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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치 혀에 놀아나다

내가 전방에서 보병 소대장을 하던 1970년 어느 늦은 가을이었다. 김아무개라는 이병이 우리 소대로 전입해 왔다. 신참인 그는 소대 근무 규정에 따라 당분간 부대 밖 경계근무(주로 야간 잠복근무)를 내보내지 않고 대신 내무반 페치카 당번 근무를 했다.

그는 일석점호가 끝난 뒤 취침 직전 내 방 문을 두드렸다.

"소대장님, 주무십니까?"
"아니."

그는 문을 뾰족이 열고 항고를 드밀었다.

"제가 오늘 뒷산 밤나무 밑에서 주운 겁니다. 드십시오."

그 항고에는 따끈한 삶은 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며칠 후 잠복근무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자 그는 페치카 불에다 라면을 끓인 뒤 내 방으로 가져왔다. 한밤 중 출출할 때에 먹는 라면 맛은 기가 막혔다.

어느 하루 페치카에서 노변정담을 나누는데 그가 나에게 말했다.

"제 누이동생이 서울 00여대에 다니는데 저와는 달리 꽤 예쁩니다. 소대장님 외출나가실 때 한 번 만나 보십시오."

그 무렵 군대에서는 "왕년에 금송아지 안 매 놓은 집 없다"는 말이 유행어였다. 그 만큼 군대에 와서 자기나 집안에 대한 자랑이 도를 넘는 허풍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말로 그런 허세에 놀아나지 말라는 경계의 말이었다.

그가 우리 소대로 전입해 온 지 석 달 만에 중대장 발행 특별 휴가증을 가지고 집으로 갔다. 하지만 그는 끝내 부대로 돌아오지 못하고 육군교도소로 갔다. 그는 나에게만 아첨하고 허풍을 친 게 아니었다. 그는 중대 행정요원, 중대장에게까지 갖은 아첨을 다하고, 허풍을 쳐서 마침내 전입 3개월 만에 특별 휴가증을 손아귀에 넣고 휴가를 갔던 것이다. 나중에 드러난 바, 그는 부대 앞 민간인 가게에도 잔뜩 외상을 남겼을 뿐 아니라, 그에게 돈을 빌려준 동료 소대원, 중대원도 엄청 많았다.

심지어 중대장도 당했다. 중대장은 그에게 2만원을 주면서 10만원 짜리 야외용 전축을 사오게 부탁했다는 후문이었다. 피장파장으로  모두 그의 혀에 놀아났다. 그의 세 치 혀에 부대가 벌컥 뒤집어지고, 그는 휴가 중에 사고를 쳐서 육군교도소로 갔다.

윗사람에게 아첨하고, 허풍에 친 사람도 나쁘지만 그의 세 치 혀에 놀아난 사람은 더 나쁘다. 더욱이 그에게 놀아난 사람이 고위 공직자라면 그는 인문 소양이 전혀 없는 근원적인 자질 부족이다.

해가 되는 세 가지 벗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이완구 국무총리가 1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하기 앞서 취재진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이완구 국무총리가 1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하기 앞서 취재진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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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한 기업인이 자실 직전에 남긴 뇌물 제공 메모로 국무총리에 대한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현 국무총리는 임명 전부터 말이 많았다. 여당 원내총무로 있을 때 이미 쓰지 않기로 한 구시대의 대통령에 대한 '각하'라는 호칭을 자주 쓴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일부 언론에서는 차기 국무총리로 그를 지목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이 자기에게 아첨하거나 맹목적으로 충성한 자를 국정 책임자로 발탁하는 인재 등용기준 0순위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날 대통령 경호실장은 "각하는 국가다"라고 아첨, 아부, 맹목적인 충성을 하다가 결국 대통령도, 그 자신도 한 날 한 시에 비명에 간 전철이 있는데도, 이를 거울로 삼지 않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 하다가 전대미문의 국정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이는 인문이 홀대받는 나라에 빚어진 국가 재난이다.

인문, 곧 문학과 역사와 철학은 당장 밥을 먹여 주지 않지만 인문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지혜와 슬기를 준다. 그래서 예로부터 인문은 교양인이 배워야 할 으뜸이었다. 인문 소양이 없는 사람은 부나비나 다름이 없어 뻔히 불에 타죽는 것을 보고도 자기는 예외라고 여기다가 또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 인문은 죽어가고 있다.한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백성들의 독서율은 이웃 일본인의 1/3 정도라는 충격적인 통계다. 그러다 보니 인문 소양이 없는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들이 고위공직자가 되고 재벌이 되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별별 일들이 다 벌어지고 있다.

인문의 소양이 없는 자가 국정책임자가 되면 아첨꾼, 아부자들이 그 언저리에 들끓게 마련이다. 이런 아첨꾼이나 아부자들의 공통점은 권력자 앞에서는 맹종하면서 자기 아래 사람들에게는 매섭게 군림하면서 온갖 비리를 저지르거나 패륜적인 작태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을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수없이 보아 왔다.

 세월호참사 1주기인 1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해외순방 출발에 앞서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 "가능한 빠른 시일 선체 인양" 세월호참사 1주기인 1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해외순방 출발에 앞서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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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공자는 수천 년 전에 이미 이를 경계하며 <논어> 계씨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유익한 세 가지 벗이 있고, 해가 되는 세 가지 벗이 있다. 정직한 사람, 신의가 있는 사람, 견문이 많은 사람은 유익하다. 허식적인 사람, 아첨 잘 하는 사람, 말을 잘 둘러내는 사람은 해가 된다." 

보통 사람의 해는 그 사람의 인생을 망치지만, 국정책임자의 해는 정권 존망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존폐의 화로 번질 수도 있다.

강원 산골의 한 글쟁이가 최근 나라의 밑동이 흔들리는 사태를 보고 기우로써 우국지정을 늘어놓았다.

나라가 기울어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지 않은가.


태그:#익자삼우 손자삼우, #공자,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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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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