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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 일본 훗카이도 동쪽 츠루이마을에서 우핑한 이야기입니다. 우프(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1971년에 영국에서 처음 시작한 전세계 유기농 농장 네트워크입니다. 유기농 농장을 포함하여 친환경적이고 대안적인 삶을 사는 곳에 가서 하루에 정해진 시간을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문화체험 프로그램입니다. - 기자 말

이제야 시차에 적응된 것 같다. 새벽 6시쯤 눈이 떠졌다. 나는 하트엔트리로 가 여느 때처럼 달콤한 빵과 커피를 마셨다.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커피를 다시 커피포트로 데워먹는 여유도 부렸다. 새벽에 잠시 비가 내렸던 것 같다. 땅은 축축했고 옅은 안개 하트엔트리를 덮고 있었다. 어제 사온 꽃과 허브를 농장에 심어야 했는데 이런 날씨면 땀 흘리지 않고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트엔트리 대표 빵. 안에는 커스터드크림이 잔뜩 들어있다. 아침마다 굽는 이 빵은 오후가 되면 다 팔려 없을정도로 하트엔트리의 대표 빵으로 자리잡았다.
 하트엔트리 대표 빵. 안에는 커스터드크림이 잔뜩 들어있다. 아침마다 굽는 이 빵은 오후가 되면 다 팔려 없을정도로 하트엔트리의 대표 빵으로 자리잡았다.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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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손님이 왔다. 세련돼 보이는 여자 손님이었는데 혼자였다. 방금 구운 따뜻한 빵과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사치코씨는 나에게 서빙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오븐에서 갓 구운 따끈한 빵을 꺼내고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 접시에 예쁘게 담아 손님에게 가져다주었다. 외롭게 혼자 앉아 있는 것 같아 말을 걸었다. 자신을 <교도통신> 기자라고 소개한 여자는 삿포로에 산다고 했다. 가끔 일에서 해방되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 하트엔트리에 들른다고 했다.

 레스토랑 안에서 보이는 외관
 레스토랑 안에서 보이는 외관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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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엔트리는 평화로운 곳이다. 레스토랑 사방에 나 있는 창문으로 따뜻한 햇볕이 들어오고 부드러운 음악이 사랑스러운 에너지를 만든다. 가끔 레스토랑에 아무도 없을 때 차 한잔을 타서 창문 옆에 햇볕을 쬐고 앉아 있노라면 온 세상이 나를 향해 행복하게 지내라고 축복해주는 것 같다. 분명 그런 느낌을 많은 사람이 받았으리라. 그래서 하트엔트리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작은 방을 내어 게스트하우스도 병행하고 있는데 혼자 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혼자 사색할 공간으로 하트엔트리는 그저 완벽한 곳이다.

나는 어제 사온 꽃과 허브들을 농장에 옮겨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축축한 땅으로부터 신발이 젖지 않게 하려고 장화를 신고 아직도 살짝 내리는 비를 피해 우비를 입었다. 농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썩혀 만든 퇴비 더미를 농장 흙과 한데 섞는 작업부터 시작하여, 식물을 심고, 물을 주었다. 흙을 만지면서 일하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은 차분해진다. 그저 입으로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손으로는 흙과 교감한다. 가끔 지렁이가 나오면 '땡큐'다. 흙이 얼마나 건강한지 알려주는 신호니까.

 농장안에 있는 텃밭. 채소들은 좋은 에너지를 받아서 그런지 모두 싱싱하다
 농장안에 있는 텃밭. 채소들은 좋은 에너지를 받아서 그런지 모두 싱싱하다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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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일하고 있는데 멀리서 어떤 여자분이 한 손에는 카메라를 다른 한 손에는 노트를 들고 사치코씨와 함께 다가왔다.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한 여성은 하트엔트리를 취재하러 왔단다. 농장에 젊은 외국인 여자 둘이 있어 궁금해 사치코씨한테 물어보니, 우프를 한다길래 궁금해서 왔다고 한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우핑을 하는 이유에 관해서 물어보고 사진을 찍고 갔는데, 2주일 정도 뒤에 사치코상이 내가 신문에 나왔다며 내용을 보내주었다. 일본에 와서 농장일을 하다 신문에 날 줄이야. 재밌는 일이다.

 일본 홋카이도 지역신문에 우프와 하트엔트리에 관한 기사
 일본 홋카이도 지역신문에 우프와 하트엔트리에 관한 기사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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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사온 모든 식물을 심고 나니 벌써 3시가 넘었다. 허기가 져서 레스토랑 안에 들어가 먹을 게 있나 뒤적뒤적거리다 따끈한 빵을 발견했다. 나는 홍차에 우유를 가득 넣어 빵과 함께 먹었다. 땀 흘려 일하고 난뒤에 먹는 음식은 그저 감사할 뿐이다.

오후에 책을 읽고 있는데 쏘냐가 같이 조깅하러 가지 않겠냐고 한다. 나는 흔쾌히 허락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우리의 목적지는 아랫마을에 있는 온천이었다. 사실 나는 조깅을 한다기보다는 따끈한 물이 기다리고 있는 온천을 향해 열심히 뛰어갔다는 게 더 맞다. 머릿속에는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글 생각밖에 없었다.

농장에서 시작하여 온천까지 거의 6킬로미터가 넘는 조깅을 하는 중에는 뜻밖에도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었다. 재빨리 뛰어가는 여우도 보았고 멀찌감치서 우리를 보고 있는 야생노루 가족도 만날 수 있었다. 온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함께 일한 쏘냐. 쏘냐는 하트엔트리에 한 달동안 와서 일을 했다.
 함께 일한 쏘냐. 쏘냐는 하트엔트리에 한 달동안 와서 일을 했다.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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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에 가기 전에 사치코씨가 무료티켓 두 장을 줬는데 마을에서 어르신들이 무료로 목욕 할 수 있도록 나눠주는 티켓이라고 했다. 우리가 간 온천은 노천탕이었다. 탕 속 몸은 뜨거웠지만 얼굴은 상쾌했다. 정신이 가다듬어지는 느낌.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일본우프의 하이라이트를 꼽자면 나는 어김없이 땀흘려 일한 뒤에 하는 온천욕을 꼽을 거다.

모모코와 사치코씨 왼쪽 모모코, 오른쪽 사치코씨. 모모코는 엄마를 도와 하트엔트리를 관리하고 있다
▲ 모모코와 사치코씨 왼쪽 모모코, 오른쪽 사치코씨. 모모코는 엄마를 도와 하트엔트리를 관리하고 있다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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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욕을 하고나니 모모코가 차를 끌고 우리를 마중 나왔다. 걸어서 올라가면 피곤할까봐 이렇게 신경써서 나와준 것이다. '모모코짱'의 친절에 감사를 느꼈다. 우리는 같이 장을 보고 들어가서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오늘의 저녁은 징기스칸이었는데, 우리나라 불고기와 비슷했다. 단지 소고기가 아닌 양고기로 하는 게 다를 뿐.

저녁을 배불리 먹고 나니 쏘냐가 춤을 추자고 한다. 미국에서 살사댄스를 가르친다는 쏘냐는 일본에 와서 오랫동안 춤을 추지 않아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했다. 사치코씨와 모모코 그리고 나는 춤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지만, 쏘냐의 제안을 받아들여 쏘냐로부터 살사댄스를 배웠다.

아니 이럴 수가, 내가 몸치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을 몰랐다. 발과 엉덩이 허리가 말을 안 들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사치코상도 모모코짱도 몸의 신체가 다 따로 놀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를 보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이건 춤이 아니라 코미디었다. 한참을 웃고 나니, 서로가 한결 더 편해짐을 느꼈다.

하루가 다르게 하트엔트리 가족 구성원이 되는 느낌이다. 몸도 마음도 즐겁고 편안하다. 이제 가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욱더 1분 1초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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