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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를 13년만에 재출간한 만화가 이두호.
 <객주>를 13년만에 재출간한 만화가 이두호.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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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호 인터뷰 1편
에서 이어집니다.

1997년 5월 12일이었다. 검찰청에서 "요즘 일간지에 만화를 그리고 있는 만화가들을 조사하고 있으니 나와 달라"는 전화가 왔다. 스포츠신문에 연재하던 <째마리>를 복사해서 가져 오라는 말과 함께. 청소년 보호를 이유로 만화가들이 줄줄이 소환당했던 그때를 이두호 작가는 2006년 자서전 <무식하면 용감하다>를 통해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검사가 '지적질'한 한 대목, 작가로서의 분노가 느껴진다.

"독대가 포졸을 피해 도망가는 장면이었다...(중략)...문제는 뒤로 자빠지는 독대를 포졸이 창으로 찌르려는 장면이었다. '이런 장면은 폭력적이지 않습니까?', '탈옥범을 잡으려는 장면인데 폭력적이라니요?', '그런데 왜 포졸이 하필이면 창을 가랑이 사이에 겨누었습니까?', 나는 한순간 멍해졌다. '세상에! 그게 가랑이 사이로 겨눈 것이었구나'."

더 이상 만화를 그리기 싫었다고 했다. 검사는 "신문연재 만화를 청소년에 유해하지 않게 그리겠다는 서약서"를 요구했다. 이두호 작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여태까지 그린 만화를 다 부정하란 말인가? 못 쓰겠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고 하며 절필 선언을 한다.

- 그때 고초를 많이 겪으셨죠.
"이건 말도 아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무죄가 됐으니 다행이긴 한데, 하도 화가 나가지고... 그때 이현세씨도 6년 만에 무죄를 받았잖아요. 한 번은 아침 10시 좀 넘어 전화가 왔어요. '여보세요', 그랬더니 현세예요. '웬일이냐' 그러니까 '저, 지금 법원에 가고 있는데요', 마지막 선고하는 날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벌컥 화를 냈죠. '야, 인마, 그럼 진작 말해야지', 자기도 이제 연락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참 황당하대요. 당연히 가야 하는 현장인데, 가서 만세 삼창이라도 하려고 그랬는데."

왜 바지저고리인가

이두호 작가가 절필 선언 후 마지막으로 그렸던 <째마리> 만화
 이두호 작가가 절필 선언 후 마지막으로 그렸던 <째마리> 만화
ⓒ 이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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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호 작가는 당시 이현세 작가의 재판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이현세씨가 작가로서 심적인 타격이 컸고 결과적으로 작품에 지장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천국의 신화>는 정말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거듭 아쉬움을 풀어냈다. 아마 이두호 작가 역시 그때, 바지저고리들의 '오늘'을 뼈저리게 느꼈을지 모른다. 바지저고리 이야기로 화제를 바꿀 차례였다.

- 혹시 김주영 선생님과는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시는지?
"특별한 일 있을 때만 만나요. 무슨 회의할 때나 시상식 같은 거 할 때(웃음)."

- 김주영 선생님이 올해 초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더군요. 소설을 쓰면서 일관되게 견지한 기조를 묻는 질문에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 역사의 행간에서 배제된 사람을 중심 주제로 삼았다", 선생님 작품 주인공들도 역시 그런데요.
"저도 물론 그 생각입니다. 흔히 민초라고 하잖아요. 맥락은 김주영 선생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래야 무슨 드라마가 나올 것 같으니까. 이런 생각도 있죠. 조금이라도 내 만화에 정의감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사는 것인가, 이런 물음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요. 제가 예전 살아온 삶도 그랬으니까 접근하기도 용이하고, 그래서 그렇게 된 거죠."

사실 이두호 작가의 꿈은 화가였다. 하지만 가난했다. "캔버스를 구하기 어려워 천막 파는 데서 천을 구하고, 제재소에서 나무를 사서 내 손으로 캔버스를 만들어 그려야 했을"정도였다. 생계 수단으로 선택한 만화가의 길, 바지저고리만 그려야겠다는 결심에 이르기까지 2년의 진통이 있었다고 한다.

"한 10년쯤 만화 연재를 하니까, 누구도 나를 화가로 안 보고 만화가로만 알더군요. 그래서 정말 결단을 내려야 되겠다, 예술가적 기질이 있는지 없는지 보려고, 스스로 약속하고 2년 동안 유화를 그렸어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게... 2년이 다 돼가니까 그렇게 만화가 그리고 싶은 거예요. 나는 결국 만화가가 돼야 하는구나... 그럼, 어떤 만화가가 될 거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그래도 관심이 있는 것, 역사를 그리자. 범위가 너무 넓어도 머리 아프니까 가급적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자, 그렇게 된 거죠."

<미생>을 보고... "야, 이 녀석 참 대단하다"

- 혹시 <미생>이란 드라마 보셨나요?

"드라마는 못 봤어요. 책은, 그 친구 윤태호가 줘서 봤어요. 보면서 '야, 이 녀석 참 대단하다(웃음)', 진짜 대단해요. 우선 윤태호 그림을 제가 굉장히 신뢰하거든요. 그림이, 기본이 딱 잡혀 있는 친구예요. 그리고 스토리도 탄탄하잖아요. 굉장히 객관적인 스토리에 그림은 또 다른 만화가들과 완전히 판이하게 다르니. 나중에 교수 했으면 좋겠어요, 그 친구."

- 말씀을 듣다 보니까 양복저고리란 말이 떠오르네요. 바지저고리와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생>에 나오는 양복이 <객주>에 나오는 바지저고리와 맥락이 같으면 참 좋죠. 또 그렇게 얘기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내가 너무 까부는 것 같고(웃음). <미생>을 보면서 참 리얼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가급적이면 리얼한 면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당시 살았던 사람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어서 그 정도였거든요? 물론 <미생>은 오늘날 우리 이야기니까, 더 접근하기는 쉬웠겠지만, 다른 만화와 비교해 보면 전혀 다르잖아요. 직장인들의 리얼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잖아요. 그래서 가슴 참 먹...먹하게 하잖아요. 제 만화도 좀 그랬으면 좋겠는데."

- 선생님 작품도 먹먹한 적 많았는데요?
"어렸을 때니까 그렇지(웃음)."

이두호 작가에게도 물론 어린 시절이 있었다. 자신에게 그림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 전근을 가자 그 학교로 무작정 달려가 나도 여기 다니겠다고 떼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로부터 시작된 그림의 길, 조선시대 민초들의 삶에 천착하는 역사 만화가의 길을 걸어온 그였기에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인터뷰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라서 더 그런지도 몰랐다

저자 사인 중인 이두호 작가.
 저자 사인 중인 이두호 작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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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것, 지하철 탈 때마다 생각한다

- 선생님, 역사란 무엇일까요?
"제가 주례 설 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든요? 역사로 따지자면, 당신은 현재고, 부모님은 과거고, 태어나는 아이들은 미래다.  당신 부모님을 잘 모시고 잘 살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오늘의 나를 알 수 있으니까. 오늘의 나를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어제를 알고 오늘의 나를 잘 다스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게 자식이다. 제 역사관이 그거거든요. 우리 역사를 잘 살펴보자는 거죠. 그래야 아이들한테 무슨 얘기를 해줄 수 있잖아요.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지하철을 자주 타는데... 와, 갈 데가 없는 거예요. 어느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내가 젊었을 때는 딱 정해져 있었거든요? 습관처럼 어르신이 오면 앉아 있다가 일어나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나이든 축에 들어가잖아요. 그래도 더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요래∼' 보고 있으면, 못 앉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노인석으로도 못 가고, 또 젊은 친구들 있는 쪽으로 가면 꼭 비켜 달라는 것 같잖아요. 그러니까 어디로 가냐 하면, 출입구 쪽, 거기 서 있으면 간섭 안 받잖아요. 꼭 그렇게 다니거든요.

그러다 '요즘 젊은 것들', 이런 마음이 생기기 쉽죠. 하지만 '요즘 애들 못 쓰겠어', 이런 말은 우리 아버님이나 할아버님부터 대대로 내려온 말이란 거죠. 그러니까 이건 아주 자연적인 거구나, 아무도 원망할 필요 없구나, 그렇게 풀어 버리니까 마음이 매우 편해요. 환경이 변화한 걸로 이해를 해야죠.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늘 돌아봐야 한다는 거죠. 우리 역사에는 항상 반성해야 할 지점이 남아 있어요. 반성을 왜 하느냐, 고치려고 반성하는 거잖아요."

- 정치적 견해는 그동안 인터뷰에서 잘 안 밝히셨던 것 같아요.
"글쎄, 어떤 A라는 문제가 있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럼 그건 말할 수 있겠죠. <머털도사> 그릴 때였나? 턱이 긴 여자를 그렸어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잖아요. 그 때 그 게 눈에 안 띄어서 참 다행이지(웃음). 무심결에 그린 건데, 그걸 누가 보면서 그러더라고. '야, 네가 이래 놨냐?'(웃음)

정치적인 문제나 이런 데,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없을 수는 없죠. 내 삶이 거기서 벗어날 수는 없잖아요. 물론 그렇다고 정치한다든지, 거기 뛰어든다거나, 그런 것보다 저는 객관적으로 보고 싶어요. 객관적으로 보고, 내 생각을 작품에 반영할 수 있으면 좋고. 그렇다고 굳이 내 만화를 보고 뭔가 깨우치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보면서 공감해 줄 수 있으면 좋잖아요."

이두호 작가의 작업 흔적들.
 이두호 작가의 작업 흔적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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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뉴스를 보다가... <덩더꿍>이 떠오른 이유

- 이번에 나오는 <객주>, 지금 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시대물 그리면서 항상 그런 느낌을 받아요. 옛날이야기지만 지금도 이런 이야기는 똑같다. <객주>에 보면 상도에 어긋나는 녀석들도 있고, 정말 지키는 친구들도 있고, 지금도 똑같잖아요. 조선시대 세조 때 홍윤성이란 인물이 있는데, 사람도 많이 죽이고 온갖 행패를 다 부립니다. 부정부패의 대표적인 원흉이거든요? 그런데 말년이, 그냥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어요.

그게 화가 나서... 이거는 내가 만화 속에서라도 처단해야겠다, 그래서 <덩더꿍>을 만들었죠. 종의 손으로, 종의 아들 손으로 제거되는 것으로. 그렇게 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카타르시스가 됐는지(웃음). 지금 와서도 느끼는 거지만, 세조 때 있었던 비리가 현재는 없느냐. 형태만 다를 뿐이다. 요즘 성완종 전 회장 뉴스가 나오지만, 하...어떻게 그렇게, 똑같잖아요. 그럼 옛날도 저랬을 거 아니냐, 그런 부분에 공감할 수 있겠죠."

- 뉴스를 보시면서 떠오른 작품은 없었나요.
"대뜸 생각나는 이가 홍윤성이었어요. 만약 그 사람이 홍윤성 같은 권력까지 쥐었다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잖아요? 이제 법정에서 밝혀져야 될 일이지만, 정말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철저하게 다스려야 해요. 예전에야 권력자가 사람 목숨 하나 탁 뺏어도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니잖아요. 더 발전하려면, 있는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 재산을 가진 사람이, 더 겸손하게 베풀려고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자꾸 긁어모아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려고만 하니. 뉴스를 보다가 막 짜증이 나요. 우리 대한민국이 아직 이것밖에 안 되나. 참...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방법만 달라졌을 뿐."

제출물로 : 남의 시킴을 받지 아니하고 제 생각나는 대로

끝으로 이두호 작가에게 앞으로 작품 계획을 물었다. 그는 "시대를 뛰어넘어 왔다갔다하면서 비유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이제는 정말로 마감에 쫓기고 그런 건 안 하고 싶다"며 웃었다. 다만 "체질적으로 뭘 그려도 그릴 것"이라면서 "밥 먹듯 버릇이 돼서 하루라도 붓을 안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구경한 그가 공원에서 그린 그림들이 떠올랐다. 그는 요즘 소나무를 즐겨 그린다고 했다.

"어느 날부터 소나무가 너무 좋아서 매일 그리고 있어요. 생긴 게 제멋대로잖아요. 아주 자유스럽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지를 뻗었다가, 돌아오고 싶으면 또 돌아오고."

어찌 보면 바지저고리, 양복저고리들의 삶이 또한 그 모양새다. 또는 우리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천상 그는 바지저고리 작가였다.


태그:#이두호, #윤태호, #덩더꿍, #객주, #성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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