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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4.29 재보궐선거일인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4.29 재보궐선거일인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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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전략홍보본부장은 28일, 4.29 재보궐선거 판세를 묻는 기자들에게 "전승할 수도 있고, 전패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결과는 전패였다.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란, '성완종 리스트' 파문, 세월호 1주기 등 정부 여당에 악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새정치연합은 무기력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표는 취임 3개월여 만에 무너지는 당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애초 이번 선거를 대하는 새정치연합의 태도는, "한 곳만 이겨도 선전"이라는 말 속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4석밖에 안 되는 미니선거에 전력을 쏟았다가 크게 패하기보다는 무난하게 선거 국면을 넘기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천정배, 정동영 등 당의 유력인사들이 탈당해 야권 심판론을 제기하며 출마하면서 판이 커졌다. 문재인 대표가 전면에 나서서 제1야당 입지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선거 중반 '성완종 리스트'가 터지면서 제1야당 입지를 지키는 수준을 넘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선거'가 됐다. 패배할 경우, 유례 없는 정권 핵심인사들의 부패 의혹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당 대표 경선에서 내건 '2016년 총선 승리', '2017년 대선 정권교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선전' 이상의 결과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그는 처참한 선거 성적표를 받고 말았다.

광주 민심, 사실상 친노와 결별 선언


우선 야권분열은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새정치연합의 정치적 고향과 같은 호남에서부터 흔들릴 전망이다. 광주 서구을 선거에서 천정배 무소속 후보는 과반인 52.3%를 득표했다. 조영택 새정치연합 후보는 29.8%에 그쳤다. 새누리당과 정의당 후보까지 합치면 비(非)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70%를 득표했다. 더 이상 광주가 '새정치연합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곳'이 아니라는 현실이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29일 투표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새정치연합은 광주에서 선전을 기대했다. 양승조 사무총장은 오전에 CBS 라디오에 출연해 "광주는 국민들께서 잘 아시다시피 새정치연합의 심장 부분 역할을 한다"라며 "그런 광주에서 천 후보가 당선된다면, 야권 전체의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달리 말씀드리면 정권교체의 길이 험난해지고 멀어지지 않겠느냐, 이런 판단도 하기 때문에 광주에서의 승리는 아주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야권의 분열을 우려해 광주시민들이 새정치연합을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20%포인트가 넘는 차이의 패배였다. 투표율은 41%를 넘어 이번 재보궐선거 지역 중 가장 높았고, 이전 다른 지역의 재보궐선거와 비교해도 확연하게 높은 수치다. 결과적으로 당 조직과 민심 등 모든 요소에서 밀린 완벽한 패배다. 양 사무총장이 말한 "야권 전체의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현실화된 것이다.

광주에서 당한 패배는 문재인 대표에게 가장 큰 타격이 될 전망이다. 문 대표는 이번 선거기간 광주를 6번이나 방문하며 가장 공을 쏟았다. 선거 마지막 주말 집중 유세도 광주에서 치렀다. 그래서 광주 선거는 '문재인 대 천정배'의 대결로 여겨졌다. 때문에 천정배 후보의 압승으로 끝난 이번 선거 결과는 광주가 '부산·영남 친노(친노무현)'과 결별을 선언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선택한 광주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27년 만의 첫 패배, 불명예만 얻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이군현 사무총장 등 지도부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선거 상황실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중, 3곳에서 후보들이 1위를 달리고 있자 기뻐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 새누리당 재보선 압승, 기뻐하는 김무성 대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이군현 사무총장 등 지도부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선거 상황실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중, 3곳에서 후보들이 1위를 달리고 있자 기뻐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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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의 최대 접전 지역으로 예상된 서울 관악을 선거도 비슷하다. 광주와 달리 관악은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 정태호 새정치연합 후보, 정동영 무소속 후보의 3파전으로 치러졌다. 광주가 '야권심판론'을 결정하는 곳이었다면 관악은 '정권심판론'을 결정하는 곳이었다. 새정치연합은 정동영 후보의 바람을 정권심판론으로 잠재우고 야권의 표를 결집하면 승산이 있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당초 오 후보와 접전을 벌여 신승을 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두 후보의 격차는 10%포인트 가까이 벌어졌고, 표 차이는 7441표가 넘었다. 정동영 후보는 20.1%를 얻었다. 야권 후보의 표를 합산하면 오 후보의 표를 훌쩍 넘어서지만 그렇다고 패배의 책임을 정 후보에게로 돌리는 것은 무리다. 정동영 후보가 20% 이상 득표한 것은 유권자들이 정권을 심판하는 데 새정치연합은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태호 후보가 문재인 후보의 최측근 인사라는 점, 또 관악이 지난 27년 동안 보수정당의 승리를 허락하지 않은 곳이라는 점도 뼈아픈 지점이다. 정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 정무비서관, 정책비서관, 대변인 등 참여정부 내내 문 대표와 함께 청와대를 지켰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마지막 유세를 벌인 곳도 관악이었고, 문 대표도 이를 강조하며 상징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노무현'이라는 상징성을 잃고, '첫 패배'라는 불명를 얻었다.

정동영 후보는 비록 낙선했지만 나름의 존재감을 보였다. 정 후보 때문에 야권이 패했다는 비난 여론도 있지만 그가 주창한 '야권 심판'이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음은 확인했다. 그가 속한 국민모임과 정의당, 노동당 등이 추진하는 진보정당의 재결집 노력도 당분간은 유효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정 후보는 낙선인사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진보통합이라는 국민모임의 꿈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사퇴? "지금 맷집 키워야"

사실상 야권분열이 더욱 가시화한 상황에서 새정치연합과 문 대표의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낼 것인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재보선 전패로 당이 입은 충격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선거 결과가 드러날 때쯤 새정치연합은 사실상 마비 수준으로 떨어졌다. 핵심 당직자들은 연락이 닿지 않거나 입을 닫았다. 유은혜 대변인이 "국민이 바라는 바를 깊이 성찰하겠다"라는 논평으로 갈음한 게 전부다.

새정치연합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이번 선거가 4석짜리 미니선거라는 것뿐이다. 때문에 15개 의석이 걸리고 전략공천 논란까지 있었던 지난해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지도부가 사퇴한 것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당 지지율도 상승세였고, 문 대표는 직전까지 차기 대선주자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가 대표직에서 물러난다면 더 큰 혼란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문 대표는 이날 자택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통로를 통해 문 대표의 반응을 확인하고자 했지만 불가능했다. 핵심 당직자들은 문 대표가 30일 오전 10시에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만 전했다. 현재로서는 문 대표가 정면승부를 택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한 측근은 "매를 일찍 맞았다, 지금 맷집을 키우지 않고 포기한다면 광주도 되찾을 수 없고, 야권통합도 정권교체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문 대표 정치력의 시험대는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태그:#문재인, #천정배, #정동여, #새정치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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