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우리 사회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잊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획하여 인터뷰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 기자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4주기였던 지난 11일, 서울 홍대 걷고싶은거리에 이른 오후부터 청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탈핵운동단체인 청년초록네트워크가 주최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4주기 추모행진 '아직 살아가고 있습니다'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후쿠시마, 기억하고 있습니까'라는 현수막을 걸고 페이스페인팅, 종이학 접기 등 부스행사를 진행하던 이들은 해가 저물자 문화제를 열고 홍대 인근에서 퍼레이드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후쿠시마에서 이곳 서울까지 와 추모행진에 참여한 나가시마 카에데(長島楓)씨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올해로 열 아홉 살인 그녀는 후쿠시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핵발전소 사고 당시 15살로 평범한 고등학생이던 그녀는 사고 이후 탈핵 운동가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일본 고치 현에서 한 시 낭송을 계기로 친구들과 함께 낭독그룹 '씨앗을 뿌리는 토끼'를 결성해 후쿠시마 상황을 알려 왔다. 이날 퍼레이드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도 그녀는 시를 낭송했다. 한국에 있는 일정이 길지 않았지만 행사 주최 측의 도움을 얻어 행사가 시작되기 전 나가시마씨와 만날 수 있었다.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4주기 추모행진 <아직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무리 문화제에서 나가시마 카에데씨가 시를 낭독하고 있다.
▲ 추모행진 문화제에서 시를 낭독하는 나가시마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4주기 추모행진 <아직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무리 문화제에서 나가시마 카에데씨가 시를 낭독하고 있다.
ⓒ 장성렬

관련사진보기


"후쿠시마 이후 4년, 일상적이지만 일상적이지 않다"

- 아직도 후쿠시마에서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현재 후쿠시마는 어떤 모습인가요?
"가족들이 후쿠시마에서 계속 살고 있어요. 이제 일상 생활이 크게 불편한 상황은 아닙니다. 다만 할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말린 굴을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었고, 봄이 되면 나물을 캐오는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불편한 점은 없지만 불만은 있다고나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고, 배수구나 하수구 쪽에는 방사성물질이 많이 모여서 가까이 가지 않아요. 빗물받이 근처 역시 잘 가지 않습니다."

- '후쿠시마 사태' 이후 4년이 지났어요. 후쿠시마 문제에 대한 일본 현지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지역에 따라서 차이가 큰 편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후쿠시마의 경우 일상 생활로 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러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이불을 밖에 널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일상적이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후쿠시마의 일을 다른 지역의 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많습니다. 언론에 사실상 보도도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3월 11일 정도에만 보도가 조금 나올 뿐이고요. 대부분 후쿠시마의 사태가 잘 처리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후쿠시마의 문제를 알리는 활동으로 주로 시 낭송을 해오셨어요.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활동이 시 낭송이었기 때문에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낭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다시 하게 될 줄 몰랐는데,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시고 시를 보내주거나 요청하기도 해서 낭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첫 낭송은 고치 현에 있는 '하타제미'(고치 현 하타 지역의 고등학생 평화 세미나)의 초청으로 간 자리였습니다. 고치는 핵발전소 사고의 숨겨진 피폭 피해자가 있는 지역으로 주로 참치 어업을 하던 중 피폭된 분들이 계신 곳입니다. 하타제미는 이런 숨겨진 피폭자들을 드러내는 보고서를 제출해 상을 받았고, 그 소중한 상금으로 저를 초청했었습니다.

고치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를 듣고 배우면서 이것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 낭송을 다른 곳에서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돗쿄대학(獨協大学, 사이타마 현 소재)에 진학하면서 도쿄로 오게 되었습니다. 도쿄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없었지만 다행히 후쿠시마에서 함께 활동했던 분들과 활동을 이어가게 되었고요. 이후 일본 여러 곳을 다니면서 시 낭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봉사활동으로 많은 곳을 다니면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봉사활동은 후쿠시마의 탁아시설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합니다. 다른 지역으로 가서 신선한 공기도 맛보고, 자유를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있고요. 제가 다니는 대학에서도 낭독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 후쿠시마 문제를 알리는 낭독그룹 '씨앗을 뿌리는 토끼' 활동을 하고 계세요. 최근에는 이와 관련된 영화도 만들어지고 있다고요.
"네, 현재 촬영 중입니다. '씨를 뿌리는 토끼'의 활동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이고,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찍고 있습니다. 그 인연으로 작년 7월에는 감독님이 일하는 노동조합에서 부탁받아 어린이·청년 포럼에서 낭독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를 계기로 이듬해에도 함께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요. 마침 포럼이 청년 집행위원을 모집하게 되면서 이 일도 맡게 되었습니다. 이듬해 포럼은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의 강당에서 개최했고 8000여 명 앞에서 10분 정도의 낭독 공연을 했습니다."

"한국 밀양, 일본 후쿠시마와 비슷하다"

지난 3월 11일에 있었던 '월성 1호기 폐쇄 2차 국민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일본의 청년 탈핵운동가 나가시마 카에데씨가 '멈춰라! 월성 1호기'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 '멈춰라! 월성 1호기' 피켓을 든 나가시마 카에데씨 지난 3월 11일에 있었던 '월성 1호기 폐쇄 2차 국민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일본의 청년 탈핵운동가 나가시마 카에데씨가 '멈춰라! 월성 1호기'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청년초록네트워크

관련사진보기


"대만, 일본, 한국, 더 나아가 지구상 그 어떤 곳이 되었건, 이 지구상에 핵 산업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푸른 하늘 아래 설 수 없다. 70년을 이어온 인간과 핵의 전쟁에서 우리는 인간의 편에 설 것이며, 동아시아를 넘어 전 지구적으로 핵에 맞서는 청년들의 연대를 모아갈 것을 선언한다." (<푸른하늘 밀양선언문> 중)

나가시마씨가 한국의 탈핵 운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지난 1월 18일 밀양에서 발표된 '푸른하늘 밀양선언'이 있었다. 전지구적 탈핵을 위한 동아시아의 국제연대라는 기조로 한국·일본·대만의 청년 600명이 서명한 '푸른하늘 밀양선언'의 발표식에서 그녀는 일본 대표로 선언문을 낭독했다.(관련기사 : 한·일·대만 청년, 밀양 농성장 찾아 '탈핵' 선언)

이후에는 서울, 대구, 경주, 광주, 울산, 부산 등 국내 전역을 돌며 한국·일본·대만의 청년운동가들과 함께 동아시아 청년들의 탈핵 운동 경향을 발표하는 '푸른하늘 국제포럼'에 참석하기도 했다.

- 추모행진 전날(3월 10일) 하자센터에서 있었던 좌담회에서는 밀양에서 사진을 찍던 청년과 함께 얘기를 나누셨어요. 밀양 송전탑 문제를 비롯한 한국의 핵발전 문제와 탈핵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보태주세요.
"밀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후쿠시마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민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경찰이나 공권력이 억압하는데 정작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는 모습이 특히 그랬습니다. 두 나라 모두 국가나 기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여기에 대해 문제제기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고요.

후쿠시마의 경우도 정부가 말하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고 공부했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아 시민들이 함께 연대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지금과 같은 사태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하자센터에서 핵발전 문제에 대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공부하고 연대하는 모습이 일상적으로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연대의 힘을 얘기하고 계세요. 한국 땅에는 밀양은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함께하는 사람들'로서 이들에게 응원의 한 마디 부탁드려요.
"후쿠시마도 마찬가지로 복구하는 것이 먼 목표이고 그곳으로 한걸음에 가려고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잘게 나누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면 변화가 생길 것이고, 그렇게 작은 목표들을 이뤄나가면 점점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힘든 일이겠지만 제가 조금씩 이루어나가면서 희망을 보았던 것처럼 다른 분들도 그렇게 하실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영길 기자는 <사람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사람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연재됩니다.



태그:#사람들, #나가시마 카에데, #후쿠시마, #밀양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