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이들이 후원 모금을 위해 피켓과 모금함을 만들고 있다.
 아이들이 후원 모금을 위해 피켓과 모금함을 만들고 있다.
ⓒ 김형배

관련사진보기


의정부에 살고 있는 19명의 아이들과 함께 1월 16일부터 7박 9일간의 베트남평화기행을 다녀왔다. 베트남전 한국군 참전 50년을 맞이하여, 청소년들에게 한국과 베트남의 안타까운 역사를 바로 알려주고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베트남평화기행 동안 전쟁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들을 방문하였고,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상처들을 가진 생존자들을 만났다.

항공사의 사전 통보 없는 연착으로 인해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환한 얼굴과 따뜻한 가슴으로 집밖에서 고생했을 아이들을 맞이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가족들만큼 밝게 웃을 수 없었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마주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함께 간 동료교사와 나란히 앉았으나 마치 낯선 사람과 앉은 것 마냥 침묵만이 지속되었다. 베트남에서의 에피소드를 되뇌며 이야기 소재로 삼을 수 있을 텐데도, 조용히 창밖만 바라보았다. 머리가 무거웠다. 한국군에 의해 처참하게 죽은 사람들, 그 와중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죽음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간직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베트남 참전을 정당화하고 심지어 자랑하면서 이기적으로 몸집만 키운 대한민국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미안함, 책임감, 부끄러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등의 단어가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결국 내 머리를 진정시킬 수 있는 길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생각을 옮기는 것이었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먼저 나섰다

아이들이 후원금 모금을 위해 벼룩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물건을 더 이상 놓을 빈자리가 없다.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이 후원금 모금을 위해 벼룩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물건을 더 이상 놓을 빈자리가 없다.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을 볼 수 있다.
ⓒ 김형배

관련사진보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부끄럽고 참혹한 진실을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한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컴퓨터 앞에서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에 대한 예전 기사만 검색하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아이들이었다. 내 머릿속이 복잡한 것만 생각하고 있었지 아이들 역시 고민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베트남 전쟁에 관한 독서모임을 진행하며 피해자 지원을 위한 실천활동을 병행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아이들은 <하노이에 별이 뜨다> <미스 사이공> <미안해요 베트남>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등을 읽으며 부끄럽고 미안한 역사를 더 자세히 알고 자신들의 감정을 함께 공유하기로 하였다.

"대체 어쩌자고 그토록 독한 다이옥신을 공중에서 마구 뿌려댄 것일까.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도 다이옥신의 후유증 그대로 안고 태어난다. 그들은 불구이다. 왜 불구로 태어나야 하는지도 모르고 누가 책임질 것인가 누가 이 피눈물을 해결할 것인가." - <미스 사이공> 중에서

성지윤 : "이 부분이 기억에 남고 가슴에 와 닿았다. 우리가 앞으로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

"나는 착한 아들 한명을 미 육군에 보냈다. 그러나 미국은 내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어버렸다." - <미안해요 베트남> 중에서

박지호 :
"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고 전쟁은 참혹하고 나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우리에게 한 번 만이라도 민간인 죽이지 마라. 아이나 노인이나 여자 죽이지 마라. 강간하지 마라. 한 번이라도 얘기했다면 그렇게까지는 안 했지.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민간인을 살리라는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못 들어봤습니다." -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중에서

이예진 : "한국참전 군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이든 노인이든 다 베트콩이고 베트콩은 우리와 다른 인종으로 죽여도 된다고 배웠다고 한다. 참전군인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돈이 없고 배가 고픈 1960년대 사람들에게는 그저 돈을 주고 밥을 준다는 말에 가게 된 베트남이다. 우리처럼 평범했던 사람들이 살인자가 되어 돌아왔다는 것이 너무 슬프고 안타까워서 기억에 남는다."

쉬라고 떠밀기 전까지 앉지도 않았던 열의

아이들이 만든 피켓과 달력이 지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자리잡고 있다.
 아이들이 만든 피켓과 달력이 지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자리잡고 있다.
ⓒ 김형배

관련사진보기


아이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최대 민간인 학살지인 빈호아 마을의 초·중학생 후원을 위한 모금활동을 지난 2월 말부터 시작했다. 아이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베트남 사람들을 왜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피켓에 옮겨 담고 모금함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피켓과 모금함을 부모님, 지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설치했다. 또 아이들은 빈호아 마을 후원을 위해 지역시민단체 주관 행사에 자리를 깔고, 자신들의 물건들을 내다 팔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후원금을 더 모금하기 위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자신의 물건들을 빼꼭히 깔아놓았다. 비록 많이 팔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을 때, 기행을 함께 했던 교사들은 성당에서 운영하는 이주노동자상담소에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유학생, 노동자들의 한국어공부를 돕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평상시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오지 않았기에, 매주 토요일마다 정기적으로 가는 봉사활동이 시간적으로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마저 안 하면 뻔뻔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상담소 문을 열 때 마다 너무나 환하게 맞이해주는 이주노동자들의 미소가, 여유롭지 않은 사정에도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해주는 이주노동자들의 마음이 정말 따뜻했다. 봉사활동을 다녀올 때마다 오히려 도움을 받고 온다는 느낌이 든다.

지난 3월 28일, 의정부에서 경기도교육청이 주관한 광복70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빈호아 마을 후원을 위한 부스를 운영했다. 우리들의 베트남 기행 이야기를 담은 달력을 현장 모금에 동참한 후원자들에게 증정했다.

한편에서는 버튼 만들기, 손수건 만들기를 하면서 후원금을 모금했다. 또 몇 명이 달라붙어 베트남 음식인 월남 쌈을 정성스레 만들어 팔기도 하였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10여 명의 아이들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쉬라고 떠밀기 전까지 자리에 앉으려 하지도 않았다.

봉사활동 시간 못 받아도...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후원 모금을 위해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베트남과 한국의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었다.
 아이들이 후원 모금을 위해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베트남과 한국의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었다.
ⓒ 김형배

관련사진보기


평화기행프로그램은 이미 정식으로 종료됐다. 앞으로 진행할 활동에 대해 봉사활동 시간으로 인정해주는 등의 보상도 없다. 무엇이 아이들을 이렇게 움직이도록 하는지 그 원인이 궁금했다.

한예준 : "베트남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 때 느낀 감정들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잊을 수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김수지 :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갔는데, 베트남 전쟁에서 일어난 일들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일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지호 : "베트남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분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미안하고 죄송해서 그런 것 같다."

채 10일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쉽지 않을 만큼 무겁고 크다. 죄책감, 미안함, 책임감 이 복잡한 감정은 우리들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베트남'이라는 세 글자에 관심을 기울이며 마음속에 담은 분들을 떠올리며 움직이고 있다.

오는 4월 7일 그 분들 중에 한 분이 당신의 아픈 기억을 한국 사람들에게 꺼내 놓기 위하여 방한한다. 꺼내 놓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들어야 한다. 화해는 상처를 보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첫걸음이 바로 가슴속 담아온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인으로써 갖게 된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아 나가기 위해 그곳에서 그분들과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예진 :
"신문, 책, 인터넷에서 전에는 그냥 지나치던 '베트남'이라는 세 글자를 보게 되면, 이제는 무조건 그 글들을 읽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자료를 더 찾아보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알게 된 내용, 우리의 역사와 만행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베트남 피해자분들에게 너무 크나큰 아픔을 드린 것에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뿐이다. 그래서 함께 다녀온 친구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관련 책도 읽고 이야기도 나누고 공부도 할 것이다. 우리가 알게 될 사실들을 많은 사람에게도 알리고 싶다."


태그:#의정부, #청소년, #베프, #베트남, #평화기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