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 스토리 재개봉 포스터

▲ 폴리스 스토리 재개봉 포스터 ⓒ 조이앤클래식


'열흘 동안 붉은 꽃도, 십 년 가는 권세도 없다'고 했다. 더없이 강하고 화려했던 것들도 세월 앞에선 그 강함과 아름다움을 내려놓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영화 <드래곤 블레이드>를 통해 돌아온 성룡의 모습이 꼭 그러하다.

지난 30년 간 설과 추석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성룡이지만 근래 그의 영화들이 기록한 성적은 썩 좋지 않아 보인다. 최신작 <드래곤 블레이드> 역시 마찬가지다. 제작비 700억 원의 초대형 블록버스터로 애드리언 브로디, 존 쿠삭, 최시원 등 다양한 국적의 배우를 섭외한 이 영화의 성적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천장웅사>라는 제목으로 한 발 앞서 선보인 중국에서 인기를 끌며 재기하는 듯도 했지만 한국 등 전통적으로 성룡 영화가 강세를 보여온 다른 지역에서는 흥행에 참패했다. 한국에서 지난 3월 12일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2주차인 26일까지 누적 관객 수 5만을 간신히 넘겼을 뿐이다. <취권> <폴리스 스토리> <러시아워> 등을 통해 한국 영화시장을 호령했던 과거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성룡을 위협하는 게 줄어든 티켓파워 만도 아니다. 영화배우이자 가수로 활동 중인 아들 방조명이 지난 해 베이징에서 대마흡입 및 장소제공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으며 속을 썩더니 홍콩 우산혁명에서는 본인이 직접 SNS에 시위를 비판하는 글을 올려 명성에 흠집이 났다. 이처럼 구설수에 휘말려 고생하는 상황은 평소 대중에 친숙한 모습으로 호감을 자아내던 성룡에겐 참으로 낯선 풍경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성룡의 성공가도가 이렇게 막을 내리는구나 생각하는 이도 적지만은 않은 것 같다

작품 내외적으로 구설수에 오르며 최근 위기감 고조 중

스스로도 위기의식을 느끼기 때문인지 성룡 영화는 꾸준히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10년 전 개봉해 참담한 실패를 기록했던 <신화-진시황릉의 비밀>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한국의 톱스타였던 김희선을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이 영화는 <프로젝트S> <홍번구> <폴리스 스토리 3> <폴리스 스토리 4>를 감독한 당계레가 다시 한 번 성룡과 손을 잡았음에도 구성과 전개, 액션 모두에서 실망감을 남기고 힘없이 침몰했다.

<신화>는 웃음을 유발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달려왔던 이전까지의 성룡 영화와는 달리 재미를 넘어선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당시로는 일시적인 선택으로 보여진 이 같은 변화는 이후 성룡 영화의 일관된 특징으로 판명되었다. 성룡은 명백하게 쇠퇴해 가는 자신의 액션소화능력을 대체할 무언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성룡은 이후 10여 년 간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만한 작품을 찍어내는데 실패했다. 변신을 위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지만 그럴듯한 결과물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작품과 비교는커녕 준수한 작품으로 꼽을 만한 영화도 전무한 것이 성룡영화의 현주소다. 누구든 그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면 지난 10년간이 그의 암흑기였음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폴리스 스토리>와 <폴리스 스토리 2-구룡의 눈>, 27년 만에 재개봉
폴리스 스토리 영화를 본 모두가 기억하는 자동차 액션장면

▲ 폴리스 스토리 영화를 본 모두가 기억하는 자동차 액션장면 ⓒ 조이앤클래식


성룡이 서있는 현실은 이처럼 순탄치 않지만 전성기만큼은 어느 누구와도 비할 수 없었다. <드래곤 블레이드>의 개봉에 발맞춰 재개봉한 두 편의 성룡 영화가 이를 증명한다. <폴리스 스토리>와 <폴리스 스토리 2-구룡의 눈>이 그것이다. <취권> 등 무술영화의 성공 이후 내놓은 할리우드 진출작 <배틀 크리크> <캐논볼> <캐논볼 2>가 연이어 좌초하면서 위기에 빠진 성룡을 재기시킨 작품이 바로 이 두 영화였다.

성룡 액션의 정점이라 불려도 부족하지 않은 이 작품들을 통해 그는 버스터 키튼과 해럴드 로이드 이후 최고의 동작 코미디를 보여준 배우로 평가받았다. 그는 이 두 편의 영화에서 경쾌하고도 리드미컬한 무술액션 뿐 아니라 기본적인 안전장치조차 하지 않고 위험천만한 스턴트를 수차례 거듭하며 당시로서는, 몇몇 장면은 지금까지도, 혁신적인 액션을 선보였다.

두 영화는 성룡이 직접 연출과 주연을 맡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1편은 그가 제작·연출·출연한 130여 편의 영화 가운데 꼽힐 만한 명작이다. 그의 장대한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취권> <취권 2> <홍번구> 등 몇몇 작품만이 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룡 영화는 이 영화 이후 <홍번구> <썬더볼트> <나이스가이> <CIA> 등 기라성 같은 작품들을 통해 하나의 장르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폴리스 스토리>는 '성룡 영화'라는 장르에서 단연 최고의 작품이다. 이 영화를 설명하는데 더 이상의 표현은 필요하지 않다. 최고라는 말 밖에는.

홍콩 경찰청의 순경 진가구(성룡 분)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영화는 그가 마약왕 주도의 위협으로부터 애인 아미(장만옥 분)와 증인 셀리나(임청하 분)를 지키고 악당을 일망타진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순한 동작에서도 웃음의 포인트를 찾아내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경쾌한 동작을 연출해내는 특유의 액션에 더해 등장하는 모든 배우의 몸을 사리지 않는 스턴트가 시종일관 펼쳐진다. 부조리한 적을 소탕해나가는 성룡식 형사액션의 재미도 충분하다. <더티 해리>가 선보한 원톱 형사액션물 가운데 <폴리스 스토리>의 아성에 비견할 만한 것은 아마도 <다이하드> 뿐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악당을 호쾌하게 때려눕히는 장면이야말로 '영화는 영화'라는 성룡 영화의 대리 만족적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 없겠지만 영화에서나마 성룡은 악당의 복부에 스물 세 방의 분노의 펀치를 꽂아 넣었으니까. 이 장면은 그 유명한 절벽 차량스턴트와 함께 이 영화를 성룡 액션의 결정판으로 만들어낸 명장면이기도 하다.

<폴리스 스토리>는 1984년에 제작되었으나 폭력성이 심하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가 1988년에야 <폴리스 스토리 2>와 함께 개봉하였다. 이번 재개봉은 27년 만이다.

젊은 영화인 못지 않은 성룡 액션...건재함을 과시하다
폴리스 스토리 2 영화의 한 장면

▲ 폴리스 스토리 2 영화의 한 장면 ⓒ 조이앤클래식


이야기의 완성도 면에서는 전작에 미치지 못하지만 액션의 훌륭함에서는 전작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은 <폴리스 스토리 2> 역시 3월 26일 재개봉했다. 개봉 당시 1편을 뛰어넘는 흥행성적을 거둔 이 영화는 성룡과 장만옥을 그대로 주연으로 기용하고 마약상 주도 대신 폭발물 테러범을 악당으로 등장시켜 규모를 키웠다.  영화에 등장하는 놀이터 액션신, 자동차 피하기, 나아가 이동하는 트럭과 버스 위를 뛰어서 옮겨 타고 간판을 피해 유리창을 뚫고 건물에 진입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특히 유리창을 뚫고 건물에 진입하는 장면은 특별한 안전장치 없이 촬영을 진행했는데 성룡이 스턴트용 유리를 지나쳐 일반 유리를 뚫는 바람에 온몸에 유리파편이 박힌 것으로 유명하다. 키운 규모만큼 이야기의 허술함이 도드라지는 속편의 함정에 걸리고 말았으나 이 영화에서 보여진 성룡의 맨몸액션 만큼은 영화사에 기록되어 길이 전해질 가치가 충분하다.

중년에 접어든 후 액션의 속도와 세기, 창의성 면에서 힘에 부친 모습이 역력한 성룡이다. 그의 영화는 그의 액션이 드러내는 문제 이상으로 이야기의 허술함과 구성의 불균형을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성룡의 시대가 끝났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가 과거만큼 빠르고 참신한 액션을 찍어내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열정과 활동력만큼은 젊은 영화인 못지않기 때문이다. 어느새 환갑을 넘겼음에도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하고 있는 성룡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핀란드 출신의 명감독 레니 할린 감독과 <스킵트레이스>를 촬영하는 중이다. 때문에 이번 재개봉은 성룡의 신작과 그가 전성기에 찍은 두 영화를 비교하며 감상할 좋은 기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폴리스 스토리 조이앤클래식 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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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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