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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이었던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다.

국민의 반발을 샀던 사안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졸속 협상, 대운하 사업 추진 등 임기 초반부터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촛불집회의 열기가 뜨거워지자 대통령이 한 발 물러나는 듯 보인 적도 있었다. 대운하 사업은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로 비판을 잠재우는 듯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4대강 사업으로 이름만 바꾸어 되살아났다. 정권의 위기를 일찍 겪었기 때문일까. 언론 장악을 재빨리 진행하면서 낙하산 인사를 곳곳에 투하했다. 뒤이어 자원외교 등의 사업도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이런 세월을 회상하는 것이 참으로 흐뭇했던지, 퇴임 2년 만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 시절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자기합리화와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이 눈에 띄는 저서 <대통령의 시간>은 마치 그가 만든 유행어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최종판으로 보인다.

그 시절이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미화의 시도가 우려되는 과거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되짚은 책이 있다. 바로 <MB의 비용>이다.

예산 탕진의 기록, '묻지마 투자' 자원외교

<MB의 비용> 책표지
 <MB의 비용> 책표지
ⓒ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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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6명의 저자가 모여서 만든 책 <MB의 비용>은, 이명박 정부의 5년을 재조명한다. 변호사, 방송사 PD, 전 통일부 장관, 토목공학과 교수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정책을 짚으며 나름의 분석을 제시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결과물은 수치로 명확하게 정리된다. 자칫 장황할 수도 있는 내용을 깔끔하고 일목요연하게 담았다.

먼저 책의 첫 부분은, 최근 수사가 진행 중인 '자원외교'의 실상을 파고든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상득 전 의원 등 측근을 총동원하여 해외순방과 자원개발 관련 기업 인수협상에 나선다. 당선인 신분이던 2008년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2조 원짜리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 사업을 따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5% 수준이던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임기 내에 18%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당찬 목표도 내세웠다.

하지만 현실은 처참했다. 하루 20만 배럴 생산이 가능하다며 인수한 광구의 매장량은 하루 200배럴 생산이 고작이었고, 다른 광구에서는 물과 천연가스만 조금 발견되었을 뿐이다. 책에 따르면, 4년간 석유공사가 투자한 아홉 개의 사업에서 실제 국내로 도입된 물량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에 위기감을 느낀 석유공사의 대응방식이다.

미국 앵커, 캐나다 하베스트 두 광구에서 국내 반입이 불가능해 해외자원개발의 의미가 없어지자, 석유공사는 허위로 대책을 발표하고는 뒤로는 다른 업체로부터 비축용 원유 98만 배럴을 구입하는 꼼수를 썼다. (본문 36쪽 중에서)

석유, 가스, 광물 수입 실적이 부진한 것은 물론, 각 자원공사는 부실투자로 막대한 손실도 입었다. 정유시설과 광산, 자원개발 사업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투자가 이루어졌지만 대부분의 사업에서 손해가 컸다.

책에 따르면 ▲ 멕시코 볼레오 구리 광산 1조 3863억 원 ▲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 2조 989억 원 ▲ 캐나다 하베스트 에너지 인수 3조 7453억 원을 포함하여 6개 사업에서 누적된 손해가 최대 1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 MB의 비용> 69쪽 중에서. 자원외교의 대표적 사업 6개의 성적은 최대 10조원의 피해로 드러났다고 표로 정리했다.
 < MB의 비용> 69쪽 중에서. 자원외교의 대표적 사업 6개의 성적은 최대 10조원의 피해로 드러났다고 표로 정리했다.
ⓒ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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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집권 5년간 해외자원개발 투자에 쓰인 예산은, 에너지 공기업 3사 기준으로 총 60개 신규사업에 29조7092억 원이다. 여기서 2014년 6월까지 1조 1275억 원을 회수하여, 회수율은 3.8%에 그쳤다. 이로 인해 관련 공기업 부채가 해당 사업 기간에만 110조 4000억 원이 늘어났다고 책에서는 설명한다.

임기 내에 자원외교 진행을 마무리하려는 과욕이 '묻지마 투자'를 불렀고, 제대로 된 검토없이 투자가 이어진 것이 손실의 원인이었다. CNK 다이아몬드 광산 사건에서는 측근 비리까지 거론됐다. 목표였던 자원 확보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거액의 예산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MB의 비용>은 세부적인 사업의 내용과 추진과정을 추적하면서, 수치와 도표로 알아보기 쉽게 진상을 설명한다. 직접 보고도 좀처럼 믿기 힘든, 허망하게 탕진한 예산의 기록이다.

'거대한 재앙' 4대강 사업과 불안한 원전

지난해 6월, 경북 고령군 우곡면 우곡교 아래 강물이 녹조현상으로 온통 녹색을 띠고 있어 마치 '녹차라떼' 같아 보인다. 녹조라떼이다.
 지난해 6월, 경북 고령군 우곡면 우곡교 아래 강물이 녹조현상으로 온통 녹색을 띠고 있어 마치 '녹차라떼' 같아 보인다. 녹조라떼이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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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4대강 사업은 홍수 예방과 식수 확보를 목표로 추진됐다. 시작부터 문제가 제기된 이후, 2011년 구미 단수사태가 벌어졌고 오늘날에는 매년 강물을 뒤덮는 녹조가 골칫거리로 남았다. 보를 건설하면서 강물이 흐르지 못하는 것이 녹조 발생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책에서는 국토부 예산 1조 6635억 원이 건설사 담합으로 인한 부당이득으로 사라졌다고 언급한다. 이는 2012년 3월 발표된 공정거래위원회의 '4대강 담합 조사결과 보고서'에서 지적한 사항을 인용한 것이다. 매년 유지관리비로 5794억 원이 책정된 것도 과다한 지출로 포함됐다.

현재 무용지물이 된 자전거도로에는 무려 618억 원이 들었다. 낙동강 칠곡보 인근 농경지에서 주민들이 하천 수위 문제로 농사를 짓지 못하자 보상비로 예산 50억 원을 투입했지만, 국토부는 이를 4대강 유지관리비로 책정하지도 않았다. 그 외에도 많은 사례로 꼼꼼하게 살펴본 4대강 사업은 그 자체로 이미 거대한 재앙과도 같은 상태다.

국민 안전을 담보로 비리가 저질러진 원자력 발전 사업도 실태를 들여다 보면 심각성이 결코 만만치 않다. 지난 2013년, 산업부와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에 불량 케이블을 납품한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바 있다. 부품의 시험 성적서 위조와 대규모 금품 로비로 자격 미달의 부품이 승인, 공급되어 1200억 원의 케이블 교체 비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또한 케이블 교체 작업으로 신고리 3호기와 4호기는 완공이 최소 1년 이상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교체 동안 원전 가동 중지로 인한 손실도 약 1조 5706억 원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원전 완공 지연 비용을 합산하면 실질적인 피해액은 5조 2876억 원으로 늘어난다.

금전적 손실도 문제지만, 안전한 운영이 확보되지 못한다면 불안한 원전은 천천히 작동하는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사고가 발생한다면 인명피해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구름 같은 이야기를 하고 그러느냐."

MB정부에서 벌인 어처구니없는 사업의 실상을 읽고 있자면, 지난해 연말 측근과의 송년회에 참석하기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여기서 말한 '구름 같은 이야기'는 자원외교 국정조사 증인 출석 여부와 관련된 발언이라 맥락은 다르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기 동안 추진한 각종 사업들에 대한 표현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뜬구름 같이 허황된 정책에 신기루처럼 사라진 수십조 원의 예산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허망함에 탄식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국민에게 '비용'으로 남은 남자, MB에게 묻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출간된 1월 3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이 전 대통령은 가족들과 사이판에서 휴가를 보내고 귀국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을 확인한 이 전 대통령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 회고록 출간한 MB, 공항에 모습 드러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출간된 1월 3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이 전 대통령은 가족들과 사이판에서 휴가를 보내고 귀국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을 확인한 이 전 대통령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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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후반부는 기업 비리와 특혜 의혹, 낙하산 인사 파문을 거론한다. MB정부가 측근을 공기업 사장으로 투입하고, 이로 인해 포스코 등의 공기업 부채가 늘어난 현실도 덧붙인다. 또한 한식 세계화 사업에 영부인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것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당시 한식을 세계에 홍보한다는 취지로 업무를 시작했으나 정작 국내 홍보 비율이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사업 시작에 앞서 해외 다과행사에 1인당 최대 449만 원을 소비하고, 실제 사용액보다 30%나 과도하게 예산을 책정하는 등 계획수립의 부실함이 드러나기도 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을 자칭하던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과 언론 장악, 부자 감세도 빼놓을 수 없는 사안들이다. 대부분이 오늘날까지 여파가 이어져 시민들의 자기검열, 언론사 노조 파업과 세수 부족 등의 뼈아픈 상처들로 남았으니 말이다. 대북정책을 강경책으로만 일관한 것을 두고는 외교를 실익이 아닌 이념 전쟁과 국내 정치용 도구로 삼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동아시아에서 평화유지를 위한 주도적 역할을 포기한 것이 남북관계 악화를 초래하여 막대한 군사무기 구입비용 지출로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지난 정권이 남긴 천문학적인 빚을 셈하면서, 국가 최고통치권자가 사과나 책임없이 사라진 상황을 지적한다. 동시에 이런 대형참사들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고, 권력의 폭주를 견제할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역시,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지 않는 정치인에게,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을 투영하면서 질끈 눈을 감아버린 것은 아니었는지를 돌아볼 일이다.

<MB의 비용>은 국민에게 거대한 액수의 '비용'으로 남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에게 묻는다. 담뱃값 인상 등으로 불붙은 서민 증세 논란과 재정악화가 그 남자가 남기고 간 거짓말 같은 흔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냐고.

더불어 이제는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MB정부가 허공에 흩뿌린 세금으로 밑이 빠진 독을, 앞으로 어떻게 다시 채워나갈 수 있을지 말이다. 복잡하게 얽힌 사건들의 꼬인 매듭을 풀자면, 먼저 사안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엄하게 처벌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MB의 비용>(유종일, 박창근, 박동천, 이철희, 정세현, 최상재 외 지음 / 편집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 알마 / 2015. 2. 3. / 1만6000원)



MB의 비용

유종일 외 지음,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엮음, 알마(2015)


태그:#MB의 비용,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비리, #예산 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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