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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갯가길 2코스 시작점인 돌산 계동선착장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돌산갯가길 2코스 시작점인 돌산 계동선착장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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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지도 그렇다고 덥지 않은 요즘 날씨다. 푸른 하늘 아래 온 산이 녹음으로 뒤덮였다. 5월이 왜 계절의 여왕인지를 생각해봤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 앞에서 가장 자연스러움을 만끽할 수 있는 철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자연의 속살은 변화무쌍한 내면이 숨겨져 있다. 계동앞 방파제에서 만난 한 어부는 지금의 바다 상황을 이렇게 일러줬다.

"현재 바닷물 수온이 13도 정도예요. 지금쯤이면 16도 이상 올라와야 하는데 예년에 비해 수온이 3도 이상 낮아요. 이상기온이죠. 수온이 너무 차가워 고기가 안 올라오니 걱정입니다."

가족과 걷는 돌산갯가길 트레킹 2코스

돌산갯가길은 혼자 걷기 딱 알맞은 폭넓이를 지닌 원시림이 존재한는 원시길이다.
 돌산갯가길은 혼자 걷기 딱 알맞은 폭넓이를 지닌 원시림이 존재한는 원시길이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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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갯기길을 걷다보면 청거북의 문형을 지닌 안내표지판을 따라 걸으면 길을 잃지 않는다.
 돌산갯기길을 걷다보면 청거북의 문형을 지닌 안내표지판을 따라 걸으면 길을 잃지 않는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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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함정그물인 이강망이라는 어구를 손질하던 그는 요즘은 참돔, 부시리, 숭어, 감성돔 철이란다. 그런데 수온 때문에 고기가 안 잡힌단다. 문득 그물을 수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를 만났다.

어부였던 아버지가 일 년 중 가장 많은 고기를 잡던 시절은 이맘때쯤이었다. 4월에서 5월로 접어들면 바닷물의 수온이 상승해 깊은 바다에 살던 어류들이 연안으로 몰렸던 까닭이었다. 고기가 많이 나서 5월엔 자식들 용돈도 푸졌다. 부모님께 받은 용돈으로 카네이션을 달아주던 어린 시절. 참 그때가 좋았다.

오는 주말이면 돌산갯가길 3코스가 개장된다. 5일 돌산갯가길 2코스 트레킹에 나섰다. 어린이날을 맞아 아들에게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다 떠난 길이었다. 아내와 나 그리고 아들 딱 3명이 걸었다. 누나들은 컸으니 어린이날은 이제 막내만 해당된다.

계동마을에 주차하고 바닷가 전봇대에 그려진 청거북과 주황색 리본을 따라 걸었다. 계동 선착장을 시작으로 너럭바위 ~ 큰끝등대 ~ 비렁 ~ 두문포 ~ 방죽포해수욕장까지 총 3시간 40분 코스였다.

5월에 걷는 돌산 갯가길은 청명했다. 한겨울에 걷던 갯가길과 판이하게 달랐다. 확 트인 시야가 '이곳이 청정 남해안이구나!' 라는 탄성이 절로 터졌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눈앞에 보이는 남해는 손을 뻗으면 당장에라도 잡힐 것만 같다.

갯가길을 걷다보면 수산물을 채취중인 갯것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갯가길을 걷다보면 수산물을 채취중인 갯것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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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사람들은 여수를 동바닥(바다)과 서바닥으로 나눈다. 동바닥은 수심이 깊으면서 파워풀하다. 일출이 이곳에서 시작된다. 파도가 거칠어 남성적인 이미지를 가졌다. 반면 서바닥은 수심이 상대적으로 얕다. 개펄이 많고 석양이 지는 노을처럼 섬세하다. 그래서 서바닥은 여성적인 이미지를 가진 바다다. 주로 돌산과 마주 보는 화양면 일대 바다를 일컫는다. 돌산 갯가길 코스는 동바닥에 속한다. 이곳 사람들은 열악한 자연환경 탓에 들판에 톡 쏘는 맛을 지닌 돌산갓처럼 생활력이 무지 강하다.

한참 갯가길을 걷는데 아들이 자꾸만 투덜거린다. 어린이날 친구들은 놀이공원에 가는데 왜 촌구석으로 들어왔냐고 불만을 터트렸다. 걷는 것에 익숙지 않은 요즘 아이들. 아침에 학교 갔다 또 학원에 치여 10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오니 안쓰럽다. 오늘은 좀 잘해줘야겠는데 아들의 불만이 점점 높아만 간다. 참다 참다 한마디 쏘아붙였다.

"이노무시끼 도를 넘지 마라."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원시림의 길을 지나 갯가로 접어들었다. 그곳엔 한 아낙네가 신발을 벗고 놓고 고동을 잡고 있다. 아이와 갯가길을 왔는데 고동이 너무 많아 2시간째 고동을 잡고 있단다. 잡은 고동이 한 움큼이다. 아들은 우리도 고동이나 잡아가자고 졸랐지만 갈 길이 바쁘니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해안초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해안초소의 모습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해안초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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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해안 초소가 나왔다. 한때 육군31사단 초병들이 해안경비를 섰던 곳이다. 이곳은 98년 12월 17일 '북한반잠수정 침투사건'이 발생한 전남 여수시 돌산읍 임포해안 초소와 그리 멀지 않다. 당시 북한 간첩선이 임포면 해안으로 침투, 해안을 지키던 육군 김 이병의 TOD 야간감시장비에 발각됐다.

이후 해군 초계함과 함정 수색대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조명탄을 투하한 공군 CN-235수송기까지 합세해 투항을 요청했지만 자동화기를 응사하며 도주하던 잠수정과 교전이 시작됐다. 마침내 새벽 거제도 남서쪽 100km 공해상에서 격침되었다는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국가 기간산업이 있는 여수산단 앞바다에 간첩선의 후방침투는 지역민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후 거스를 수 없는 남북화해 무드 속에 임포 해안부대를 제외하고 이곳 바닷가 해안초소는 없어졌다. 현재는 그 터만 앙상히 남았다.

계동로 468로 아래에는 냉장고를 비롯해 동네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악취가 진동한다.
 계동로 468로 아래에는 냉장고를 비롯해 동네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악취가 진동한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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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거북을 따라 갯가길을 걷다 보면 도로위를 여러 번 걸어야 한다. 차량이 오가니 위험하다.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인도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계동로 468로 아래에는 냉장고를 비롯해 동네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악취가 진동한다. 갯가길을 먹칠하는 가장 볼썽사나운 꼴이다.

해안초소를 지나 무술목 해안이 나왔다. 갯가길의 백미는 둘만 걸을 수 있는 원시길을 걷다가 바닷가 갯가을 걷는 데 있다. 그런데 두 눈을 의심했다. 다름 아닌 고동 때문이었다. 맛이 고소해 식감이 좋은 영지고동이 지천으로 널렸다. 우린 약속이나 한 듯 고동잡기에 나섰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바닷물을 첨벙거리며 고동을 잡는 아들은 어느새 기분이 풀렸다. 셋이서 잠깐 동안 잡은 고동이 한 소쿠리다.

고동잡는 재미에 푹 빠진 갯가길은 또 다른 이색 풍경이다. 먼 훗날 세월이 흘러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면 아빠. 엄마와 함께 이 갯가길에서 고동 잡던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갯내음이 묻어나는 갯가길처럼 내 아이의 마음도 짭조름한 소금처럼 점점 간이 들어가겠지.

가족과 갯가길을 걷다 영지고동을 한웅큼 잡았다.
 가족과 갯가길을 걷다 영지고동을 한웅큼 잡았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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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돌산갯가길, #가정의 달, #돌산갯가길 2코스, #돌산갯가길 3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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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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