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아시아역사연대)는 국내외 교과서의 역사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입니다. 지난 4월 6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2015년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아시아역사연대는 검정을 통과한 사회과(역사, 공민, 지리) 교과서 18종의 자료를 입수해 역사연구자들과 함께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아시아역사연대의 분석 결과를 몇 회에 걸쳐 전합니다. - 기자 말

2015년 검정을 통과한 일본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과 전쟁에 대한 문제의식이 실종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임진왜란을 '침략'이 아닌 '출병'으로 기술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을 주도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영웅으로 그려졌고, 왜구는 일본의 관점에 방점을 두고 기술됐다.

일본의 관점을 부각한 서술이 강화된 것과 침략성을 희석 시키고 전쟁을 미화한 점이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출병'은 침략성을 희석 시키는 전형적인 표현이라며 이런 기술은 아이들에게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임진왜란, 침략 아닌 '출병'으로

'임진왜란' 서술 부분에서는 전쟁을 미화하는 표현이 일반적으로 쓰였다. 우익계열 지유샤와 이쿠호샤 출판사의 교과서에서 임진왜란을 기술하며 '침략'이 아닌 '출병'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그 외에도 제국서원, 시미즈, 도쿄서적, 일본문교출판 등은 '공격', '침략', '출병', '파견 보냈다' 등의 용어를 병용했다. 이는 2014년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결과보다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지유샤 출판사 교과서 <조선출병> 일본 ‘지유샤’ 출판서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기술된 <조선출병> p.119
▲ 지유샤 출판사 교과서 <조선출병> 일본 ‘지유샤’ 출판서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기술된 <조선출병> p.119
ⓒ 지유샤

관련사진보기


"[조선출병]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을 정복하여 도읍을 옮기고, 인도까지도 지배한다고 하는 장대한 야망을 품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만의 대군을 조선으로 보냈다."

우익계열 지유샤 교과서엔 '조선출병'이란 기술이 나온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계획도 '장대한 야망'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침략성을 부각 시키기보다 긍정적인 분위기가 드러나게 서술했다. '15만의 대군을 조선으로 보냈다'는 기술도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두는 모호한 기술이다.

지유샤 출판사 교과서의 칼럼 칼럼 <히데요시와 필리페 2세> p.119
▲ 지유샤 출판사 교과서의 칼럼 칼럼 <히데요시와 필리페 2세> p.119
ⓒ 지유샤

관련사진보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통일을 이룰 무렵 스페인에는 국왕 필리페 2세가 이슬람 세력을 누르고 절정기에 있었다. 아시아에 파견된 스페인 선교사들은 중국의 무력정복을 진언하고 일본의 이용가치를 편지로 필리페 2세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은 해인 1598년에 사망하였으므로 정복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지유샤 교과서엔 세계제국의 야망을 가진 무장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스페인의 황금기를 이끈 필리페 2세에 빗댄 서술이 나온다. 이 서술에선 침략전쟁에 대한 문제의식이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영토 확장에 뛰어났음을 부각해서 기술했다.

일본의 관점에서만 기술된 '왜구'

우리에게 '왜구'는 13∼16세기 조선과 중국 연안에서 약탈을 하던 일본인 해적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검정을 통과한 일본 중학교 교과서엔 왜구에 대한 설명이 한국 학계의 견해와는 완전히 다르게 서술돼 있다.

왜구는 전기 왜구와 후기 왜구로 구분된다. 전기 왜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연안를 습격해 약탈하던 일본인이 중심으로 구성된 해적이다. 후기 왜구는 마피아 성격을 띤 국제적인 무역집단이다. 일본 역사학자들은 교과서에 왜구 기술을 하며 '후기 왜구'에 방점을 두어 설명하고 있다.

교육출판 교과서 <왜구의 출현> 교육출판 교과서 <왜구의 출현> p.72
▲ 교육출판 교과서 <왜구의 출현> 교육출판 교과서 <왜구의 출현> p.72
ⓒ 교육출판

관련사진보기


"14세기에 들어서 일본과 원 고려의 국내가 혼란해지자 왜구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왜구는 마쓰우라나 쓰시마, 이키(나가사키현) 등을 근거지로 조선반도나 중국의 연안을 습격하여 먹을 것을 훔치거나 사람을 잡아가기도 했는데 이때의 왜구는 일본인이 중심이었지만 명이나 조선반도의 사람들도 끼어 있었다."

"왜구는 15세기가 되자 한때 약해졌지만 16세기에 다시 활발해졌다. 이때 왜구는 중국인들이 중심이 되었다."

왜구에 대한 교육출판 교과서의 서술에는 '왜구가 일본인 중심이었지만'이라는 장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은 오히려 왜구가 일본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인상을 심어줄 여지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서술 방식이 왜구가 일본인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였다는 느낌을 준다고 분석했다.

"왜구에는 조선인도 있으며 주로 조선반도에서 활동"

이쿠호샤 출판사 왜구 이쿠후샤 출판사 교과서의 왜구 기술 p.85
▲ 이쿠호샤 출판사 왜구 이쿠후샤 출판사 교과서의 왜구 기술 p.85
ⓒ 이쿠호샤

관련사진보기


"왜구는 전기(14~15세기)와 후기(16세기)로 나뉜다. 전기는 북규슈의 일본인 외에 조선인도 있으며 주로 조선반도에서 활동하였다. 후기는 그 다수가 중국인으로 규슈나 류큐를 근거지로 하면서 주로 중국의 남해안에서 약탈과 밀무역을 거듭했다."

이쿠호샤 출판사의 교과서는, 왜구는 일본인이 주도했다는 진술이 빠진 상태에서 '일본인 외에 조선인도 있으며 조선 반도에서 활동했다'라고 기술했다. 또 후기 왜구를 '그 다수가 중국인'이라고 했다. 왜구엔 일본인이 다수 포함되어 있음에도 모호하게 서술했다. 이는 일본 학생들이 왜구를 조선인이 주도했다고 이해할 여지가 있다.

이러한 기술과 조금 다르게 일본 학계의 인식을 드러낸 서술을 한 교과서가 있다. 진보적인 경향을 띤 '마나비샤' 교과서의 왜구 서술은 일본학계의 왜구 인식을 보여준다. 왜구가 국경을 초월하여 일본, 한반도 서남해안, 중국 동남부 해안을 배경으로 산 사람들, 즉 '경계인'이라는 인식이다. 단원명도 '경계에서 살아가는 동아시아 사람들-14세기의 동아시아'다.

마나비샤 출판사 교과서 <왜구라 불린 사람들> 마나비샤 출판사의 교과서의 소제목 <왜구라 불린 사람들> p.76
▲ 마나비샤 출판사 교과서 <왜구라 불린 사람들> 마나비샤 출판사의 교과서의 소제목 <왜구라 불린 사람들> p.76
ⓒ 마나비샤

관련사진보기


"[왜구라 불린 사람들] 1380년 8월 고려 말 왜구의 금강 하구 공격. - 1380년 9월 왜구의 금강 상류에 있는 산성 공격. 공격에 앞장선 아지발도는 15~16세의 소년. 이성계에 의해 사망. 아지발도는 제주도 출신이라는 이야기도 있음. 이렇게 동지나해에는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활동했다."

아시아역사연대 이인석 운영위원은 "교과서 기술에서 임진왜란은 일본의 조선 침략이라는 것을 명확히 서술해야 하고, 왜구는 전기·후기 왜구에 대한 설명이 모두 들어가 학생들이 바르게 인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