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 앞서 비가 내리는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 앞서 비가 내리는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감독은 언제 어디서나 냉정을 지켜야 하는 자리다. 아무리 젊고 혈기왕성한 감독이라도 선수들이 빈볼 시비로 벤치 클리어링을 할 때 자리를 박차고 나와 몸싸움에 동참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지난 15일 LG트윈스와 KIA타이거즈의 경기에서 감독이 경기 도중 그라운드로 달려 나왔다. 심판과 언쟁을 벌이던 그는 이내 2루 베이스 위에서 정자세로 누웠다. 그 장면만 본 사람이라면 그라운드에 취객이 난입했다고 착각할 법도 했다.

하지만 그는 취객이 아니라 KIA의 김기태 감독이었다. 물론 다소 흥분했지만, 술을 마시지도 심판과 몸싸움을 벌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김기태 감독은 왜 퇴장을 불사하면서까지 그라운드에 누워 심판에게 항의를 표시했을까.

'인간줄자' 자처한 김기태 감독

야구 규칙에는 '주자가 태그 당하지 않으려고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으로부터 3피트(91.4cm)를 벗어날 경우 주자는 아웃된다'고 나와 있다. 이번 김기태 감독의 퇴장은 3피트룰에 대한 김 감독과 심판의 견해 차이 때문에 발생했다.

지난 15일 LG와 KIA의 잠실 경기에서 KIA는 3회 브렛 필의 적시타와 4회 강한울의 2루타를 묶어 5-2로 앞서 나가고 있었다. 반면 LG는 믿었던 선발 헨리 소사가 5이닝 5실점으로 부진하면서 끌려가는 경기를 하고 있었다.

LG로서는 반격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7회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LG는 선두 타자 정의윤이 중전 안타로 출루했고 양상문 감독은 발 빠른 문선재를 대주자로 기용했다. 하지만 2루 베이스로 진루하고 싶은 욕심이 지나치게 컸던 탓일까. 문선재는 양현종의 견제구에 걸려 들고 말았다.

이미 1루에 돌아가기엔 늦었다고 판단한 문선재는 그대로 2루로 내달렸고 KIA의 1루수 필은 2루수 최용규에게 송구했다. 하지만 송구는 왼쪽으로 살짝 치우쳤고 문선재는 재치를 발휘해 최용규의 태그를 피해 베이스를 먼저 찍었다.

LG 관중석에서는 문선재의 순간적인 기지에 큰 박수 갈채가 나왔지만 김기태 감독은 곧바로 그라운드로 뛰어 나와 심판들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최용규의 태그를 피하는 과정에서 문선재가 3피트 라인을 벗어났다는 이유였다.

김기태 감독은 항의하는 과정에서 직접 그라운드에 누워 문선재가 3피트라인을 얼마나 많이 벗어났는지 강조하기도 했다. 김 감독 스스로 직접 '인간 줄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김 감독의 항의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항의 시간이 제한된 5분을 초과하자 곧바로 퇴장 명령이 내려졌다. 올 시즌 10개 구단 첫 감독 퇴장이었다.

퇴장 당하면서 선수단에게 던진 김기태 감독의 메시지

3피트는 91.4cm밖에 되지 않는다. 180cm의 신장을 가진 김기태 감독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거리다. 당연히 김기태 감독의 눈에는 태그를 피하기 위해 급하게 몸을 뒤로 뺀 문선재가 3피트라인을 벗어났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사실 베이스와 베이스 사이에는 일일이 선을 그을 수 없기 때문에 3피트라인은 심판들이 재량으로 판단하는, 일종의 '가상 라인'이다. 당연히 상황에 따라 감독과 심판의 판단 기준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는 역시 심판이다.

김기태 감독이 퇴장 당한 7회말은 경기 후반 KIA의 고비였다. 하지만 선발 양현종의 투구수는 100개가 채 되지 않았고 전날 우천 취소가 되는 바람에 불펜진은 체력적으로 비축돼 있었다. 게다가 LG는 하위 타선으로 연결되는 중이었다. 3피트라인 이탈로 인한 아웃이 비디오 판독 대상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아마 조금 더 영리하고 노련한 감독이었다면 충분히 항의를 표시하다가 못 이기는 척 덕아웃에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퇴장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항의를 멈추지 않았고 그라운드를 내려 오면서 어렴풋이 선수들의 철수를 지시하는 손짓을 하기도 했다(물론 실제로 선수들의 철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선수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크다. KIA는 개막 후 파죽의 6연승을 달리다가 이후 6경기에서 1승5패의 부진에 빠졌다. 만약 에이스 양현종이 등판한 LG와의 주중 첫 경기에서 패하면 KIA의 개막 6연승의 상승세는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수 있었다.

김기태 감독은 자신의 퇴장을 통해 선수들의 투지와 승리욕을 한 번 더 강조했다. 결국 KIA는 김기태 감독의 퇴장 이후 이어진 무사 2루의 위기를 실점 없이 막았고 9회 4점을 추가하며 9-4로 완승을 거뒀다.

사실 타이거즈 성골 출신이 아닌 김기태 감독이 KIA의 사령탑으로 부임했을 때만 해도 팬들에게 비판적인 시선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시즌을 치를수록 점점 호랑이 군단에 어울리는 '용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BO리그 KIA타이거즈 김기태 감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