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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태까지는 암울한 투병 생활을 써 왔지만, 지금부터는 제 나름대로의 암을 다루는 방법과 병으로 인해 우울해진 마음을 털어내는 희망 열차로 달립니다. 다음 기사는 나의 암 극복기 마지막 회로서 암 치료를 목적으로 제가 즐겨 먹었던 음식 사진을 기사와 함께 올릴 예정입니다. - 기자말

내가 살아온 삶이 아무리 보잘것없고 힘들었어도 그건 결코 덧칠할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이며 나만의 역사이다.

사람마다 역경이 왜 없겠는가!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참을 줄 알고 사랑할 줄 알며 상처 입은 마음뿐만 아니라 육신의 아픔도 서로 보듬어 주고 정성으로 돌봐주기 때문 아닐까. 의사가 아무리 돈 받고 환자를 치료해 준다고 하지만 그 의사의 마음에 사랑이 없고 의술을 행하는 손에 양심이 없다면 요즘같이 각종 질병이 만연하는 시대에 살아남을 환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유방암과 갑상샘암을 동시에 수술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수술에 이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하는 동안에도 내가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가 의문이었다. 그만큼 마음의 상처도 컸지만 메스로 도려낸 자리는 더 아팠다.

어떤 사람은 아픈 자리는 치료하면 나을 수도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좀처럼 치료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나 같은 경우에는, 사람이 좀 모자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마음보다 육신의 상처가 더 가슴 아프다. 마음은, 신께서 주신 망각이라는 천지간에 으뜸인 선물이 있어서 시간이 가면 잊을 수 있다.

하지만 흉터로 남은 육신의 상처를 볼 때마다 마취에서 깨어날 때의 악몽 같았던 시간과 고통 그 자체였던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과정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뿐만 아니라 호롱불에 비친 그림자처럼 희미하게나마 그 나쁜 기억은 기회만 되면 나의 뇌를 비집고 나올 것이다. 그 기억 속에는 나를 수술한 의사도 함께 할 것이다.

"검사 결과 보고 약 끊을 수도 있어요"... 의사의 가슴 뛰는 한 마디

의사 선생님께서 경과가 아주 좋다며 약을 노란색에서 분홍색으로 바꿔 주셨다.
 의사 선생님께서 경과가 아주 좋다며 약을 노란색에서 분홍색으로 바꿔 주셨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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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수술한 지 2년 4개월 동안 6개월마다 받는 정기 검진을 4번 받았다. 최근에 검사를 하러 간 건 4월 2일과 3일이다. 2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유방암 추적검사는 오후 6시에 전신 뼈 검사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전신 뼈 검사를 할 때는 사정없이 쏟아내는 방사성 물질 때문에 기분이 영 안 좋고 내키질 않는다. 그동안에 유방암 추적검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변화없이 그날이 그날처럼 되풀이되며 먹는 약도 변함없이 똑같았다.

3일에는 갑상샘암 추적검사를 받았다. 갑상샘은 6개월 전에 검사 결과를 볼 때 의사 선생님께서 경과가 아주 좋다며 약을 노란색에서 분홍색으로 바꿔 주셨다. 약을 바꿔 주면서 긴가민가한 말씀도 하셨다.

"지금까지처럼 음식 잘 드시고 약 잘 드시면 다음 검사 결과 봐가면서 약을 끊을 수도 있습니다."

"예" 하고 대답한 뒤 진료실을 나왔지만, 갑상샘은 한 번 수술하면 평생 약을 먹어야 된다고 들었는데 내가 설마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그야말로 반신반의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전에 본 기사에서도 어떤 사람이 갑상샘 수술을 했다며 '평생 약을 먹으며 살 일이 걱정이다'라고 한 것을 읽었는데.

검사 결과는 2주 뒤에 보는 걸로 하고, 검사가 끝난 뒤 바로 시골로 내려왔다. 시골에선 봄이 되면 할 일이 많아진다. 씨앗을 뿌려야 하고 모종도 사다 심어야 한다. 물론 내가 직접 하는 것은 아니고 남편이 하지만, 옆에서 왔다 갔다 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고 재미도 있다. 일상이 바쁘니까 이전과는 달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초조하지도 않았고 불안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2주가 지났고 결과를 보러 서울에 갔다. 서울행 버스에 오르니 그제야 이 생각 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가슴이야 의사가 별 말 없었으니 유지만 잘 되면 좋은 일이고, 갑상샘은 기쁜 결과를 들을 수도 있겠는데. 어디보자, 음식은 먹던 대로 단백질 위주로 먹고, 단백질 중에서도 식물에서 얻는 단백질 위주로 먹었다. 기호 식품은? 글 쓸 때 어쩌다 마시는 커피 외에는 먹은 게 없으니 잘 버틴 셈이다.'

손목에 꼈던 묵주를 빼서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했다. 기도를 하다가 생각하니, 성당에도 잘 안 나가면서 참 염치도 없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묵주를 도로 팔에 꼈다. 그러고는 속죄하는 용서의 기도를 했다. '피식' 스스로 비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에라 모르겠다, 하늘에 맡기자.' 결국은 그게 그건데. 이렇게 갈팡질팡하면서도 종교가 있어서, 의지할 데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연말에 어떤 모임의 송년회 자리에서 노래를 하는 큰 사건이 벌어졌었다. 다른 사람들은 좋아라했지만 내게는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한때는 성가대에서 소프라노 파트를 맡았었지만 갑상샘 수술을 하고나서 노래와는 아예 담을 쌓았다. 혼자 집에 있을 때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다가 따라해 보면 음치도 그런 음치가 없다.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아서 다시 불러보고 또 다시 불러봐도 목소리는 마음먹은 대로 나오질 않았다. '아, 음치란 이런 것이로구나'하고 깨닫기까지 일 년이 넘게 걸렸다.

그 후로는 어떤 모임에서건 누구 앞에서건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송년회 자리는 모면할 길이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생각나서 용기를 내서 노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뼉을 치면서 웃으며 추임새를 넣던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나중에는 안쓰러워하는 분위기로 변했다. 그래도 나는 굳건하게 노래를 이어갔다. 어차피 시작한 것, 내가 당신들을 웃게 하고 말리라. 나는 음치의 3대 요소를 실행하기로 했다.

1절이 끝나자 청중들은 박수를 쳤다. 나는 청중을 무시하고 2절을 이어서 했다. 여기저기서 '쿡쿡'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굳건하게 2절을 불렀다. 어느새 사람들은 나와 함께 2절을 부르고 있었다. 2절이 끝나자 '와'하는 함성과 함께 오랫동안 박수를 쳐 줬다. 엄지를 치켜세우는 사람도 있고, 옆으로 와서 어깨를 다독이는 사람도 있었다. 기분이 좋은데 눈물이 나는 건 무슨 연유일까!

아직도 목소리가 잘 안 나와서 크게 외치거나 노래를 잘 부를 수는 없지만, 이 상태가 계속돼도 좋으니까 제발 약을 그만 먹어도 된다는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토록 기다렸던 말 "약 그만 드셔도 되겠어요"

사람의 좋은 습성 중 아끼는 습성이 있다. 나도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좋은 일에 대비해서 갑상샘 결과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 유방외과 선생님을 먼저 만났다. 4월 17일.

"깨끗합니다. 처방전 받아 가시고 6개월 후에 검사 받으세요."

아, 이 한 마디를 들으려고 6개월을 살았구나! 갑상샘 선생님도 "갑상샘보다 유방 쪽이 훨씬 중한 병이다"라고 할 정도로 중한 병의 결과가 좋다니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갑상샘 진료실 앞으로 갔다.

혹시 미약하나마 팁이 될지도 몰라서 한 가지 경험을 얘기할까 한다. 갑상샘 암 진단을 받고 처음 의사를 만났다. 어떤 방법으로 수술을 할지를 상담하고 결정하는 과정이었다. 의사는 나를 수술한 수술의가 아니고 인턴의 같았다. 그는 내게 세 가지의 수술방법을 설명했다. 한 가지는 초음파 수술이고, 다른 한 가지는 목을 절개해서 갑상선을 잘라내는 수술이고, 최종적으로 얘기를 한 것이 로봇 수술이었다.

그는 내게 로봇 수술의 장점을 되풀이해서 얘기하며 그쪽으로 몰고 갔다. 세 가지의 수술 방법을 다 듣고 난 뒤 난 목을 절개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그래도 의사는 자꾸 로봇 수술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내키지 않았다. 수술비가 비싸기도 했지만 영 믿음이 가지 않아서다. 나는 단호하게 의사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절개하는 수술을 해 주세요. 목에 뭐가 있는지 열고 눈으로 봐야 확실할 것 같아서요. 혹시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쁠 수도 있잖아요. 만약에 다른 뭐가 있다면 눈으로 보니까 수술할 때 같이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 그렇긴 하지요. 열고 눈으로 보는 게 제일 확실하긴 하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의사선생님도 꽤 양심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들 하지만 미련스러우리만치 큰 기대를 안고 순서를 기다렸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는 땀이 배었다. 드디어 '김경내'를 불렀다. 갑상샘 선생님은 인상이 참 좋다. 언제나 웃으며 환자가 궁금해 하는 것을 친절하게 대답한다. 그런 선생님을 만날 때, 나도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웃을 수가 없다. 안 좋은 대답을 들었을 때를 생각하니 웃을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 얼굴이 더 활짝 피었다. 직감적으로 '좋은 일이 있구나' 하고 느낌이 왔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이제 약을 그만 드셔도 되겠습니다. 축하합니다. 이제 6개월 마다 오시지 말고 1년 뒤에 오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의사 선생님 얼굴이 미남으로 보였다. 옆에서 웃고 있는 간호사의 얼굴이 전에 없이 예뻐 보였다. 내 입이 찢어지지 않은 게 다행일 만큼 웃음이 절로 났다. 나는 방아깨비처럼 허리를 연신 굽혔다 폈다하며 선생님한테 간호사한테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하지만 진료실 밖에 나와서는 다른 환자들 앞에서 웃는 것도 기뻐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약을 안 먹어도 된다는 것은 완치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갑상샘은 평생 약을 먹어야 된다고 할까? 왜 그렇게 알고 있을까? 내가 갑상샘 수술을 했다고 했을 때 먼저 수술한 사람들마저 평생 약을 먹어야 된다고 했었다. 그들을 수술한 의사가 나를 수술한 의사와 다른 의학 공부를 했을 리도 없을 텐데. 이는,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한쪽 갑상샘만 수술을 한 덕에 일찍 완치라는 기쁨을 맛보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명색이 암이었는데, 믿어지지 않게 빨리 나으니 새삼스레 나를 수술한 갑상샘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마운 마음에 감히 화타와 비교를 해 본다. 적어도 나를 수술한 선생님의 의술이 그야말로 인술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가슴에는 사랑을, 매스를 든 손에는 양심을 가진.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갑상선암 완치, #씬지로이드, #음치의 3대 요소, #인술, #매스와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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