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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JTBC <뉴스룸>을 통해 소개된 허영만 화백의 그림. '필자가 상상한 필자의 최후의 모습'
 최근 JTBC <뉴스룸>을 통해 소개된 허영만 화백의 그림. '필자가 상상한 필자의 최후의 모습'
ⓒ 허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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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선생이 작업 도중 숨졌다. 향년 107세. 타살 흔적은 없고. 코피가 1cm 났을 뿐 평소와 다름없이 건강한 모습이었다. 만화의, 만화를 위한, 만화에 의한 인생이었다."

지난 14일 밤 JTBC <뉴스룸>에 허영만 화백이 출연했다. 그때 소개된 이 그림 제목은 '필자가 상상한 필자의 최후의 모습', 허 화백은 방송에서 "최인호 선생의 '나는 원고 위에서 죽고 싶다'는 글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그걸 보고 그린 것"이라며 "만화가에게 원고 위에서 죽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죽음 아니겠냐"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손석희 앵커는 "많은 분들이 이 장면을 부러워할 것 같다"고 했다.

허영만전, 창작의 비밀로 엮어낸 이 사람

'허영만전(展)-창작의 비밀' 공동기획자 정형탁 독립 큐레이터
 '허영만전(展)-창작의 비밀' 공동기획자 정형탁 독립 큐레이터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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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장면'에 일찌감치 주목한 사람이 있다. 현재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허영만전(展)-창작의 비밀'을 한원석 총감독과 함께 기획한 정형탁 독립 큐레이터(46). <뉴스룸>에 허 화백이 나온 다음날, 지난 15일 예술의 전당 어느 파라솔 밑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선생님 작품, 그림이 참 많잖아요. 그 중 눈에 띄더라고요. 옆에서 손주가 '하삐 일어나', 죽음의 객관화, 재밌어서요. 일상적인 일로, 유머러스하게 다뤘잖아요. 허영만 선생님 특유의 위트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유서'라고 이름 붙인 글도 있는데요. 선생님이 히말라야 가셨을 때 고산병에 걸리셨을 때 쓰신 글인데, 인간 허영만을 잘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전시하기로 했죠."

그의 말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자료가 참 많았을 것이다. 그중에서 고르고 골라 하나의 주제로 엮어내는 것 또한 보통 일은 아니었을 게다.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을 전공한 정형탁 큐레이터는 덕원갤러리, 갤러리벨벳 등 "상업 갤러리에도 있었고", <미술세계>나 계간지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 등 잡지사에도 있었다. 2005년 '5.18 기념관', 2012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3주기전' 기획 역시 그의 작품이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었다. 허영만전 기획에는 어떻게 참여했는지, 그리고 왜 하필 주제를 '창작의 비밀'로 했는지도 궁금했다. '허영만 선생 데뷔 40주년'이란, 어찌 보면 상투적인 문구를 전시회 포스터에 박아 넣지 않은 이유 또한 분명 있을 듯 했다. 가까이에서 허 화백을 지켜본 소감도 듣고 싶었다.

"이걸 어떻게 다... 너무 많아 애먹었지만"

우선 상투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관람객 반응은 어때요? 물론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 큐레이터는 "예상보다 훌륭하다는 반응"이라며 "일반적으로 만화 전시하면 평면적일 거란 예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전시 형식을 고민한 결과 같다"고 했다. 사실 내용적으로도 평면적인 전시회는 아니긴 하다. 그림일기나 메모 등 허 화백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물이 꽤 많다.

"관람객들이 그런 전시물을 좋아하더라고요. 사실 기획 단계에서 전시물 양을 얼마나 할지 고민 많이 했어요. 처음 선생님 화실에 갔을 때 자료가 너무 많아, 이걸 어떻게 다...(웃음). 너무 많아도 지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애를 먹었는데, 의외로 많이들 좋아하시더라고요.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정 큐레이터는 앞서 기획한 다른 경우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나보다 허영만 선생을 훨씬 더 잘 아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허 화백 작품의 '골수팬'까지는 아니었고, 또 개인적으로도 잘 모르는 사이였기에 그만큼 더 공부를 많이 해야 했다고 한다.

사실, 그가 이번 전시회를 기획하게 된 것은 허 화백과 친분이 있는 한원석 총감독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평소 호형호제하는 사이, '독립적으로' 지내는 그에게 어느 날 동생이 전시회를 함께 해보자며 농담반 진담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형, 세상과 등지지 말아(웃음)", 여기에 만화 장르 전시에 대한 호기심도 작용했다고 한다.

허영만은 아직도 진화하고 있으니까, 전시회도...

'허영만전(展)-창작의 비밀' 공동기획자 정형탁 독립 큐레이터
 '허영만전(展)-창작의 비밀' 공동기획자 정형탁 독립 큐레이터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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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 주제가 독특한 것 같아요. 허 화백도 '앞으로도 작품 활동 계속 할 건데, 무슨 회고전 같은 전시회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사실인가요?
"그걸 제일 많이 강조하셨어요.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난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거든요. 이 말을 어딘가 넣어달라는 말씀도 하셨고, 앞으로도 계속할 거란 느낌, 계속 이어져야 하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선생님이 가장 원하는 부분이었죠. 저도 그 말씀에 백 퍼센트 동의하고요. 매일 그림 그리시는데, 나이 드셨다고 끝? 그건 아니잖아요. 40주년 이런 말도 그래서 일부러 강조하지 않았어요."

- 전시회를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창작의 비밀은 성실함이구나.
"맞아요. 선생님을 보면 항상 펜을 들고 다니시면서 부지런히 그리시고, 끊임없이 메모하고, 열심히 취재하시고 그래요. 특별한 방법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아무나 못 하는 거죠(웃음). 창작의 비밀, 열정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열정이 있어야 성실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전시회 기획을 위해 허 화백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든 생각이라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수서에 위치한 허 화백 화실을 들락거리면서 자료 조사를 하고 전시회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점은 또 하나 있었다고 했다. 멀리서 봤을 때 허영만, 가까이에서 봤을 때 허영만의 차이.

"별로 말하지 않고, 묻는 말에만 답하고, 그럼 되게 불편하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유머 감각이 많아요, 좀 장난스러우세요. 사람을 친근감 있게 대하려고 하시는 게 보여요. 선생님 처음 만났을 때가 작년 가을이었나? 제가 낚시를 좋아해요. 보트 면허를 따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하필 선생님 만나는 날 면허 시험이 잡혔어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중요한 일정이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선생님한테 그때 장난스럽게 그랬죠. 선생님 때문에 거기 못 갔다, 짜증 난다(웃음). 그리고 밥 먹고 첫 미팅을 하고 헤어졌는데, 그 후로 그 일을 저는 잊고 있었죠. 그런데 최근 선생님이 물어보시더라고요. '면허 땄어?' 깜짝 놀랐어요. 그걸 기억하고 계셨구나, 선생님, 굉장히 바쁘신 분이잖아요."

허영만 화백, 직접 만났더니...

허영만 화백이 히말라야에서 고산병에 걸렸을 당시 쓴 '유서'.
 허영만 화백이 히말라야에서 고산병에 걸렸을 당시 쓴 '유서'.
ⓒ 허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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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네요. 철저하신 분이란 이미지 때문일까요? 꼬장꼬장하실 것 같은데.
"전혀 아니시더라고요. 물론 철두철미, 그런 건 있죠. 일과표대로 행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한테 치이고 그러는 건 스스로 자제하시는 편이라고 해요. 그래서 '참 깐깐하다'고 느낄 수 있다고는 하더라고요. 기자들이 취재 요청하면 시간 맞추기도 어렵고. 그런데 그게 다 선생님 작업을 위해서 그런 거거든요. 실제로 일대일로 만나면 전혀 안 그러세요. 장난기가 많으세요."

그래서일까.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허 화백과의 갈등은 없었다고 했다. 정 큐레이터는 "한 번은 선생님이 <식객> 스토리 노트를 많이 가져갔는데 왜 다 안 보여주느냐고 하시더라"며 "작가는 많이 보여주고 싶어 하게 마련이고, 기획자는 취사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이기에 다소 서운한 부분이 있으시겠지만, 그로 인한 충돌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 스스로 어떤 큐레이터라고 생각하나요?
"큐레이터란 말 어원을 보면, 수도원에서 영적으로 치료해주는 사람을 뜻해요. 마음 치료해주는 사람, 그러니까 전시를 통해서 뭔가 의미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죠. 뭔가 새롭거나 재밌게 만들어야죠. 그러려면 일단 제가 흥미를 느껴야 하고, 그다음에는 역사적인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관객들에게 어떤 앎을 준다거나 그런 생각 전혀 없어요. 남을 계몽하거나 이런 거 되게 싫어하거든요? 계몽보다는 공감이죠. 그냥 동시대에 같이 사니까 공감하는 거잖아요."

- 청년, 중년, 노년, 다들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이런 시대, 허영만 화백 작품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의미가 있을까요? 매우 식상한 질문이라고 봐요(웃음). 힐링, 이런 말 별로 안 좋아해요. 중년이 청년한테, 무슨, 청년들이여 꿈을 가져라? '그대나 잘하세요'지(웃음). 다만, 참 금세 사라지는 세상이니까, 무슨 건물 사라지듯 각자만의 옛 공간이 참 쉽게 사라지니까. 각자 가졌던 꿈, 사랑, 아픔, 이런 것들도 함께 잊혀지기 마련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붕 떠 있다고 할까,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런 전시회를 통해 잠깐 그 시간에 빠져보는 거죠. '그때는 내가 이랬었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힘을 내세요, 힐링하세요, 이런 게 아니라요."

"허영만, 동시대인이잖아요"

이 말을 들으며 '허영만'을 통해 일상의 불안함을 다소 달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살아내기 참 어려운 시대니까. 그래서 끝으로, 한 번 더 식상한 질문을 던져봤다. 이건 꼭 보고 가세요, 안 보고 가면 후회합니다. 그런 전시물을 꼽는다면?

"유명한 작품이 많으니까 선생님을 어느 정도 아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쫙 펼쳐 놓으니까 '어머나, 이것도 했었어?', '비트도 허영만이었어?' 이런 반응이 참 많더라고요. 허영만, 동시대인이잖아요. <미스터 초밥왕> 다이스케가 그런 말을 했죠. 허영만이란 사람을 같은 시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맞는 얘기거든요. 이런 사람이 내 곁에 있구나, 같이 살아가고 있구나...피카소다 뭐다 옛날 사람들 데리고 와서 하는 전시? 거기 좋은 작품 안 와요. 아니 못 와요(웃음)."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허영만, #정형탁, #손석희, #비트, #미스터 초밥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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