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킬미, 힐미>가 보여주는 세계관은 다이나믹하다. 시시때때로 인격이 바뀌는 주인공부터 21년 전의 비밀, 아동학대, 그리고 승진가의 권력 다툼까지. 이 모든 것을 한 드라마에 담아내면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은 작가의 필력이 빛나는 지점이다. 지성의 연기력 또한 충격적일 만큼 출중했다. 정신이 조각난 주인공이라는 설정이 녹록치 않았을 것임에도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기로 시청자의 혼을 빼놓았다.

그럼에도 <킬미, 힐미>의 시청률은 하락했다. 한 때 11.8%(닐슨코리아 전국기준)까지 치솟아 올랐던 시청률이 다시 한자릿대로 줄어든 것이었다. '동시간대 1위' 타이틀은 KBS 2TV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하<착않녀>)에 2회 연속 빼앗겼다. 인터넷에서의 뜨거운 열기는 이 같은 결과를 의아하게 만든다. 매니아 층이 두텁게 생길 정도의 웰메이드 드라마로서는 아쉬운 성적이 아닐 수 없다.

 동시간대 1위로 떠오른 드라마 KBS 2TV <착하지 않은 여자들>

동시간대 1위로 떠오른 드라마 KBS 2TV <착하지 않은 여자들> ⓒ KBS


물론 <착않녀> 역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드라마다. 가족드라마의 탈을 쓰고 곳곳에 비밀스러운 장치를 해놓은 솜씨는 <맛있는 청혼> <메리대구 공방전> <태양의 여자>등을 집필한 김인영 작가의 내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클리셰를 독특하게 비튼 것 또한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강순옥(김혜자 분)이 남편의 내연녀였던 장모란(장미희 분)을 찾아가 가슴께로 하이킥을 날리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머리채를 휘어잡거나 뺨을 때리는 장면이 아니라 화끈한 발길질 한 방으로 의외성은 물론, 드라마틱한 효과까지 잡았다. 3회부터 시청률은 11%까지 치솟으며 동시간대 1위로 떠오를만 했다.<킬미, 힐미>라는 강력한 경쟁작이 있던 와중에 얻은 성과라 더욱 의미가 깊다.

그러나 분명 <킬미, 힐미>에 쏟아지는 관심이 더욱 뜨거운 것은 사실이다. 호평은 받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조용한 <착않녀>가 어떻게 시청률 상승이라는 극적인 결과를 이뤄낼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바로 전 연령층의 호응도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사실 <킬미, 힐미>는 인터넷 사용이 적극적인 2~30대의 호응이 뜨겁다. 드라마의 후반부에 각종 반전을 배치한 것은 시청자의 열광적인 호응을 배가시켰지만 새로운 시청층을 유입시키기에는 다소 무리였다. 초반부터 흐름을 따라온 시청자에게는 각종 반전들이 퍼즐 조각 맞춰지듯, 적재적소에 배치되며 집중도를 높이지만, 처음 <킬미, 힐미>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퍼즐 조각 한 개일 뿐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후반부로 갈수록 완성도가 높아지지만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킬미, 힐미>는 완성도가 높은 만큼의 시청자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중장년층으로 갈수록 이런 집중도 높은 드라마에 피곤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MBC <킬미, 힐미>는 호응도에 비해 시청률은 하락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MBC <킬미, 힐미>는 호응도에 비해 시청률은 하락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 MBC


<착않녀>는 그러나 등장인물부터 <킬미, 힐미>와는 다른 노선을 취한다. 이야기의 중심부터 정마리(이하나 분)이나 이루오(송재림 분) 같은 젊은 층이 아니라 강순옥이나 김현숙(채시라 분), 김현정(도지원 분) 등에 더욱 집중된다. 김혜자나 채시라는 중장년층의 호감도가 높은 배우들이다. 연기에 있어서도 명불허전 실력을 뽐냈다. 내용 역시 가족극 분위기를 적극 활용하여 그 안에서 불륜이나 다툼을 화제로 삼았다. 시청자에게 익숙한 패턴을 활용하여 상대적으로 편하게 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착않녀>는 단순히 여기서 멈추지 않고 클리셰를 비틀어 캐릭터를 강조한다. 강순옥은 남편의 내연녀인 장모란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 과감한 선택을 하고 천역덕스럽게 '내 남편의 세컨드'라고 남들에게 소개한다. 장모란이 곤란해질 때마다 고소해 하며 웃음을 참는 표정은 덤이다. 전체적인 내용보다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캐릭터가 강조되며 중장년층의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현재 드라마 시청률은 중장년층에 의해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만 살펴봐도 <왔다, 장보리> <전설의 마녀> <장미빛 연인들> <가족끼리 왜이래> 등 중장년층의 입맛에 맞는 작품들이 강세를 보였다. 젊은 층은 본방보다는 다운로드나 다시보기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드라마를 단순히 시청률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청률이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높은 시청률을 얻은 작품일수록 전 연령대의 고른 호응이 중요하다는 것을 <착않녀>는 증명해 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 킬미, 힐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