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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309일간의 고공농성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자발적인 노동자 시민들의 아름다운 사회 연대운동이었습니다. 총 5차에 걸쳐 수많은 시민들이 이 연대의 버스, 사랑의 버스에 올랐습니다. 전 세계가 주목했고, 당시 독일대통령은 지지 서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해, 월가 점거시위였던 '점령하라' 운동과 함께 1%의 특권층에 맞서는 99%의 저항운동이었습니다. 전세계 시민들에게 잠깐이나마 희망의 빛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국회 청문회 등을 거치며 결국 취소되었고, 올해부터는 다시 조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당시 희망버스를 기획했거나, 승차했었다는 까닭으로 많은 분들이 사법적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그중 지난해 12월 2일 1심에서 실형 2년에 보석유지 판결을 받았던 제가, 23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예정된 항소심 구형 공판을 맞아 작성한 최후진술문을 받아 게재합니다. 함께 재판 중인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에게는 1심에서 벌금 300만 원이 선고되었고,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에게는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된 상태입니다. 시인인 저는 현재 작년 세월호 추모제 때 연행당하다 갈비뼈가 부러졌던 건 등으로 5월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선고(검찰 구형 실형 1년)를 앞두고 있습니다. - 기자 말

송경동 시인.
 송경동 시인.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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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재판장님께 드립니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 바다 전복 중인 세월호의 선실 안에서 아이들이 창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밖에는 해경 선박과 민간 선박, 헬기 등이 와 있었지만 아무도 밖으로 나오라고도, 구하러 들어와 주지도 않았습니다. 실종자 9명을 포함해 305명의 아이들, 이웃들이 저 세상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구조를 바라는 이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이 국가, 세월호 참사가 있기까지 온갖 비리와 부패가 쌓여가도록 가만히 있었던 우리 모두에 대해 슬퍼하고 반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2011년 한 여성노동자가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 목숨을 걸고 올라가 도와달라고, 구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김진숙씨였습니다. 자신과 가장 친했던 김주익씨가 2003년 목을 매달았던 곳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고래보다 수만 배나 큰 배를 평생 만들어 왔지만, 이제 정리해고라는 깊은 슬픔의 바다 앞에 난파선처럼 놓인 자신의 동료들과 가족들을 함께 구호해 달라는 시대의 조난신호였습니다.

회사가 어려워 구조조정에 나선 것도 아니었습니다. 2010년도에도 주주배당금만 170억 원을 나눠 가졌습니다. 필리핀 수빅에 2조 원 대 조선소를 만들고 물량을 빼돌려 명분을 만들었습니다. 3년 동안 국내 수주량이 하나도 없을 때 수빅조선소 수주액은 약 3조 원에 달했습니다.

2011년에는 다행히도 사람들이 함께 달려와 이 여성노동자와 그 동료들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가만히 있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 힘써 노력하기도 했지만 '희망버스'를 타고 달려 와준 사람들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희망버스의 진정한 배후는 심각한 양극화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09일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137일간 농성을 벌인 사수대 3명이 지난 2011년 11월 10일 오후 노사잠정합의안이 노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면서 크레인을 내려왔다.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지도위원이 꽃다발을 목에 걸고 동료 노동자와 희망버스 관계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09일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137일간 농성을 벌인 사수대 3명이 지난 2011년 11월 10일 오후 노사잠정합의안이 노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면서 크레인을 내려왔다. 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지도위원이 꽃다발을 목에 걸고 동료 노동자와 희망버스 관계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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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는 한진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십수 년 한국 사회 수백만 명의 이웃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잃고 96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이 되거나, 5년 안에 80%가 도산하고 만다는 영세자영업자로 내몰렸습니다. 복지 등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한국사회에서 정리해고는 곧 죽음이라는 공포가 전체 사회에 그늘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실례로 쌍용자동차에서는 정리해고자 가족 26명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런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희망버스의 엔진이 되었고, 기름이 되었습니다. 희망버스의 진정한 배후는 심각한 사회적 불균등과 양극화였습니다.

무슨 불온한 주장이 아닙니다. 조금만 신경 써서 신문만 봐도 모두 알게 되는 사실들입니다. 올해 기준 현재 한국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1089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2008년엔 724조 원이었습니다. 국민들은 5년여를 죽어라고 일해서 빚만 360조 원 가량 더 졌습니다. 이 기간 동안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은 꾸준히 늘어 10대 재벌 기준으로만 515조 원에 달합니다. 5년 전인 2009년의 271조 원에 비해 90.3%나 급증한 것입니다. 100대 재벌로 넓히면 800조 원 대에 이른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서민들의 가계부채가 느는 동안 15대 재벌 3·4세의 재산만 19조 원이 증가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30대 재벌 신규 채용은 작년 기준 1.3%에 불과했습니다. 비정규직 고용은 4.2%였습니다.

500조 원의 2.5%인 12조5000억 원만 사회에 재투자해도 통계청 기준 청년실업자 47만 명 전원을 연봉 2500만 원짜리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10%인 50조 원만 투자하면 연봉 2500만 원짜리 200만 개의 국민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 부의 총량은 사람들이 투여한 총노동과 가공된 물질의 총량으로 결정된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 생산한 사회적 부는 부의 창출에 함께했던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평하게 나뉘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서민들이 진 빚은 고스란히 소수 재벌 집단의 엄청난 부로 이전, 축적되어 갔습니다. 일을 할수록 도리어 빈곤해져가는 것이 한국사회의 핵심 모순입니다. 다수의 사회학자들은 이를 합법적 강탈과 독점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재판에 가기 전날인 오늘 답답해 헌법 전문도 다시 찾아봤습니다. 민주시민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던 내가 정말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확인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헌법 제119조 2항에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제23조 2항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제32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한답니다. 제34조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같은 2항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분명 한국사회는 과거에 비해 민주주의의 많은 신장이 있었지만, 부족한 부분 역시 많은 것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가 과연 이루어지고 있는지, 각종 사회적 지표들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수 재벌 일가들과 대주주들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재산권의 행사가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행사되고 있는지 멀리 가지 않더라도 한진중공업의 사례만 봐도 고개가 저어집니다.

정규직 해고 이전에 잘려나간 비정규직 노동자만 3000여 명이었습니다. 기업은 한없이 부유한 상태였습니다. 잘려나간 그들 역시 헌법 32조 2항에 명시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 소중한 '국민'들이었습니다. 사회 도처에서 소수 기업가들의 무한한 이윤만이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는 어떤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도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법을 어겨가며 선박을 증개축하고, 생명수에 다름없는 평형수를 덜어낸 자리에 운송 수입을 위한 화물을 싣고, 대부분의 선원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운 곳에서 세월호와 같은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희망버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만들기 위한 운동

일반시민들이 탄 8호차 희망버스, 지난 2011년 7월 9일 오후 1시 45분 출발합니다. 인원이 너무 많다보니 출발이 늦었네요.
 일반시민들이 탄 8호차 희망버스, 지난 2011년 7월 9일 오후 1시 45분 출발합니다. 인원이 너무 많다보니 출발이 늦었네요.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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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적정한 소득의 분배'와 '사회보장·사회복지'를 통해 국민 다수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을 때, 그 원인이 일부 기업가들의 과도한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이었을 때 그 '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주권자인 국민들이 직접 나서는 것 역시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대한민국은 '재벌공화국'이나 어떤 '특권층들만을 위한 특권공화국'이 아니라 1조 1항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듯,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2항은 적극적인 주권자로서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잘 밝혀놓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역할은 각종 국가기구가 제 할 일을 잘 하도록 감시하고 힘을 싣는 것을 넘어야 합니다. 국민은 언제든 직접 행동을 통해 이 사회의 정의와 불의를 가려내야 합니다. 이 진정한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깨어있는 국민들의 힘이, 대한민국이 소수의 재벌공화국이나 특권공화국, 독재공화국이나 비리공화국으로 가는 것을 막고 영원히 '민주공화국'일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헌법 제10조의 규정도 돌이켜봐집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선언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그 '존엄'의 행사를 위해 나서는 윤리적인 국민들이 살아 있을 때 '민주공화국'은 내용적으로 실현되는 것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희망버스의 승객들은 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잃지 않으려 애썼던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개인적인 이해관계도 없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경제 민주화'를 바로잡으려고 애썼던 민주시민들이었습니다. 약자와 진실의 소리 앞에 귀를 열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사회 정의를 지키기 위해 나서준 이들이었습니다.

결국 정의는 국회 국정감사와 청문회를 통해 밝혀졌고, 한진중공업에서는 다시 일이 시작됐습니다. 한진중공업에 어떤 경영상의 위기도 없었음이 밝혀진 셈입니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불의한 정리해고 시도로 사회적 갈등과 물의를 빚었던 당사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아무런 법적 제재도 받지 않았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부의 집중과 독점이 더 심해지고 있고, 이로 인한 평범한 국민 일반의 고통과 불만은 더 커져가고만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운동은, 한진중공업 노동자 가족들의 정당한 고용 보장과 생활권이 우선이냐, 아니면 천문학적인 부를 소유한 조남호 회장과 소수 대주주들의 무한한 욕심이 우선이냐를 두고 일어난 사회적 갈등이었습니다. 기업주들의 이윤만을 위해 만연한 정리해고를 막고, 어떻게 평범한 국민들의 생존권을 지킬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사회적 논의·조정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하여, 최소한의 법의 정의와 형평성이 이 법정에서 지켜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디 소수의 재벌들을 위한 판결이 아닌, 다수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판결이 내려지기를 소망합니다. 저 개인의 고초를 떠나 '희망버스'라는 범사회적·윤리적 운동이 범죄화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015년 4월 23일 새벽에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희방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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