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MBC <다큐 스페셜>은 '갑을 소통 프로젝트 48시간'의 첫 회를 방영했다. 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땅콩 항공 회항 사건' 등 갑을 간의 소통의 문제가 사회적 공감을 얻고 있는 이 시점에, '갑을 소통 프로젝트'는 주목할 만했다.

하지만 정작 1회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갑을 소통 프로젝트'라는 공익적 다큐라기 보다는 예능적 성격이 강한 미국 CBS <언더커버 보스>의 재판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이미 MBC에서도 방송된 바 있다.

 30일 방송된 MBC <다큐 스페셜>의 한 장면

30일 방송된 MBC <다큐 스페셜>의 한 장면 ⓒ MBC


마트로 간 국회의원, 회사로 간 회장님 

<갑을 소통 프로젝트 48시간>에서 체험에 나선 사람은 수십년의 굴곡진 정치 인생에서 불사조처럼(?) 생존하고 있는 국회의원 이인제와 광고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식품회사 CEO이자 인기 강사인 김영식 회장이다.

아직도 사람만 만나면 자연스레 먼저 말을 붙이고, 악수를 하고, 손을 모아 인사를 건네는 것이 몸에 밴 이인제 의원은 정치인 생활 몇 십년 만에 처음으로 보좌관없이 홀로 마트 직원이 되어 을의 48시간을 체험한다. 김영식 회장은 자신의 회사의 임시 사원으로 간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인제에서 이충제로, 김영식에서 박충천으로의 변신이다. 분장팀의 도움으로 보형물을 끼고, 안경을 쓰고, 실리콘 가면까지 만들어 쓴 두 사람은 물론 '누구와 닮았다'는 말은 듣지만 추호도 원래의 본인이란 의심을 받지 않고 각각 마트의 시니어 계산원과 식품회사의 물류 직원으로 취직한다.

이미 지긋한 나이의 그들은 그 나이대의 사람들이 잘 하지 않는 계산원과 물류 일에 적응하느라 고생한다. 하지만 마음 뿐이다. 빠릿빠릿하게 일해야 할 계단대에서 이인제는 마트의 메뉴얼을 실행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김영식의 늦은 손과 회사 물류에 대한 둔한 감각 때문에 물류는 자꾸 정체된다.

'소통' 프로젝트라는 것을 염두에 둔 듯, 동료 직원들의 사정도 등장한다. 김영식 회장의 군기를 잡겠다고 다짐하는 단호한 선배 사원은 뜻밖에도 비정규직이다. 동정을 묻는 회장의 질문에 비정규직 선배 사원은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비정규직 생활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결혼을 엄두도 못낸다며 자신의 속사정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그런데 이 비정규직의 현실적 고민에 대한 김영식 회장의 대응은 '복권'! 김 회장은 첫 장면에서부터 마치 선거 사례처럼 그가 돌리던 복권을 예외없이 꺼내어 비정규직 청년에게 건넨다. 심지어 그 복권이 당첨되면 자신에게 어떤 사례를 할 것이냐며 묻기까지 한다.

이인제 국회의원도 다르지 않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마트 직원들의 고충을 좀 듣는가 싶더니, 자기 같은 사원을 다루느라 고생한다며 덕담 한 마디를 하고는, 여전히 '마이 페이스'다. 기껏 분장까지 하고 현장에 나섰지만 그들은 여전히 '갑'인 국회의원에, 회장님이다.

 30일 방송된 MBC <다큐 스페셜>의 한 장면

30일 방송된 MBC <다큐 스페셜>의 한 장면 ⓒ MBC


셀프 홍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날의 '갑을 소통 프로젝트'는 프로그램 마지막 내레이터 최민수의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체험 현장을 함께 본 최민수는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결론을 내린다. '김영식 회장님이야 회사 홍보차 나오셨을 테고, 이인제 국회의원은 정치인이니까 한번이라도 더 카메라에 비추는 것이 좋아서 나왔을 것'이라고.

내걸기는 '갑을 소통 프로젝트'라고 했지만, 정작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을이 된 갑의 어설픈 해프닝이자 어설픈 '귀족의 서민 체험'이었다. 노골적으로 48시간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체험을 통해 진정 '을'을 체험했다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이것이 '을'과의 소통이라고는 할 수 있을까? 이날 방송은 마치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경호원을 잔뜩 대동한 채 시장에 가서 시장 음식을 맛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식이었다.

거칠게 말해 '갑질'로 인한 폐해의 본원적 원인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계급적 갈등에 있다. 비록 그 전선이 신자유주의 하에서 다양해지고 있다 하더라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김영식 회장의 갑을 소통 프로젝트가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고충을 토로하는 비정규직 사원에게 복권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결혼을 꿈꿀 수 있는 정규직으로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 이인제도 마찬가지다. '고생한다'는 한 마디 덕담이 아니라, 그가 소속된 국회로 가서 비정규직에 대한 법안을 상정하고, 실현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국 제 아무리 그들이 고통스럽게 비정규직을 체험한다 해도 최민수의 말대로 '자사 홍보'와 '카메라 좋아하는 국회의원의 방송 나들이'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다큐 스페셜 이인제 최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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