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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용감히 출마해서 당당히 낙선한 시민운동가, 사회복지사. 대학졸업하고 사회생활 조금하고 결혼하고 마포에서 12년 활동하고 애 키우고 나니 마흔이 되었다. 2014년 말 살고, 활동하던 마포를 떠나 신랑을 따라 춘천으로 귀촌했다. 앞으로 뭐하나? 뭐해서 먹고사나? 은근히 걱정하며 앞길을 모색하는 철없는 아줌마!! 언제까지나 젊을 줄만 알았는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니라 나이는 유리장벽임을 느끼고 있다. - 기자 말

트럭을 운전해서 밭으로 간다. 오늘은 씨앗을 심는 날이다.

"자기가 나 운전 가르쳐줄 때 말했지. 겁내면 운전 못 배운다고. 나 겁 안 내고 다시 도전해볼게."

조수석에 앉아있는 신랑에게 이렇게 말했다. 춘천에서 새롭게 일자리를 구하느라 이력서를 두 군데 냈는데, 모두 1차에 통과를 못했다. 솔직히 선거에서 떨어졌을 때보다 더 충격이었다.

복지관은 아니었지만 복지NGO에서 10년 이상 일하며 잔뼈가 굵었고, 여기저기 자문위원에, 강의에, 나름 잘 나갔기에 "두 군데 모두 되면 어디를 가지?" 그런 행복한 고민도 미리 해봤던 거다. 두 군데 복지관에 이력서를 가지고 가서 제출하고, 복지관 주변 동네도 돌아보며 그곳에 일할 내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나는 전에 직장구할 때 이력서 100개는 썼을 거야. 이력서를 넣다 보면 처음엔 힘들어. 그래도 구해야 하니까 나중엔 절박해지고, 그러다 현실을 직시하게 돼. 그리고 촉이 와. '여기는 되겠구나.' 그곳에서 오라고 연락오면 기분이 무지 좋지."

그랬구나. 마흔 되던 해 신랑은 직장을 다시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신랑은 인터넷을 뒤지고 이력서를 썼다. 그 무렵 신랑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다. 아들이 재밌는 얘기를 하면 배시시 웃는 게 다였다. 그때 100개씩이나 이력서를 넣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두 군데 모두 '낙방'... 선거 떨어졌을 때보다 충격

춘천의 농협 종묘센터. 씨앗들
 춘천의 농협 종묘센터. 씨앗들
ⓒ 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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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사러 종묘센터에 갔다. 다양한 씨앗, 거름, 제초제들이 있다. 아버님이 사오라고 하신 파, 얼갈이 배추, 총각 무 씨앗과 내가 심고 싶은 당근, 호박씨를 샀다. 씨앗을 고르는 기분은 참 좋다. 집에 와서 씨앗을 꺼내본다. '우와!' 씨앗들이 모양과 색깔이 가지각색이다. 그리고 예쁘다. 

상추씨
 상추씨
ⓒ 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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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갈이 배추 씨
 얼갈이 배추 씨
ⓒ 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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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집 앞 비닐하우스로 출동! 모종 키우는 플라스틱 틀에 육모(모를 키움)용 상토(육모를 목적으로 사용되는 흙)를 담고, 가운데 구멍을 집게 손가락으로 살짝 내어 그 자리에 씨앗을 3, 4알씩 넣는다. 그리고 다시 흙을 덮어준다. 흙을 '꾹꾹' 눌러 놓으면 싹이 올라올 때 힘들기 때문에 이불 덮듯 흙을 올려준다.

여주씨를 상토에 넣고 있다.
 여주씨를 상토에 넣고 있다.
ⓒ 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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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판매용 재배를 시작하는 여주씨를 심을 때는 기분이 조금 남달랐다. 이 작은 씨앗이 커서 열매를 맺고 우리 아들 야구 신발도 사주고, 쇠고기도 사먹고, 전기요금도 내게 해주는구나. 기특하고 기특하다.

"이렇게 하면 정말 싹이 나와?"
"응. 이게 싹이 돼서 올라오면 정말 신기해."

신랑의 대답이다.

사온 씨앗들을 이렇게 모두 심고 흠뻑 물을 주고 신문지로 덮었다. 신문지를 덮으면 수분이 빠르게 증발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리고 쇠로 된 얇은 파이프를 땅에 양쪽으로 꼽아 아치 형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비닐을 씌워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솜이불을 덮어주었다. 이렇게 완전 무장을 하면 씨앗들이 잘 클 수 있다고 한다.

씨앗을 심고 비닐로 덮어놓은 모습이다.
 씨앗을 심고 비닐로 덮어놓은 모습이다.
ⓒ 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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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밭으로 나가서 얼갈이 배추와 총각 무를 심었다. 배추와 무는 모종을 길러서 옮겨 심는 게 아니고, 밭에 바로 심어서 키운다.

"아~ 작물마다 심는 방법도 다르구나."

동네 밭들은 집에서 먹을 작물을 키우는 밭을 제외하면 대부분 비닐하우스다. 비닐하우스 안은 이랑과 고랑이 만들었고, 이랑 위에 비닐도 씌웠다. 바로 씨앗만 심으면 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았다. 3월말 농부들은 농사를 시작할 만반의 준비를 마쳐놓고 때를 기다린다.

농부는 죽는 날까지 씨앗을 심는다. 적당한 때를 택하고, 씨앗의 성질에 맞게 알맞은 흙을 준비하고, 씨앗을 심는다. 심어진 씨앗이 성장하기 적당한 온도를 맞추고 물을 주며 기다린다.

며칠 후 나는 다시 두 군데 이력서를 냈다. 이번에는 직접 들고 가지 않고 이메일로 보냈다. 한 군데는 미리 전화해서 젊은 사람을 찾는지 물었다. 차라리 솔직히 '팀장이 30대라 젊은 사람을 뽑는다'고 말해주는 곳은 고마웠다. 지난번보다 기대는 덜 한다. 실망할까봐...

"당신의 여행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바로 당신의 태도이다."

요새 보고 있는 여행 글쓰기에 관한 책 <떠난다 쓴다 남긴다>에 나온 문구이다. 나이 든다는 게, 인생이 유한함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는 게 아직은 어색하다. 하지만 난 인생이라는 여행을 더 적극적으로 즐기면서 하겠다. 꼭 그렇게 하고 싶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춘천여행, #씨앗심기, #인생,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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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 글쓰기를 즐기는 사회복지사, 시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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