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드림걸즈> 에서 드림즈를 연기하는 난아, 차지연, 윤공주

▲ 뮤지컬 <드림걸즈> 에서 드림즈를 연기하는 난아, 차지연, 윤공주 ⓒ 오디뮤지컬컴퍼니


'나는 전설이다'라는 명제는 비단 윌 스미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 제목에만 부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늘 소개하는 뮤지컬 <드림걸즈>의 모티브가 된 흑인 R&B 여성 그룹 '슈프림스'는 1960년대 당시 빌보드 차트 정상에 12번이나 올랐다.

1960년이 어떤 시대인가. 말콤 X가 활동하던 시대다. 흑인을 향한 인종 차별이 엄연히 남아 있고, 백인 가수가 보란 듯이 흑인 가수의 히트곡을 표절하는 시대였다. 빅 마마 손튼의 노래를 엘비스 프레슬리가 버젓이 부르던 시대 아니던가. 흑인에게 불합리한 1960년대라는 시대에 흑인 여성 그룹으로서 빌보드 정상을 무려 12번이나 밟은 '슈프림스'는 '나는 전설이다'라는 타이틀을 수여받기 딱 좋은 그룹임에 분명하다.

TV라는 새로운 매체 속에서 벌어진 '일인자 숨바꼭질'

<드림걸즈>의 커티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영리한 인물이다. 자동차 세일즈맨이라는 현재의 처지에 만족하지 않고 에피와 디나, 로렐을 지미의 백코러스로 묶어주며 매니저 자리를 꿰찬다. 이어 쇼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사람을 돈으로 산다. 성 매수마저 서슴지 않는다.

<드림걸즈>는 에피와 디나, 로렐 세 명으로 이뤄진 여성 그룹 '드림즈'가 어떻게 백코러스에서 음반 차트의 정상에 오르는가를 보여주는 성공담으로 보기 쉽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이 있기까지에는 쇼 비즈니스의 명과 암을 제대로 아는 커티스의 뒷받침이 컸다.

커티스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매니저다. 얼마 있지 않으면 비주얼의 시대가 다가오리라는 것을, 그래서 에피의 폭발적인 가창력보다 디나의 화려한 외모가 TV에서 시청자를 사로잡을 것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간파한 그는 에피 대신 디나가 집중받기를 원한다. 실력으로 인정받기를 바란 에피와 커티스의 전략으로 그룹의 중심이 된 디나 사이의 갈등도 이 때문에 싹튼다.

결국 드림즈에서 실력과는 무관하게 디나는 일인자, 에피는 이인자로 서열이 매겨진다. 실력보다 외모가 보다 어필하는 비주얼 지상주의의 희생양으로 에피가 선택된 것이다. 즉 뮤지컬 <드림걸즈>는 에피와 디나의 갈등을 통해 실력보다 비주얼이 우선할 수밖에 없는 시대의 변화상을 두 사람의 갈등을 통해 보여준다.

차지연이 캐스팅된 이유

 뮤지컬 <드림걸즈>에서 에피를 연기하는 차지연

뮤지컬 <드림걸즈>에서 에피를 연기하는 차지연 ⓒ 오디뮤지컬컴퍼니


차지연은 이전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작품에는 한 번도 안 불러 주더라"라는 장난기 어린 푸념을 했다. 그런 그가 <드림걸즈>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도 참여한다. 알다시피 <드림걸즈>는 드림즈의 흥겨운 노래가 가득한, '어깨 결림 해소용' 신명나는 뮤지컬이다. 하지만 흥겨움 가운데서 에피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인자의 비애를 안아야 하는 비운의 캐릭터다.

1막 마지막에 에피가 드림즈와 자신의 연인 커티스 모두에게 버림 받고 부르는 노래 '앤드 아이 엠 텔링 유 아임 낫 고잉'(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을 부를 때에는 상실의 정서가 노래 마디마디 절절하게 묻어나야 한다. 이런 비운의 노래를 제대로 풀어가려면 비극적인 정서를 소화할 줄 아는 뮤지컬 배우가 소화해야 한다.

차지연이 누구인가. <서편제>에서 아버지에게 강제로 시력을 잃고 유랑하는 송화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게 만들도록 소화하는 배우 아니던가. <드림걸즈>서 비극의 주인공으로 등극하는 에피라는 역은 차지연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소화하기 어려운 역할이다. 대중에게는 '임재범의 그녀'로 널리 알려진 차지연이지만,(차지연은 과거 MBC <나는 가수다>의 임재범 무대에 참여한 적이 있다-편집자 주) 그는 <드림걸즈> 에피를 위해 태어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에피라는 배역을 200% 소화하고도 남는다.

드림걸즈 차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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