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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관악구 대학동을 방문해 고시촌 거주 청년들과 청년 1인 가구 지원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타운홀미팅을 갖자, 관악구에 거주하는 한국청년연대 회원들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청년정책 실패 인정과 사과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김무성 대표에 항의하는 청년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관악구 대학동을 방문해 고시촌 거주 청년들과 청년 1인 가구 지원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타운홀미팅을 갖자, 관악구에 거주하는 한국청년연대 회원들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청년정책 실패 인정과 사과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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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헌법 제32조 제1항: 노동권)"

여기까지 온 우리 헌법의 이야기다. 눈여겨볼 부분은 '고용 증진'과 '적정임금 보장'에 대해 국가가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자리의 양과 질의 문제는 정권의 능력을 '빼도 박도' 못하게 시험하는 단적인 예가 된다.

특히 청년 고용난은 줄곧 국민의 관심사였고,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여겨졌다. 일단 우리나라는 70.9%라는 높은 대학 진학률을 보이고 있고 (통계청: 2014 한국의 사회지표), 따라서 대학생들의 취업문제가 청년 고용 문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만약 대졸자들의 일자리 양과 질 문제가 개선되긴커녕 악화된다면, 여기에 정부는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까? 동쪽의 문제는 서쪽에서 찾으라는 게 정부의 심오한 뜻이다.

기자가 즐겨보는 네이버 웹툰 <복학왕>의 한 장면. 대학에 진학한 우기명과 친구들 삶의 희노애락을 담고 대학의 현실을 풍자한 청춘 웹툰이다.
 기자가 즐겨보는 네이버 웹툰 <복학왕>의 한 장면. 대학에 진학한 우기명과 친구들 삶의 희노애락을 담고 대학의 현실을 풍자한 청춘 웹툰이다.
ⓒ 기안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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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스러운 청년 실업률과 낮은 노동의 질

지난 13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2013년 연령계층별 전체 실업률 3.1% 그리고 20대 실업률 7.9%로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전체 실업률 3.9% 그리고 20대 실업률 10.3%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치는 외환위기로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받던 시기인 1999년 동월 기준 최고치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공식' 수치에 불과하다.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구직을 준비하는 사실상 실업자들이나 최근 들어 취업난을 이유로 일부러 졸업을 늦추는 졸업유예생들의 증가 추세까지 감안하면 그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66개 대학에서 9차 학기 이상 등록한 학생 수가 총 12만여 명에 달했다. 또한, 이들이 낸 등록금은 총 600억 원 정도로 추정됐다.

뿐만 아니라, 직장을 어렵게 구하더라도 노동의 질이 형편없는 수준인 경우도 많았다. 지난 1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를 보면 20대 취업자 중 1년 이하 단기계약직이 약 76만 1000 명, 즉 5명 중 1명꼴로 나타났다. TV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가 '2년 계약직'이었던 걸 감안하면, 더 나쁜 상황인 셈이다.

지난 19일 열린 제7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19일 열린 제7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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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중동'과 황우여 '대학 구조조정'... 닮은 꼴 답변

일단 노동자의 능력에 맞는 일자리 자체가 없고 질도 나쁘다면, 상식적으로 국내 일자리 활성화와 고용처우 개선의 시급함이 예상되기 쉽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는 답들은 독특한 곳을 향하는데, 먼저 박 대통령의 인식은 지난 3월 19일 무역투자진흥회의 발언에서 확인된다.

박 대통령은 "청년 일자리는 중동을 중심으로 해외에 많이 있다"며 "인력 미스매치는 여기서 해결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어서 "국내에만 한다는 건 한계가 있다"며 "청년들이 해외에서라도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했으면 한다.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다 어디 갔냐고 (물으면) 다 중동 갔다고 (할 정도로) 한번 해 보라"고 고용노동부에 주문했다.

이 발언은 누리꾼들 사이에 큰 논란이 됐고, 때마침 신림동 고시촌을 방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청년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관련 기사: '니가 가라 중동' 말말말…조국 "'일베' 청년들, 중동으로", 누리꾼 "박대통령, 너나 가세요")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답도 이와 닮아있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학생들이 일자리를 얻는 데 관심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회적 수요와 대학이 양산하는 졸업생이 양적, 질적으로 매치가 되지 않는데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 (중략) 지금처럼 모든 대학이 인문대학을 하면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른바, 최근 기초학문 구조조정의 명분인 '미스매치론', '산업수요·취업중심 교육론'이 된 셈이다. 문제는 이것이 정책으로 반영되면서, 재정지원사업과 대학평가 압력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전국의 대학들이 너도나도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기초학문(인문·자연·예체능)이 직격타를 맞게 됐다는 점이다.(관련 기사: 기초학문 대학생들 "누가 우릴 '문송'하게 만드나요?")

대학교육연구소 한 관계자는 "지금 교육부 주장은 노동부의 2023년까지의 '중장기 인력 수급 전망'을 두고 나오는 것"이라며 "공학·의학계열은 인력이 부족하고 인문·자연·예체능계열은 넘친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지난 10년간 대학 구조조정을 통해 기초학문 정원은 꾸준히 줄고 응용학문은 늘어왔음에도, 인력수급 미스매치 문제는 개선된 것이 없다"고 지적하며 "일자리 자체가 없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의 질도 나쁜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다하지 못하면서 대학을 조정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황 장관 취업난 문제의 답을 엉뚱한 곳에서 찾는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은 셈이다.

지난해 8월 25일,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중앙대를 방문해 ‘중앙대학교 제도개혁 우수사례 발표 및 고등교육 정책’에 관한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황 장관 및 교육부 관계자 4명, 박용성 이사장, 이용구 총장 및 부총장단, 그리고 각 행정부서장과 총학생회장 등 학생 10명이 참석했다.
▲ 중앙대 방문한 황우여 지난해 8월 25일,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중앙대를 방문해 ‘중앙대학교 제도개혁 우수사례 발표 및 고등교육 정책’에 관한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황 장관 및 교육부 관계자 4명, 박용성 이사장, 이용구 총장 및 부총장단, 그리고 각 행정부서장과 총학생회장 등 학생 10명이 참석했다.
ⓒ 중앙대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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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닌 물건 생산하는 공장처럼 된... '한국 대학'

그런데 교육부가 대학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건 비단 '미스매치론' 뿐은 아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대학 진학자 수가 줄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거다. 그런데 공장의 대량생산을 연상시키는 열악한 강의환경을 생각한다면, 꼭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게 구조조정의 명분이 될 수 있는가 싶기도 하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지난 4월 교육부의 '대학알리미' 시스템을 분석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4년제 대학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OECD 평균인 15명(2012년 기준)보다 12.3명 많은 27.3명으로 나타났다. 의학계열을 제외하면 31.8명으로 OECD 평균보다 두 배 이상이나 많은 셈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한편, 대학이 전임교원을 더 고용하려는 노력을 병행한다면 오히려 강의환경이 개선될 수도 있다. 또 학령인구가 줄어든다고 왜 기초학문을 정원조정해야 하는지 직접적 상관 관계가 정부 측 자료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사태가 이렇지만, 각 대학 주요 실무자들의 분위기는 비판이라기보단 호응에 가깝다.

대표적 사례 중 하나는 한양대 이영무 총장의 발언이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했는데 재고만 쌓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되겠나"라며 "취업률 같은 사회적 요구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발언 이후 한양대 총학생회는 페이스북에 이를 풍자한 패러디물을 게시했고, 대학생들은 이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양대 이영무 총장은 지난 3월 3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을 '공장'에 학생을 '재고품'에 비유했다. 이에 한양대 총학생회는 페이스북에 이 총장의 발언을 패러디한 사진들을 올리며 이 총장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한양대 이영무 총장은 지난 3월 3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을 '공장'에 학생을 '재고품'에 비유했다. 이에 한양대 총학생회는 페이스북에 이 총장의 발언을 패러디한 사진들을 올리며 이 총장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 한양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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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때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며 대학은커녕 초등학교 중퇴자였던 한 재단사조차 온몸을 불사르며 절규하기도 했었는데, 어쩌다 전인적 교육을 책임져야 할 대학 총장의 입에서 서슴없이 대학이 "공장"에, 살아 숨 쉬는 인간이 "재고품"에 비유되는 시대가 됐을까?

물론 대학의 사회적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이쯤 되면 슬슬 헛갈리기 시작한다. 인간이 정말 기계가 되길 원하는지, 아니면 교육 당국이 우리 삶을 그런 풍조로 재생산하는데 기여하고 있는지 말이다.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존엄함과 다양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마치 물건처럼 취급받는 사회를 '물화(物化)'된 사회 즉 병든 사회로 진단했다.

우리 대학생들이 적정한 수준의 일자리를 얻고, 대학이 대학다운 모습을 회복하려면 정부가 답을 어디서 찾느냐가 중요하다. 일단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프랑스와 독일처럼 국민이 높은 수준의 교양을 가지고 직업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중등교육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문적 교육을 받고자 대학에 간 학생들을 국가의 동력이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고 그들의 학문 다양성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를 확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책임을 다하는 게 우선이다.

"인정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존재한다." ―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어머니 고 이소선씨의 영정과 함께한 모습.
▲ 전태일 열사 흉상 어머니 고 이소선씨의 영정과 함께한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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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학 구조조정, #황우여, #박근혜, #동문서답, #취업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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