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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화백이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허영만전 창작의비밀' 미디어데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허영만 화백이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허영만전 창작의비밀' 미디어데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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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화백이 하루 중 제일 아까워하는 시간은 언제일까. 물론 "꼭 있어야 하는 시간"이란 단서는 있지만, 밤 12시부터 5시, 잠자는 시간이다. 그에게 전화를 했다가 괜한 타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시간대도 있다. 낮 1시부터 2시, "낮잠은 45년 된 버릇. 이 시간에 손님이 오면 제일 밉다"고 적혀 있다.

허영만 화백이 직접 그려 소개한 최근 자신의 '일일 생활계획표' 중 일부다. "거의 매일 술이지만 새벽에 일어나는데 지장 받지 않을 정도로 마신다"거나, 오전 6시부터 12시까지를 "하루 중 제일 또릿또릿한 시간, 그래서 이 시간에 집중적으로 작업한다"는 소개는 아침형 인간으로서 그가 어떤 화백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허영만 "굉장히 놀랐다. 전시회, 반드시 성공하고 싶다"

그런 화백 허영만에게, 예술의 전당이 국내 만화가에게는 최초로 그 '품'을 열었다. <각시탈>, <무당거미>, <날아라 슈퍼보드>, <오! 한강>, <비트>, <타짜>, <식객>, <꼴> 등 40년 동안 다양한 만화로 많은 사랑을 받아 온 화백 허영만의 첫 전시회 '허영만 전(展) - 창작의 비밀>이 오는 29일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허영만 화백은 전시회 하루 앞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인사말을 통해 "사실 재작년 가을부터 준비하면서 다른 곳도 여러 군데 알아봤는데, 작년 하반기 예술의 전당에서 '덜컥' 됐다고 해서 그 순간 굉장히 놀랐다"며 "제2, 제3의 만화 전시회가 열릴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전시회 연구를 많이 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하니까, 기대가 크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전시회에서 화백의 창작 비밀을 보여주는 주요 전시물들은 작품 활동을 위한 취재 노트나 화백의 일상을 담은 만화 일기 그리고 이번 전시회를 위해 선별한 원화와 드로잉 500여 점 등이다. 특히 1974년 발행된 <각시탈>의 초판본 원화 149장이 40년 만에 최초로 공개된다.

전시회를 기획한 정형탁 큐레이터는 "기성세대는 '각시탈'로, 20, 30대는 '식객' 등으로 허영만 선생님이 창조하신 캐릭터를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다. 40년 동안 허영만 선생으로부터 일종의 세례를 받은 셈"이라며 "'어떤 걸 봐주십사' 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품들이 너무 많아 전시 준비를 하기가 사실 힘들었다. 각자 소소한 기억들을 전시회에서 살려보고 함께 나누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가 커피를 못 마셔요... 결국 책상 위에서 승부"

허영만 화백이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허영만전 창작의비밀' 미디어데이 행사가 끝나고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허영만 화백이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허영만전 창작의비밀' 미디어데이 행사가 끝나고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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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허영만 화백은 기자들과 질의 응답을 시작하자마자 대뜸 "부끄럽다"고 했다. 그는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헤아려보니까 작품을 215편이나 했더라. 한 달에 작품 하나씩 했던 시절이 있어 그랬던 것 같다"며 "그와 같은 창작 환경이 부끄럽지만, 한편 우리 만화계의 부끄러운 역사도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작가주의는 동년배 작가의 작품 활동과 관련한 질문에서도 나타났다. 허 화백은 "함께 어깨를 겨뤘던 동료들에 비해 항상 2등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나보다 잘 그리던 동료들이 다 없어졌다. 서글프다"며 "한편 재능 관리를 잘 못하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스스로 가만히 안 놔두는 성격이라 부지런을 떨었던 것 같고, 그렇게 담금질하면서 조금씩 발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허영만 화백은 '창작의 비밀' 중 하나로 근면함을 꼽았다. 그는 "만화가의 길에는 왕도가 없다"면서 "그러니까 많이 책상에 붙어 있어야 하고, 영화나 소설 이런 것도 많이 봐야 하고, 남의 걸 보면서 무심코 넘어가지 말고 장점을 도둑질하려 해야 한다. 결국 승부는 책상 위에서 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가 커피를 안 마셔요. 밤에 잠을 잘 못 자서. 한번은 족발을 먹었는데 잠이 안 와요. 커피 한 잔도 안 마신 날이었는데.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족발에 색깔을 넣으려고 커피를 넣은 거였어요. 그럴 정도인데 커피 만화를 시작했어요(웃음)."

최근 데뷔 40주년을 맞아 <커피 한잔 할까요?>(글 이호준)로 돌아온 허 화백이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던 말이다. 그는 "일본에 유명한 낚시 만화가가 있는데 그 역시도 낚시를 못한다고 하더라. 나도 태권도 유단자라서 <각시탈>을 그린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공부하다 보니 그릴 수 있는 것이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기에 처음부터 공부하면서 그려 독자한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그의 성실함과 작가주의가 '창작의 비밀'

 자타가 부지런 하다고 하는 허영만 화백이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허영만전 창작의비밀’ 전시장에서 전시 된 자신의 일과표를 설명하고 있다.
▲ 부지런 허영만 화백의 일정 자타가 부지런 하다고 하는 허영만 화백이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허영만전 창작의비밀’ 전시장에서 전시 된 자신의 일과표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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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화백이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허영만전 창작의비밀' 미디어데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허영만 화백이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허영만전 창작의비밀' 미디어데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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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친구들이 그를 두고 "너에게서 성실함을 배운다"고 할 정도로 허영만은 성실함 그 자체다. 허영만은 화실 벽에다 좌우명을 써 붙이는 게 취미다...(중략)...허영만은 성실함과 관련해 벽에 붙여놓았었다는 또 하나의 글귀를 들려주었다. 일에 꾀가 날라치면 땡볕 아래서 곡괭이질하는 사람을 생각하라. 네가 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것이니!" (2008년, <나는 펜이고 펜이 곧 나다> 중에)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에 이어 허영만 화백이 직접 전시 작품을 소개하는 시간에서도 그의 '비밀'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2011년작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드로잉 앞, 허 화백은 "처음에는 서양말만 생각하고 무심코 말을 크게 그렸는데, 몽고말은 사실 그렇지 않았다"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 처음부터 전부 다시 말 크기를 고쳐 그렸다"고 말했다.

이는 허영만 화백의 '속살'을 통해서도 나타났다. 수서 작업실에 라면박스 2개 정도에 담겨 있다는 만화일기와 여행일기, 작가로서 자신의 일상을 담은 컷들이다. "밥상 놓고 그림 그리느라 식은 밥 먹기 일쑤"라든가, "토요일 늦은 밤, 2시가 넘었다. 자는 것이 아깝다" 등, 각양각색 종이에 남긴 메모들이 작가의 비밀이 무엇인지 대변해주고 있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정형탁 큐레이터는 "차를 몰고 길을 가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차를 세우고 메모하거나, 잠자다가도 뭔가 꿈에 나타나면 일어나 적고 다시 잠을 청할 정도로 메모광"이라면서 "허영만 선생님 말씀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난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는 말"이라고 전했다.

"돈 벌고 돈 잃는 사람들 공부할 생각"

허영만 화백이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허영만전 창작의비밀'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대표작품 <제 7구단> 앞에 서 있다.
▲ <제 7구단> 앞에 선 허영만 허영만 화백이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허영만전 창작의비밀'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대표작품 <제 7구단>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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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화백이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허영만전 창작의비밀' 미디어데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허영만 화백이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허영만전 창작의비밀' 미디어데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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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날 미디어데이에서 허영만 화백은 향후 작품 활동 계획을 묻는 말에 작가로서 여전히 왕성한 의욕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며칠 전 가족들이랑 1박 2일 야영을 다녀왔다. 외국계 은행에 다니는 사위가 돈 이야기를 해줬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타짜> 취재 갔을 때 받았던 그 느낌이었다"며 "돈을 벌고 돈을 잃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 그에 대해 앞으로 공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버만화도 그릴 생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허영만 화백은 <식객> 외전 작품 계획을 묻는 말에는 "<식객>을 연재하면서 정말 즐거운 일이란 생각이 들어 작년까지만 해도 전국 계절 음식 등을 취재하고 다녔다"며 "하지만 작품과 관련하여 필요한 부서에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해도 잘 안 되더라. 정말 힘들었고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들어 완전히 접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전시회는 7월 19일(일)까지 80일간 열린다. 허영만 화백의 원화나 드로잉, 취재 노트나 그림 일기 외에도 그의 작품을 오마주 조각이나 팝아트 등 다양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주최측은 "허영만 화백이 창조한 작품이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 대중 문화의 중심으로 이어져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988년부터 허영만 화실에서 2년을 함께 했던 윤태호 작가가 그린 그 시절 <벽>, <망치> 등 컷들도 공개된다. <이끼>, <미생>, <파인> 원화도 함께 전시된다.

이번 전시회는 평일 오전 11시, 오후 2시 두 차례 도슨트 프로그램(작품 안내)에 따라 운영되며, 매주 토요일에는 허영만 화백이 직접 만화를 주제로 특강을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여수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다음카카오 등이 후원했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태그:#허영만, #식객, #타짜, #각시탈, #윤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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