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HAP PHOTO-2241> 경기 지켜보는 김성근
    (대전=연합뉴스) 양영석 기자 = 26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SK의 경기. 한화 김성근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15.4.26
    youngs@yna.co.kr/2015-04-26 16: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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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SK의 경기. 한화 김성근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한화 이글스의 돌풍이 2015시즌 초반 프로야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최근 3년 연속 꼴찌 포함 6년간 다섯 시즌이나 꼴찌를 독점해온 만년 '동네북' 한화는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첫 해 22경기를 치른 현재 12승 10패, 승률 5할 4푼 5리로 SK와 공동 4위까지 치고 올라오며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

한화는 지난 24~26일 열린 SK와의 주말 3연전에서는 시즌 첫 3연승, 시리즈 스윕 등 여러 가지 의미있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김성근 감독의 친정팀이자 올시즌 우승후보 중 하나로 평가받던 SK를 상대로 거둔 완승이기에 더욱 값진 의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SK전을 기점으로 개막 후 멀어만 보이던 '5할-플러스 알파'의 승률 도전에 4전 5기 만에 성공하며 올시즌 한화가 명실상부한 다크호스로 인정받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남달랐다.

찬반 양론이 엇갈리는 이슈 메이커

이러한 한화 돌풍의 중심에는 바로 '김성근 신드롬'을 빼놓을 수 없다. 프로야구 '현역 최고령 사령탑'인 김성근 감독은 2011년 시즌 중반 SK 사령탑에서 경질된 이후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사령탑을 거쳐 지난 2014년 겨울 한화 사령탑을 맡으며 3년 만에 프로야구 1군무대로 복귀했다.

김성근 감독의 복귀와 동시에 한화는 일약 프로야구 화제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김성근 감독은 30년이 넘는 지도자 경력동안 SK, LG, 쌍방울 등 무수한 구단을 거치며 약체로 거론되던 팀을 강호로 만들어놓는 '승부사'이자, 강도 높은 지옥훈련과 소신이 뚜렷한 야구철학으로 찬반 양론이 엇갈리는 이슈 메이커였다.

김성근 감독은 능력은 출중하지만 구단과의 잦은 불화로 12번이나 경질되었을 만큼 파란만장한 야구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애초 김 감독은 한화의 차기 감독 후보군에도 이름이 올라있지 않았지만, 계속된 '암흑기'에 지친 한화 팬들이 자발적으로 구단에 김성근 감독의 영입을 청원해 사상 최초로 '팬들이 영입한 감독'이라는 독특한 수식어가 붙었다. '야구의 신'이라는 찬사를 받는 현역 최고의 명감독과 만년 꼴찌 구단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김성근 감독은 이미 전지훈련 때부터 특유의 지옥훈련으로 한화의 꼴찌 DNA를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선수단이 꾸려진 스프링캠프에서는 베테랑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강도높은 훈련이 연일 이어졌다. 미디어와 팬들도 한화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했다. 여기서 김성근 감독이 강조한 것은 단순히 훈련량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였다.

혹독한 훈련을 거듭하면서도 왜 이 훈련을 해야하는지 목표의식이 뚜렷하지 않다면 노동에 불과하다. 한화는 그동안 고인 물같은 느낌이 강했다. 주전 선수들은 이름값에 안주해 편안히 자리를 꿰찼다. 건전한 경쟁은 실종됐고, 경기중에 위기를 맞이하면 쉽게 포기했다. 이름값도 선입견에도 얽매이지 않는 김성근 감독 특유의 무한 경쟁은 봉인되어 있던 한화 내부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자극이 됐다.

'순혈주의'와 결별, 변화가 시작됐다

한화 구단의 적극적인 지원도 김성근호를 뒷받침했다. 그동안 한화의 전통으로 자리잡아왔던 '순혈주의'와 결별한 것은 가장 대표적인 변화였다. 김성근 감독의 부임과 더불어 한화는 오랫동안 팀에 공헌했던 프랜차이즈 출신 코치들을 모두 내보내며 매너리즘에서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과감하지만 효율적인 투자도 계속됐다. 2014년 이용규와 정근우를 잡는데 137억 원을 투자하고도 성과를 내지못했던 한화는 김성근 감독 부임과 함께 다시 한번 통 큰 투자를 단행했다. 이번에는 권혁, 배영수, 송은범 등 투수력 보강에 초점을 맞춰 지난해보다 비용을 줄이고도 오히려 실속있는 투자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번 시즌 한화 불펜의 핵심으로 거듭난 권혁은 단연 최고의 영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시즌 초반 조인성과 정근우의 부상공백으로 어려움을 겪자, 양훈을 매물로 넥센으로부터 이성열과 허도환을 보강한 트레이드 역시 신속하고 성공적인 대처였다는 평가다.

이처럼 변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에도 한화의 혁신이 시작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스프링캠프부터 부상선수가 속출하고, 시범경기에서 실책 연발과 투타 엇박자 속에 꼴찌까지 추락하자 '천하의 김성근도 한화병은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김성근 감독도 시즌 개막을 앞둔 미디어데이에서 "왜 한화가 그동안 꼴찌를 했는지 알겠더라"며 농반진반이 섞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규시즌에 돌입하면서 한화는 서서히 달라졌다. 연승은 없었지만 연패도 쉽게 당하지 않으며 개막 이후 끈질기게 5할 승률 내외를 오가는 '밀당'이 계속됐다. 이기는 경기든 지는 경기든 쉽게 속단하거나 버릴 경기가 없다는 점은 예년과 가장 달라진 부분이었다.

12승 중 절반에 이르는 6승이 '역전승'

올시즌 한화의 경기에서 가장 주목할 키워드는 접전과 뒷심 그리고 투수전이다. 이 점은 김성근 감독 특유의 야구색깔과 무관하지 않다. 한화는 현재 치른 22경기 중 무려 16경기가 3점차 이내의 접전이었다. 이는 10개 구단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다. 5회 이전에 승부가 갈린 경기는 2차례에 불과했다. 또한 한화가 거둔 12승 중 절반에 이르는 6승이 역전승이었고 여기에 끝내기 승부만 세 차례나 있었다. 승패를 떠나 어떤 상대를 만나든 끝가지 물고늘어지는 저력이 생긴 것이 한화가 가장 달라진 부분이다.

김성근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벌떼야구가 한화에 성공적으로 이식된 점도 상승세의 원동력이다. 개막 이후 꾸준히 활약해주는 선발투수가 없고 부상선수까지 속출하는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변칙적인 마운드 총동원 체제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권혁은 이번 시즌 14경기에 나서 1승1패 3홀드 4세이브의 성적에 22⅓이닝 평균자책점 3.63의 맹활약을 펼치며 한화 마운드의 기둥으로 올라섰다. 권혁과 박정진의 필승조는 한화가 가장 믿는 불펜 카드로 자리매김했다. 안영명도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투혼 속에 벌써 3승을 따냈다. 지난해 프로야구 역대 최악의 자책점(6.35)을 기록했던 한화는 한층 강인해진 불펜속에 이제 리드를 잡으면 종반 1~2점차 승부를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화가 중독성있는 경기력과 끈끈한 승부로 화제를 모으면서 자연스럽게 팬들의 호응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부진한 성적에도 팀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도를 과시하여 '보살'이라는 애칭을 얻었던 한화 팬들은 최근 시리즈 스윕을 기록한 SK와의 대전 3연전에서 만원 관중으로 화답하며 이기는 야구를 즐기고 있다. 홈 경기뿐만 아니라 원정 경기에도 상대 팀들도 '한화 효과' 덕분에 많은 관중이 몰리는 등 전국구로 야구 흥행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다는 평가다.

물론 이러한 한화 열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속단하기에는 아직 섣부른 감도 없지 않다. 시즌이 아직 5분의 1도 소화하지 않은 시점이고 이제 고작 5할 승률을 넘어선 한화가 당장 우승권이나 올해 포스트시즌에 근접했다고 말할 단계도 아니다.

'김성근식 야구'에 대한 집단적 반감도

최근 상승세에도 여전히 한화의 전력은 불안요소가 많다. 시즌 초반부터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면서 변칙적인 마운드 운용의 부작용, 투수들의 혹사에 대한 우려가 계속 나오는 실정이다. 당장은 이기는 경기가 더 많고 재미있다는 점에서 가려지고 있지만, 피로가 누적되는 시즌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올 위험도 크다. 나이저 모건과 배영수를 비롯한 몇몇 주축 선수들의 부진, 불안한 포수진 등 해결해야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극과 극의 호불호로 엇갈리는 김성근 야구에 대한 여론도 언제 요동칠 지 알 수 없다. 김성근 감독은 지지층이 두터운 것만큼이나 안티팬들도 많다. 2주 전 롯데와의 경기에서 벌어졌던 빈볼 논란이 가져온 후유증은, 단순히 진실 공방을 넘어서 그동안 일방적인 찬사 여론에만 가려져 있던 '김성근식 야구'에 대한 집단적 반감 또한 적지않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처럼 빛과 그림자가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도 어쨌든 김성근 리더십과 한화 신드롬이 올해 프로야구의 화두로 떠오른 현상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성근 감독에 대한 열광이 진정한 리더와 존경받은 어른에 굶주린 우리 사회의 갈증에서 비롯되었다면, 만년 꼴찌 한화의 약진은 벌어지는 사회적 빈부격차 속에서 약자가 강자를 넘어서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대리만족이다.

가부장적 리더? 책임질 줄 아는 리더!

김성근 감독은 소위 '가부장적 리더십'의 전형과도 같다. 철저히 한 명의 뛰어난 리더를 중심으로 구성원들이 그 지도방식에 맞춰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김 감독은 '리더는 결과로 말해야 한다'는 성과 지상주의에 충실한 지도자기도 하다. 이런 모습은 자칫 구시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인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김성근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지옥훈련과 선수 혹사 논란, 승리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한 모습 등이 비판의 단골메뉴가 되는 이유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그저 권위만 내세우는 리더들과 다른 점은 어쨌든 '책임질 줄 아는 리더'라는 점이다. 조직과 구성원들을 위하여 어떻게든 성과를 끌어낸다는 점, 때론 비난을 받으면서도 회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김성근 감독은 그저 냉혹한 리더이기에 앞서,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세상의 어떤 아버지도 완벽하지는 않다. 때로는 감정표현에 인색하고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앞뒤가 모순돼 자식들에게 실망을 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가족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고 때로는 악역을 맡기도 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역할이자 의무다. 김성근 감독이 그 오랜 세월 숱한 경질과 찬반 여론 속을 거쳐오면서도 변함없이 현역 감독이자 야구계 어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도 그처럼 미워할 수 없는 가부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야구도 인생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한화가 내일 경기에서 질 수도 있고, 김성근 감독 역시 여론의 십자포화를 또 맞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또 인생이고 야구다. 우리가 김성근 감독과 한화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도 단순히 성적을 넘어서 그 과정이 성장 드라마기 때문일지 모른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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