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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아픔을 과적했다. 그래서 가라앉았다.
▲ 트라우마 리는 아픔을 과적했다. 그래서 가라앉았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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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 16일의 밤이 생생하다. 세월호 뉴스를 접하고 그날 밤 편히 발 뻗어 잠들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을까. 모두 뜬 눈으로 구조소식을 기다리며 마음 아파했던 밤이었다. "미안하다", "잊지 않을게" 모든 국민이 한마음으로 되뇌었던 이 말은 수많은 예술가의 노래 가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부의 책임론이 퍼지면서 고질적인 합병증이 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김없이 '종북', '선동꾼'이란 비하가 <일간베스트>(아래 일베) 사이트를 통해 표출됐다. 육군 장성 출신인 한기호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단체와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정복 작전에 돌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반응은 보수가 어떤 사안에 직면했을 시 조건반사처럼 꺼내 드는 전략이다. 그동안 모든 국면을 '종북' 카드로 해결해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 먹혔다. 상대가 시위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었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은 '종북' 카드를 너무 남발해 왔다. 제대로 해결되었어야 할 사안들이 방치된 채 곪아갔다. 전국의 수많은 해고노동자,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노동자 문제가 그렇다. 4·3 제주, 한국전쟁, 5·18 광주, 그리고 근현대사 속에 일어난 여러 의문의 죽음이 그러했다. 진실 은폐는 물론이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종북'을 운운하며 상황을 건너뛰어 온 우리 대한민국은, 커다란 패착의 길을 걸어온 셈이다.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합병증, 세월호로 터지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아픈 이들이 이 사회에 만연하다. 국가(전체)를 위해서라면 한 개인의 죽음은 사사롭다는 의식, 뿌리 깊은 전체주의 사상이다. 가족 중에 한두 명의 의문사는 묻을 수 있다는 근현대사적 인식은 다음 세대로 알게 모르게 전해졌다.

세월호 참사도 누적된 국민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다행히도 세월호 참사 문제는 이전의 방식만으로 건너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방향으로 이 문제의 핵심은 흔들리고 있다. 거대한 트라우마에 짓눌린 채 가라앉고 있는 '대한민국호'를 구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이 트라우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의미로 재생산되어야만 한다. 그러자면 우선 '성역 없는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비록 수사권과 기소권을 획득하지 못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 조사 위원회'(아래 세월호 특조위)지만, 나름의 독립적 권한을 갖게 됐다.

세월호 특조위가 세월호에 대한 많은 의구심을 거둬 내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지난 3월 27일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은 이런 특조위를 무력화시키는 안이었다. 우연인지 계획적인지 모르겠으나, 발표하기 전에 떡밥을 깔아놓는 치밀함도 선보였다.

지난 1월 16일 당시 새누리당 원내수석대표였던 김재원 의원은 특조위를 향해 '세금도둑'이라고 비판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국민의 세금' 논란을 키워오더니 결국 그 규모를 125명에서 90명으로 줄이겠다는 내용의 시행령안을 발표했다. 더 큰 문제는 특조위가 정부에 제출했던 안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기획조정실'의 존재였다. 여기에는 정부(해수부)측 공무원을 배치해 모든 업무를 일괄 총괄한다.

독립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뿐만 아니라 진상규명 업무 범위를 '정부가 이미 조사했던 자료만을 분석'하는 정도로 축소했다. 그동안 제시된 여러 과학적 의문을 밝히지 않고 묻어가겠다는 의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진상규명에 있어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는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온데간데없다.

진실규명은 외면한 채 '세금도둑' 논란을 키워오더니 정부는 지난 1일 오전, 세월호 참사 1주년을 앞두고 갑작스레 희생자 배·보상 금액을 발표했다. 단원고 학생(250명)은 8억2000만 원, 단원고 교사(11명)는 11억4000만 원이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국민 세금으로 엄청난 특혜를 얻는 것 아니냐?"며 유가족을 비난하고 나섰다. 배·보상금 절반에(47.8% 학생과 선생 통합계산)에 해당하는 금액은 국민성금과 교직원 단체 보험, 여행자 보험에서 나오는 금액이다.

세월호 인양 문제 또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주로 인양을 반대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비용대비 효과를 따진다. 돈이 많이 드니 진실을 바닷속에 잠재우자는 주장이다. 돈이 많이 드니 찾지 못한 희생자들의 탈상은 하지 말자는 얘기이다. 국민의 일부쯤 외면해도 된다는 소리와 뭐가 다를까.

누적된 트라우마에 짓눌린 대한민국호

그 날, 2014년 4월 16일 이후, 정부에 대한 신뢰는 맹골수도 바닥을 내리쳤다.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던 기회는 분명 있었다. 하지만 구하지 못했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오후 4시경에 발표했던 해양경찰 상황보고서(잠수요원 160여 명 동원)는 거짓이었다. 사고 당일 실제 투입된 인원은 모두 합쳐봐야 겨우 10명. 다음 날 17일 해경청장은 박근혜 대통령 옆에서 "잠수사 500여 명을 투입하고 있다"고 다시 한 번 거짓을 고한다.

세월호와 함께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신뢰는 깊고 시커먼 맹골수도 바닥을 때렸다. 유가족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정부는 무능했다.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어설픈 거짓말을 둘러대기 바빴다. 그런데 이번 시행령을 봤을 때, 또 다시 무언가 감추기 위해 애쓰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의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되지 않으려면, 어떠한 비용이 들지라도 진실규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세월호에 대한 어떤 의문도 남겨져서는 안 된다. 희생자 가족들의 한을 풀어주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그 어떤 문제도 해쳐갈 수 없다는 무능을 고백하는 것이다.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낼 것이며, 그동안의 쌓아온 온갖 상처는 어떻게 보듬을 것인가. 세월호 참사가 남기게 될 것은 무엇일까. 또 다른 트라우마일까 아니면 이를 극복한 사회적 의미의 진보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승훈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blog.naver.com/touchpaint)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월호 참사 1주년, #트라우마, #세월호 인양, #시행령, #진실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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