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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을 재보궐선거에 국민모임 소속으로 출마했다 고배를 마신 정동영 후보는 "더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을 재보궐선거에 국민모임 소속으로 출마했다 고배를 마신 정동영 후보는 "더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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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4일 오후 7시 19분]

지난 4월 29일, 오후 8시까지 진행된 투표가 끝나고 4개 선거구의 개표 결과가 조금씩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 성남에서는 신상진 새누리당 후보가, 광주에서는 천정배 무소속 후보가 사실상 승기를 잡을 때까지 서울 관악을의 투표함은 열리지 않았다. 인천 서구강화 지역이 여당 텃밭인 점을 감안하면 새정치연합은 관악에서도 패할 경우 '전패'라는 참혹한 결과를 마주할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는 곧 현실이 됐다.

개표 초반 3~5%p 격차로 잠시 추격세를 보이던 동안 새정치연합 후보의 캠프는 기대감을 보였다. 그러나 개표가 30% 진행된 시점부터 새누리당 후보와 격차가 벌어졌다. 캠프에는 침묵만 흘렀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패배가 현실로 다가온 순간, 정동영 무소속 후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가 출마하지만 않았어도 '쉽게 이길 수 있는 선거'였다는 얘기다. 미움과 원망이 묻어났다.

결과적으로 정동영 후보는 20%를 득표했다. 새정치연합 후보는 34.2%를 얻었다. 두 사람의 표를 합산하면 새누리당 후보가 받은 43.89%를 훌쩍 넘는다. 패배의 원인으로 '야권분열'을 지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부 언론들도 이번 선거에서 제1야당이 전패한 원인으로 야권분열을 꼽았다. 그리고 그 논란의 중심에는 언제나 정 후보가 등장했다. '배신자'로 낙인 찍힌 그의 정치생명이 다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그러나 정 후보는 '야권분열로 야당이 패했다'는 분석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선거가 끝나고 이틀째인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사단법인 '대륙으로 가는 길' 사무실에서 만난 정 후보는 "'야권분열'은 진실이 아니다. 그런 주장은 민심과 전혀 동떨어져 있다"라며 "참패를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변명이다, 네 곳 가운데 어떤 곳도 야권 분열로 패했다고 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당선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패배는 겸손히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이 출마한 관악을 선거와 관련해 "지난 총선에서 탈당한 김희철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28%를 가져갔을 때도 당시 야권의 단일후보였던 이상규 후보가 승리했다"라며 "분열이 문제였다면 그때가 더 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는 '성완종 리스트' 논란으로 정권심판론이 일었다"라며 "그럼에도 새정치연합이 패배한 것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야당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가 당선되지 못하고 20% 득표에 그친 것을 지적하자 정 후보는 "새정치연합으로는 안 된다는 건 확인이 됐지만, '그럼 왜 정동영이어야 하는가'는 유권자들이 수용하지 않았다"라며 "거기까지는 나가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에는 관성이 작용한다, 2번만 찍어 왔던 많은 유권자들이 갈등했을 것"이라며 "정동영을 찍어야 하지만 야권이 질 것을 우려해 2번을 찍은 유권자들이 분명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 출마여부를 묻는 질문에 "지금은 출마할 생각이 없다. 당분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겠다"라고 답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낙선했다. 심정이 어떤가?
"당선만을 목적으로 했던 것은 아니다. 국민모임의 창당 동력을 만들어보겠다는 것도 있었다. 선거 종반으로 가면서 막판 바람이 체감됐다. 그래서 기대를 가졌다. 열어보니 아니었다. 그러나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전달하려던 메시지는 전달했다.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 야권교체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메시지는 명확히 했다. 어찌 됐든 선거 결과는 유권자의 심판이다. 패배는 겸손히 받아들인다."

- 새누리당 3석, 무소속 1석으로 결론 났다. 광주를 제외하고는 야권이 패배했다. 정권의 부패 스캔들에도 야권이 패한 것에 '분열'이 원인으로 꼽힌다.
"일부 진보 언론조차 그렇게 지적하는 것이 안타깝다. '야권분열'이 패배의 원인이라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런 주장은 민심과 전혀 동떨어져 있다. 참패를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변명이다. 네 곳 가운데 어떤 곳도 야권 분열로 패했다고 할 수 없다."

- 야권분열로 인한 패배라는 주장을 구체적으로 반박한다면?
"광주는 오히려 '야권분열론'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심판했다. 광주에서 새정치연합은 '야권분열을 막아 달라'라고 호소했다. 반면 천정배 의원은 '경쟁체제를 통한 야당교체'를 호소했다. 광주 시민들은 압도적으로 천 의원의 손을 들어줬다. 야권분열을 이야기한 후보가 심판받은 것이다.

시민들은 친노가 장악한 새정치연합, 그리고 거기에 편승해 자리지키기에 급급한 의원들에게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사실상의 퇴출명령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작년 전남 순천·곡성에서 새정치연합 친노 후보를 참패시킨 데 이어, 1년도 안 돼 또다시 이렇게 심판한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인천 서구강화는 사실상 여야가 1:1로 붙었다. 성남 중원은 야당의 텃밭이다. 여기도 김미희 후보가 완주했기 때문에 졌다고 할 것인가? 야권 후보의 표를 다 더해도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에 한참 못 미친다. 그렇다면 관악을이 야권의 분열인가? 마찬가지로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 탈당한 김희철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28%를 가져갔다. 그랬어도 당시 야권의 단일후보였던 이상규 후보가 승리했다. 분열이 문제였다면 그때가 더 했다. 그래도 이겼다. 이번에는 '성완종 게이트'까지 터져 모든 언론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 문재인 새정치연합의 구도로 도배했다. 정권심판론의 파도 속에 제3의 후보들은 흔적도 없이 묻혀버렸다. 그런데도 새정치연합이 참패한 것은 결국 정권심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야당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야당 기득권에 반감 컸다, 관악 주민들 버림받았다고 생각"

서울 관악을 재보궐선거에 국민모임 소속으로 출마했다 고배를 마신 정동영 후보는 "더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을 재보궐선거에 국민모임 소속으로 출마했다 고배를 마신 정동영 후보는 "더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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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본인도 20% 득표에 그쳤다. 정동영과 국민모임이 지금의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을 대체해 정권을 심판하고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야당으로 선택받지 못한 게 아닌가?

"새정치연합으로는 안 된다는 건 확인됐다. 하지만 '그럼 왜 정동영이어야 하는가'는 유권자들이 수용하지 않았다. 거기까지는 나가지 못한 거다. 야당을 심판하고 교체해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국민모임은 아직 국민들에게 생소했다. 대로변에서 상가를 중심으로 다녔다. 그래서 대로변 중심으로는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골목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마지막까지도 내가 후보로 출마했다는 것조차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 정치적 무관심 속에서 '그럼 왜 정동영이어야 하느냐'까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얻은 20%는 출마한 이유를 이해한 분들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노후대책을 세울 수가 없고, 아이 키우기는 너무나 힘들고, 청년들의 일자리는 없다. 대책이 뭔가? 재벌증세, 부자증세가 답이다. 복지국가로 가는 게 답이다. 지금의 야당은 담뱃값 2000원 인상하는 데 덜컥 합의해주고 재벌증세에는 아무 소리를 못한다. 그래서 야권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한 유권자가 20%였던 것이다."

- 그렇다면 새누리당의 당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관악에서 27년 만에 보수정당 후보의 당선이다.
"선거 치르면서 유권자들이 야권에 반감이 크다는 걸 느꼈다. 27년 동안 야권 후보가 당선이 됐는데, 만족도가 굉장히 낮았다. 야권이 당선되는 걸 당연히 생각하고 무책임했다. 자신들은 기득권을 누렸지만 지역은 점점 낙후됐다. 화장실 없는 집 1000여 채에 아파트들은 낡았다. 재래시장은 방치돼 있다. 사람들은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반감에 따른 반사이익을 새누리당이 얻었다. 유권자들이 야당을 넘고, 여당까지 넘어 정동영까지 오기에는 너무 길이 멀었다."

- 새정치연합 측에서는 이행자 시의원의 탈당과 국민모임 합류 등을 놓고 당원들을 빼가는 구태적인 모습이라고 비난했다. 새정치연합과 차별성을 강조했지만 선거 과정에서 실제로 그런 부분을 느끼기 어려웠다. 결국 '진보의제'가 아닌 '야권심판'이라는 프레임에 의존한 것이 아닌가?
"(수첩을 보여주며) 출정식 때부터 해야 할 얘기를 적은 수첩이다. 첫날 첫 장에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적었다. 1번이 '먹고사는 문제', 2번이 '야권 교체', 그 다음이 '새누리당의 어부지리는 없다'는 것, 마지막 4번이 정동영 개인의 이야기였다. 선거기간 내내 힘 없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을 위한 '반기득권 정치'를 이야기했다. 초점은 거기에 있었다. 복지국가를 이야기했고, 분단의 벽을 뛰어 넘어 평화체제를 가져오고, 북방경제를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종북몰이에 주눅 들어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야권분열'로 패했다는 건 허구다."

- 그럼에도 야권 지지층은 정태호 새정치연합 후보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거기에는 이번 선거 출마에 상당한 불만을 가진 사람도 많다. 나머지 야권지지층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나?
"아직 선거 결과를 정확히 분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새정치연합 후보는 역대 최저득표를 기록했다. 선거에는 관성이 작용한다. 2번만 찍어 왔던 많은 유권자들이 갈등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동영을 찍어야 하지만 야권이 질 것을 우려해 이번에도 2번을 찍은 유권자들이 분명 있다고 본다. '성완종 리스트' 등의 사건은 그런 여야 1:1대결을 부추겼고, 그걸 넘어서야 하는 나에게는 부담이 됐다."

"새정치연합 혁신은 문재인 대표의 몫"

- 국민모임 내부 평가는 어떤가?
"기대만큼 성적을 올리지 못한 것에는 아쉬워한다. 하지만 흔들림 없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성명을 냈다."

- 국민모임이 추진 중인 대안진보정당 건설과 진보정당 통합에 이번 선거는 어떤 영향을 줬다고 보나?
"유일한 진보후보였는데, 정의당과 노동당 등 4자연대가 매끄럽게 되지 못하면서 다른 정당들이 선거에 결합하지 못했다. 그것이 20% 지지에 그친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마 '진보단일후보'로 선거를 뛰었다면 조금 더 확장성이 있었을 것이다.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4자연대 후보로 되지 못한 것은 아쉽다. 다른 진보정당들을 탓하는 게 아니라 그 또한 우리의 몫이다."

- 국민모임에서 인재영입위원장 역할은 계속되나?
"그건 창당준비위 단계에서 맡았던 역할이다. 출마를 하면서 다 내려놓았다. 지금은 아무런 직책이 없는 발기인이다. (국민모임에) 미안한 마음이다. 멋지게 승리했다면 창당에 동력이 붙었을 텐데, 많이 아쉽다."

- 선거초반 정의당, 노동당 등과 선거 결과를 평가하거나 향후 계획을 논의했나?
"아직 그런 자리는 없었다."

- 천정배 의원과 함께 할 가능성은?
"정치는 항상 열려있다. 천 의원에게 국민모임 합류를 권유했지만, 생각이 달랐다. 천 의원 구상이 있을 것이고, 그걸 존중한다."

- 친노야당이 광주에서 심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그럼 새정치연합과 문재인 대표, 당내 친노세력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당의 노선은 비판하지만 정치인 개인을 언급하기는 어렵다. 그걸 극복하는 것은 문 대표의 몫이다. 다만 문 대표가 해결해야 할 몫을 야권분열로 돌린다면 결코 혁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책임 떠넘기기다."

"힘 없는 사람을 위한 정치 계속한다"

서울 관악을 재보궐선거에 국민모임 소속으로 출마했다 고배를 마신 정동영 후보는 "더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을 재보궐선거에 국민모임 소속으로 출마했다 고배를 마신 정동영 후보는 "더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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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일부에서 '배신자'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정치생명이 다 했다고 말하는 언론도 있다. 이런 비판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또 앞으로 계획은 어떤가?

"개인의 영광을 위해 출마한 게 아니다. 그러나 어떤 비난도 나의 몫이다. 정동영의 몫은 그 비난을 감수하는 것에 있다. 나의 분명한 의지와 신념은 재벌과 대기업, 관료집단과 기득권층, 정부와 여당으로 형성된 견고한 카르텔을 깨는 것이다. 지금 제1야당은 여기 기득권 집단에 편입하려고 한다.

선거 기간 중에 신대방역 아래 하천가에 1500여 명이 줄을 섰다. 자선단체에서 빵을 나눠주고 있었다. 내려갔더니 '여기 계신 분들은 관악구 주민이 아니라 서울 전역에서 오신 분들'이라고 하더라. 다른 후보들은 돌아갔다. 나는 그분들이 눈빛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반 동안 악수했다. 영등포에서, 동작에서, 금천에서 오신 분들, 성북과 노원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아!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인가? 도대체 정치를 왜 하는가? 새로운 가난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이 심각한 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헌법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 정치는 뭘 하는 건가. 정치가 지금 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참담했다. 화장실 없는 집들이 모인 골목을 다니면서, 대명천지에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화장실 없는 집에 사는 사람이 수천 명인데 어떻게 이걸 방치할 수 있는가. 그동안 이 지역의 선출직 대표자들, 국회의원들은 과연 어떤 책임감을 가지고 있나. 이건 헌법 위반이다. 모든 국민은 쾌적한 주거 생활을 누려야 한다.

이것이 정치의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 힘 없는 사람들이 기댈 곳이 돼야 한다. 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 정치는 가난한 사람들도 먹고 살게 해주는 것이다. 나의 정치가 그런 것이라면 계속 한다. 하지만 정치가 누리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면 관심 없다. 20년 전 정치를 시작할 때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라고 말했다. 그것이 지금에야 몸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그것이 피와 살이 된 것은 지난 몇 년 동안의 일이다. 정치를 너무 쉽게 시작했던 것 같다."

- 2016년 총선에 출마할 계획이 있나? 앞으로 계획은?
"지금은 출마할 생각이 없다. 당분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겠다. 이번 선거와 관련한 인터뷰도 <오마이뉴스>와 하는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정동영, #문재인, #국민모임, #새정치연합,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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