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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은 의령에 이르러 솥바위, 정암을 떨구었다. 정암은 예전부터 20여리 안에 큰 부자가 난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
▲ 남강과 솥바위, 정암 남강은 의령에 이르러 솥바위, 정암을 떨구었다. 정암은 예전부터 20여리 안에 큰 부자가 난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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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南江)은 함양, 산청, 진주를 거쳐 의령으로 넘어 온다. 이름도 제각각이어서 함양, 산청물은 경호강이요, 진주는 남강, 의령은 정강(鼎江)이라 부르는데 모두 씨가 같은 이복 동생뻘이다. 의령에 이르러 크고 두둑해 사람으로 치면 부자상(富者相)의 콧방울 같은 솥바위, 정암(鼎巖)을 떨궜다. 의령 이야기는 정암에서 시작된다.

정암은 다리 세 개 달린 바위가 반쯤 물속에 잠겨있는 모습이 솥과 같다하여 붙은 이름. 솥이라는 게 곡식과 재물을 상징하는 것이어서 정암을 곁에 둔 의령은 식복을 타고 난 셈이다. 그래서 이름도 형편 좋고(宜) 편안한(寧) 땅, 의령이다. 지난달 11일 이곳을 다녀왔다.

정암은 부자의 전설을 안고 있다. 반경 20여 리 안에 큰 부자가 난다는 것. 실제로 의령 정곡면에서 삼성 이병철 회장이, 진주 지수면에서 금성사 구인회 회장, 함안 군북면에서 효성 조홍제 회장이 태어났다. 정암을 한가운데 두고 삼성, 금성, 효성, 세 개의 '별그룹'이 나온 곳이어서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정암이 있는 이곳은 1935년 정암철교가 놓이기 전까지 정암나루로 불리며 의령의 관문 역할을했다. 임진왜란 때는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켜 남강을 거슬러 전라도 곡창 지대로 들어가려는 왜군을 맞아 대승을 거둔 곳이기도 하다. 

의령의 인물, 의병장 곽재우

함안과 의령을 잇는 철교로 1935년에 만들어 졌다. 의병의 고장답게 의병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 정암철교 함안과 의령을 잇는 철교로 1935년에 만들어 졌다. 의병의 고장답게 의병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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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곽재우(1552-1617), 의령이 내세우는 최고의 인물이다. 의령을 소개할 때 충의의 고장, 의병의 고장이라 수식어를 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망우당 곽재우는 남명 조식(1501-1572)의 문하생이며 외손녀 사위였다. 조식은 성리학만을 고집하지 않고 실천과 문무를 중시하여 의병에 가담한 제자가 수두룩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곽재우였다.

곽재우는 권력이나 권위에 순응하지 않고 대항하는 반골의 기질이 있었던가. 선조 때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은 답안이 문제가 되어 과거에 합격하고도 취소당한 일이 있었다. 곽재우만큼 벼슬을 사양한 인물도 드물다. 약력(略歷)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다, 혹은 임명되었으나 부임치 않다'라는 문구가 빼곡하다. 재미나면서 그의 기질도 엿보인다.   

홍의장군 곽재우와 17명 의병장에게 사후에 내린 관직명과 관향을 적어 모신 건물로 화려한 공포와 조각이 볼만하다. 극락세계를 염원하는 꽃상여를 보는 것 같다. 곽재우와 열일곱 의병장에 대한 의령의 대우는 남다르다
▲ 의령 충의각 홍의장군 곽재우와 17명 의병장에게 사후에 내린 관직명과 관향을 적어 모신 건물로 화려한 공포와 조각이 볼만하다. 극락세계를 염원하는 꽃상여를 보는 것 같다. 곽재우와 열일곱 의병장에 대한 의령의 대우는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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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의 말 중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있다.

아! 백성이 편안한(民安, 安民) 다음에 나라가 부유하게 되고 나라가 부유하게 된 뒤에야 군사가 강하게 되며 군사가 강하게 된 뒤에야 적을 막을 수 있고 적을 막은 뒤에야 나라가 중흥하게 될 것이다(嗚呼, 民安而後國, 富國而後兵强, 兵强而後禦敵, 禦敵而後中興).

망우문집 2권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전국 시대에 안민(安民)은 최고의 가치였다. 부국강병을 강조한 한비자는 물론, 부국강병의 패권적 지배 논리를 경계한 노자나 장자는 당연하고 공자, 맹자까지 안민을 중요시했다. 곽재우도 안민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안민을 위한 부국강병이 아니라 안민을 통한 부국강병이었다.

의령 오운마을

오운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그윽하다. 담도 고샅도 마을을 닮아 아늑하고 고요하다
▲ 오운마을 담 오운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그윽하다. 담도 고샅도 마을을 닮아 아늑하고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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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은 북쪽에 합천, 서쪽에 산청, 남쪽에 진주, 동쪽에 함안과 창녕이 붙어 있고 남북으로 낙동강, 동서로 남강이 지나간다. 물이 사방으로 흐르고 있는 의령에 오래된 그윽한 마을이 없을 리 없다. 굽이 흐르는 낙동강 강변, 낙서면에 오운(五雲)마을이 있다.

오운의 이름 유래는 전설 같은 여러 이야기로 전해오는데 그냥 '오색 구름마을'로 여기면 어떨까. 산으로 둘러싸여 푸근하고 그윽하다. 마을이 언제 생겼는지 기록은 없고 다만 강씨와 전씨가 제일 먼저 입촌한 후 벽진 이씨가 들어와 마을이 크게 번성했다고 들릴 뿐이다.

구름과 안개가 자주 끼여 구름골, 운곡(雲谷)이라 불린 곳답게 산으로 둘러싸여 그윽하고 평화롭다
▲ 오운마을 전경 구름과 안개가 자주 끼여 구름골, 운곡(雲谷)이라 불린 곳답게 산으로 둘러싸여 그윽하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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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령, 의령은 마늘밭 투성이. 별로 맬 것도 없어 보이는데 부지런히 몸을 놀리고 있는 마을 할머니는 윤나는 마늘쪽마냥 얼굴이 참 곱다
▲ 오운마을 마늘밭 창령, 의령은 마늘밭 투성이. 별로 맬 것도 없어 보이는데 부지런히 몸을 놀리고 있는 마을 할머니는 윤나는 마늘쪽마냥 얼굴이 참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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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와 반가가 섞여 있고 집성촌보다는 여러 성씨가 모여 사는 산성촌(散姓村)에 가깝다. 전씨가 22가구로 제일 많고 이씨가 14가구, 최씨가 4가구, 그리고 강씨, 구씨, 김씨, 50여 가구가 모여 산다. 여러 성씨가 모여 살다 보니 이웃간 정이 핏줄보다 더 두터운 게 사실. 

창녕에서 시작한 마늘과 양파밭은 낙동강 따라 오운마을까지 이어졌다. 이른 봄에 돋아나는 싹 하나만 봐도 무슨 나물인가 알아차리고 거기에 마늘과 양파를 구별할 줄 알면 촌 동네 가서 마을 사람들과 말을 섞어도 '도시 양반' 소리를 듣지 않는다. 이런 걸 다 아는 나는 뼛속부터 촌놈인가 보다.

멀리서 보았을 때 진녹색은 양파요, 연녹색, 기운 없어 보이는 것이 마늘이다. 한때 담배를 많이 재배했다 하지만 이제 이 마을의 주산물은 뭐라 해도 마늘과 양파다. 맬 것도 없는 마늘밭에서 부지런피는 할머니가 음력 5월이면 수확한다며 넌지시 말을 건네는데 뽀얀 햇마늘 마늘쪽마냥 얼굴에 윤이나 곱다. 

마을 담은 주로 흙돌담으로 담양 전씨 재실, 경모재(敬慕齋) 아래 몇 채에 오래된 담이 남아 있을 뿐, 마을 서쪽 안담은 이렇다 할 옛담이 없다. 할아버지 성근 이처럼 빠졌거나, 닳아 뿌리만 남아 있는가하면 새로 해 넣은 이처럼 시멘트 블록으로 덧대었다. 

오늘 저녁 반찬으로 무쳐먹는다며 뿌리채 뽑은 마늘잎을 다듬던 마을 할머니는 다듬던 칼로 칼춤 추듯 여기저기 가리키며, 저 집 주인은 대구에서 판사로 있고 요집 집주인은 다시 돌아온다며 기약 없이 미국 길에 올랐고 저쪽 파란 기와집은 전씨네 재실이고, 저기 높은 쓰러져가는 흙집은 담배 건조장이었다고 알려주었다. 세월 따라 할머니 등도, 담도 굽어가고 담 쫓아 꼬불대는 고샅에 흙 먼지마냥 이 집 저 집 사연이 쌓여가고 있었다. 

오운마을 배부른 담

담은 선이다. 선은 끈이다. 끈은 관계다. 할머니 걸음마다 고샅에 떨군 무심한 세월은 담타고 이어졌다
▲ 오운마을 담과 할머니 담은 선이다. 선은 끈이다. 끈은 관계다. 할머니 걸음마다 고샅에 떨군 무심한 세월은 담타고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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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운마을 옛담은 새로 해 넣은 마을할아버지 이 마냥 군데군데 시멘트벽돌로 잇대었다
▲ 오운마을 고샅과 담 오운마을 옛담은 새로 해 넣은 마을할아버지 이 마냥 군데군데 시멘트벽돌로 잇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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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운마을 옛 담장은 다른 마을에 비해 사람들 마음을 그다지 끌지 못한다. 그러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아랫배 처지듯 배가 볼록 부른 담을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리에게 미 이전의 미, 철학 얘기를 들려준다.

흔히 배부른 담은 쓸모없는 담이라 여긴다. 과연 그럴까. 담 본래의 기능을 훌륭히 하고 있는 '쓸모 있는 반듯한 담'에 비하면 배불뚝이 담은 '쓸모없는 못난이 담'일지 모른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에 눌려 배가 불룩 나온 담은 마을사람들 본성이 하나하나 스며들어 우리에게 도타운 정과 농 짙은 향토적 서정을 안긴다. 탄생 설화 같은 그럴듯한 전설 하나쯤 매달려 있을 법한 그런 담이다.

'쓸모 있다, 없다' 판단하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임의의 잣대를 들이댈 때 생기는 관념적인 것이다. 잣대라는 것은 무서운 칼날 같아서 잘못 놀리면 해를 입히기 십상이다. 개발이나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옛담이 힘없이 헐려 시멘트로 덧칠된 '쓸모 있는 반듯한 담'으로 대체된 예도 이에 해당된다.

반듯한 담은 질서와 엄숙, 담 본래의 기능에 충실한 담이나 우리에게 정 붙일 여유를 주지는 않는다
▲ 오운마을 반듯한 담 반듯한 담은 질서와 엄숙, 담 본래의 기능에 충실한 담이나 우리에게 정 붙일 여유를 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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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의 말을 되새겨본다. 곽재우에게 쓸모 있는 사람은 임금도, 영웅 무관도 아닌 백성, 편안한 백성(安民)이었다. 안민을 배제한 부국강병이라든가 구호처럼 들리는 안민을 위한 부국강병은 자칫하면 민초의 희생을 강요하게 되고 이를 따르지 못하거나 혹은 따르지 않는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다. 

사회 지배 논리가 '쓸모'를 결정한다. '쓸모'를 얘기하기에 앞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 올바른 사회 지배 논리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러져 배가 부른 담은 마을사람들의 본성이 담겨 짙은 서정을 안긴다
▲ 오운마을 배불뚝이 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러져 배가 부른 담은 마을사람들의 본성이 담겨 짙은 서정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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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의령, #오운마을, #정암, #곽재우, #충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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