아들 홍만회에게 내린 글, 본문 66쪽)

정명공주는 정치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겸손하고 존귀함을 잃지 않아 따르는 무리가 많았다고 한다. 공주와 동시대를 살았던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정명공주의 묘지에 "공주는 부인의 존귀함에 걸맞게 겸손하고 공손하며 어질고 후덕해 오복을 향유했다"라는 비문을 남겼다.

광해는 정말 어진 군주였을까

<화정 :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 표지
 <화정 :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 표지
ⓒ 리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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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공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광해군이다. 저자는 "광해군이란 프리즘만으로 당대의 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시각의 사각지대를 갖게 된다"(분몬 4쪽)라며 정명공주라는 새로운 프리즘을 통해 광해군 시대를 재조명하고자 했다. 광해군 하면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오는게 '대동법'과 '실리외교'다. 이 두 가지 때문에 '개혁군주'로 평가받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는 상당히 과장된 평가다.

"광해군은 현군(賢君)인가, 혼군(昏君)인가? 광해군의 '화려한 정치' 여정에는 늘 정명공주가 광해군의 그림자인양 따라다니고 있었다. '화려한 정치'가 빛을 타고 있다면 '빛나는 다스림'은 그림자에 얹혀 있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보는 눈이 필요하다."(본문 183쪽)

흔히 광해군은 양반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동법을 시행한 '애민 군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대동법 시행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동법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경기도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행해졌다. 1609년 곽재우를 비롯한 신하들이 대동법의 확대를 주장하자 광해군은 오히려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며 이를 반대했다. 결국 대동법은 흐지부지됐고 광해군은 오히려 토목공사를 위한 특별 공물 징수에 더 신경을 많이 썼다.

저자는 "정책의 주안점이 조세 개혁을 통한 민생 안정보다는 토목 공사를 통한 왕권 강화, 즉 화려한 정치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라면서 "광해군이 세자 시절부터 지녔던 '빛나는 다스림'에 대한 초심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본문 117쪽)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무리한 토목공사는 인조반정의 주요한 명분이 됐다.

쇠락하는 명과 부상하는 후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조선. 저자는 광해군의 실리외교가 탁월한 외교적 수완이라기보다는 힘 약한 나라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평가한다. 명-후금의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라는 명의 요구를 거절하지도 못하고, 후금과 전면적으로 싸울 수도 없는 상황에서 지지부진하다가 결국 명과 사대부의 요구를 못이겨 1만3000여 명을 파병했다. 이 중 무려 9000여 명이 전사하고 4000여 명 후금의 병력에 편입되거나 농사에 동원됐다.

저자는 "광해군에게는 주도적으로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숱한 옥사로 조정에는 제대로 된 인재가 사라졌고, 대동법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흐지부지해졌다. 국방에 신경을 쓰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궁궐 공사로 국력을 낭비해 집중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라며 "이것은 광해군의 한계, 조선의 한계였다"(본문 166쪽)라고 지적했다.

광해군이 현군(賢君)이었는지, 혼군(昏君)이었는지는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그의 정치를 백성을 향한 '빛나는 다스림'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광해군의 집권으로부터 이어진 17세기 조선의 정치사는 민중에게는 '잔혹사'였다.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수많은 백성이 고통받고 죽임을 당했다.

조선의 권력층은 당파싸움에 열중하며 백성의 삶을 돌보지 않았다. 17세기 중반 '대기근'의 시기, 백성들은 죽은 자식을 삶아 먹을 정도로 굶주리며 나라가 파멸의 지경에 이르렀지만 위정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참혹한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늘에 가려져 있던 정명공주의 '화정'을 더 돋보이게 한다.

"세상에 선과 악의 싸움은 드물다. 선과 선의 싸움이 대부분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자신을 향한 '빛나는 다스림'이다. 붕당에 찌든 조선은 '선'이 '선'을 죽이는 사회였다. 화정이라는 화두가 우리 머릿속에 늘 머무른다면, 빛나는 다스림이 나로부터 시작해 주변으로 확산된다면, 남을 다스리기 전에 나부터 다스리나면, 나와 너는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머리말, 본문 9쪽)

○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 <화정>(박찬영 지음 / 리베르 펴냄 / 2015.04 / 1만55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화정 -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

박찬영 지음, 리베르(2015)


태그:#화정, #정명공주, #광해군, #계축옥사, #인조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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