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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5년 당시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방침에 따라 철거된 일본신사(봉안전) 터.
 지난 1995년 당시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방침에 따라 철거된 일본신사(봉안전) 터.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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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 15일 제50주년 광복절을 맞은 그날, 서울 경복궁 앞에 있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 폭파 해체 작업이 진행됐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은 후에도 오랫동안 정부청사로 쓰였으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폭파 장면은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당시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전국적으로 진행됐다. 과거 일제가 전국 곳곳에 심어놓은 쇠말뚝을 제거하는 작업도 벌였다. 지자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자체들은 정부 방침에 따라 상징적인 일제잔재 청산에 나섰다.

전남 목포시에서 이뤄진 작업 중 옛 일본영사관(국가사적 제289호) 뒤뜰에 있던 일본신사(봉안전)를 철거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 왕과 왕비의 사진을 모셔놓고 조선인에게 참배를 강요했던 이 건물은 1995년 10월 1일 제33회 목포시민의 날을 맞아 목포개항 백주년기념 사업회, 시민단체가  모여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철거했다.

철거대상으로 지목된 대상은 또 있었다.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 아래 절벽에 조각되어있는 '홍법대사상'과 그의 수호신인 '부동명왕상'이다. 일본인들은 두 불상 외에도 유달산 일대에 88개의 불상을 세웠다.

"급살 당할까봐서"... 겁많은 철거업체 직원이 살린 '홍법대사상'

일본에서 추앙받는 '홍법대사'상이 목포 유달산 암벽에 새겨져 있다. 색칠되기 이전 모습
 일본에서 추앙받는 '홍법대사'상이 목포 유달산 암벽에 새겨져 있다. 색칠되기 이전 모습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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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절벽에 새겨진 두 불상은 철거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자못 흥미롭다. 목포시는 정부 방침에 따라 업체를 선정해 철거에 나섰다. 하지만 철거를 위해 유달산 정상까지 올라간 직원은 "철거하면 급살 등 화를 입을 것 같다"며 다시 내려왔다. 이후 추가적인 철거시도를 하지 않아 홍법대사상은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됐다. 우스꽝스럽게도 철거업체 직원의 겁많은 행동이 불상을 지금까지 보존하게 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남아 있는 '홍법대사상' 때문에 최근 일제 잔재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12일 누군가 '홍법대사상'에 진한 색칠을 해놓은 것이 발견됐다. 일부에서는 무속인들의 소행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그동안 일부 무속인들이 홍법대사에게서 신내림을 받았다며 제사를 지내는 등의 행위를 해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직도 일제잔재가 남아 있냐"는 비판과 "문화유산을 방치해 훼손시킨다"는 여론이 분분했다. 이번 일은 결국 유달산 인근에서 개인 사찰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의 소행으로 밝혀졌지만, 일제시대 문화유산에 대한 시사점을 남겼다.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을 보존해 일제시대 만행을 알리는 목포근대문화역사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을 보존해 일제시대 만행을 알리는 목포근대문화역사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 목포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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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는 1897년 10월 1일 고종의 칙령으로 개항된 도시다. 일본과의 조약을 통해 개항을 강요 당한 다른 항구도시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목포에는 해방 이후 세워진 근대 건축물과 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구 일본영사관, 동양척식회사 건물, 이훈동 정원 등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많은 흔적이 있다. 미로 같은 골목길이 그대로 남아 있고, 일본인 거류지 흔적도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이 많은 문화유산들은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무분별하게 훼손되었고, 그나마 남아 있던 몇몇 건물도 철거되었다. 특히 매년 3·1절만 되면 '일제 잔재 청산' 목소리를 등에 업고 철거 위기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 '일제시대 흔적들을 단순히 철거할 것이 아니라 보존해 역사적 교육적 가치를 살리자'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게 된 것이다.

목포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은 지난 1999년 문화재로 지정된 뒤 '근대문화역사관'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어 일제시대 만행을 알리는 산 역사교육장이 되고 있다. 등록문화재법이 생긴 후로는 호남은행 목포지점(2002년), 구 무안군청 서고(2014년) 등도 대거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목포시에 시 문화유산 조례가 만들어지면서 지난 2012년 이후 26곳이 시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옛 일본영사관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1981년에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됐다.

그러나 일제시대 유산들이 대거 문화재 및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유독 '홍법대사상'과 '부동명왕상'만 계속 누락됐다. 지역 학계에서는 두 불상을 "역사적 보존가치가 가장 높은 유산"으로 최우선 등록 의견을 냈지만, 목포시 문화재심의위원회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번번이 탈락시켰다.

이는 목포시에 있는 도지정문화재자료와 등록문화재 11종이 모두 일본과 관련이 있는 것과도 비교된다. 지난 2012년 이후 지정하고 있는 시 근대 문화유산 26개 중 다수도 일제시대와 관련이 있다.

"일제 시대 유적, 깨부수는 게 능사 아냐"

목포 유달산 정상 절벽에 새겨진 홍법대사상. 누군가 진한 색칠을 했다.
 목포 유달산 정상 절벽에 새겨진 홍법대사상. 누군가 진한 색칠을 했다.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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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학계에서는 일제시대 문화유산의 보존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5일 익명을 요구한 목포지역 문화계 관계자는 "우리는 일제의 '흔적'과 '잔재'를 혼동해 종종 실수를 하는 것 같다"며 "역사의 흔적은 잘 보존하여 반면교사로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불쾌하다고 해서 역사의 흔적을 깨부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제시대 유산을 모두 없애면 어떻게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겠나"라며 "생활에 깊숙이 침투한 일본말투, 일본식 행정용어, 일본식 제도 등이야말로 없어져야 될 일제잔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법대사상이 갖는 불교사적 가치에 주목하는 의견도 있다. 지역 향토사학계에 따르면 홍법대사는 당나라 때 중국유학을 마치고 일본 고야산 일대를 중심으로 불교를 전파한 인물이다.

일본 고야산 일대에는 그가 창설했다는 사찰 유적지 88곳이 남아 있는데, 일본 승려들이 수행을 위해 이용하는 필수코스다. 그야말로 일본 불교의 성지 같은 곳이다. 또한 일반인들도 가장 존경하는 스님으로 꼽는다고 한다.

목포지역 향토사를 연구해 온 목포대 최성환 교수는 "홍법대사상과 부동명왕상은 전국 개항장 가운데 목포에만 있는 것으로 일본 시코쿠지역에서 화산암으로 제작돼 유달산으로 안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88개의 불상은 유달산 내에는 한 점도 존재하지 않으며 목포지역 내에 10여 점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나머지는 외지로 반출되거나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목포 등 전남 서남권은 일본 승려들이 중국으로 불교유학을 떠날 때 거쳐 가는 관문 역할을 한 곳"이라며 "홍법대사상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파된 불교의 발달 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연구와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일본은 홍법대사와 관련된 88곳의 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며 "두 불상이 관광자원으로 갖는 활용가치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문화유산에 담긴 도시의 역사성에 주목해야"

최 교수는 문화유산에 담긴 도시의 역사성에 대해 주목할 것도 주문했다. 최 교수는 "하나의 도시가 태어나고 발전하는 과정에는 독특한 역사성이 담겨있다"라며 "일제 강점기도 치욕스럽지만 우리 역사이며, 특히 다른 지역에는 없는 목포만의 문화유산이라면 잘 보존해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일에 지자체가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목포시 관계자는 "오는 5월 문화재심의위원회 회의가 예정돼 있다"며 "홍법대사상과 부동명왕상에 대한 심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목포 유달산, #최성환, #홍법대사, #일제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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