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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잊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획해 인터뷰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 기자 말

4월 1일 오후, 오랜 투쟁 속에서도 공장 앞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사무실의 분위기는 어둡지 않았다. 인터뷰 장소인 사무실에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 사무실 안은 사소한 농담들로 웃음꽃이 피어났고 오석천 조직부장님이 타주신 커피향기로 사무실 전체가 훈훈했다. 다음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김득중 지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그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이다

김득중 지부장이 "나는 쌍차 투쟁 일곱 번째 희망의 봄을 동료들과 만들어가고 있는 쌍차 지부장 김득중입니다"라고 적은 팻말을 들고 있다.
▲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 김득중 지부장이 "나는 쌍차 투쟁 일곱 번째 희망의 봄을 동료들과 만들어가고 있는 쌍차 지부장 김득중입니다"라고 적은 팻말을 들고 있다.
ⓒ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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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고 통지를 받기 전까지 쌍용자동차에서 얼마나 근무하셨고 어떤 일을 하셨나요?
"1993년도 입사해서 2009년도에 해고가 되었으니까 햇수로 16년 정도 근무를 했습니다. 주로 품질 쪽 일을 담당했어요. 차량 결함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수정해 나가는 일이었어요."

- 2009년 4월 8일 정리해고 통보 후 희망퇴직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리해고 통지를 받을 당시 제가 조직쟁의실장으로 노조에 있었습니다. 희망퇴직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어요. 다만 희망퇴직으로 떠나려고 하는 동료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켜잡을까', '어떻게 멈추게 할까'하는 고민 때문에 수개월 동안 밤낮으로 조합원들을 만나러 다녔죠."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로서 노동조합에서 주로 활동하셨는데, 작년엔 직접 정치참여 의사를 밝히셨어요. 7.30 평택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사실 여전히 우리나라 정치가 노동자·서민들한테 다가오지 않잖아요. 2012년도 대선 국면에서 모든 후보들이 쌍용차 문제의 국정조사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당선되고 몇 개월 안 되어서 모든 공약들이 물거품이 되었어요. 이때 국정조사 과정을 보면 핵심을 전혀 건드리지 못하고, 쳇바퀴만 도는 수준이었어요. 당시 야당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는데, 의원의 '쪽수' 문제와 같은 현실적 이유 때문에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를 좀 했었어요.

이 문제를 누군가는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세월호 사고 후의 과정을 봐도, 누군가는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고 농민·서민·노동자를 진정으로 대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우리의 문제인 정리해고 노동자의 문제도, 그 아픔을 갖고 있는 당사자가 직접 해결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생각에 출마하게 됐죠."

- 작년 11월, 사법부가 '쌍용자동차 해고자 153명의 해고무효소송'에 대해 해고는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는데, 그후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지금 파기환송심 재판에 가있는데 일단 파기환송되면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기가 상당히 어려워요. 근데 어렵다고 그만 둘 수는 없잖아요. 작년에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선정한 2014년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 쌍용차 정리해고 재판이 1위였어요.

그만큼 대법원의 정리해고 쌍용차 판결은 문제가 있습니다. 정치적 판결이 아니고서는 이런 판결을 낼 수 없다는 게 법조계 다수의 의견인 거예요. 대법 판결 후에 변호사 세 분이 추가로 합류하셔서 현재 9명의 법률대리인과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 파기환송심이 끝나려면 꽤 오래 걸리겠어요?
"새로운 사실이 있으면 그 문제를 가지고 얘기해 볼 수 있는데, 이미 다뤘던 문제를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작년 4월 경, 노사가 맺은 고용안정협약서, 약정서 등등이 있으면 고용안정협약이 유효하다는 것이 대법판례로 나왔거든요. 저희는 상하이차로 매각된 후에 매년 고용안정협약을 썼어요. 이거를 저번 재판 때, 대법 때까지는 문제 삼지 않았는데, 이번부터는 저희가 심층적으로 환송심에 적용할 예정입니다. 이것 외에도 기존의제를 중심에 두고 새로운 것을 집어넣어서 진행할 생각이에요."

세 번째 굴뚝농성, 왜 또 다시 굴뚝 위로 올라가야 했나

- 작년 12월,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공장내의 70m 굴뚝에 올라 세 번째 고공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관련 기사: 목숨 걸고 70m 굴뚝 올랐을 그... 같이 울었다) 올해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내려오기까지 101일이란 시간이 걸렸는데요. 농성에 돌입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저희 해고무효 확인 소송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되고 난 후에 사실은 간부들도, 조합원들도 분노나 울분이 말할 것도 없었어요. 또 이걸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정리도 하지 못했었어요. 그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지부 전체에서 회의했었는데, 결과적으로 단식을 결의했어요. 그런데 시행하기로 한 4일 전에 두 동지가 올라갔어요. 두 동지가 올라가면서 많은 언론을 통해 우리의 메시지가 전해졌잖아요. 사법권과 정치권, 많은 사람들의 무시와 외면도 있었지만, 이 문제를 끝내고 싶다는 절박함에 또 다시 굴뚝에 올라간 거죠."

- 두 동지가 굴뚝 위로 올라가서 내려오기까지, 땅에서 지켜보아야 했던 당시의 심경은 어떠셨나요?
"굴뚝에 올라간 동료들과 같은 '절박함'이었죠.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어요. 초창기 딱 굴뚝에 오르고 나서, 굴뚝 보이는 곳에 천막을 치는 것조차도 엄청나게 탄압받았습니다. 긴급행정대책회의라고 하면서 경찰과 시청이 동시에 동원됐어요.

몸으로 부딪치고, 저항하고, 위의 동지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 굴뚝 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그런 것들이었어요. 매우 중요했죠. 굴뚝 위는 장기간 버틸 수 있는 공간이 안 되기 때문에 굴뚝농성 돌입한 날부터 저희도 24시간 농성체제로 운영했어요. 알릴 수 있는 것 최대한 알리고, 빨리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쌍용자동차의 모기업인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지난 1월 14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를 방문한 가운데,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70m 굴뚝 위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3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깔개 위에 청테이프로 'Let's Talk'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들어보이고 있다.
▲ 쌍용차 굴뚝 외침 'Let's Talk' 쌍용자동차의 모기업인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지난 1월 14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를 방문한 가운데,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70m 굴뚝 위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3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깔개 위에 청테이프로 'Let's Talk'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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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쌍용자동차의 대주주인 마힌드라 회장과 직접 만나 대화하셨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나요? 그리고 그 뒤로 뭔가 달라진 것이 있나요?
"1월 14일 평택공장 방문일정에 섞여서 아침에 만났어요. 인상은 참 부드럽고 좋았어요. 처음에는 마힌드라 회장이 15분 정도 본인 얘기를 했어요. 경영인으로서 이윤창출을 전제로 하는 얘기를 풀었습니다. 이미 이곳 공장에 오기 전에 굴뚝농성과 해고자들에 대해 알고 있다는 얘기도 했어요.

우리는 마힌드라의 목표나 가치를 보더라도 대립과 갈등보다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측면에서 한국 경영진과 충분히 이야기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노력들을 최대한 관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얘기했죠. 긴 시간의 투쟁생활을 하면서 파산, 가정파괴, 죽음을 수 년 동안 지켜봐 왔고, 이젠 끝을 냈으면 좋겠다고 전달했어요.

짧은 시간이어서 많은 얘기를 주고받진 못했지만, 그 자리가 3자 대표의 만남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실무교섭까지 이어지는 계기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수많은 죽음과 아픔이 있었지만... 차분하게 풀어갈 생각"

지난 3월 14일 오후 이창근 쌍용차노조 기획실장이 92일째 굴똑농성중인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앞에서 희생자 26명 명예회복과 해고자 187명 복직을 응원하는 '3.14 쌍용차 희망행동' 행사가 전국각지의 투쟁사업장 노동자와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시민들이 공장 철망에 희생자와 해고자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희망 자물쇠'를 매달고 있다.
 지난 3월 14일 오후 이창근 쌍용차노조 기획실장이 92일째 굴똑농성중인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앞에서 희생자 26명 명예회복과 해고자 187명 복직을 응원하는 '3.14 쌍용차 희망행동' 행사가 전국각지의 투쟁사업장 노동자와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시민들이 공장 철망에 희생자와 해고자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희망 자물쇠'를 매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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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섭의 목적은 무엇이며 현재까지의 경과는 어떠한가요?
"지난 1월 21일 3자대표가 만났어요. 저하고 김규한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위원장하고 이유일 사장이 만나서 얘기를 했죠. 결론은 해고자 복직, 손배가압류, 회사정상화, 26명의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지원 대책. 이 네 가지를 의제로 해서 실무교섭을 하기로 하고 지난 1월 29일부터 매주 목요일 2시에 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지금까지 매주 실무 교섭을 진행하고 있어요.

조금씩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좁혀나가는 과정을 갖고 있지만, 확연한 결론은 없는 상태에요. 6년이란 시간, 우리에겐 긴 시간이었습니다. 실무교섭이 이런 시간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 쌍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데 있어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힘든 건 시간과의 싸움 아니겠나 싶어요. 사실 이렇게 긴 싸움을 이어온다는 게 결코 쉽지가 않아요. 싸우는 순간순간, 한 걸음 걸어간다는 희망이 싸우는 동지들한테는 필요합니다. 6년 동안 안 해본 투쟁이 없어요. 수많은 역경과 노력, 고통, 아픔이 있었습니다. 다른 투쟁사업장처럼 우리가 고립되거나, 우리의 문제가 잊히거나 했다면 고민의 깊이는 더 컸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쌍차 투쟁은 워낙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과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그것이 우리한텐 큰 힘이 되는 거죠.

아빠와 남편의 자리에 빈 공간이 커져가는 것도 갈등의 주요한 요인이죠. 경제적 어려움 이런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작은 마찰들이 있는 건 당연하고, 이런 일상에서의 미안함이 있죠. 투쟁이야 이미 결심하고 결의해왔기 때문에,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동지들이 같이 하기 때문에 크게 힘든 점은 없습니다."

- 투쟁 중에 병마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26명에 이릅니다. 동지들의 죽음 앞에서 느꼈던 점을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망연자실 외엔 별로 없어요. 잘 알고 모름을 떠나서, 정리해고라는 게 아니었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깝고, 때론 분노도 같이 생기죠. 사실 질병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적으로 살았다고 한다면, 사회적 낙인과 억압 속에서 살지 않았다고 한다면···. 쌍차 다녔다는 게 드러나는 순간 무슨 큰 죄인인양 취급을 받거든요. 저희는 '이력서의 주홍글씨'라고 표현합니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 찾는 게 술·담배고 그러다 보면 건강이 망가지고 하는 거죠."

- 수많은 죽음과 아픔 속에서도, 근 6년간 쉴 새 없이 투쟁과 운동을 이어오셨어요. 현 시점에서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한 노조의 계획이나 다짐을 말씀해주세요.
"준비를 차분하게 하고자 해요. 이후 투쟁 방향 관련해서 집중 토론과 수련회를 기획하고 있고요. 수련회에서 확정된 투쟁계획 가지고 조합원들과 함께 각자의 역할을 해낼 생각입니다. 저희는 져본다는 걸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포기라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길 것이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갈 겁니다."


태그:#사람들, #쌍용자동차 투쟁,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김득중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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