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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의 말문이 트이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하니 아이가 유난히 버둥거린다.

"하이마(하지마)! 하이마."

머쓱해진 나는 잠시 손을 놓고 아이를 지켜보았다. 아이는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엄마의 촉이었을까? 아내가 아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맴매 했어?"
"응."

가슴이 철렁한다는 말을 들어만 봤지 실감하게 될 줄이야.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직 아이가 20개월도 되지 않았을 때다. 맞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매맞는 시늉을 해가며 구체적으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누가 때렸어? 이렇게 이렇게?"
"응."
"어디 맞았어?"
"(엉덩이에 손을 갖다대며) 엉덩이."
"누가 때렸어? 선생님이 때렸어?"
"응."

당시는 한창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가 횡행하던 시절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틈틈이,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 아이를 붙잡고 "맴매? 맴매?", "맞았어?" 등의 질문을 했다. 도대체 이 말의 의미를 알기는 아는 건지 의심스러우면서도 걱정하는 마음에 답 없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그럴 때 평소 아이의 반응은 딴청부리기 아니면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바나나 까까. 할머니 어딨어?"

그런 엉뚱한 반응만 듣다가 구체적인 답이 나오니 우리의 의심은 확신으로 커갔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가 했던 질문이 유도심문에 가까웠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아이가 맞았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객관성이고 뭐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는데도 아이가 같은 대답을 하자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자식이 어린이집에서 맞았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1월 18일 오후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에서 '송도국제도시맘'과 '송도주민연합회' 회원들이 아동폭력·아동학대 추방과 보육환경 개선 촉구 집회를 열었다.
▲ "아동학대 추방!" 어린이집 아동학대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1월 18일 오후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에서 '송도국제도시맘'과 '송도주민연합회' 회원들이 아동폭력·아동학대 추방과 보육환경 개선 촉구 집회를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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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때렸어?" "응"... 답이 나오지 않는 한밤의 대책회의

소주 2잔을 연거푸 마시고 나서도 내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결론을 앞에 두고서도 우리 부부는 어떻게 할지 몰라 서로 언성만 높였다. 우리에게야 큰일이지만 어린이집에서는 순간적인 일이고 사소한 일로 생각할 수 있다. 그야말로 '궁디팡팡'을 했는데 아이가 놀란 것일 수도 있다.

"내일 어린이집 가서 확인해볼게."
"어떻게 하려고?"
"물어봐야지. 때렸냐고."
"아니라고 하면?"
"CCTV 보자고 해야지."

그래, 우리에게는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있다. 그걸 확인하면 된다. 하지만 아내는 반대했다.

"그거 봤는데 때리는 거 못 찾으면? 선생님들이 애를 어떻게 보겠어? 완전 일 커지는 거잖아. 그러고도 그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겠어?"

밤이 늦도록 해결책을 궁리해봤지만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침이 밝았고 나는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하며 애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갔다. 마침 담임선생님과 원장선생님이 애를 받아주었다. 기회다.

"어제, 저희 애가 그러는데…."

입을 뗀 나는 쭈뼛쭈뼜 어제의 일을 묘사하고 차마 '때렸느냐'고는 못하고 '맞았다는데…'로 말을 맺었다. 선생님들 앞에 서니 내 목소리는 자꾸만 기어들어갔다. 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의 반응은? 조금 놀라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당황하는 기색도 아니었다. 태연함에 가까웠다.

"설마요, 아버님 요즘이 어떤 시댄데요. 애를 때리나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요새 OO가 말을 배운 지 얼마 안 돼서 의미 없이 하는 말들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원래 내 계획대로라면 사실 확인을 위해 CCTV를 보자고 해야 했다. 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고 보니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이 되고 말았다. "그렇죠" 하고는 돌아서서 어린이집을 나왔다. 애를 맡겨둔 상황에서 뭘 더 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 그 뒤에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고 질문을 바꿔가며 물어보았지만 다시 딴청이나 동문서답이 돌아왔다. 동문서답이 그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목욕을 시킬 때 몸을 확인해봤지만 이상무. 결국 아이의 서툰 말이 사람 잡을 뻔했다는 걸로 그 사건은 끝이 났다.

어린이집을 안 보낸다면? 맞벌이 부부에겐 선택권이 없다

어린이집 내 CCTV 설치 확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어린이집 내 CCTV 설치 확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 free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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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에는 우리의 불안은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집 폭행이라는 게 명확한 자기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아이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일이라, 사실을 확인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언론에서는 아이를 관찰하라고 하지만 뼈가 부러지거나 피멍이 들지 않는 이상 폭행의 흔적은 확인하기가 어렵다.

아직도 CCTV를 설치하네 마네 결론이 나지 않은 모양인데 설치가 일괄로 된다고 해도 함정이 많다. 그림의 떡이랄까? 폭행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사각지대라는 게 있으니 그게 녹화가 됐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설사 녹화가 됐다손 치더라도 그걸 폭행으로 규정할 수 있을 만큼 선명할지도 부정확하다. 실제로는 때렸지만 보기에는 쓰다듬은 걸로 보일 수도 있다. 모든 게 가능성의 문제이지 확인과 특정이란 걸 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사법권이 발동되기 전에는 그렇다.

이렇게 사실확인이란 뭐 하나 확실한 게 없는 가능성의 문제인데 반해 사실확인을 시작하면 감당해야 할 현실의 위험부담은 너무 크다. 폭행사실이 확인되든 안 되든 그 어린이집에서 우리 애는 나와야 한다. 어린이집에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받아준다고 해도 미움받을까봐 불안해서 맡길 수가 없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이집에서 나오면 어디로 가나? 갈 데가 없다. 애초에 애를 봐줄 사람이 없는 맞벌이 부부의 아이는 어린이집을 갑자기 나와서는 안 되는 거다.

그래, 이 모든 게 다 불안에 휘둘린 극성스런 초짜 부모의 호들갑일지 모른다. 내가 내 마음 다스리면 모든 일이 잘 풀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만 100% 신뢰하고 따르면 되나? 그럴 수가 있을까? 아무리 좋은 시설에 전통 있는 어린이집이라고 해도 실수란 게 있는 거 아닌가. 실수 없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이러니 우리의 불안은 끝이 나지 않는다. 적어도 애가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달리 방법도 없다. 육아에 대한 맞벌이 부부의 번뇌. 결국 그것을 끊어줄 화두는 로또뿐일까? 당첨금을 손에 쥐고 누군가 집에 들어 앉아야 끝이 나는 문제일까? 어렵고 또 어려운 문제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캠핑 블러그에도 게재했습니다.



태그:#어린이집폭행, #맴매, #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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