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머니 메인 포스터

▲ 헬머니 메인 포스터 ⓒ NEW


언제고 나올 영화였다. 드라마와 시트콤 등에서 감칠맛 나는 욕설을 보였던 배우 김수미가 욕으로 주연을 꿰찬 영화 말이다. 막상 영화를 보기 전에는 걱정부터 앞섰다. 처음 <헬머니>라는 제목을 듣고서 올리버 스톤의 <월 스트리트>처럼 자본의 어두운 측면을 파헤치는 영화인가 싶기도 했으나 지옥의 'hell'과 할머니의 '머니'를 합친 제목이라는 걸 알고서 왠지 모를 허탈감이 들기도 했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영화판에서도 오디션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우후죽순 쏟아졌지만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둔 작품이 없었다는 걸 떠올려보면 근거없는 걱정만은 아니라 하겠다.

<헬머니>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욕쟁이 할머니가 케이블 프로그램의 욕배틀에 참가해 인기를 얻고 그 과정에서 무너졌던 가정의 유대를 회복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욕배틀을 통한 공적 성공과 가정의 회복이라는 사적 성취가 병렬로 진행되는 구성이며, 종국에는 두 가지가 맞물리며 대통합의 클라이맥스로 귀결된다. 그 과정에서 욕을 한껏 활용한 코미디적 요소와 가족애를 강조한 드라마적 요소, 눈물을 자아내는 신파적 설정까지가 적당히 배합되어 다소 작위적일지라도 대중에 호소할 수 있는 결말로 이어진다.

영화는 단순히 헬머니의 성공기를 그려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욕을 통해 억눌렸던 화를 풀어내는 사회적 확장까지를 도모하는데 연출을 맡은 신한솔 감독의 데뷔작 <싸움의 기술>과도 통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그간 수많은 작품들에서 조연으로 내공을 쌓아온 김수미 씨가 이 역할을 맡아 원톱 주연으로 손색이 없는 역량을 발휘했다. 정만식, 김정태, 이태란, 정애연, 최규환, 이영은 등 숙련된 조연들의 맛깔나는 연기도 영화의 맛을 배가시켰다.

모종의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이정순 할머니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감옥의 큰 어른으로 군림한다. 형기를 모두 마치고 출소했지만 반겨주는 이가 없자 그녀는 신분을 숨기고 큰 아들의 집에 가정부로 취업한다. 사돈의 박대에도 꿋꿋이 살림을 해나가던 그녀지만 자신의 아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 만큼은 참아내기가 어렵다. 그녀는 동네 공원에 나가 쌓인 울분을 한바탕 욕지거리로 풀어내는데 때마침 욕배틀 오디션 프로그램을 기획하던 PD의 눈에 띄어 캐스팅되기에 이른다.

전형성 안에서 나름의 파격 시도해

헬머니 지옥에서 온 할머니가 활약하는 욕배틀을 전격적으로 다뤘다

▲ 헬머니 지옥에서 온 할머니가 활약하는 욕배틀을 전격적으로 다뤘다 ⓒ NEW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특징은 남다른 규모다. 여기서 규모란 제작환경이 아니라 설정의 제약 없음을 뜻한다. 무협지에서나 볼 수 있는 기연에 비할 만한 사건이 거듭된다거나 인물의 성격과 행동에서 보여지는 남다른 모습이 그렇다. 무대에서 거침없이 욕설을 쏟아내는 이정순 할머니는 구한말 양반집에서 태어나 만주로 이주해 생활했으며 독립 후에는 크게 사업을 벌이기도 한 사연 많은 인물이다. 나이와 시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도 같지만 영화는 사소한 디테일 쯤은 가벼이 무시하고 넘어간다.

그녀는 방송국 이사장, 현직 장관, 유명 한복 디자이너, 기업 사모님 등과 믿기 어려운 인연을 가지고 있으며 호방한 성품과 리더십으로 주변의 모든 이를 포용해나간다. 그녀 앞에 펼쳐지는 어려움은 그녀의 역량에 비하면 보잘것 없으며 쏟아지는 기연은 주인공을 믿기 어려운 해피엔딩으로 이끈다.

단순하고 전형적이라기보단 파격적이고 흥미롭게 다가오는 영화였다. 욕이라는 소재에서부터 남다른 규모와 다양한 캐릭터들이 보는 맛을 더했다. 신한솔 감독은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통해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갔고, 노련한 연출로 전형적일 수 있는 이야기에 매력을 부여했다. 김정태가 연기한 둘째 아들과 출소한 어머니가 첫 대면하는 장면이나 공원에서의 찰진 욕 분출 장면, 할머니와 손자의 활약, 다양한 오디션 과정들이 그렇다. 특히 배틀 과정에서는 '언터쳐블'의 래퍼 슬리피, 신체를 이용한 욕의 고수 등을 캐스팅해 다양한 상황적 재미를 주는데 이런 부분들도 제법 매력적이다.

감정의 대리분출에서 오는 쾌감, 아쉬움도 공존

헬머니 지난 2014년 이경영 씨와 함께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배우 김원해는 <헬머니>에도 출연한다

▲ 헬머니 지난 2014년 이경영 씨와 함께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배우 김원해는 <헬머니>에도 출연한다 ⓒ NEW


하지만 배틀 과정이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키는 면도 있다. 영화는 욕배틀 과정에서 다양한 설정에 집착하고 있는데 교통사고, 클럽, 신혼부부, 부모와 자식 등의 컨셉에 따라 진행되는 대결이 대표적이다. 모든 토너먼트 대결에서 주인공 헬머니는 후공 상황에 놓이는데 이 부분이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적으로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하는 반면 구성이 너무 전형적이라는 인상을 받게도 한다.

때로는 헬머니가 먼저 공격을 취하고 다시 역공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면 같은 방식의 대결이 거듭된다는 느낌을 덜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욕이 중심이기에 배틀 과정에서 모든 대사를 잡아내려 했고 그 때문에 편집이 다소 늘어진 점도 아쉽다. TV 프로그램을 영화 안에 담아낼 때는 과감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에서 부족함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였다. '시베리아' 욕설연기로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던 김영옥 씨가 헬머니와 결승에서 만나는 무당을 연기했는데 헬머니와 달리 배우 본연의 매력을 충분히 살려내진 못했다. 영화는 결승전 장면에서 근래 제작된 한국영화가 대개 그런 것처럼 가족주의적이며 신파적인 코드로 눈물을 자아낸다. 장르와 상관없이 클라이막스에서 감동을 주입하려 하는 것인가 불만스런 생각이 들었다. 코미디 영화에서까지도 감동을 주입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강박처럼 느껴진다.

몇몇 장면에서는 가릴 수 없는 조잡함도 엿보였다. 초반부 주인공이 지하철의 진상승객과 맞닥뜨려 욕으로 응징하는 장면 등이 그러했는데 단역 배우의 부족한 연기력이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주인공의 욕설이 주는 대리분출의 유쾌함 만큼은 분명해서 장단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영화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신한솔 감독이 전작인 <가루지기> 이후 7년 만에 들고온 작품이다. 전작보다 완성도나 오락성 모두에서 발전한 흔적이 역력하다. 속편의 가능성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흥행에 성공한다면 차기작을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욕을 가지고 도달할 수 있는 썩 괜찮은 지점에 접어든 작품. 신한솔 감독, 김수미 주연의 <헬머니>는 오는 3월 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헬머니 NEW 신한솔 김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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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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