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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지난해 11월 5일 오후 9~10시께 이완구 총리(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기자가 쓴 '권노갑에게 반기문 대선출마 타진한 인사는 누구?'라는 기사 때문이었다. 통화는 40분 넘게 이어졌다.

당시 권노갑, 박지원 등 과거 동교동계 인사들에게 '반기문 야당 대선후보 출마'를 타진했다는 '인사'가 누구인지에 언론의 관심이 쏠릴 때였다. 기자는 전날(11월 4일) 저녁 늦게 '그 인사'가 임도수 보성파워텍 회장일 것으로 추정한 기사를 내보냈다. 그 기사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특히 안산상공회의 회장 시절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민련 안산시장 후보로 거론됐고, 이완구 새누리당 의원이 자민련 원내총무를 지낼 때 그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후원회장 맡았다"는 대목에 민감하게 반응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곤경에 처한 이완구 국무총리가 1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야당의원들의 추궁을 받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곤경에 처한 이완구 국무총리가 1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야당의원들의 추궁을 받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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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후원회장을 맡았다"라는 대목이 이완구 총리의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저녁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온 이 총리는 유독 그 대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사람은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같이 다녔고, 내가 국회의원이 됐을 때 후원회장 할 사람이 없어서 명목상 후원회장을 1~2년 했지. 하지만 2001년 이후에는 만난 적도 없다고."

이어 이 총리는 기자가 묻지도 않은 '후원금' 얘기까지 꺼냈다.

"후원회장이면 돈을 좀 내는 거 아냐? 그런데 돈도 안 냈다고. 내가 돈 받은 것도 없고..."

이 총리는 "임도수 회장에게 물어보라고, 최근에 만난 적이 있는지"라며 "나는 반기문 총장하고 아무 관련이 없는데 왜 반기문 얘기에 나를 끌어들이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반기문 대망론' 정국에 자신이 입길에 오르는 것이 꽤나 불편했던 모양이다. 

이 총리는 "<오마이뉴스>도 기사를 내려 달라"라며 "큰 대미지(손해)를 입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일개 의원도 아니고 원내대표라서 민감하다"라고 부탁했다.

"허허 성완종이 그놈 나쁜 놈이네"

그런데 이날 기자와 전화 통화하던 중 이 총리는 "임도수 회장이 권노갑 고문을 만난 거야?"라고 물었다. 이날 기자는 '전 새누리당 의원이 권노갑에 반기문 출마 타진?'이라는 기사를 출고한 터였다. 이 기사에서 '반기문 야당 대선후보 출마'를 타진한 '인사'로 새누리당 의원을 지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특정했다.

상황이 그랬던 터라 기자는 이 총리의 질문에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권노갑 고문을 만났다고 하네요"라고 전했다. 그랬더니 이 총리로부터 뜻밖의 발언이 터져 나왔다.  

"허허 성완종이 그놈 나쁜 놈이네. 3일 전엔가 예산 관련해서 만났는데 아무 얘기를 안 하더라고."

같은 당 소속이었던 전직 의원이 '반기문 야당 대선후보 출마'를 타진했다는 사실이 불편했을 것이다. 이 총리가 "나쁜 놈이네"라고 반응할 만했다. 기자도 "왜 새누리당 의원을 지낸 분이 반기문 야당 대선후보 출마를 타진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맞장구쳤다. 그랬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성완종은 기업꾼이야 기업꾼!"

이 총리가 기업가를 "기업꾼"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경멸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 그는 성완종 전 회장을 자신이나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치도의는 아랑곳하지 않고 충분히 이쪽저쪽 기웃거릴 만한 사람이라고 보고 있었던 것이다. 

"성 전 회장과는 친분이 별로 없다"고 했지만...

15일 <경향신문>이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측근이 지난 2013년 재선거를 앞두고 이완구 현 국무총리에게 현금 3천만 원을 전달한 구체적 정황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 <경향신문>, "성완종 측, 차에서 비타500 박스 꺼내 전달" 15일 <경향신문>이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측근이 지난 2013년 재선거를 앞두고 이완구 현 국무총리에게 현금 3천만 원을 전달한 구체적 정황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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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이 총리가 최근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2013년 재·보궐선거를 치르던 이 총리에게 3000만 원을 건넸다는 성 전 회장의 증언이 나왔다. 측근 인사의 증언은 성 전 회장보다 훨씬 구체적이다(관련기사 : "성완종-이완구 배석자 없이 대화 선거사무소에 비타500 박스 전달").

"2013년 4월 4일 오후 4시 30분 이완구 부여 선거사무소를 방문해 3000만 원이 든 비타500박스를 전달했다."(<경향신문> 4월 15일자)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총리는 "성완종은 기업꾼이야"라고 경멸하기 1년 반 전에 그 "기업꾼"으로부터 3000만 원의 선거자금을 건네받은 셈이다. 물론 그는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와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라고 전면 부인했다.

'성완종 리스트'가 터지자 이 총리는 "성 전 회장과는 별다른 친분이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4일 JTBC가 보도한 '성완종 다이어리'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13년 8월부터 2015년 3월까지 20개월 동안 23차례나 성 전 회장을 만났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만난 꼴이다. 이는 두 사람이 "별다른 친분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가까운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성 전 회장은 지난 2012년 4월 총선 전인 1월 6일 충남 홍성에서 열린 이 총리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했다. 그날 손짓을 섞어가며 이야기하는 성 전 회장을 보며 이 총리가 활짝 웃는 사진까지 나왔다. 지난 2014년 11월 5일 기자와 40분 넘게 통화했을 때도 그는 "3일 전엔가 예산 관련해서 만났다"라고도 했다.

"별다른 친분이 없었다"거나 "소원하지도 않았지만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는 이 총리 해명과는 거리가 먼 '사실들'이다. 

20개월 동안 23차례 만난 성완종에 등 돌린 이완구

이용희 태안군의회 부의장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이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구명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총리는 "내가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다"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관련기사 : "성완종, 죽기 전 이완구 총리에 수차례 전화했다").

20개월 동안 23차례나 만나고, 선거자금도 주고,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하고, 예산과 관련해 상의하기도 한 사이였지만, 검찰 수사 앞에서 이 총리는 등을 돌렸다. 이 총리가 전화를 끊은 뒤 성 전 회장은 "도대체 왜 내 말을 누구도 믿지도, 들으려 하지도 않는지 모르겠다"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이용희 부의장은 전했다. 

5개월 전에 이 총리와 전화 통화한 내용을 떠올린 것은 성완종 리스트 정국에서 느꼈던 정치의 냉혹함이나 비정함, 무상함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런 냉혹함이나 비정함, 무상함에서 오는 환멸이 성 전 회장을 자살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 편집|손병관 기자


태그:#이완구, #성완종, #반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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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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