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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D.C의 포드극장.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저격당한 곳이다.
 미국 워싱턴 D.C의 포드극장.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저격당한 곳이다.
ⓒ 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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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더 이상 안 계십니다. 이제 역사 속에 계십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링컨>에서 대통령의 사망을 확인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5년 4월 15일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작은 민가에서 숨을 거뒀다.

링컨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50년이 지났다. 워싱턴 D.C에서는 4월 15일에 맞춰 유물 전시회, 강연회, 연극 등 링컨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추모 행사가 열린다. 당연히 가장 주목 받는 곳은 링컨이 암살당했던 '포드극장'이다. 지난달 방문한 이 극장은 조용하면서도 부지런히 링컨의 서거 150주년을 준비하고 있었다.

링컨을 생각하며 떠올리는 것은 한결같다. 오두막집, 노예해방, 남북전쟁, 암살 등. 1809년 켄터키주의 단칸방 통나무집에서 태어난 그는 독학으로 변호사, 하원의원을 거쳐 미국 역사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에 올랐다. 개천에서 용이 나도 엄청난 용이 난 격이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갈수록 사라진다는 요즘 링컨의 향수가 더욱 짙어지는 까닭이다.

워싱턴 D.C 노스웨스트 지역에 있는 포드극장도 링컨의 삶처럼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링컨 암살 이후 미국 연방정부는 포드극장을 매입해 공연을 일체 금지했다. 그러다 1893년 건물 일부가 무너지면서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고, 그 후 몇 차례 개·보수를 거쳐 지금처럼 극장과 박물관의 역할을 함께 하고 있다.

존 윌크스 부스가 링컨 대통령을 암살할 때 사용했던 권총. 포드극장에 전시되어 있다.
 존 윌크스 부스가 링컨 대통령을 암살할 때 사용했던 권총. 포드극장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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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없는 날이면 포드극장은 작은 박물관이 된다. 국가의 사적으로 관리하고 있어 입장료가 무료이지만 관람 시간별로 인원 제한이 있다. 다만 미리 예약하면 박물관 운영을 위한 기부금 명목으로 한 사람 당 5달러를 받는다.

매표소에서 무료 입장권을 받고 극장 지하로 내려가면 링컨의 유품과 업적,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에 관한 자료를 보여준다. 내부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주제와 자세한 설명이 전시되어 있어 꼼꼼히 살펴보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다음 관람객을 위한 시간 제한이 있어 무작정 느긋할 수는 없다.

존 윌크스 부스가 링컨을 암살할 때 사용한 44구경 권총(44 Caliber Pistol)도 전시되어 있다. 크기가 작아 주머니에 넣어 쉽게 숨길 수 있으며, 전시대 아래 이 같은 설명이 쓰여 있다.

"부스는 단 한발의 총알로 미국 역사를 바꾸었다."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낭독하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영상.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낭독하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영상.
ⓒ 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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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지미 카터(39대), 조지 부시(41대), 빌 클린턴(42대), 조지 W. 부시(43대) 등 현존하는 4명의 전임 대통령이 링컨의 위대한 유산으로 꼽히는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낭독하는 영상도 있다. 남북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게티즈버그에서 링컨은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라는 명언을 남기며 민주주의를 명쾌하게 정의했다.

지난 2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의 지역 신문 <패트리엇뉴스>는 1863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폄하했던 사설을 150년 만에 철회하며 공식 사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신문은 "당파심 때문에 오만한 판단을 했었다"며 "우리는 링컨 대통령이 도달한 언어의 원대한 경지를 표현할 말이 없다"고 인정했다.

지하 박물관 관람을 마치면 1층으로 올라가 드디어 포드극장 무대를 볼 수 있다. 극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링컨 암살 사건이 일어났던 '1865년 4월 14일'이 걸려있다. 그리고 길게 이어진 복도 양쪽으로 150년 전 그날, 링컨과 부스의 행적을 시간 순서대로 그려 놓았다. 왼쪽이 부스, 오른쪽이 링컨이다.

사건 당일 오후 8시 30분, 영부인과 함께 2층 테라스석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던 링컨은 10시 15분경 부스가 쏜 총에 후두부를 맞고 쓰러졌다. 당시 링컨의 경호원은 잠시 커피를 마시러 나가 있었고, 아무도 부스가 테라스석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고 한다.

포드극장 객석으로 들어가는 복도에 링컨 대통령과 부스의 사건 당일 행적을 시간 순으로 연결해 놓았다.
 포드극장 객석으로 들어가는 복도에 링컨 대통령과 부스의 사건 당일 행적을 시간 순으로 연결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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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는 공연을 보던 관객들이 모두 폭소를 터뜨릴 때 총을 쏘았고, 따라서 총성은 잘 들리지 않았다. 링컨이 총에 맞아 쓰러지자 1층 무대로 뛰어내린 부스는 "내가 링컨을 쏘았다,폭군은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외쳤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부스는 원래 배우였다. 동시에 열렬한 노예 제도 신봉자였다. 그는 치밀하게 암살을 계획했다. 링컨을 쏘고 나서 미리 준비한 말을 타고 도주한 부스는 10일 만에 버지니아의 한 농가에서 체포됐고, 기병대가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지금은 다시 공연이 열리는 포드극장이지만 링컨이 암살당했던 테라스석은 개방하지 않고 있다. 추모의 뜻으로 성조기와 링컨의 사진을 테라스석에 걸어놓았다. 사람들이 저마다 편한 자리에 앉아 말없이 테라스석을 바라본다. 역사의 무게에 눌린 듯 대화도 소곤소곤 한다. 한켠에서는 꼬마 관람객들이 안내원 할아버지의 간단한 '역사 강의'를 듣고 있다.

꼬마 관람객들이 안내원 할아버지에게 링컨 대통령에 관한 역사 강의를 듣고 있다.
 꼬마 관람객들이 안내원 할아버지에게 링컨 대통령에 관한 역사 강의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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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원 할아버지가 웃지 않는 까닭은?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많은지 그저 듣기만 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당시 시대의 복장을 입은 안내원 할아버지는 빠짐없이 답해주면서 설명을 이어간다. 내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흔쾌히 허락하면서도 "이곳은 엄숙한 곳이니 서로 웃지 말자"고 한다. 나도 흔쾌히 허락(?)하며 둘 다 굳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포드극장 관람이 끝나고 나오면 기념품 매장도 구경할 수 있다. 링컨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 티셔츠, 컵, 열쇠고리, 장식품, 심지어 양념통까지 다양한 기념품이 있어 '지름신'을 자극한다.

포드극장을 나왔다고 해서 관람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당시 총에 맞은 링컨은 상태가 너무 위중해 병원에 갈 시간조차 없었다. 결국 링컨은 포드극장 맞은편에 있는 '피터슨 하우스'라는 작은 민가로 옮겨졌고, 각료들이 모여 비상사태를 논의했다.

포드극장 맞은편에 있는 피터슨 하우스(가운데 건물). 링컨 대통령이 총에 맞은 후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곳이다.
 포드극장 맞은편에 있는 피터슨 하우스(가운데 건물). 링컨 대통령이 총에 맞은 후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사망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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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스쳐 지나가면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집이다. 입구에 걸려있는 작은 간판만이 링컨이 서거한 곳이라고 알려준다. 1층에 있는 안내원에게 포드극장에서 받았던 입장권을 보여주면 역시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독일인 재단사 윌리엄 피터슨이 지은 이 작은 집에서 링컨은 의료진의 치료를 받았으나 혼수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링컨이 죽음을 맞이했던 침대도 전시되어 있다. 키가 190cm가 넘었던 링컨의 거구에 비해 침대가 너무 작아 비스듬히 눕혔다고 한다.

의료진의 노력, 가족과 각료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링컨은 총에 맞은 뒤 9시간 정도가 지난 1865년 4월 15일 오전 7시 22분, 피터슨 하우스 2층의 이 침대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미국 연방정부는 1896년 피터슨 하우스도 매입해 포드극장과 함께 국립 사적지로 관리하고 있다.

링컨 대통령이 저격당한 후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숨을 거둔 침대. 피터슨 하우스의 2층에 있다.
 링컨 대통령이 저격당한 후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숨을 거둔 침대. 피터슨 하우스의 2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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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6일 브루킹스연구소가 '대통령의 날'을 맞이해 미국 정치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역대 대통령 평가 설문조사에서 링컨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2위)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링컨을 향한 존경은 역경을 극복하고 대통령에 오른 집념, 노예해방을 선언하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화려한 업적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덩치 큰 원숭이'라고 모욕하며 무시했던 에드윈 스탠튼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했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다듬기 위해 수염을 기르면 좋을 것 같다는 11살 소녀의 충고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링컨은 노예도 주인도 없는, 흑인도 백인도 없는, 북부와 남부가 하나가 된 나라를 꿈꿨다. 그의 결단력은 포용과 소통이 있었기에 더 빛이 났다. 링컨이 세상을 떠난 지 150년이 지났고, 수많은 후임 대통령이 등장했지만 미국이 아직도  링컨을 가장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이유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에이브러햄 링컨, #포드극장, #피터슨 하우스, #존 윌크스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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