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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무한도전> '식스맨 프로젝트'에 출연한 장동민의 모습
 MBC <무한도전> '식스맨 프로젝트'에 출연한 장동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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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장동민이 명예훼손 및 모욕죄 혐의로 피소됐다. 지난 27일 보도에 따르면, 삼풍백화점 참사 생존자로부터 고소를 당했다고 한다. 과거 장동민이 유세윤, 유상무와 함께 진행한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옹달샘과 꿈꾸는 라디오'에서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언급한 대목 때문이었다(관련 기사 : "장동민, 삼풍백화점 생존자 모욕 발언... 형사고소").

정확하게는 "오줌 먹는 사람들 동호회가 있어, 동호회. 그래서 옛날에 삼풍백화점 무너졌을 때 21일 만에 구출된 여자도 다 오줌 먹고 살았잖아. 이 여자가 창시자야"라는 발언이었다. 건강 동호회 이야기를 하던 중, 사고 생존자를 소재 삼아 희화화한 것이다. 사투 끝에 살아난 당사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이 쏟아진 가운데 결국 장동민은 최근까지 진행한 KBS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논란이 된 사건은 얼마 전에도 있었다. 장동민은 같은 방송에서 한 여성 비하 발언이 최근 다시 논란이 돼 MBC <무한도전> 식스맨 프로젝트에서도 하차했다. 해당 팟캐스트의 지난해 방송분에서 장동민이 '여자들은 멍청해서'나 '개같은 ×' 등의 막말을 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막말 논란 후폭풍, 발언의 밑바닥을 보자

문제 발언들로 결국 장동민은 프로그램 하차에 명예훼손 혐의 피소까지 당했다. 막말 논란이 점차 거센 후폭풍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를 보고 최근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얻어온 코미디언의 몰락에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혹자는 '<무한도전> 출연이 아니었다면 재조명되지 않았을 사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대중이 특정 연예인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걸까?

논란의 배경이 된 말들을 살펴보자. "사고에서 21일 만에 구출된 여자가 오줌 먹는 동호회 창시자"라는 발언은 당사자에게 모욕감을 줬고, 이에 지난 17일 서울동부지검에서 형사 고소가 진행된 상태다. 언급 내용 사실 여부를 떠나, 참사를 겪은 이의 처절한 고통을 가벼운 웃음으로 소비하려 한 태도가 문제다.

부정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수백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참사를 개그 소재로 쓴 점은 분명히 비판 받을 만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최근 세월호 참사를 두고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에서 퍼뜨린 '어묵 드립'이나 '유족충' 발언이 물의를 일으킨 것도 같은 이유였다.

여성 비하 발언의 경우, 문제 소지가 더 분명하다. 여성을 '멍청하다'고 규정한 부분도 성차별적 발언이고, '개같은 ×' 등의 욕설 사용도 지나치게 원색적이었다. 맥락을 따져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 '개같다'와 '멍청하다'는 표현은 남자 친구에게 자신의 과거 연애사를 모두 털어놓는 여성의 행동을 두고 쓰였다. 거기다 군 복무 시절 후임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을 무용담처럼 늘어놓기도 했다.

각각 발언의 밑바닥을 살펴보면 '참사 피해자 희화화', '여성 비하', '폭력 행위 미화'로 정리할 수 있다. 노골적 표현과 편견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비록 공중파가 아니었더라도 방송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피소 사실이 보도되자 장동민은 방송에서 언급한 당사자에게 사과의 편지를 전달하고자 했지만, 이마저도 누리꾼으로부터 '상대방의 의사를 묻지 않은 일방적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개그'의 이름으로 포장된 혐오 발언들

이런 발언들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그 내용이 '개그'의 이름으로 포장된 혐오 발언이기 때문이다. 웃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소재라도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 사례다.

특정 집단을 조롱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쾌감을 개그로 착각해선 곤란하다. 특히 그 대상이 소수자나 약자를 향한 경우에는 사회적 문제인 '혐오 발언'이라고 봐야 한다. 당사자가 웃지 못할 소재를 '유머'로 포장해 전시하는 것도 문제고, 이런 차별적 표현을 웃긴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타자화된 집단을 대상으로 삼는 막말이 과연 '웃기려고 한 소리'라는 변명으로 용서받을 수 있을까? 사회적 모순을 꼬집는 풍자나 누구나 보고 웃을만한 해학을 상실한 채, 공감 능력을 결여한 상태에서 뱉은 표현들이 어떤 '재치'를 보여줄 수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다수가 개그맨 한 명을 비판하는 것은 핵심을 관통하는 해결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개인에게 분노를 집중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더욱 위험해 보인다. '이건 장동민이 문제니까', '나는 일베가 아니니까', '내가 쓴 표현과는 다르다'는 식으로 단순히 회피할 사안이 아니다.

희미한 경계를 응시해보자

그보다는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내재된 편견을 되짚어보는 성찰이 절실한 때다. '김치녀'로 압축한 여성 비하를 웃어넘기고, 참사를 당한 피해자와 유가족을 손가락질하고, 특정 지역 출신을 '홍어' 등으로 묘사하는 일련의 사고 방식들. 이런 표현 뒤에 따라붙곤 하는, '웃자고 한 말이다'라는 말이 스쳐 가는 순간을 조용히 응시해 보자. '어쨌든 재밌으면 다 괜찮다'는 생각이 조롱을 정당화하고, 조건 반사처럼 '노잼(재미 없음)'을 무가치한 것으로 치환하진 않았는가.

표면에 덧칠된 것을 벗겨놓고 다시 들여다보자. '일베' 게시판에 달린 '민주화' 버튼이 비추천을 뜻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우리가 지루한 것을 경멸하는 대신 무언가를 '불필요'의 목록에 포함시킨 것은 아닌지를. 그 목록에 최소한의 예의와 인간성마저 모두 넣어두고 쉽게 내던진 것은 아니었는지 말이다.

이는 '우리 안의 일베' 담론을 되풀이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알고 보면 누구나 '내면에 그런 생각이 있기 마련'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공중파 개그 코너에서 비만과 못 생김 등의 조롱이 버젓이 가능할 수 있는 토양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나만 그런 것도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경계심을 느슨하게 만든 것일 수 있다는 소리다.

특정 커뮤니티와 개그맨을 두고, 그들과 나 사이의 경계선을 진하게 덧칠할 때가 아니다. 오늘날 '일베' 게시판의 여성 비하, 팟캐스트 방송의 막말은 이미 '발화 주체'를 지운 상태로 사회를 물들이고 있다. 그보다는 혐오와 재미 사이의 희미한 경계를 응시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혐오 발언과 표현의 자유의 개념적 차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제는 사회적 합의를 분명히 이뤄야 할 때다. 차별과 폭력을 지양하고, 차별금지법 제정 등 구체적 방안으로 혐오 발언을 걷어나가야 한다. 타인에게 모욕을 안겨주는 방식으로 희열을 느끼는 것은 웃어 넘길 코미디도, 정상적인 사고 방식도 아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장동민, #일베, #혐오 발언, #개그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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