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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어성초와 질경이, 민들레가 귀해서 약을 하려고 멀리까지 캐러 간다는데 우리 집 마당에는 너무 많아서 뽑기가 버거울 정도다. 내가 이런 투정을 하면 어떤 이는 복에 겨워서 요강에 뭐 싼다고 한다. 정말로 복이 많아서인지, 약성이 좋아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흰색 꽃 민들레도 꽤 있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땅이 물러져서 풀 뽑기에는 제격이다. 호미와 앉은뱅이 의자, 고무 함지, 목장갑까지 챙겨서 작정하고 민들레 앞에 앉았다. 특성상 질경이는 뿌리는 깊지 않지만 잔뿌리가 많아서 자칫하면 잔디도 함께 뽑히고, 민들레는 뿌리를 땅 밑으로 깊게 박고 있어서 뽑으려면 잔디에 손상을 입히는 것은 물론 용도 좀 써야 된다.

아침나절을 다 투자해서 캔 민들레는 데쳤더니 한 주먹밖에 안 된다. 미리 뜯어서 말리기 시작한 쑥 옆에 가지런히 널어놓고 보니 흐뭇하다. 이것들이 다 마르면 같이 가루로 만들어서 차로 마실 것이다.

집안일을 마치고 외출을 하려고 대문을 여는데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나뭇잎들이 떨어져 있고 꽃나무와 풀이 우거져 있는 화단 아래쪽 내 발 있는 곳에서 나는 것 같았다. '뭐지?' 하며 발을 한번 휘젓고는 대문을 그냥 열었다. 조용했다.

우리 집 대문은 열어서 고정을 시켜야 다시 안 닫히기 때문에 아래로 꽂는 고정 바를 내려서 세워야 된다. 고정 바는 쇠로 돼 있어서 땅으로 내리면 제법 묵직한 소리를 '퉁' 하고 내면서 약간의 울림도 있다. 이번에는 뭔가 움직임이 느껴졌다. 차분하게 대문과 화단 사이를 눈으로 훑고 있는데 누런 것이 스르륵 움직였다. 뱀이었다.

"여보오~ 여보, 뱀 뱀 배~에엠! 삽 가지고 와 빨리"

뱀이 숨었던 화단에 오늘 아침 백작약이 활짝 피었다.
▲ 화단의백작약 뱀이 숨었던 화단에 오늘 아침 백작약이 활짝 피었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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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에서 제일 싫고 무서운 게 뱀이다. 사람들과 가장 무서운 것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다.

"호랑이나 사자 같은 큰 짐승한테 당하면 할 말이나 있지만, 긴 짐승한테 언제 당한지도 모르게 당하면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해. 보기만 해도 소름끼치고 기절할 것 같아."

그러면 여자들은 백이면 백이 다 맞다고 한다. 그런 뱀이 우리 집에 나타난 것이다. 더구나 내가 건드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머리끝이 쭈뼛 섰다. 나는 집 뒤 텃밭에서 일을 하는 남편에게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내달렸다.

"여보오~ 여보, 뱀 뱀 배~에엠!"

남편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오는데, 걸음걸이는 사흘에 한 발짝씩 떼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었다.

"왜 그렇게 느려, 빨리 빨리! 아, 삽 가지고 와. 빨리 빨리."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남편은 여전히 느리터분하게 양반걸음으로 삽을 들고 왔다. 일부러 늦게 오는 것 같아서 속에 천불이 나고 얼굴에 열이 확확 올랐다. 무서움증은 어디로 갔는지, 나는 뱀을 잡아야 된다는 생각에 남편보다 앞장서서 대문 쪽으로 냅다 뛰었다. 대문 앞에 도착하자 다시 무서움이 밀려와서 눈을 질끈 감고 뱀이 있던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 여기" 했다.

남편은 뱀이 없다고 했다. 눈을 뜨고 보니 역시 뱀은 사라지고 없었다. 큰일 났다. 뱀을 잡아야 안심을 하지 안 그러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해서 밤에 잠이 안 올 것 같았다. 직감적으로, 무성하게 우거진 화단 어딘가에 숨었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 삽으로 화단 곳곳을 찔러보라고 했다.

스르륵, 누렇고 얼룩덜룩하고 긴 것이 기어나와서 대문 밖으로 나갔다. 대문 밖에는 우리의 승용차가 서 있다. 나는 남편에게 뱀을 찍어서 잡으라고 했다. 남편은 일부러 뱀 주변만 두드렸다. 성질 급한 내가 삽을 빼앗아서 뱀을 잡으려고 하자 남편은 삽자루를 꽉 움켜쥐고 주지 않았다.

그때 뱀이 승용차 밑으로 들어갔다. 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런데 뱀이 승용차 밑으로 들어가기는 했는데 나오질 않는다. 시간이 좀 지나도 안 나왔다. 차 밑 땅바닥을 들여다봐도 없다. 우리 집 진돗개까지 차를 향해 기웃거리고 있다.

"여보, 뱀이 지나갔나봐."
"아니야, 나가는 거 못 봤어."
"그럼 뱀이 어디 갔어?"
"아무래도 차에 들어간 것 같아."

이 무슨 소린가! 믿을 수 없어 하는 내게 남편은 확신에 찬 어조로 차에 들어갔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마침 차 문은 다 닫혀 있었다. 도대체 차 어디에 숨어 있단 말인가. 남편은 아마 차 보닛 안으로 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 눈으로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차에 타 시동을 건 뒤 차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주차했던 자리에 뱀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했다. 뱀은 없었다. 그러면 정말 보닛 안에 숨은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밑에 들어갔다가 사라진 뱀... 보닛을 열고 보니

차를 돌릴 수 없는 골목이라서, 후진으로 넓고 풀이 없는 장소로 차를 옮겨 놓고 보닛 잠금을 풀고 차에서 내렸다. 남편 말대로 보닛 안에 뱀이 있다면 손을 넣어서 보닛을 여는 것 또한 위험한 일이지만, 남편은 보닛을 열고 슬쩍 한 번 보더니 없다고 했다. 나는 간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지만 차로 다가가서 보닛 안을 찬찬히 확인해봤다.

맙소사! 뱀이다. 명칭은 모르겠지만, 뱀은 보닛 안의 새까만 무엇인가를 칭칭 감고 있었다. 남편은 주춤 뒤로 물러섰다. 재차 확인을 해도 뱀이 맞다. 모골이 송연했지만 뱀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남편에게 또 소리쳤다.

엔진실을 뱀이 감고 있었다.
▲ 뱀이 숨어 있던 보닛 안 엔진실을 뱀이 감고 있었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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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살충제 살충제! 여보 살충제 갖고 와, 나는 뱀 지키고 있을게."

이 얼마나 웃기는 소린가. 뱀을 지키겠다니! 어쨌든 남편은 살충제를 갖고 왔고, 살충제를 뿌리자 그제야 뱀은 똬리를 스르륵 풀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는 마침 개울이었고 하필이면 우수구 바로 위에 차를 세운 까닭에 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니 또 불안했다.

해가 저물었다. 어두컴컴해지니 가느다랗게 둥글고 긴 것은 다 뱀으로 보였다. 자려고 누워서 천정을 보니 기다란 천정의 무늬들도 뱀으로 보였다. 벌떡 일어나서 남편을 조르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못 살겠다고. 서울로 다시 이사 가자고. 남편은 들은 척도 안 했다. 급기야 오밤중에 통곡을 하고 말았다.

다음 날, 옆집에 사는 사촌 동서를 길에서 만났다.

"형님, 어제 집에 뭐 나왔지라?"
"어, 어떻게 알았어?"
"우리 집까지 형님 소리 지르는 소리 들렸어라. 그래서 '뭐 나왔구나' 혔지라."
"나 아무래도 시골에서 못 살 것 같아. 너무 무서워! 동서는 안 무서워?"
"촌에 살믄 그런 거도 나오고 그러지라. 긴 거 나온다고 못 살믄 촌에 사람 없게요. 어느 해에는 더 많이 나오는 때가 있드만, 올해는 많이 나올라나."

얼굴에 미소까지 띠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동서가 참 대단해 보였다. 나는 남편에게 '동서가 참 겁이 없더라, 대단하다'라는 얘기를 했더니 피식 웃으며 한마디 한다.

"당신은 안 대단하고? 말로는 뱀이 무섭다며 뱀을 잡겠다고 덤비는 여자가 어딨어? 아마 세상에 뱀이 도망 못 가게 지킨다는 여자는 당신뿐일 거야, 세상에서 뱀 지키는 사람은 당신뿐일 거야."

결국엔 대성통곡... "긴 거 나온다고 못 살믄 촌에 사람 없게요"

며칠이 지나고, 이제 뱀하고 싸워봤으니 무서울 게 없다고 큰소리치는 내게 남편은 뱀은 잡는 게 아니라 쫓는 거라며 주의를 준다. 걱정이다. 뱀이 동면하러 들어가려면 아직 멀었는데, 이제 5월 중순인데. 그 후로 남편이 밭에 간다고 하면 꼭 장화를 신고 가라고 신신당부한다.

장화라고 다 같은 장화가 아니다. 시골에서 밭이나 산등 풀이 많은 곳의 일을 할 때 신는 장화에는 맨 위에 줄로 묶게 돼 있다. 옷 위로 장화를 올려서 줄을 묶으면 뱀에게서 멋모르고 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잘만 묶는다면 어지간한 벌레도 들어가기 힘들 것처럼 만든 게 있다. 읍내 신발 가게에는 그런 장화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장날을 기다려야 된다.

누워 있는 빨간 장화는 줄로 묶을 수 있다. 옆의 것은 일반 장화. 풀이나 숲이 우거진 곳에서 일 할 때 신으면 좋다.
▲ 장화 누워 있는 빨간 장화는 줄로 묶을 수 있다. 옆의 것은 일반 장화. 풀이나 숲이 우거진 곳에서 일 할 때 신으면 좋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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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드디어 장날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 남편과 집을 나섰다. 신발장수에게 묶을 수 있는 장화를 달라고 하자 장화를 내주면서 하는 첫 마디가 "농사일이나 산에 갈 때 긴것(뱀)한테는 이게 젤이지라" 한다.

뱀은 독한 냄새 나는 것을 싫어한단다. 그래서 몇 년 전에는 다 피운 담배 필터를 사다가 물에 풀어서 그 물을 집 주위에 뿌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태껏 집에 뱀이 나온 적이 없었단다.

이번에는 붕산과 백반을 집 주위에 뿌렸다. 냄새의 종류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어성초의 냄새 또한 담배 필터 냄새 못지않게 독하다. 어성초를 뽑을 것이 아니라 담장 밑으로 많이 번식시켜야겠다. 봉숭아와 메리골드, 당귀도 뱀이 싫어한다니 돌담 밑에 돌아가며 더 많이 심고 철통 같이 방비를 해야겠다.

버리려고 내 놓았던 남편의 낡은 옷가지들을 챙겨 뒀다가 일 할 때 입어야겠다. 헐렁한 몸빼도 두어 개 준비하고. 헐렁한 옷을 야외에서 일 할 때 입으면 벌이나 모기 등, 침을 가진 곤충에게 찔리지 않는 장점이 있단다. 헐렁하고 낡은 셔츠에 몸빼, 줄 묶는 장화까지 신으면 영락없는 시골 아낙이 될 것 같다. 뱀 때문에 이 좋은 공기를, 이 좋은 환경을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 편집ㅣ최규화 기자



태그:#뱀, #자동차범퍼, #봉숭아 , #장화, #메리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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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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