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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현인이나 작곡가 백영호처럼 부산에서 태어난 대중음악가의 작품 외에도 부산에는 많은 대중가요 노래비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1955년에 부산 소재 음반회사인 미도파레코드에서 발표된 <경상도 아가씨> 가사가 새겨져 있는 사십계단 기념비일 것이다. 1950년대 한때 서울을 능가하는 대중음악 중심지였던 부산의 지난 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경상도 아가씨>이기 때문이다.

사십계단 기념비
 사십계단 기념비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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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아가씨>를 작곡한 이재호는 경남 진주 출신, 작사자 손로원과 가수 박재홍은 서울, 경기 출신이지만,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모두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1953년에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다시 환도를 했다고는 하나, 피난 수도 부산에 모여든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기반이 금방 다시 서울로 옮겨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1954년 무렵 부산에서 설립된 미도파레코드의 첫 번째 음반으로 발표된 <경상도 아가씨>는 피난살이의 애환을 절절하게 그려 낸 전후 사실주의의 대표작이자 부산 대중음악의 정점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노래 가사 첫 머리가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로 시작하기에 사십계단 기념비 뒷면에 <경상도 아가씨> 가사가 새겨져 있는데, 사실 현재 노래비가 서 있는 곳은 원래 사십계단이 아니다. 인근 안내판에도 설명되어 있지만, 원래 사십계단은 현재 위치에서 사십계단문화관 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아주 좁은 계단이다. 수십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변 건물이 확장되면서 계단이 좁아지는 바람에 기념물로 조성하기가 곤란해, 1993년 바로 옆에 새로운 사십계단을 만들고 노래비를 세운 것이다.

사십계단 기념비 뒷면 <경상도 아가씨> 가사
 사십계단 기념비 뒷면 <경상도 아가씨> 가사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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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성에서는 아쉬움이 좀 있지만, 현재 사십계단이 원래 자리에서 그렇게 많이 떨어진 것은 아니므로,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 정경을 떠올리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하릴없이 사십계단에 걸터앉아 부산항을 바라보면서 이북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그리는 피난민의 애처로움이 가슴 저릿하게 느껴진다.

이 노래가 미도파레코드의 첫 작품으로 선택되었던 이유도 어쩌면 음반사를 운영한 임정수 사장 본인이 평안도 출신 실향민이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경상도 아가씨>로 첫 걸음을 내디딘 미도파레코드는 이후 서울로 근거를 옮겨 이름도 지구레코드로 바꾸었고,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와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등 기념비적 음반을 제작하며 한국 음반업계의 메이저로 군림했다.

<경상도 아가씨> 외에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비도 빠질 수 없는 부산 대중가요의 기념물이다. 부산 대중음악계가 이미 활력을 많이 잃은 뒤인 1970년대에 발표된 곡이기는 하지만, 부산 소재 대중가요 중 단연 최대 히트곡인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비는 1994년 해운대 해변에 세워졌다. <해운대 엘레지> 노래비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1980년대 부산 소재 대중가요의 대표작인 <부산 갈매기>도 2011년 오륙도 등대에 노래비가 세워졌고, 부산의 대표적인 명승지 태종대에는 2013년 <태종대> 노래비가 들어섰다.

앞서 살펴본 현인, 백영호의 노래비와 아울러 보면, 부산 대중가요 노래비가 2000년 이후에 많이 세워졌음을 알 수 있는데, 기념할 만한 작품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간의 관광 기념물 확보 경쟁심리도 노래비 다수 조성에 어느 정도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시대를 풍미한 노래도 전혀 아닌 것을 해당 지역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노래비까지 세운 태종대의 경우는, 그러한 경쟁심리가 낳은 대표적인 부작용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1960년대 이전 부산 대중가요들
 대표적인 1960년대 이전 부산 대중가요들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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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대중음악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노래비를 만든다면, 아직도 좋은 소재는 충분히 많이 남아 있다.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도 좋고, 고봉산의 <용두산 엘레지>도 좋다. 다만, 무의미하거나 오류 투성이 돌덩이가 아닌 진정 역사성 있는 기념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의 진지한 관심과 지방자치단체의 신중한 노력이 앞으로 좀 더 필요할 것이다.


태그:#부산, #대중가요, #노래비, #경상도 아가씨, #이별의 부산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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