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도 리쉬케쉬로 가기 위해선 샤자한뿌르라는 마을로 가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그놈의 버스.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에서 대기한 후 버스를 타러 가기 위해 버스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이 기구한 팔자.
 인도 리쉬케쉬로 가기 위해선 샤자한뿌르라는 마을로 가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그놈의 버스.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에서 대기한 후 버스를 타러 가기 위해 버스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이 기구한 팔자.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9개월 동안 남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 등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기자 말

황토색 제복. 굳은 표정. 짙은 눈썹. 새벽 날씨처럼 서늘한 키 큰 인도 군인 두 명이 우리를 불러세웠다. 군인은 배낭을 열어보라고 했다. 정말? 후회할 텐데.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다. 배낭 버클을 끌렀다. 겨우 쑤셔 넣은 샴푸 통이 튀어나왔다. 빨래집게 뭉치를 꺼냈다. 며칠간 빨지 못하고 대충 구겨 넣은 셔츠 세 벌과 바지 두 벌을 꺼냈다. 줄줄이 등장하는 냄새 나고 시답지 않은 물건에, 군인도 조금 후회하는 눈치였다. 그러게 배낭은 왜 열어보래(관련기사 : '닭장 버스'에서 보낸 21시간... 악몽이었다).

버릴 곳을 못 찾고 들고 다니던 쓰레기 더미를 꺼냈다. 고개를 들어 정황을 살폈다. 이쯤이면 그만두라고 하겠지. 군인은 계속하라는 듯 턱을 살짝 들었다. 피곤한 스타일이군. 침낭을 꺼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고, 군인이 물었다. 잠잘 때 쓰는 물건이라고 답했다. 손톱깎이가 나왔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고 물었다. 손톱을 깎을 때 쓰는 물건이라고 답했다. 물통을 꺼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고 물었다. 물을 마실 때 쓰는 물건이라고 답했다. 거참, 굉장히 피곤한 스타일이군. 가이드북을 꺼냈다. 군인은 내 손에서 가이드북을 낚아챘다.

"여기 파키스탄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인도 전체 지도가 그려진 앞 페이지를 펼친 군인이 옆에 선 상사에게 보고했다. 지도에는 인도 주요 도시들과 이웃 나라가 소개되어 있었다.

"이 책은 무엇입니까?"


안 그래도 돌처럼 딱딱한 군인의 표정이 더욱 험상궂어졌다. 내 표정도 험상궂어졌다. 짜증이 난 더스틴이 깊고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적당히 하지? 배낭에서 짐을 꺼내고 다시 쑤셔 넣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이데, 잘 참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니? 창피한 것도 참고 더러운 옷도 죄다 꺼내서 보여줬잖니!

"인도 여행안내서인데요."
"이 지도는 뭡니까?"
"인도 여행안내 지도인데요…."
"왜 파키스탄이 있는 거죠!"
"…. 인도 옆 나라가 파키스탄이니까요!"


여전히 못마땅해하는 군인. 종교 때문에 갈라선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파키스탄이 독립국이고 인도 옆쪽에 붙어 있는 사실은, 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어찌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니?

군인은 계속해서 우리 짐을 살폈다. 아무리 뒤져봐라. 기껏해야 구멍 난 양말이나 한 짝 더 찾을 테지. 배낭 바닥까지 다 꺼내 보인 후에야 군인은 우리를 보내줬다. 속이 다 드러난 배낭과 자질구레한 짐들이 네팔 - 인도 국경 햇살 아래 초라하게 구겨져 있었다. 우리는 삶을 이토록 피곤하게 만든 군인을 원망하며, 더러운 옷가지와 샴푸 통이 튀어나온 가방을 질질 끌고 인도 출입국사무소 쪽으로 걸어갔다.

이름 옮겨 적는데만 7분, 돌아버리겠네


국경의 저편은 푸른 숲이다. 더드와(Dudhwa) 국립공원 근처에 있는 당가디 - 가우리판타 국경은 공기가 맑았다. 군인 때문에 막혔던 숨이 뻥 뚫릴 만큼. 나무 사이를 거슬러 뛰노는 원숭이 무리를 따라, 대나무로 엮어 만든 작은 오두막, 출입국관리사무소로 갔다. 오두막에는 작고 야윈 할아버지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출입국 카드를 작성해 할아버지에게 건넸다. 할아버지는 작심한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반사되는 햇볕에 번뜩이는 돋보기 안경을 들춰가며 우리가 적은 글씨를 한 자 한 자, 꼼꼼히 들여다봤다.

30분이 흘렀다.

"여기 이 칸이 비었잖소!"


30분 만에 고작 한다는 소리. 할아버지의 답답한 눈이 출입국 카드를 살피는 사이, 맑던 공기는 후덥지근해졌으며 청량하던 새소리는 짜증스럽고 시끄러워졌다. 할아버지가 지적한 칸은 항공기 번호를 적는 칸이었다. 다시 숨이 막혀왔다. 말도 안 되는 논쟁이 또 시작될 판이다. 군인보다 열 배는 느린, 이 할아버지와 함께.

"항공기 번호가 어딨어요. 저희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어요."
"칸이 비었어!"
"적을 게 없으니까 비었죠. 이 울창한 숲 속에 공항이 어딨고 비행기가 어딨어요?"
"칸이 비었어!"
"…."


아무리 졸라봐라. 이 숲 속에 공항이 등장하나. 타지 않은 비행기가 갑자기 나타나나. 꼼짝도 하지 않는 우리 태도에 할아버지도 살짝 기가 죽은 듯했다. 할아버지는 다시 돋보기를 번뜩였다.

"여기도 비었잖소!"

'Indian Only'라고 적힌 칸이었다.

"우리는 인도 사람이 아닌데요."
"칸이 비었어!"
"인도 사람들만 적는 칸이라고요. 우린 외국인이에요."

할아버지는 못마땅하다는 듯 다시 카드를 가져갔다. 그러더니 왼쪽 서랍을 열어 커다란 장부를 꺼냈다. 박물관 구석에서 튀어나온 고대 유물이라고 해도 믿을 장부엔, 한 달 전 이곳을 거쳐 간 외국인 두 명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할아버지는 출입국 카드에 적힌 정보를 장부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종이가 아닌 돌덩이에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인지, 손을 꾹꾹 눌러가며 힘과 정성을 들였다. 영어 한 글자를 적는 데 1분이 걸렸다. 내 이름 하나를 적는 데만 7분이 소요됐다. 돌아버리겠네.

당장에 장부를 빼앗아 내 이름을 휘갈기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할아버지의 표정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외국인을 통제하는 자신의 위치가 굉장히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호기심 많은 원숭이들이 할아버지 뒤를 호위했다. 새 무리가 하늘을 날았다. 아침 바람에 나무가 살랑, 초록색 공기를 털어놨다. 참자. 느리다고 화내지 말자. 숲 속에서 명상하듯, 기다리자.

'참을 인(忍)' 세 글자에 복이 찾아왔다. 국경을 넘었다. 소나울리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네팔을 넘어, 다시 인도다.


네팔 버스 사무소
 네팔 버스 사무소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12시간 밤 버스, 입석?


인도 리쉬케쉬로 가기 위해선 샤자한뿌르라는 마을로 가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그놈의 버스.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에서 대기한 후 버스를 타러 가기 위해 버스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이 기구한 팔자. 4시간 버스를 타고 샤자한뿌르에 도착했다. 세 시간만 더 버티면 버스가 온다. 12시간의 버스를 타고, 그토록 그리던 리쉬케쉬로 간다. 아. 오지 않을 것 같던 꿈의 그날이여. 기나긴 여정의 끝이여!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올랐다.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닭장 버스를 타고 21시간을 달려온 우리에게도 용납할 수 있는 정도의 선이라는 게 있다. 입석. 입석만은 안된다. 12시간을 넘게 달리는 버스를 서서 탈 수는 없지 않은가.

"오늘은 승객이 많아서 그래요. 좀 이해해 주시죠."


차장이 우리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차장은 승객 몇 명의 자리를 옮기더니 한 사람이 겨우 끼어 앉을만한 좌석을 우리에게 내주었다. 우리는 30인용 버스를 가득 채운 50여 명의 인도 남자들 사이에 끼어 앉았다. 사흘 동안 참아왔던 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몸이 반쯤 녹아내릴 것 같은 위기감에, 다시 버스에서 튀어나왔다.

"인도나 네팔이나, 버스가 불편하고 좋지 않죠? 좌석도 없고."


버스 안 인도 마초들과 조금 다르게 생긴 아저씨.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좌석이 없다고 너무 투덜댔나. 좁은 좌석에 끼어 앉고, 서서 가고, 바닥에 앉아서 가기도 하는 것이 이곳 버스인데. 다들 불만 없이 얌전히 앉아 있는데. 한국과, 미국과 다르다고 시끄럽게 투덜댈 건 뭔가. 우리 너무 재수 없다 야.

아저씨는 셰르파(히말라야에 사는 티베트계 종족. 주로 등반가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출신의 네팔 사람이었다. 일 년에 몇 차례 리쉬케쉬에서 산악 가이드 일을 한다고 했다. 오늘은 며칠 후 도착하는 독일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리쉬케쉬로 가는 길이다.

문득 네팔이 그리워졌다. 서늘하고 맑고 아름다운 그 산은 왜 떠나왔던가. 우리가 여행한 나라 네팔. 우리가 사랑한 히말라야. 우리는 추억에 잠겨 아저씨와 산 이야기 여행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았다.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아기 엉덩이 하나 겨우 끼워 넣을 공간이었던 우리 좌석은 그새 메워지고 없었다. 차장이 문 옆쪽 좌석 두 개를 다시 마련해주었다. 투덜댄 보람이 있군. 아기 엉덩이 하나 들어갈 공간에서 버젓한 좌석 두 개로, 굉장한 업그레이드다.

좌석다운 좌석도 생겼겠다, 이제 버스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셰르파 아저씨는 내 옆에 서 있었다. 버스가 출발했다. 아저씨는 계속 서 있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아기 엉덩이는커녕 아기 발가락 하나 들어갈 공간조차 남은 곳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앉은 자리는 셰르파 아저씨가 앉아 있던 자리였다. 멍청하고 속 좁은 우리는 셰르파 아저씨를 쫓아낸 줄도 모르고 흐뭇하게 앉아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이나 쏘이고 있었던 것이다. 야, 우리 진짜 재수 없다.

차장에게 항의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그래 봤자 또 다른 누군가의 좌석을 빼앗기나 하겠지. 더스틴이 얼른 일어나 아저씨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아저씨는 극구 사양했다. 리쉬케쉬까지 걸어간다면 모를까, 남에게 민폐 끼치는 건 못 참는 더스틴이 질 리가 없었다. 셰르파 아저씨는 결국 내 옆자리에 앉았다. 기구한 팔자의 더스틴은 배낭을 바닥에 깔고 앉았다. 가족 같고 좋네. 삼각형 구도로 앉은 우리는 네팔 이야기, 여행 이야기, 리쉬케쉬 이야기를 나누며 다정한 여정을 이어갔다.

네팔의 버스 휴게소.
 네팔의 버스 휴게소.
ⓒ Dustin Burnett

관련사진보기


"발 좀 내려주시겠어요?"

스윽. 차장의 응답은 그게 다였다. 스윽, 하고 나를 흘끔 쳐다보고는 끝. 차창 밖을 내다보며 딴청을 피운다. 이것 봐라?

"이봐요, 발 좀 내리라고요. 제 다리에 닿잖아요!"


버스가 출발한 지 한 시간. 내 옆에는 다정한 셰르파 아저씨 대신 덩치 큰 차장이 앉아 있었다. 차장은 더스틴이 기껏 양보한 자리에 앉아 있던 셰르파 아저씨를 쫓아내고는, 그 큰 엉덩이를 내 옆으로 들이밀었다. 참자. 참을 인(忍). 참을 인(忍). 참을 인(忍). '참을 인(忍)' 세 글자에 복 대신 차장의 발이 찾아왔다.

두 다리를 얌전히 두지 못하고 덜덜 털어대던 차장은 급기야 왼쪽 발을 들어 올려 오른쪽 다리 아래로 깔았다. 오늘 하루 어디에서 무엇을 얼마나 밟고 다녔을지 알 수 없는 발. 그 두툼한 발이 내 허벅지에 닿았다. '참을 인(忍)' 자 속 칼날(刃)이 터져 나왔다. 도저히 못 참겠다.

"발이요. 발 닿고 있다고요. 제 다리에, 당신 발이 이렇게 닿고 있다고요."

차장은 대답 대신 얼굴을 찌푸렸다. 더스틴이 끼어들었다. 더스틴은 굵은 눈썹을 지렁이처럼 꿈틀대며 차장을 노려봤다. 발 내리라고, 짧고 굵게 말했다. 차장이 발을 내렸다. 진작 그럴 것이지. 어디 냄새나는 발을 숙녀(?) 앞에 들이밀어? 근데 뭐야?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더니. 남자 말만 말이고 내 말은 발이야?

차장에겐 숙녀고 뭐고 없다. 차장은 50여 명이 탄 이 버스의 최고 권력이었다. 차장이 좌석을 옮기라고 하면 옮기고, 서서 가라고 하면 그렇게 해야 했다. 버스 안 최고 권력을 건드린 건 실수였다. 승객들을 지휘하던 차장의 굵은 손가락이 이윽고 나를 가리켰다. 차장은 나에게 자리를 옮기라고 했다.

그래. 원하는 바다. 나야말로 네 냄새 나는 발과 겨드랑이 옆에 1초도 더 앉아 있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오른쪽에 앉은 인도 아저씨와 자리를 바꿨다. 셰르파 아저씨도 차장 옆에 끼어 앉았다. 다행이다. 셰르파 아저씨 자리가 생겨서. 불운의 더스틴만이 좌석 없이 버스 복도에 앉아 말없이 여정을 이어갔다.

버스 안 반동분자, 즉 나와 더스틴의 제거에 성공한 차장이 다시 권력을 되찾았다. 권력 다툼이 종료된 버스 안에 평화가 찾아왔다. 긴장이 풀리고 잠이 쏟아졌다. 좌석은 여전히 좁고 불편하지만, 폭동의 걱정도 없고, 한없는 기다림도 없는 평온한(?) 버스 여정이다. 나는 컴컴한 버스에 앉아 꾸벅, 꾸벅,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 눕고 싶다. 꾸벅, 꾸벅. 기대고 싶다. 꾸벅. 기대자. 음. 흐음. 뭔가 이상한데. 더스틴 어깨는 이렇게 뾰족하지 않은데 말이지…. 푹신한데 말이지…. 어쨌든 기대자…. 뾰족해도 어깨는 어깨야…. 흠냐…. 꾸벅, 꾸벅.

쿵! 버스가 덜컹댔다. 어깨에 귀를 박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뭔 어깨가 이렇게 뾰족해? 고개를 돌렸다. 어깨는 더스틴의 소유가 아니었다. 내 옆에는 동그랗고 푹신한 더스틴 대신, 작고 비쩍 마른 인도 아저씨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아저씨는 작은 몸을 움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민망해라. 미안해라.

이 보수적인 인도 사회에서, 어디서 굴러 왔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외간 여자의 머리를 받힌 채, 얼마나 깊은 혼란에 빠져 있었을까. 내 머리로 말할 것 같으면 포카라 등산 장비점에서 가장 큰 사이즈의 모자를 찾아 헤매야 하는 무거운 머리통이다. 가여운 아저씨. 얼마나 놀랐을까. 얼마나 무거웠을까.

아참, 더스틴. 바닥에 앉은 더스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구머니! 이글이글 타는 눈빛.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다. 너 지금 이 아저씨 질투하는 거야?

질투가 아니라 불편함이다. 버스 바닥에 배낭을 깔고 앉은 것까진 괜찮지만, 이따금 들이닥치는 승객들과 짐 더미에 밟히는 건 참기 힘들었을 테다. 앞뒤 양옆으로 빼곡히 들어앉은 남자들, 졸다가 고꾸라지는 그 남자들의 기둥이 되어 어깨와 등을 빌려주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을 테다.

지난 사흘간 단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모두가 잠든 가운데 홀로 깨어 어둑한 버스 안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건 민감한 성격상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테다. 혹시 누가 우리를 건드리지나 않을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어둠을 살피는 것 또한. 아내인 나는 그 무엇하나 헤아리지 못하고 정신을 놓고 앉아, 큰 머리통을 세차게 박아가며 옆에 앉은 인도 아저씨나 괴롭히고 있다.

가여운 더스틴. 가여운 아저씨. 더는 아저씨를, 더스틴을 괴롭히지 말자. 다짐하고 고개를 빳빳이 했다. 하지만 누적된 피로와 무거운 머리통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아저씨의 뾰족한 어깨에 눌려 골이 아파 일어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잠을 깨기 위해 더스틴과 자리를 바꿔 앉았다. 버스 문간에는 인도 남자 세 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어깨너머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도시의 먼지 섞인 바람이 머리에 스쳤다. 잠들지 않아도, 버스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다. 지난 사흘간 그토록 열망하던 리쉬케쉬에 닿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바람은 어디에서나 불듯, 여행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여행은 목적지인 리쉬케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결국에는 가지 못한 마헨드라나가르도, 폭동으로 멈춰 선 버스에서의 기다림도, 함께 국경을 넘은 네팔 사람들도, 버스 차장의 발 냄새와 뾰족한 어깨의 인도 아저씨도, 나의 여행 동반자, 예민하고 사려 깊은 더스틴도, 모든 게 여행이니까.


태그:#리쉬케쉬, #인도 버스, #네팔 버스 , #네팔 인도 국경, #샤자한뿌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