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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지방법원 앞 1인 시위
 군산지방법원 앞 1인 시위
ⓒ 곽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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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폭탄테러 재판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27일, A군의 재판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 시간은 무척 빠르게 흘렀고 정작 그날이 다가오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습니다. 이왕 가기로 마음먹은 터라 고민하지 말고 잘 다녀오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군산지방법원으로 내려가는 지금, 마음이 가볍지는 않습니다.

재판 전에 법원 정문에서 1인 시위를 하기로 했습니다. 피켓 문구는 무엇으로 할지, 크기는 얼마나 되어야 적당할지 고민이 되더군요.

문득 '리퍼트 미 대사 피습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공교롭게도 다친 부위가 저와 같은 오른쪽 얼굴이었지요. 뉴스를 뜨겁게 달궜던 사건이라 사건 자체는 생생하게 떠올랐지만, 이내 지워버렸습니다. 굳이 다른 사건을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피켓을 완성하고 또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엄정처벌 글자를 더 크게 했어야 하나? 문장 배치를 바꿀까?' 그렇게 고민해서 피켓을 완성했습니다.

'굳이 엄정처벌이라고 해야 할까? 단어가 너무 자극적인 건 아닐까?' 거듭 고민하다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사건이 저 혼자만의 사건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일벌백계(一罰百戒)', 요즘 자주 쓰곤 하는 단어여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봤습니다.

일벌백계(一罰百戒). 명사.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다른 이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본보기로 중한 처벌을 내리는 일.

군산지방법원에 진정서를 써 보낼 때에도 '일벌백계'를 강조했었습니다. 사상 초유의 테러사건이었고 이런 끔찍한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무릎 꿇던 그 사람, 과연 진심일까?

재판이 끝난 후, 서울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착잡한 기분으로 버스 좌석에 자리를 잡은 저는 재판정에서 있었던 일을 찬찬히 떠올려 보았습니다.

다음 재판 날짜가 정해진 후, 가방을 집어든 저는 뒤따르는 기자님과 함께 법정을 나섰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으니 누군가 다가오는 사람이 있더군요.

"누가, 곽성준씨죠?"
"아, 네."

제가 대답하자, 그 남자는 대뜸 무릎을 꿇었습니다.  A군이었습니다. 그리고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사람이 잘못을 빌며 무릎을 꿇는 일이 예사로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순간 몸을 옆으로 비켜 옆에 서 계시는 여자분 앞에 섰습니다.

A군의 어머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 여자분은 저에게 용서를 빌며 선처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어 걸음 뒤에 남자분도 서 계셨는데, 그 두 분이 A군의 부모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A군의 부모님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만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두 분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습니다.

지난 전주지법 소년법정재판에 참석했을 때도 A군의 부모님을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비공개재판인 소년법정 안에서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었지요. 아무튼 간절히 선처를 호소하는 그 여자분께 짧은 대답을 드리고 저는 법원을 빠져나왔습니다.

건물 출입문 옆에 있는 커피자판기 옆에서 몇몇 기자와 인터뷰를 마친 후 버스터미널로 향했습니다. 서울로 올라가는 중에 '1인 시위 잘 마쳤냐?', '인터넷에 기사가 떴다'는 지인들의 문자와 통화가 계속 이어졌고, 소식을 들은 저는 올라온 기사와 댓글들을 하나씩 읽어보았습니다.

모두가 피해자, 이 쌓인 원한을 어이할꼬

군산지방법원 앞 1인 시위 피켓
 군산지방법원 앞 1인 시위 피켓
ⓒ 곽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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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꿇는 A군 앞에서 제가 왜 몸을 피했는지, 지금도 저는 명확히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반응한 것이리라 생각할 뿐입니다. 일간베스트 사이트에 올라온 '출소인증샷'을 보며 받은 충격이 깊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관련기사: 익산테러로 화상 입은 나, 테러범 '출소인증샷' 충격).

A군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한다는 것을 과연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법적 처벌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생각하는 상식에서는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지금 저는 기본적인 화상치료는 마친 상태입니다. 하지만 얼굴과 손에는 아직 화상자국이 남아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옅어지겠지만, 완전히 아물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제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얼마나 될지...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폭탄테러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될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익산 폭탄테러 이전과 이후의 저는 다른 사람입니다. 앞으로 저는 폭탄테러로 입은 화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토크콘서트를 진행하셨던 두 분 진행자의 상처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토크콘서트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한 분은 미국으로 추방되었고, 또 한 분은 지금 구속되어 옥중에 계십니다. 마녀사냥으로 매도된 '통일토크콘서트'로 억울한 피해자가 되신 두 분의 상처는 또 얼마나 될까요? 저로써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버스가 서울 도심으로 진입하면서, 제 머릿속에는 문득 영화 <명량>이 떠올랐습니다. 이순신 역의 배우 최민식씨가 영화 말미에 했던 대사입니다.

"이 쌓인 원한을 어이할꼬."

모두가 피해자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테러는 뿌리를 뽑아야 하고 저질러진 범죄는 일벌백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테러'라는 사상 초유의 이번 사건에 사회적 관심과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이번 사건은 개인적인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그런 취지였습니다. 이번 재판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관심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태그:#익산, #폭탄테러, #재판, #1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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