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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장애인 날 즈음해서 단식 투쟁도 불사할 겁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지체장애인 박종태씨의 목소리엔 한숨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가톨릭신자이기도 한 박 씨는 지난해 12월, 명동성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명동성당 개발 사업에 따라 지난해 완공한 서울대교구청 신관과 '명동성당 1898'의 장애인 편의 시설들이 함량 미달이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새단장한 명동성당, 낙제점입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 문제점에 대한 진정서도 내봤지만, 기각되면서 별반 달라진 것은 없는 상황이다.

 지난 25일, 명동성당 전경. 오른쪽 건물이 명동성당 1단계 개발 사업에 따라 지난해 완공한 문제의 교구청 신관이다.
 지난 25일, 명동성당 전경. 오른쪽 건물이 명동성당 1단계 개발 사업에 따라 지난해 완공한 문제의 교구청 신관이다.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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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박씨는 교구청 신관의 지상 1층과 2층, 장애인 화장실이 사실상 '남녀 공용'으로 쓰이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장애인 화장실은 일반 남자화장실 바로 앞에 있어, 여성 장애인이 이용하기 불편하다고 꼬집었다.

지난 12월 기자와 실태 점검에 동행했던 박씨는 "남자 화장실 입구에 여자 화장실을 만들어 놓으니 이용하는 장애인이 얼마나 창피하겠나"라고 반문했었다.

장애인 화장실 내부도 문제였다. 세면대가 없어, 손을 씻으려면 비장애인 화장실로 이동해야 했던 것이다. 이는 교구청 신관뿐 아니라 '명동성당 1898'에 설치된 장애인 화장실도 동일했다. 기자가 지난 25일 현장을 찾아가 살펴봤으나 박씨가 지난 12월 지적한 문제들 상당수가 4개월이 넘도록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장애인 화장실 설치했으니 문제 없다?

 지난 25일, 교구청 신관 지상 1층, 2층 장애인 화장실은 여전히 남자 비장애인 화장실 바로 맞은 편에 여성 장애인 화장실이란 표시를 달고 설치돼 있었다.
 지난 25일, 교구청 신관 지상 1층, 2층 장애인 화장실은 여전히 남자 비장애인 화장실 바로 맞은 편에 여성 장애인 화장실이란 표시를 달고 설치돼 있었다.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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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구청 신관 지상 2층 남자 비장애인 화장실과 장애인 화장실을 파노라마로 찍은 사진. 한 눈에 보기에도 차별의 소지가 다분하다.
 교구청 신관 지상 2층 남자 비장애인 화장실과 장애인 화장실을 파노라마로 찍은 사진. 한 눈에 보기에도 차별의 소지가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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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지난해 10월 1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진정한 내용엔 교구청 신관 장애인 화장실이 남녀공용으로 설치돼 장애인 성별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 또 신관뿐 아니라 문화홀도 장애인 화장실에 세면대가 설치돼 있지 않아 비장애인화장실로 가서 세면대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들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월 20일 "조사, 심의한 결과 진정사건을 인권 침해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기각하기로 결정했다"고 박씨에게 통보했다. 그 근거로 가톨릭 서울대교구 측이 건물 내 1개소 이상의 장애인 화장실의 설치 의무를 지켰다는 것, 또 외부에서 출입하는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 적정 규모의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했다는 것을 들었다.

진정서를 기각한 것을 두고 당시 조사를 맡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은 26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저희는 피진정인(서울대교구 측)이 법률 의무를 다하지 않았느냐 부분을 본다"라고 말했다. 규정을 놓고 보면 하자는 없다는 것이다. 또 조사관은 "진정서는 진정인의 주장이고, 조사할 땐 피진정인의 주장과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진정인과는 다르게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애인 화장실이 남녀 공용으로 쓰이는 것을 두고선 "(교구청 신관에) 남녀공용 화장실만 있으면 문제겠지만, 건물과 떨어진 곳에 남녀가 구분 돼 있는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교구청 신관 1층과 연결된 지하 공간의 화장실에 가면 남녀가 구분된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는 점을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데 근거로 든 것이다.

이어 "교구청 답변에 따르면, 원래 (교구청 신관) 장애인 화장실은 탕비실로 쓰려고 했었는데 쓰기엔 공간이 부족해서 장애인 화장실로 바꿨다고 했었다"면서 "없는 것보단 좋지 않겠느냐 해서 차별 행위에 이르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고 말했다.

"인권위, 제 구실을 못해"
 지난 25일 '명동성당 1898' 장애인 화장실 모습. 명동성당 1단계 개발 사업에 따라 완공한 장애인 화장실 모두, 내부에 세면대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 25일 '명동성당 1898' 장애인 화장실 모습. 명동성당 1단계 개발 사업에 따라 완공한 장애인 화장실 모두, 내부에 세면대가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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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면대 설치가 안 된 것을 두고선 "장애인이 장애인 화장실에서 나와 이용할 수 있는 세면대가 있으면 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2조 제1항에 따르면 장애인 화장실엔 세면대를 출입구와 가까운 위치에 설치하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조사관의 말을 곧이곧대로 남녀공용으로 쓰이는 화장실에 적용할 경우, 여자 장애인이 세면대를 쓰려면 바로 맞은편에 있는 비장애인 남자 화장실을 이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근처 여자 화장실로 번거롭게 가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세면대 문제는 비장애인 화장실의 세면대 높낮이를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데서 마무리 됐다. 시설 관리를 맡고 있는 가톨릭회관 관계자는 27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교구청과 인권위하고 협의해서 설치를 진행한 것"이라며 "(박씨가) 요청한 사항 중 이행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얘기하면서 할 수 있는 것들만 진행한 상태"라고 말했다. 세면대 설치도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지어,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는 것이다.

당시 기사에서 지적한 내용 중 개선된 것은 '명동성당 1898'로 들어가는 외부 출입구 계단에 손잡이가 생겼다는 것, 명동성당 1898 신관 방향 화장실 입구에 '장애인 화장실'이라고 해놓은 표지판을 '비장애인용 화장실'이라고 바꿔놓은 것에 불과하다.

박씨는 27일 통화에서 "인권위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며 "규정을 지켰다고 자꾸 얘기하는데, 장애인들에게 어떻게 차별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조사 대상 측에서) 잘못한 점이 있다면 권고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쓴 소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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