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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보르게세 공원을 가로질러 핀치아나 문(Porta pinciana)을 지나 오른쪽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확 트인 전망이 나타납니다. 이곳은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Chiesa della Trinita dei Monti, 성 삼위일체 성당) 앞 광장입니다.

스페인 계단 위에서 바라본 스페인 광장과 콘도티 거리입니다.
▲ 스페인 광장 스페인 계단 위에서 바라본 스페인 광장과 콘도티 거리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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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성당에서 볼테라의 명작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만날 작정으로 입구부터 찾았습니다. 하지만 성당 전체가 보수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가 없더군요.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성당 전면을 뒤덮은 보수 공사 가림막에 유명한 향수 회사의 광고물이 무슨 대형 쇼핑몰 광고처럼 걸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긴 했지만, 유서 깊은 성당에 섹시한 여성 사진의 명품 향수 광고라...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향수 회사의 후원으로 보수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갈수록 신자가 줄어 성당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로마 가톨릭 측의 필요와 엄청난 광고 효과에 기업 이미지까지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리 없는 향수 회사의 욕구가 딱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이 성당 계단 아래쪽 광장이 바로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 그리고 광장 맞은 편으로 뻗은 길이 로마의 대표적인 명품 쇼핑 거리 콘도티 거리(via dei Condotti)입니다. 로마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지요.

유명 향수 회사의 광고로 가림막을 설치하고 보수 공사 중인 성당. 오른쪽 아래 부분이 오드리 헵번이 앉았던 자리입니다.
▲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 유명 향수 회사의 광고로 가림막을 설치하고 보수 공사 중인 성당. 오른쪽 아래 부분이 오드리 헵번이 앉았던 자리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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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붐빈다는 스페인 광장은 주말이라 그런지 오전인데도 벌써 엄청난 사람들의 물결입니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걸터앉아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먹던 자리를 찾아 봅니다. 비록 아이스크림을 먹지는 못했지만(문화재 보호를 위해 계단에서 젤라또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답니다) 상큼하고 발랄했던 그녀의 미소를 떠올려 봅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 중 한 장면입니다.
▲ 스페인 계단의 오드리 헵번 영화 <로마의 휴일> 중 한 장면입니다.
ⓒ 파라마운트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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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아직도 오드리 헵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그녀의 외적인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외적인 아름다움만큼이나 아름다웠던 그녀의 삶 때문은 아닐까요? 오드리 헵번은 자기가 먼저 유니세프에 손을 내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말 열정적(이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으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기억하고 있겠지요? 자신의 몸 속엔 이미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음에도 뼈와 가죽만 남은 소말리아 난민 어린이들을 안고 오열하던 그녀의 모습. 그것은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예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오드리 헵번을 잊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이 원고를 정리할 무렵 나는 오드리 헵번 어린이 재단이 '세월호, 기억의 숲'을 조성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드리 헵번의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 아래 사람들의 물결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는 조각배 모양을 한 작은 분수가 하나 있습니다.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만든 바르카시아 분수(Barcaccia Fountain)입니다.

홍수로 테베레 강이 범람하여 이곳 스페인 광장까지 와인 운반선이 떠밀려 왔던 사건을 모티프로 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규모는 작지만 석회질이 많이 녹아 있어서 그런지 유난히 맑고 푸른 물빛과 대리석임에도 나뭇결 같은 질감을 잘 살린 예쁜 배 모양이 정말 잘 어울립니다. 로마에서 만난 첫 번째 분수입니다.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만든 조각배 모양의 분수입니다.
▲ 바르카시아 분수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만든 조각배 모양의 분수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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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게세 미술관이 나에게 책 속을 걷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면 스페인 광장은 로마라는 다큐멘터리 속을 걷고 있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분명 눈 앞에 로마의 길과 건물과 사람들이 펼쳐졌지만, 그리고 나 역시 그 속에서 그들과 함께 숨 쉬고 있었지만,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 걸음이었습니다.

스페인 광장을 뒤로 하고 바부이노 거리(via del Babuino)를 따라가다 보면 우아한 타원형의 넓은 광장이 또 나타납니다. 바로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입니다. 수시로 야외 전시회나 공연, 축제, 집회가 개최되는, 이름 그대로 포폴로 즉, 민중의 광장입니다.

이곳에서는 먼저 광장 중앙에 자리잡은 36m 높이의 오벨리스크를 만납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들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는 이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세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가져온 것이라 합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가져온 것입니다.
▲ 포폴로 광장의 오벨리스크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가져온 것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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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에 서서 광장을 둘러 봅니다. 먼저 동쪽으로는 화려한 로마의 여신 분수 너머로 핀초 언덕이 보입니다. 남쪽으로는 유명한 쌍둥이 성당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산타 마리아 인 몬테산토 성당(Santa Maria in Montesanto)과 산타 마리아 데이 미라콜리 성당(Santa Maria dei Miracoli)은 포폴로 광장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칭적 형태로 설계된 성당들입니다. 실제로는 크기가 다르지만 광장에서 보이는 부분을 같은 크기로 건축했기 때문에 쌍둥이 성당으로 불립니다.

포폴로 광장에서 보면 크기가 다른 두 성당 똑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 쌍둥이성당 포폴로 광장에서 보면 크기가 다른 두 성당 똑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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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쪽, 테베레 강으로 향하는 곳에는 넵튠의 분수가 있고, 북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옛 로마의 관문인 포폴로 문이 보입니다. 발걸음은 그 포폴로 문 옆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Basilica di Santan Maria del Popolo)으로 향합니다. 로마에서의 첫 성당입니다.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은 1472년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의뢰로 안드레아 브레뇨와 핀투리키피오가 건축한 로마 최초의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입니다. 이후 브라만테, 베르니니를 거치면서 바로크 양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 성당의 건축과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원래 이 성당의 터에는 네로 황제의 무덤과 호두나무 숲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네로 황제의 망령이 계속 나타나서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교황이 주위의 모든 호두나무를 베어 버리고 이 성당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포폴로 광장에 있는, 포폴로 즉 민중을 위한 산타 마리아 성당인 것입니다. 이 성당에서 내가 만나고 싶었던 작품은 또다시 카라바조입니다.

이탈리아인들이 카라바조를 사랑하는 이유

옛 로마의 관문인 포폴로 문과 나란히 있는 포폴로 성당입니다.
▲ 포폴로문과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옛 로마의 관문인 포폴로 문과 나란히 있는 포폴로 성당입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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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 부속 예배당(흔히 카펠라capella 또는 채플 chapel이라고 합니다) 중 하나인 체라시 예배당(Cerasi Chapel)에 카라바조의 명작 성 바울의 개종과 성 베드로의 십자가 상이 있습니다.

먼저 성 바울의 개종을 보겠습니다. 원래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사울은 말에서 떨어지면서 천상의 빛으로 눈이 멀게 되는데 이 사건을 경험한 이후 기독교로 개종하고 이름도 바울로 바꾸게 됩니다.

카라바조는 바울의 눈을 멀게 한 빛을, 관례와 달리 아주 희미하게 묘사하고 작품의 주인공인 바울보다 동물인 말을 더 크게 그려 신성한 주제를 손상시켰다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비록 종교화라도 비현실적 요소를 최소화하려 했던 카라바조의 사실주의 정신이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카라바조 "성 바울의 개종"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하늘의 빛에 눈이 먼 사울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이름도 바울로 바꾸고 개종하는 계기가 된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 성 바울의 개종 카라바조 "성 바울의 개종"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하늘의 빛에 눈이 먼 사울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이름도 바울로 바꾸고 개종하는 계기가 된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 박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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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성 베드로의 십자가 상을 봅니다. 스승이자 신앙의 대상인 예수와 똑같은 방식으로 죽을 수 없다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성 베드로. 카라바조는 마치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벗겨지고 쇠약해진 노년의 성 베드로 역시 기존의 관습과는 다른 방식의 묘사였습니다.

카라바조 "성 베드로의 십자가 상"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는 성 베드로의 모습. 카라바조는 늙고 쇠약한 성 베드로를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 성 베드로의 십자가 상 카라바조 "성 베드로의 십자가 상"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는 성 베드로의 모습. 카라바조는 늙고 쇠약한 성 베드로를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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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카라바조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문법으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완성해 나갑니다. 물론 온갖 추문에, 많은 빚에, 도주와 투옥의 반복에, 심지어 살인 혐의(정식 결투 도중에 상대방을 죽이기도 했습니다)까지, 카라바조의 삶은 악몽,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과 실험적이고 전복적인 예술 정신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었나 봅니다. 오늘날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카라바조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포폴로 성당에서 나와, 포폴로 광장을 가로 질러, 쌍둥이 성당 사이로 난 코르소 거리(via del Corso)를 걷습니다. 느낌이란 걸 느낄 여유도 없이 모든 것이 그냥 밀고 들어와 꽉 차버린 느낌입니다. 구름을 가듯, 길을 걸어 가는 사람들 사이를 휩쓸려 다녔습니다. 봄 신령도 아닌 겨울 신령이 지펴도 제대로 지폈나 봅니다. 나는 저 유명한 앤티코 카페 그레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한숨을 돌립니다. 

포로 로마노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330km 떨어진 리미니를 잇는 고대 이탈리아의 "플라미니아 가도" 위에 만들어진 로마의 중심 거리입니다. 현재는 포폴로 광장에서 포로 로마노까지 직선으로 이어져있습니다.
▲ 코르소 거리 포로 로마노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330km 떨어진 리미니를 잇는 고대 이탈리아의 "플라미니아 가도" 위에 만들어진 로마의 중심 거리입니다. 현재는 포폴로 광장에서 포로 로마노까지 직선으로 이어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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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스페인계단, #포폴로광장, #카라바조, #산타마리아포폴로성당,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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