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수 아나운서가 인천 SK행복드림구장 1루 더그아웃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임용수 아나운서가 인천 SK행복드림구장 1루 더그아웃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 강윤기


예전 음악을 들으면 그때 함께했던 추억이 생각나듯, 야구 중계도 마찬가지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목소리에 우리는 열광한다. KBO 리그가 매일 우리를 찾아온다. 팬들은 중계방송을 통해 '야구'를 즐긴다. 수많은 카메라는 야구장 구석구석을 탐사하며 많은 관중과 선수들의 생생한 표정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잡아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이러한 맛깔 나는 재료를 한데 모아 요리를 만들어 내는 '요리사'이다.

중후한 목소리에 위트있는 진행으로 찬사를 받는 '요리사'가 있다. 바로 임용수 스카이스포츠 아나운서이다. 늘 현장을 누비며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선수들의 컨디션 하나하나를 세심히 체크하는 임용수 아나운서를 SK 행복드림구장에서 9일 만났다.

임용수 아나운서는 KBO 리그 팬들에게 야구 아나운서 '4대 천왕'이다. '원 뜨리'. 카운트를 중요시 하게 생각하는 MBC 스포츠 플러스 한명재 아나운서, "담장 밖에서 뵙겠습니다"라는 위트있는 멘트가 일품인 정우영 SBS 스포츠 아나운서 , '좌측담장' KBS N SPORTS 권성욱 아나운서와 함께 많은 야구팬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팬들은 임용수 아나운서의 "3루 돌았다"는 말을 거의 십 년째 듣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임용수 아나운서는 3루를 상당히 강조한다.

"특히 3루에 열광하는 이유가 있다. 왜냐? 3루타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팬들의 입장에서 보면 홈런이 나오면 와~ 바로 탄성이 나온다. 그러나 3루타는 다르다. 상황을 가정해보자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 안타를 쳤다. 1루 뛰고 2루를 지나친다. 그럴 때 팬들은 어어~소리가 나온다. 전력질주해서 3루에 안착해서 세이프가 되면 그때서야 와아~ 하고 탄성이 나온다. 소위 말해서 '쪼는 맛'이 있다. 3루타는 접전이 많기 때문에 달리는 와중에 불안감에 긴장하다가 세이프가 되면 탄성이 터지고 아웃이 되면 에잇이라는 안타까움이 나온다.(웃음) 얼마나 짜릿한가."

"야구든 인생이든 혼자 사는 게 아니다"

임용수 아나운서는 성악을 전공한 이력을 가진 스포츠 아나운서이다. 1993년 대학을 졸업 한 후에 1년 반 정도 다른 직장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그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아나운서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는 직장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방송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시작하게 된 그는 1997년 한국스포츠TV(SBS 스포츠 전신)에 입사해 스포츠 아나운서로 발을 내딛었다. 임 아나운서는 "지금 후배들처럼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어서 운이 좋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인 그는 일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야구 전문 아나운서로 매 경기 중계하다보면 항상 느끼는 점이 있다고 한다.

"야구는 인생이다. 아!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걸 매일 느낀다. 투수가 아무리 공을 잘 던져도 타자들이 점수를 얻지 못하면 팀은 패배한다. 감히 이야기 하자면, 다른 종목도 물론 스토리가 있지만, 야구야말로 스포츠를 넘어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일방적으로 앞서 가는 와중에 홈런을 쳤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고 과한 세리머니를 한다면 바로 빈볼이 나간다. 물론 빈볼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상대를 존중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응징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해를 한다."

"야구는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다. 27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아야 게임이 끝난다. 또한 파울볼은 몇 개를 쳐도 계속 기회가 주어진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시금 기회가 주어지는 부분 얼마나 멋진가? (한숨을 내쉬며) 야구하는 것처럼 우리가 산다면 이렇게 세상이 험악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푸근한 인상을 지니고 있는 임 아나운서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처음 중계를 시작한 게 1998년 인천 도원구장에서 열린 현대 경기였다. 17년째 중계를 하면서 느낀 점은 2군 선수들의 절박함을 보면 여기 있는 선수들도 안심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버스에 자기 자리 맡아 놓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내가 일어나면 누가 바로 앉는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여차하면 어느 순간 주전경쟁에서 밀린다. 우리네 인생과 얼마나 같나. 그래서 야구를 통해서 인생을 배운다."

최근 프로야구에 '편파해설' 논란이 일어났다. 이종열(42) SBS 스포츠 해설위원이 지난 1일 대전 한화-롯데전 해설도중 깊은 탄식과 한숨으로 많은 팬들에게 항의를 받은 사건이었다. 이밖에도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실수에는 즉각적으로 SNS와 인터넷상에서 악성 댓글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중계를 하면서 힘든 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임 아나운서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어 나갔다.

"체력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프로야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반응과 피드백이 크다. 나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앞뒤 부분이 잘려 특정 부분만 나가 버리면 당혹스럽다. 내 의도가 그런 경우가 아닌데... 다음날 변명하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최대한 말을 조심스럽게 한다. 특히 특정 팀 편파에 관련해서 조심한다. 그런데도 곡해해서 해석이 될 때 안타깝다. '어쩔 수 없는 숙명'이지만 에이 이거 아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집에 가는 길은 늘 후회스럽다. 아. 이런 표현보단 더 다른 표현이 좋았을 텐데... 이렇게 한번 표현해 볼 걸. 이런 식이다."

그렇다면 임용수 아나운서의 실수는 없었을까? 빙그레 웃으며 임 아나운서는 대답했다.

"이대호(현 소프트뱅크) 선수가 한국에 있을 때다. 타구가 누가 보더라도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흥분해서 크게 간다. 간다. 크게 샤우팅을 외쳤는데 마지막에 외야수에게 펜스 앞에서 잡히는 걸 보니 상당히 민망했다. 마치 전준우(현 경찰청) 선수의 홈런 세리머니(2013년5월13일 NC-롯데전)처럼 홈런인 줄 알았는데 아웃된 것과 같았다. 정말 민망했다."

- 넘어갈 것 같지 않은 타구(외야 플라이)가 넘어가는 경우(홈런)가 꽤 있다.
"요즈음은 정말 타구 판단이 쉽지 않다. 팔이 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박병호(현 넥센)같은 경우에 홈런이 나온다. 팬들이 보기엔 훌륭한 자리로 보일 수 있지만 중계석 자리가 좀 보이지 않는 편이다. 대구 구장 같은 경우는 잘 보이는데 사직도 먼 편이다. 그래서 민망한 장면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뿐이다.(웃음)"

"잘 안 보이는 중계석 자리... 홈런 오해하면 민망하죠"

 임용수 아나운서가 오랜만에 김용희 SK감독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임용수 아나운서가 오랜만에 김용희 SK감독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 강윤기


김용희 SK 와이번스 감독과는 2010년 1월부터 2011년 9월까지 SBS 스포츠에서 호흡을 함께 맞췄다. 9일 오랜만에 특별 오프닝에서 호흡을 함께 맞추게 되자 약간은 긴장한 김용희 감독을 임 아나운서가 편안하게 풀어주면서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야구는 3~4시간 토크쇼와 같다. 토크쇼를 재미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경기도 중요하다. 정말 경기가 재미있으면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긴 호흡을 가지고 게임이 진행되기에 주변이야기, 선수들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한다. 우리 인생이니깐. 스토리가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현장감이다. 마치 머리털 나고 안타를 처음 본 것과 같은 연기력도 좀 있어야 한다."

야구중계에 있어 연기력도 있어야 하며, 토크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자는 수긍했다. 궁극적으로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한다면 방송사에서는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교체를 고민한다. 그렇기에 재미없는 방송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스포츠 중계에서 익숙한 목소리도 매우 중요하다. 임용수 아나운서의 중저음 목소리는 이에 상당한 강점이다.

"스포츠 아나운서를 꿈꾸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있는 걸로 안다. 그렇기에 이 자리를 빌려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자기가 스포츠를 좋아해서 '내가 아나운서를 해야겠다' 이런 생각은 힘들 수 있다. 아나운서의 덕목 중에는 10순위 정도인 것 같다. 좋아해서 이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은 사실 위험한 발언이다."

- 어떤 점이 위험한가?
"내가 아무리 야구를 좋아해도 여러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야구는 긴 시간을 하기 때문에 아나운서 목소리가 대부분 중저음이 많다. 장시간 하이 톤의 음성을 듣기에는 쉽지 않다. 왜냐고? 시청자가 듣기에 거부감이 들거나 피곤하다고 생각되면 상당히 마이너스다. 목소리가 탁하거나 하이 톤이면 좀 힘든 편이다. 손님들(시청자)이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한 중요성, 즉 방송인으로서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더불어 말씀 드리면 저는 후배 여자 아나운서들이 '여신'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제가 늘 후배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똑똑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일의 특성이 카메라에 잡히는 모습이기에 사람들이 알아봐준다. 우리보다 똑똑한 엔지니어들이 훨씬 많은데 다만 일의 특성이 브라운관에 등장할 뿐이다."

- 팬들 댓글 중에 연예인 병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가?(웃음) 소위 말해서 공주병 왕자병에 걸린다면 일의 본질이 흐려진다. 누구나 '여신'이면 여기서 10년 넘게 일하는 사람들은 그럼 화석이다 (웃음) 헛바람이 들어가서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치면 안 된다. 즉, 미디어의 눈으로 보면 안 된다. 눈에 보이는 부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현장이 정말 중요하다.

예를 들면 아들을 낳아서 아빠가 되어 무엇인가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환경적인 이야기들. 사실은 몸이 너무 아픈데도 팀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 이런 부분을 말해주는 것 그게 우리들의 임무다. 나는 야구인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저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하고 존경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너는 야구인이고 나는 방송인, 이것은 아니다. 그라운드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한배를 탄 사람이다. 한 동료로서 서로 서로 도와주는 게 그게 팀워크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임용수 아나운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앞으로도 좋은 야구 토크쇼를 가지고 팬들과 함께 호흡하겠다. 다양한 인생이야기를 맛깔나게 요리하고 싶다."

일화 하나

그는 인터뷰 중에도 특색있는 칭찬으로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기를 불어넣었다. 5월 8일 벌어진 삼성과의 경기에서 7이닝 호투를 펼친 건 김광현(현 SK)이었다. 그러나 그는 포수 이재원(현 SK)에게 말을 걸었다.

"재원아(이재원), 어제(5월8일) 공 정말 대단하더라?"

그에 이재원은 대답했다.

"네 정말 좋았습니다."

그러자, 임용수 아나운서의 한마디에 더그아웃은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난 그 대단한 공을 받는 너(이재원)가 더 대단하더라."

○ 편집ㅣ박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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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수 김용희 SK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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