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네이터' 차두리가 자신의 76번째 A매치를 끝으로 14년간에 걸친 태극 마크 경력에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었다. 차두리는 지난달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오른쪽 수비수로 선발 출전해 42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오랫동안 대표팀에 공헌한 차두리의 마지막 은퇴 무대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차두리가 아직 현역 선수임을 감안해 이미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음에도 우즈벡-뉴질랜드와의 A매치 2연전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명단에 포함시켰다. 단순히 정장을 입고 하프타임에 은퇴식만 하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로서 뛰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차두리와 팬들 모두를 위한 배려였다.

주장 완장 찬 차두리, 마지막도 빛났다

 차두리가 지난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의 경기 하프타임 때 열린 은퇴식에서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차두리가 지난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의 경기 하프타임 때 열린 은퇴식에서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차두리는 자신의 마지막 A매치에서 주장 완장까지 차고 그라운드에 나섰다. 차두리는 14년간의 대표팀 경력동안 임시로 주장 완장을 찬 적은 있지만 주장 자격으로 선발 출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원래 대표팀 주장은 기성용이었지만, 이 역시 은퇴를 앞둔 차두리에 대한 예우였다. 매 경기가 중요한 A매치에서 은퇴 선수 한 명을 위해 선발 출전과 함께 무려 42분간 그라운드를 누비게 한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차두리 역시 그간 받은 사랑과 배려에 보답하듯, 마지막 경기에서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불살랐다. 정말 대표팀을 은퇴하는 베테랑 선수가 맞나 싶을 만큼 차두리의 돌파는 여전히 활력이 넘쳤고 수비는 안정적이었다. 대표팀은 경기 초반 차두리의 오버래핑을 활용한 오른쪽 측면 공략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차두리가 공을 잡을 때 팬들은 환호와 박수로 차두리의 마지막 A매치를 열렬히 응원했다.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했던 차두리와의 작별은 결국 다가왔다. 슈틸리케 감독은 0-0으로 팽팽하게 맞서던 전반 42분이 되자 김창수를 투입하며 차두리와 교체했다. 그라운드를 떠나기 전 차두리가 팬들에게 박수를 받으면서 떠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기 위함이었다.

차두리의 등번호 22번의 교체를 알리는 전광판이 등장하자 차두리는 왼팔에 차고 있던 주장 완장을 원래 주장인 기성용에게 넘겼다. 차두리는 손흥민 등 동료 선수와 포옹한 뒤 벤치로 향하며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도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차두리가 그라운드에서 나갈 때까지 기립 박수로 영웅의 마지막 순간을 예우했다.

전반전이 끝난 뒤 하프 타임때 열린 차두리의 은퇴식에는 특별한 인물이 그라운드를 찾아 자리를 더욱 빛냈다. 바로 차두리의 친아버지이자 한국 축구 사상 최고의 전설로 꼽히는 차범근 전 감독이었다.

아들 차두리에게 차범근 감독은 평생의 우상이자 넘기 어려운 벽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의 그늘 속에 늘 비교 대상이 되며 남 모를 고충을 숨겨야했던 차두리는 은퇴하는 마지막 순간 어느덧 아버지도 인정하는 한국 축구의 '전설'이 되어 함께 마주 섰다. 이미 자신의 대표팀 활약상을 담은 헌정 영상이 나올 때부터 눈시울을 붉혔던 차두리는 차범근 감독이 꽃다발을 건네자 포옹하며 다시금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차두리는 마지막 인터뷰에서 "저는 제가 한 것 이상으로 많은 팬에게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저는 잘하지는 못했지만 항상 열심히 하려고 애썼던 선수였습니다. 팬들이 그 마음을 알아주져서 행복하게 대표팀 유니폼을 벗을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행복한 축구선수로 대표팀을 그만둘 수 있게 해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며 팬들을 향한 고별 인사를 남겼다. 대표팀은 맏형의 투혼에 보답하듯, 이날 후반 41분 전 이재성의 결승골로 뉴질랜드에 1-0으로 승리하며 차두리의 마지막 은퇴경기를 성공적으로 장식했다.

차두리의 은퇴 무대는 한국축구 대표팀 사에 '리스펙트' 문화의 가치를 돌아보게 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물론 대표팀에서 은퇴식을 치른 선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차두리의 은퇴식은 시작부터 끝까지 역대 그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전설'에 대한 세심한 예우와 배려가 느껴지는 과정으로 채워졌다. 그만큼 국가와 대표팀을 위하여 오랜 세월 헌신한 선수는 존중 받을 자격이 있음을 선례로 남겼다.

여운 남는 은퇴... '선수' 차두리

 3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의 경기 하프타임. 은퇴식을 가진 차두리가 아버지인 차범근 전 감독과 포옹을 하고 있다

3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의 경기 하프타임. 은퇴식을 가진 차두리가 아버지인 차범근 전 감독과 포옹을 하고 있다 ⓒ 장지혜


차두리는 A매치 76경기에 출전하여 4골 7도움의 기록을 올렸다. 14년에 걸친 태극 마크 경력에 비하면 센추리클럽에 가입하지 못한 게 이상할 정도로, 대표팀 내 입지가 확고했던 선수도 아니었고 부침도 많은 편이었다. 클럽 무대에서도 독일, 스코틀랜드, K리그 등을 두루 거치면서도 우승복은 적었고, 선수로서의 명성도 부친 차범근에 비하면 크게 못 미쳤던게 사실이다. 뛰어난 피지컬에 비해 기술이 떨어지는 반쪽 선수라는 비판적인 평가는 늘 따라다녔다.

하지만 차두리는 그러한 한계를 뛰어 넘어 자신만의 개성과 장점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였다. 박지성같은 다재다능함이나 세계적인 명성도, 기성용이나 손흥민같은 기술이 뛰어난 테크니션도 아니었지만, 차두리는 몸싸움과 체력, 스피드 등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해 '그들이 할 수 없는 플레이'를 해내는 선수로 남았다. 대표팀을 들락날락하면서도 차두리가 한일 월드컵 4강, 남아공 월드컵 원정 16강, 27년 만의 아시안컵 결승 진출 등 한국 축구사의 가장 빛나는 순간마다 그 자리에 부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선수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부각시키는 데 급급한 국내 축구 문화에서 차두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밖에 없었지만, 누구도 차두리같은 플레이를 따라 할 수 없는 대체 불가한 선수였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차두리를 처음 대표팀에 발탁한 거스 히딩크 감독도 그런 차두리의 희소성을 눈여겨봤다.

당시만 해도 청소년대표팀 경력 한 번 없는 차두리의 발탁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지만, 만일 그랬다면 우리는 지금의 차두리를 대표팀에서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차두리의 대표팀 경력에 시작과 끝을 함께했고 그의 능력을 대표팀에서 가장 빛나게 활용한 인물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외국인 지도자였다는 사실은, 한국 축구에 생각해 볼만한 여운을 남긴다.

또한 차두리는 경기장 안팎에서 성실한 선수인 동시에 감독에게는 믿음직한 베테랑이고, 동료들에게는 친근한 선후배였다. 조금만 부진해도 온갖 욕을 먹기 쉬운 프로, 그것도 대표팀의 세계에서 차두리는 보기 드물게 말년까지 안티가 거의 없던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였다.

많은 이들이 차두리의 은퇴를 축복하면서도 아쉬워하는 데는, 그가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기량도 있지만, 축구 선수로서의 인성과 태도, 열정에서 오랜 세월 일관되게 보여준 인간적인 매력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차두리 본인의 자평처럼 "최고는 아니었지만 늘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선수 차두리의 빈자리가 앞으로도 한동안 긴 여운으로 남을 것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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