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찾사> 리허설이 한창인 서울 강서구 등촌동 SBS 공개홀. 유독 앳된 얼굴의 한 청년이 인사를 건넨다. 지난달부터 <웃찾사> 새 코너 '모란봉 홈쇼핑'에 합류한 정승우다. 가상의 북한 홈쇼핑을 콩트로 그려낸 이 코너에서 정승우는 베테랑 개그맨 강성범, 장재영 등과 함께 코너를 이끌고 있다. 고운 한복 차림에 분연한 말투로 "불판 위의 혁명전사, 두만강 프라이팬" "들판 위의 무법자 천리마 텐트" 따위를 소개하는 이 역할은 실제 조선중앙TV 앵커 리춘희를 모사한 것이다.

"제가 처음으로 따라 한 목소리예요. '이 개인기를 얻었는데 목소리가 바뀌면 어쩌지' 하고 걱정도 했는데, 변성기가 와도 그분 목소리는 왜인지 되더라고요. (웃음) 지금도 틈틈이 듣고 있어요.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요. 압수라도 당하면 국가보안법에 걸릴 거예요. '종북'이라고 하지 않을까 모르겠네요. 한 번은 '차지게 잘해야지'라는 마음에 녹화하러 오면서 지하철에서 영상을 찾아 듣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경악하시기도 했다니까요. (웃음)"

조용했던 소년의 '반전'..."관심받고 싶어 성대모사 시작"

 SBS <웃찾사> '모란봉 홈쇼핑'에 출연 중인 정승우

SBS <웃찾사> '모란봉 홈쇼핑'에 출연 중인 정승우 ⓒ SBS


그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건 중학교 때다. 이유는 간단했다. '관심받고 싶어서'. "원래는 진짜 조용한 아이였다"라는 그는 "갑자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반에서 웃긴 애'가 됐다. 너무 조용하게만 지내다 보니 뭔가 '어필'할 수 있는 게 필요하더라"라며 "친구들 사이에서 재밌는 친구로 통하고 싶다는 생각, 인간관계에서 '도태'되면 안된다는 생각에 누군가의 목소리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친구들을 웃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그가 '전국구'로 뻗어나는 계기가 됐다. 평소 공부할 때 라디오를 듣는 습관이 있던 정승우는 SBS 파워FM(107.7MHz) <붐의 영스트리트>(이하 <영스트리트>)서 남다른 장기를 가진 사람들을 찾는다는 소식에 '저 북한 앵커 따라 할 수 있어요. (출연) 신청합니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 문자가 담당 작가의 눈에 띄었고, 곧 연락을 받았다. 능청스러운 연기에 담당 작가도, DJ도, 청취자도 '빵' 터졌다.

"그러면서 학교도 시끄러워졌죠. (웃음) 한 선생님께서 라디오 출연한 걸 친구들에게 들려주셨고, '애들 공부하느라 힘든데 한 번 보여줘라'기에 각 반 교실을 순회하며 공연까지 했어요. 첫 출연 3개월 뒤엔 <영스트리트> 쪽에서 '왕중왕전을 한다'고 해서 다시 나가기도 했고요. 뭔가 '굳히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방송 몇 시간 전에 안철수 의원 성대모사를 준비했어요. 나름 긴박했죠. 학원에 있을 때였는데 친구들에게 '비슷하냐'고 검사받자마자 출연했다니까요. (웃음)"

행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라디오를 듣던 <웃찾사> 안철호 PD의 눈에, 아니 귀에 띄어 <웃찾사> 합류를 제안받은 것. 하지만 대입을 앞두고 있던 정승우는 '1년 후'를 기약했고, 약속대로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프로그램에 합류했다.

 SBS <웃찾사> '모란봉 홈쇼핑'에 출연 중인 정승우(사진 오른쪽)

"함께 출연하는 강성범 선배님이 많은 도움을 주세요. 매번 회의가 끝나면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 주시고요. 처음 하신 말씀도 감동이었어요. '네 인생이 달렸으니 열심히 해라, 나도 네가 잘 되길 바라니 우리 열심히 해 보자'고 말씀하시는데...그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 SBS


"약속한 1년 뒤 안철호 PD님께 바로 연락이 왔는데, 그게 정말 감동이었다. 연락을 받는 순간 '이 분이 정말 나를 기다려 주셨구나' 싶었다"는 정승우는 "(개그) 무대 경험이 없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PD님의 기대와 믿음이 있는데 거기에 부응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했다. 처음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아들이 개그 프로그램에 나간다는 소식에 '잘 할 수 있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지켜봤던 부모님도 "이게 정말 네가 맞느냐"며 놀라워 하신다고.

"<웃찾사> 선배님들도 '네가 그 북한앵커야?'라며 환영해 주셨어요. 알고 보니 안철호 PD님께서 제 출연분을 다 들려주신 거였죠. 2~3주 정도 연습하고 바로 투입됐는데, 첫 무대는…정말 떨렸어요. 무대에 오르기 1초 전까지 대본을 손에 쥐고 보고 있었죠. 그런데 실전에 들어가면 '에잇, 모르겠다' 하는 마음이 있나봐요. 무대에 올라 박수를 받는 순간 저도 몰래 미소가 지어지거든요. 그땐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준비 기간 동안 힘들었던 게 다 잊혀지더라고요. 관객의 박수가 없었다면 더 못했을 것 같아요."

"개그계 새 바람 일으키고파...롤모델은 신동엽 선배님"

이렇게 평범한 고등학생은 무대 위에서 사람을 웃기는 '모란봉 홈쇼핑'의 정승우가 됐다. 올해 대학교 신입생이 됐지만 미팅이나 MT와 같은 대학 생활을 즐길 틈도 없다. 매일 수업이 끝나자마자 <웃찾사> 회의와 연습이 있는 SBS 공개홀로 와야 하고, 몇 시간이고 있다가 집에 가고, 눈을 붙이고 일어나면 아침이다.

그래도 "무대가 끝나면 일주일 간 힘들었던 것들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고, 쏟아지는 관심에도 부담감보다 즐거움이 앞선다. "댓글도 다 본다. 그런 걸 보면 보람도 느낀다"는 그는 "아무래도 내가 '관종'('관심병 종자'의 줄임말로,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을 이르는 신조어다-기자 주)인가보다"라며 웃어 보였다.

 SBS <웃찾사> '모란봉 홈쇼핑'에 출연 중인 정승우(사진 맨 오른쪽)

"여기에 더해 요즘은 저를 망가뜨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게 또 개그맨의 미덕이잖아요. 저처럼 조용한 애가 망가지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개그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켜 보고 싶어요." ⓒ SBS


"여장을 하는 게 처음엔 말도 안 되게 창피했어요. '스무 살에 개그맨이 된다'고 난리가 난 친구들에게 멋진 모습으로 무대에 선 것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좀 잘생겨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웃음)

런데 강성범 선배님께서 '개그맨의 미덕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사람들은 네가 웃기는 분장 같은 걸 했다고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 말이 맞았어요. 그 뒤로 (여장하는 것도) '해탈'하게 됐죠. 이제는 '어떻게 분장하든 더 리춘희 앵커처럼 보이게 해 달라'고 할 정도가 됐어요."

지금 그는 SBS 15기 신인 개그맨 선발 시험에 응시해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합격하면 만 19세에 KBS 7기 공채 개그맨이 된 '국민 MC' 유재석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게 된다. "앞으로 다양한 코너에서 필요한 목소리가 되고 싶다"는 정승우는 "코너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완벽히 해낼 자신이 있다"며 눈을 빛냈다.

"여기에 더해 요즘은 저를 망가뜨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게 또 개그맨의 미덕이잖아요. 저처럼 조용한 애가 망가지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개그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켜 보고 싶어요. 롤모델은 신동엽 선배님이에요. 가만히 계시다가 한 마디를 탁 치시는데 전체가 뒤집어지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이 들지 않을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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