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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우리 사회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잊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획해 인터뷰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 기자말

진실이 무엇인지 찾고 기록하는 일은 힘겨운 일이다. 세월호 참사와 같이 충격적인 비극은 더욱 그렇다. 감정을 수습하고 그 현장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것은 늘 기록자의 몫이다. 함께 슬퍼하다가도 때로는 거리를 두고 사건을 바라봐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하는 무거운 책임도 뒤따른다. 그럼에도 진실을 알리기 위해 유가족들과 가까이에서 함께하며 참사를 기록했던 사람들이 있다.

지난달 26일 따뜻한 오후, 서울 왕십리의 한 카페에서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의 오준호씨(40)를 만났다. 인터뷰 후 근처에서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 있다던 그의 첫인상은 흔히 떠오르는 지식인의 무게 있는 모습보다는 수수하고 편한 인상이었다. 그는 글 쓰는 사람답게 자리에 앉아 가장 먼저 수첩과 펜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시민의 입장에서 재난을 평가하고 해석할 수 있는 자료"

오준호 시민기록위원이 근작인 『세월호를 기록하다』와 함께 “나는 민주주의 힘을 믿는 오준호입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 책과 팻말을 들고 있는 오준호 시민기록위원 오준호 시민기록위원이 근작인 『세월호를 기록하다』와 함께 “나는 민주주의 힘을 믿는 오준호입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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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히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작가입니다. 르포르타주나 인문 교양서를 집필하고 번역도 하고요. 강연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일을 주로 하는 사람입니다. 나이는 올해 마흔 살이고 대구에서 자라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 뒤로는 사회 운동, 진보 정당 운동을 했고, 사회 단체에서 활동을 하다가 2008년 말 안산으로 내려갔죠."

- 왜 안산으로 가신 건가요?
"꼭 안산이어야 했던 건 아니고, 집값이 싸고 좀 넓은 데를 찾다 보니까 4호선 끄트머리까지 흘러가게 된 거죠. 서울에서 부유하지 않게 살면서 애들을 키우기가 버거웠거든요. 조금이라도 아이들과 쾌적한 곳에서 살고 싶었어요."

- 작가 활동에 대해 조금 더 말씀해주세요.
"2011년에 <반란의 세계사>라는 시민 혁명, 민중 혁명의 이야기들을 다룬 역사 교양서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집필 활동을 시작했고요. 2012년에는 <소크라테스처럼 읽어라>라는 인문독서법에 대한 책도 냈는데 아직도 호응이 좀 있어요. 2013년엔 <노동자의 변호사들>이라고 노동 사건에 대한 르포르타주를 썼어요. 개인적으로도 깊은 경험이 되었던 책입니다. 민주노총 노동 변호사님들과 함께 공동으로 작업했어요. 집필은 제가 했지만, 주요 인터뷰들은 변호사님들이 제공을 많이 해주셨지요. 가장 최근에 한 것이 바로 이 <세월호를 기록하다>입니다. 아무튼 이 제목을 인터넷에 많이 부각하는 쪽으로 해주세요(웃음)."

- 안산에서는 어떻게 살고 계시나요? 주말은 어떻게 보내시는지, 일상이 궁금해요.
"지금은 학원 강의는 따로 하지 않고, 책을 쓰거나 강연하는 일정에 맞춰서 살아요. 글을 쓰거나 원고 마감에 맞춰서 움직이게 되는 거죠. 작업과 관련된 생활인 것 같고요. 강연이 있으면 강연하러 가고 공부를 하는 모임이 있으면 가고 합니다. 조금 심심한 사람인데 피아노 치는 취미가 있어요. 최근엔 잘 못해요. 주말에는 아이들과 어린이 도서관에 놀기도 합니다."

- 안산 시민으로서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경험하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사고 당일 날은 누구나 그랬듯 뉴스를 보고 별것 아닐 거라고 생각했고, 한동안 그렇게 제 할 일을 하다 배가 침몰하고 큰 참변이 벌어진 걸 알 게 됐고... 점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됐어요. 당시 안산 지역에서 무사 생환을 위한 촛불 기도회가 열렸어요. 기도한다고 무엇이 되거나, 되지 않다는 생각을 떠나서 뭐라도 붙잡고 싶어서 기도회에 참여해 마음을 모아보고... 그렇게 며칠이 갔던 것 같아요.

그러다 알고 지내던 <한겨레21> 기자가 안산 지역의 분위기에 대한 르포를 하나 써달라고 했어요. 그게 계기가 돼 안산 주변을 돌아다녀 보게 됐습니다. 단원고 근처의 문방구나 매점, 도서관 등 당시에 학생들을 많이 보았을 만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 학생들은 어떠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그 인터뷰는 참 내가 평생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인터뷰였어요.

사고 일주일 후 단원고 정문에 희생자 추모와 무사 귀환을 바라는 소망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모습이다.
▲ 안산 단원고등학교 정문의 모습 사고 일주일 후 단원고 정문에 희생자 추모와 무사 귀환을 바라는 소망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모습이다.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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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질문을 꺼내거나 그 질문에 반응하는 어떤 슬픈 분위기를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 힘들었죠. 르포만 아니면 이런 질문을 지금 이 시기에 하고 싶지 않은데. 중간에 그만 한다고 말할까 하다가 기록하기 위해 질문을 하고, 대답 아닌 대답을 듣고, 침묵을 보고, 눈물을 보고... 그렇게 며칠을 보냈어요."

- 시민기록위원회를 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지금까지 대구 지하철 참사라든지 삼풍백화점 같은 사고가 많았지만, 검색을 해보면 시민의 입장에서 기록한 르포나 취재물이 거의 없어요. 대부분 관이 통제해서 기록하고 결과물을 백서를 내고, 심지어 그 백서도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요. 결국 시민의 입장에서 그런 재난들을 평가하고 해석하고 반성할 수 없는, 혹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증거 자료가 없는 거예요. 그에 대해 반성하면서 이번에는 시민이 그 작업을 하자라는 제안이 나오게 됐죠."

- 시민기록위원회의 활동을 소개해주세요.
"시민기록위원회는 유가족과 끊임없이 동행하면서 유가족이 필요한 기록 자료들을 사진, 글과 영상으로 남겼어요. 지난해 여름에 세월호 진상 규명 특별법을 제정할 때도 언론에 인터뷰와 같은 기고 활동들을 해왔습니다. 그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국회까지 1박 2일 도보 행진을 할 때 동행했던 것이고요. 또 하나는 바티칸 교황님이 오셨을 때 광화문 미사를 참여하고 기록했던 것입니다."

- <세월호를 기록하다>를 집필하면서 어려웠던 일이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이 작업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대표적 어려움 하나는 '내가 어떤 위치에서 이 사고를 바라볼 것인가'였어요. 이 사고가 비상식적이고 말도 안 되니까, 한쪽에서는 어마어마한 음모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또 한쪽에서는 일반적으로 벌어진 교통사고 아니냐며 사건을 축소하기도 했어요.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양 극단 이외에 어떤 위치를 잡아야하는지가 가장 어려웠어요. 특히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기에, 자칫하면 아무도 만족해낼 수 없으면서 어쩌면 많은 비판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둘째는 저는 법정이라는 공간을 택했는데 법정은 장점과 한계가 명확한 곳이죠. 이 사건은 형사 사건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증거와 증언이 법정으로 몰릴 수밖에 없어요. 일반인은 그 자료를 잘 보기도 힘들고 언론을 통해 단편적으로밖에 볼 수 없어요. 그래서 제 법정 기록을 통해서 보는 것은 가장 많은 자료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런데 검찰이 기본적으로 테두리를 쳐 놓은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것이고, 현행법상 어떤 위법 행위를 가리는 것이기 때문에 보다 깊이 들어가 보고 싶은 사람에겐 한계도 명확한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공방만이 진실의 총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위험성도 있어요.

또 법정에 나와서 증언하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속을 수도 있고요. 그 사람 말이 과연 진실인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의문을 던져야 했어요. 많은 증언 속에서도 내가 책임지고 여기까지는 믿을 만하다고 할 수 있는 데가 어디까지인가를 찾는 것이 힘든 일이었죠."

'씨앗은 땅에 뿌려졌고 머지않아 그 싹이 대지를 덮게 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세세한 경위에 대한 내용과 의문들이 메모되어 있다.
▲ 오준호 작가가 법정에서 쓴 수첩 사진 세월호 참사의 세세한 경위에 대한 내용과 의문들이 메모되어 있다.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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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위치에서 사고를 바라볼 것인지를 고민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고민 끝에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보셨나요?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주체로 접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하는 방법론적인 태도를 정했어요.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보려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가장 간결한 설명을 찾는 원칙을 취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설명이 안 된다고 하면 다음 이론을 찾아야 한다는 거죠.

이 사고가 어마어마한 악의 무리에 의해 일어났다는 설명보다는 늘 지금까지 있었던 사고들과 과실들의 누적이라는 것이 보다 간결하고 상식적인 설명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도저히 안 풀리는 의혹이 있다면 해명하려고 노력하고, 그렇게도 해명이 안 된다면 남겨 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앞으로 세월호 시민기록위원 활동이 어떻게 이어질 계획인가요?
"유가족과 안산 시민 사회의 일상적인 기록물을 수집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희생 학생의 유품을 모으고 기록해서 아카이브화 하는 작업이에요. 유가족의 협조 하에 희생 학생들의 일기를 스캔하고 모으기도 하고요.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은 시민기록위원회만이 한정된 작업은 아닐 것 같아요. 아카이빙을 토대로 시민 기록 작업은 넓고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이야기 되고 있는 것 중에서는 생존 학생들의 인터뷰 작업이 구상 단계에 있고, 희생 학생들의 짧은 평전들을 쓰려고 준비 중입니다. 오는 4월쯤 다큐멘터리가 하나 나올 거고요, 바뀔지도 모르지만 <국가와 나>라는 가제를 가지고 있어요. 세월호 유가족이 1년에 걸쳐서 어떻게 본인들이 살아났고, 국가의 무책임과 어떻게 싸웠는지 기록하는 중요한 기록물이 될 것 같아요."

-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실 계획인가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드러나야 하거나 공유돼야 하는 진실과 사실 관계를 취재하고 글로 쓰는 작업을 해 왔어요. 또 필요한 인문 사회적인 지식과 대안을 유통하기 위해 노력했고요.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 같아요. 몇 가지 염두에 둔 작업 중 하나는 기본 소득을 좀 더 많이 알리기 위한 작업을 구상하고 진행하는 단계에 있어요. 세월호 사고에 관련해서는 안산에 살면서 형성된 유가족과의 관계가 있으니 유가족분들이 필요로 하는 기록물을 쓰려는 고민을 해보려고 해요."

- 나름의 방법으로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활동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세월호를 기억하고 싶지만,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어떻게 해야 세월호를 잊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제가 기록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어떤 일에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찾으려 하고, 사실 관계 배후에 있는 의미와 사회적인 관계를 찾으려는 예리하고 비판적인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느 날 갑자기 그 배가 휙 넘어간 게 아니라, 그 배가 그렇게 되기까지 영향을 준 것이 있거든요. 이를테면 사회 구조적 관계와 역사, 그리고 인간들의 행위가 있다는 거죠. 이런 것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서 의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체적으로 기억해야 기억할 수 있다가 첫 번째고요. 두 번째는 뭔가를 기억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란 리본을 달고 그림을 보고 하는 행위도 매우 중요하지만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될 수밖에 없어요. 유가족이나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 등 함께 기억할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한마디 해주세요.
"'힘을 내자, 잘 될 거다' 그런 말을 하기가 미안한 분들이 너무 많아요. '더 이상 어떻게 힘을 내지' 이런 생각도 들고. 하지만 당신들이 하는 어떤 행동이 분명히 이 사회에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단기간의 성과로 드러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로부터 이 사회를 조금씩 바꿔내는 것이 아닐까 해요.

에밀 졸라가 쓴 <제르미날(Germinal)>이라는 소설이 있어요. 19세기 탄광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씨앗은 땅에 뿌려졌고 머지않아 그 싹이 대지를 덮게 될 것이다'. 탄광에서 파업을 하다가 패배하고 떠나는 한 노동자의 독백 같은 건데요. 제르미날은 씨를 뿌리는 달이라는 뜻인데, 씨가 뿌려졌다는 것이에요. 언젠가는 싹이 트게 될 것이라는 뜻이죠."

덧붙이는 글 | 남수민 기자는 <사람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사람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연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사람들, #오준호, #세월호, #세월호를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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