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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4월 22일 오후 4시 10분]

지난 3월 26일, 성매매에 동원된 10대 여중생이 목 졸려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10대 가출 소녀를 모텔로 끌어들여 성매매를 시도하고 숨지게 한 후 달아난 김아무개씨를 체포해 범행 사실을 시인 받았다.

10대 성매매 소녀들은 어떤 위험에 노출되고 있으며 현행법은 이들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을까? 국내 성매매 청소년들의 실태를 정확하게 조사한 자료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 단편이라도 알아보기 위해 지난 6일 십대여성인권센터의 조진경 대표를 만났다. 십대여성인권센터는 십대 여성의 성매매 피해를 지원하는 비영리민간단체로 여성가족부로부터 사이버또래상담사업과 서울위기청소년교육센터를 수탁 운영하고 있다.

조진경 대표는 성매매 청소년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십대여성인권센터의 조진경 대표 조진경 대표는 성매매 청소년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김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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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여성인권센터는 인터넷을 통해 성매매 아이들을 만나고 오프라인으로 끌어내 대면상담을 한다. 청소년들은 제 발로 상담소를 찾지 않는다. 상담소에 대한 불신이 크고 자기 권리가 뭔지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성매매 과정에서 피해를 당한 대다수 청소년들은 혼자 끙끙거리다가 잊으려고 한다. 십대여성인권센터는 이런 피해 소녀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인터넷 상담을 한다.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래 아청법)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청소년은 성매매 대상 청소년으로 분류돼 '보호처분'을 받는다. 때문에 성매매 소녀들은 보호처분을 사실상의 처벌로 인식, 성매매 피해를 입고도 신고를 꺼리고 그러다 더욱 큰 피해를 입기도 한다.

"십대가 성매매를 자발적으로 한다는 전제인데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상습적으로 성매매를 할 수 있으니 보호처분을 한다고 하는 것인데요. 사실 당사자들은 이걸 처벌로 인식해서 두려워합니다. 경찰서를 찾아가면 경찰들이 '너도 처벌 받는데 신고할 거냐'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고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죠. 그리고 십대니까 부모들에게 알려야 하죠. 그게 두려워서 또 신고를 안 하고. 가해자들은 이 점을 피해자 협박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글 한 편에 '경악'

2013년 인터넷에 올라온 10대 성매매 소녀의 글(십대여성인권센터 제공).
 2013년 인터넷에 올라온 10대 성매매 소녀의 글(십대여성인권센터 제공).
ⓒ 김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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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어느 날, 한 포털 사이트 묻고 답하는 란에 글이 한 건 올라왔다.

'인터넷에 이런 글 올리기 민망하지만…. 인터넷으로 한 남자를 만나서 모텔을 가려고 했습니다. 그 남자는 2만 원을 더 줄 테니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글에는 차마 지면에는 옮길 수 없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자신이 16세라고 밝힌 글쓴이는 성 구매자가 자신을 폭행, 폭언하고 감금, 협박, 성기상해, 술 먹이기 등을 해 몰래 도망을 나왔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이 글을 십대여성인권센터에서 일하는 사이버또래상담원(아래 사또)이 발견했다.

처음 이 글을 본 사또는 '인터넷 괴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글쓴이와 접촉해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물으니, "가해자를 감옥으로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해자는 3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당시 조 대표도 이게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피해 소녀를 상대로 심층 상담을 했다. 상담 결과, 피해 소녀가 이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생겼고, 자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피해 소녀는 그 가해자가 감옥에 가야 마음이 놓이겠다고 했다.

이 사건은 십대여성인권센터가 발견하지 않았으면 그냥 묻힐 수도 있었다.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라 누구도 진지하게 믿지 않았다. 사또들이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성매매 소녀들에게 적극적으로 찾아가 상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십대 아이들은 특징이 있는데, 한 번 만났을 때 상담을 다 해야 해요. 내일이 없어요. 잠수타면 그만이에요.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워낙 크기 때문이죠."

조진경 대표는 피해 소녀가 거주하는 지역의 경찰서 성폭력전담팀과 함께 피해 소녀를 만났다. 아이가 과연 나올까, 불안했지만 다행히 아이는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이런 일을 당한 게 사실인지 지어낸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살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본 조진경 대표는 거짓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정황을 따져 보니 거짓일 이유가 없었다.

피해 소녀 만난 경찰, 성매매 사건이라며 조사 거부

피해 사실을 확신한 조 대표는 아이와 함께 경찰서 성폭력전담팀을 찾았다. 피해 소녀의 진술을 들은 경찰은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가해자와 피해 소녀가 성매매로 만났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서에 가기 전 아이의 고발 내용을 미리 제출하기도 했어요. 이건 거의 '성고문'이었습니다, 감금 폭행 다 있고. 그런데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서 조사를 못한다는 거였어요. 그냥 단순 성매매 사건이라는 거예요."

조진경 대표는 목소리를 높였다. 시작부터 막혔다. 조 대표는 경찰에 강하게 호소했고, 겨우 아이가 진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동성폭력의 경우, 국선 변호사 입회 하에 여경이 1차 영상진술을 받는다. 그 자리에 조진경 대표도 참석했다.

"근데 글에 나와 있는 것뿐만이 아니더라고요. 듣고 있기엔 너무 역겨운 사실이 많았습니다. 머리가 아플 정도였어요. 저도 상당히 오랫동안 이 일을 했는데, 그 사건은 가해 정도가 상당히 심한 경우였습니다. 거의 연쇄살인범의 성고문 수준이었고 그게 16세 아이를 상대로 가해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진술을 들은 경찰은 성폭력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진술 영상을 강력계 형사팀에 넘긴다고 했다. 조진경 대표는 이제 수사가 진행이 되는구나 생각하고 최대한 협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조 대표는 몇 개월 후까지 피해 소녀를 데리고 경찰서에 세 번 정도 동행을 했다.

조 대표는 피해 소녀를 감금한 가해자의 집으로 가, 피해 소녀를 묶었던 혁대 등의 증거물들을 확보하기도 했다. 수사가 마무리될 즈음 경찰은 '가해자가 이제 구속이 될 테니 재판이 진행되면 피해 소녀 대신 십대여성인권센터 상담원들이 나와서 진술해 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조 대표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며칠 후 피해 소녀를 통해서 가해자가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분명히 경찰로부터 가해자가 구속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도망갔다는 건지 조 대표는 의아했다. 확인을 하려고 경찰서에 전화를 했더니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경찰은 "당신들한테 수사 과정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가 수사를 지원하고 수사 과정에 참여했는데 우리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니요? 흉악범이 돌아다니고 있고, 또 아이에게 보복을 할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조 대표는 너무 화가 나서 국민신문고에 진정서를 냈다. 빨리 가해자를 잡고 재발방지책을 만들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진정서를 낸 후 얼마 후에 경찰들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조 대표는 경찰에게 말했다. "우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가 궁금해서 그래요. 우리는 알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경찰이 설명했다. "우리는 영상진술서를 토대로 영장은 청구했어요. 그런데 성폭력 전담 검사가 영장이 안 나올 거라고 그랬습니다." 그 이유가 정말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아이가 SM플레이(가학적 성행위)를 조건으로 가해자와 만남을 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검찰이 어떤 조건이었는지 먼저 확인을 하라며 영장을 안 내줬다는 거다.

16세 소녀가 자발적으로 가학적 성행위를 했다?

10대 소녀들의 원조교제 등 성매매 문제를 다룬 영화 <사마리아>
 10대 소녀들의 원조교제 등 성매매 문제를 다룬 영화 <사마리아>
ⓒ 김기덕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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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피해 소녀가 아동청소년이라는 걸 전제로 해야 해요. 만 16세 밖에 안 되는 여자 아이가 죽을 정도로 심한 가학적 성행위를 자기가 좋아서 한다니요? 이미 진술이 나와 있고, 초동수사도 하지 않았습니까?"

경찰은 "가해자를 임의동행 해서 추가로 조사를 해야 한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조 대표도 "사실 이 정도의 흉악범이라면 증거보강을 위해서 최소한 48시간 구금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더군다나 상대가 아동청소년인데"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사실 임의동행 형식으로 이 가해자를 데리고 가서 조사를 했더니 성행위 사실은 인정하지만 기타 가학행위는 다 거짓이라고 했다"라고 황당한 답변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임의동행 형식으로 조사를 받은 가해자는 경찰서 문을 나서자마자 그 길로 도망을 갔다. 조 대표가 보기에, 경찰은 아동 청소년의 진술보다 성인 가해자 말에 신빙성을 더 두고 있었다. 기저에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는 시각이 있었다.

조 대표는 해당 사건을 맡은 성폭력전담 검사의 시각도 이와 같았다고 봤다. 조진경 대표는 검찰청으로 갔다. 담당 검사를 상대로 진정서를 냈더니 검찰조사관에게 연락이 왔다. 검찰조사관은 "검사가 일부러 나태하게 하거나 편파적으로 수사한 것 같지는 않다"며 자기가 보기에는 열심히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진정인에 대해선 어떻게 할 거냐? 그래도 처벌을 원하느냐?"고 되물었다.

조 대표는 "검사의 판단 행위 자체를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검사는 법대로 판단했다"라며 하지만 "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수사관은 법논리 자체를 토론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조진경 대표는 물러서지고 않고 끝까지 책임을 물었다.

"검사의 잘못된 판단으로 가해자가 도망가고 아이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 그럼 누가 책임을 지나요? 법논리만 따지고 앉아 있을 순 없는 겁니다."

이렇게 검찰수사관과 또 싸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조진경 대표의 진술(성폭력전담 검사의 시각이 왜곡되어 있다는 내용)만 기록에 남기기로 합의하고 이 진정서 건을 종료했다.

가해자는 수배가 내려진 후에도 7개월 정도 도망다녔다. 변장을 하고 전국을 다녔다. 그리고 잡혔다는 연락이 왔다. 가해자는 부산에서 신분을 감추려고 핸드폰을 절도하다가 잡혔다. 이 사건이 드디어 재판정으로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가해자의 '정신 이상' 주장을 받아들였다. 조 대표는 십대여성인권센터 법률지원단과 함께 의견서를 냈다. '가해자는 6, 7개월 동안 주도면밀하게 도망을 다녔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정신병이라고 용서할 수 있나?'라는 내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가해자는 결국 지난 2014년 11월경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여 만이었다.

"청소년 성매매, 사실상 비자발적인데..."

많은 전문가들이 청소년 성매매는 대가가 오갔다 해도 마땅히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3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성평등 정책연구포럼 '아청법 대상청소년'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십대여성인권센터 운영위원 박숙란 변호사는 "(성매매 사건) 대상 아동·청소년이 되면 수사기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조사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피해 아이들이) 강력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에 대한 보호처분이나 성폭력·성매매 가해 청소년들에게 내려지는, 같은 수준의 보호처분을 받는데, 이는 성매매처벌법상 성인에게 이뤄지는 보호처분보다도 중한 처분"이라며 '피해 아동·청소년'과 '대상 아동·청소년'을 구분하고 있는 아청법 제2조를 비판했다.

그는 "아청법상 대상 아동청소년 규정을 삭제해 피해 청소년들이 처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피해자로서 권리를 보장받도록 지원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고의수 여성가족부 청소년성보호과장은 "아동청소년의 경우 위기가정이나 가정해체 등으로 가치관과 판단능력이 성숙되지 못한 상태에서 가출한 후, 사회경제적 지위가 취약한 채로 길거리를 배회한다"면서 "그러다가 금전적으로 유혹돼 생존을 위해 성매매에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는 또 "청소년 성매매는 사실상 비자발적이다, 그럼에도 자발성에 따라 처벌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청소년을 범죄자로 낙인찍고 사회적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 본 기사의 중심이 되는 사례는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의 허락 하에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이 기사는 어린이안전신문(어린이청소년 안전과 관련된 대안매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성매매, #청소년성매매, #아동학대, #가출청소년, #위기속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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