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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風水)란 우리말로 '바람과 물'을 말한다. 바람(風)은 하늘이나 공중(지상)으로부터 불어온다. 물(水)은 땅밑(지하)에서 샘솟아 높은 곳으로부터 내려온다. 요컨대 바람은 하늘(天)에 가깝고 물은 땅(地)에 더 가까운 듯하다. 그런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우리 사람(人)들이 기후와 풍토, 산과 물이라는 자연과 보다 조화롭게 살기 위해 우리 조상들이 궁구한 것이 풍수다.

이런 시야로 보는 것도 제맛!
▲ 경복궁 향원정에서 바라본 주변 파노라마 이런 시야로 보는 것도 제맛!
ⓒ 하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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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상쾌한 좋은 땅에 살면 안 아프고 돈도 많이 벌고 잘 살며 농사도 잘되는 곳이 명당이다. 그런 곳에 살고, 죽어서는 후손들도 귀하게 되는 그런 곳에 무덤을 짓는다. 그런 명당을 찾는 것이 오늘날의 풍수라는 것은 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자연에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오히려 환경을 파괴까지 하면서 우리는 일방적으로 자연으로부터 이익만 얻자는 인간의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아닌가 싶다.

풍수는 바람에 실려 온 하늘의 좋은 기운을 모아 잘 간직하고, 물에 딸려온 땅의 좋은 기운을 얻는 곳이 명당이라는 뜻이다[장풍득수(藏風得水)]. 이런 명당이 되려면 배산임수(背山臨水)여야 한다고 한다. 뒤는 산이 딱 버티고 있어 바람이 산을 넘지 못하고 맴돌게 된다. 앞에는 물에 모인 저수지와 같은 것들이 있어 복이 새나가지 않게 잘 간직해 준다. 그러니 뒤는 높고 넉넉하며, 앞은 낮고 좁은 이른바 전저후고(前低後高), 전착후관(前窄後寬)의 지형이 길한 땅인 길지(吉地) 또는 복지(福地)가 된다.

풍수도 모르고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다. 다만 풍수학이란 바람과 물을 하늘과 땅의 기운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자연을 학문적으로 알기 위한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도인(道人)이라면 어디가 좋은 땅인지 머리로 따지지 않고 그냥 한눈에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도인들은 문득 땅속 깊은 곳에서 금색에 가까운 밝은 빛이 흐르거나 연못이나 저수지처럼 모인 것을 봤다고 한다. 혹시 그게 풍수의 수(水)의 흐름에 해당하는 용맥(龍脈)은 아닐까? 청명하면서도 왠지 따스한 온기 같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기운[생기(生氣)]를 간직한 곳[(혈(穴)]이라고 추측해 본다.

예쁘다.
▲ 경복궁 향원정 설경 예쁘다.
ⓒ 하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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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실개천이 바위에 부딪혀 선회하는 곳 부근에 부자가 많이 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진짜 물이고 용맥은 아닌 듯하다. 가끔 용맥이 터져 물에 흐르고, 그것이 모이는 곳도 있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물에 용맥이 흐르는 것은 아닌 듯하다. 누구는 용맥은 산등성이의 모습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도인들이 말하는 '득수'는 그나마 조금 알겠지만, 장풍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벅찬 숙제였다.

한 도인은 "하루는 인왕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아무 생각도 없이 보는데 뭔가 두 갈래의 거센 바람이 얼핏 보였다. 용산에서 남대문으로, 남산에서 장충단공원을 거쳐 명동으로 내려오는 빠르고 투명한 바람 기둥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남대문과 서울시청 앞에서 합류한 바람은 광화문으로 바로 몰아쳤다. 마치 3층의 구조를 가진 건물처럼 높고 굵은 커다란 바람이었다. 바람의 맨 아래층은 광화문을 맞부딪혀 그만 넘지 못하고 동십자각부근에서 진입을 시도하는 다른 작은 바람기둥으로 인해 밀려서 세종대왕상을 중심으로 똬리를 틀듯 회오리처럼 선회하며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2층 높이보다 높은 중층의 바람은 광화문을 넘어 경복궁의 근정전과 경회루 그리고 향원정을 지난다. 그러나 결국 신무문을 넘지 못하고 또 다른 담장에 가둬져 향원정을 가운데 두고 선회하고 있었다. 끝으로 상층의 바람은 경복궁의 북문에 해당하는 신무문의 담벽마저 훌쩍 넘어 청와대로 간다. 하지만 북악산을 넘지는 못하고 옛 청와대 중정 주변에서 작은 회오리마저 일으키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양을 도읍으로 삼은 조선시대는 신분제 사회다. 민속이라고 하는 서민 문화(배에 해당), 선비 관료들의 양반 문화(가슴에 해당), 왕족의 궁정 문화(머리에 해당)로 세 가지 신분을 문화와 연관 지어 나눌 수 있을까? 오늘날 풀뿌리 민주주의식의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요구하는 '세월호'관련 시위 등은 광화문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다. 예전에 세종시로 이전되기 까지 적지 않은 정부종합청사 부근의 공무원들은 출근 전이나 점심 시간에 짬을 내어 경복궁을 산책하곤 했다. 여전히 청와대는 서민은 물론 관료조차도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곳으로 남아 있다.

시원하다.
▲ 주말 아침 광화문 전경 시원하다.
ⓒ 하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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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방향과 흐름 그리고 모임과 흩어짐의 장풍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듣게 된 것은 거짓말 같은 행운이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과거 도선국사나 무학대사 그리고 '하륜' 어른과 같이 풍수에 눈 밝은 도인이라면 사실을 알 것 같다. 왜 광화문에서 민중들의 '시위'가 많아졌는지. 중국인 관광객의 땅밟기에 지쳐버린 경복궁이 야간개장까지 하면서 우리 국민들을 왜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 기대만 한없이 높아진 이 시대에 누가 가도 외롭게 될 수밖에 없는 청와대의 고립 무원 등.

풍수도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을 이길 수는 없다. 수험 날만 되면 몇 도씩 떨어지는 온도가 그 예다. 왠지 모르게 아직도 찾아오지 않는 따스하지 않은 봄날의 연속이다. 한편으론 광화문에 모인 유가족과 시민의 '세월호의 인양' 염원이 성취될 날도 멀지 않은 듯해서 반갑다.

덧붙이는 글 | 풍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글입니다.



태그:#인왕산, #경복궁, #풍수, #광화문,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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