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현은 은퇴 소식이 알려진 지 하루 만인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협회 대회의실에서 은퇴식을 하고 파란만장했던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 시즌까지 K리그 클래식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설기현은 프로생활을 마감하고 성균관대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할 예정이다. 이날 설기현은 K리그 시즌 직전 갑작스런 은퇴에 대해 "사정이 어찌됐든 매끄럽지 못한 점 죄송하다"고 밝혔다.

설기현의 은퇴는 팬들에게는 격세지감이다. 광운대 출신의 설기현은 졸업 후 2000년 벨기에 로열 앤트워프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며 이름을 알렸다. 당시만해도 지금만큼 유럽진출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한국 선수들의 국제적 인지도가 높아지며 박지성-이영표 등의 유럽파를 배출해낸 2002 한일월드컵도 열리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국내 무대에서도 아직 미완의 유망주에 불과했던 설기현은 그야말로 맨땅에서 축구인생을 개척하며 빅 리거의 반열에까지 오른, 해외파 1세대 중에서도 원조 격의 선수였다.

해외파 1세대 설기현, 파란만장했던 그의 선수 생활

설기현 현역 은퇴... 성균관대 감독으로 제2의 축구인생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전사' 설기현이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성균관대 축구부 사령탑으로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한다.

설기현의 에이전트사인 지쎈은 3일 "설기현이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성균관대 축구부 감독 직무대행을 맡기로 했다"며 "성균관대에서 영입 의사를 타진해와서 전격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동점골을 넣고 환호하는 설기현.

▲ 설기현 현역 은퇴... 성균관대 감독으로 제2의 축구인생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전사' 설기현이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성균관대 축구부 사령탑으로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한다. 설기현의 에이전트사인 지쎈은 3일 "설기현이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성균관대 축구부 감독 직무대행을 맡기로 했다"며 "성균관대에서 영입 의사를 타진해와서 전격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동점골을 넣고 환호하는 설기현. ⓒ 연합뉴스


설기현의 축구인생이 본격적으로 만개하기 시작한 것은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어 2002 한·일 월드컵에 출전하면서부터였다. 당당히 히딩크호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4강 신화를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

특히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패색이 짙던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넣은 것은 설기현의 축구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설기현의 국가대표 통산 기록은 A매치 83경기 출전 19골이며 2002년과 2006년 두 차례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다.

설기현은 유럽무대에서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벨기에의 명문 로열 앤트워프와 안더레흐트를 거쳐 영국무대로 진출, 울버햄튼과 레딩, 풀럼 등에서 활약했다. 특히 레딩에서는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박지성-이영표 등과 EPL 코리안 리거 1세대의 대표주자로 꼽혔다.

하지만 레딩 시절 후반기부터 팀 내 위상이 흔들리며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풀럼에서도 별다른 기회를 잡지 못한 설기현은 중동으로 눈을 돌려 사우디 리그에서 잠시 활약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0년, 포항을 통하여 K리그로 복귀했다. 이후 울산과 인천 등을 거치며 2014년까지 선수로 활약했다.

설기현은 지난 시즌 인천에서는 허리 부상 때문에 7경기 출전에 그쳤다. 지난 2014년 인천과 재계약했던 설기현은 계약 기간이 아직 1년 남아있는 가운데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은퇴를 발표해버렸다. 그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부상과 기량 저하에 따른 부담,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소속팀 인천의 불확실한 미래가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더불어, 오랜 꿈이었던 지도자에 대한 기회 등이 설기현의 은퇴 결정을 앞당긴 것으로 추정된다.

아쉬운 부분은 은퇴 과정이 좀 더 매끄러웠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이다. 지난해 유럽 무대에서 은퇴한 박지성도 설기현처럼 소속팀과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은퇴를 결정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당시 고질적인 무릎 부상 등으로 인하여 QPR과 충분히 협의가 된 상황이었고 시즌 종료와 함께 바로 은퇴를 선언하며 불필요한 구설수를 만들지 않았다. 전 소속팀이었던 맨유나 임대 신분이었던 PSV와 달리, 당시 2부 리그 소속이었던 QPR에서 박지성의 입지도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었다.

전지훈련 다녀오고 선수 등록까지 마쳤는데?

설기현은 올 시즌 인천 공격진의 핵심전력으로 꼽혔다. 그런데 전지훈련까지 마치고 7일 K리그 시즌 개막이 불과 나흘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전격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인천은 설기현의 이름이 포함된 명단으로 K리그 선수 등록을 마쳤고, 개막전까지 홍보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팀의 간판스타이자 고참 선수로서 신중하지 못한 처신이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인천은 그렇지 않아도 팀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하다. 지난 시즌 급격히 악화된 재정 위기와 성적부진으로 이중고에 시달렸고, 김봉길 감독의 경질과 후임 감독 선임문제로 또 한 차례 소용돌이에 휩쓸려야 했다. 이 과정에서 설기현도 팀에 대한 애정이나 의욕이 떨어졌을 수 있다.

하지만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와 후배들을 생각한다면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다. 일찌감치 은퇴 선언을 했더라면, 인천도 설기현의 공백을 대비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개막 직전에 팀의 기둥을 잃고 선수단 분위기에 악영향을 끼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설기현 본인도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떳떳하게 그라운드를 떠날 수 있었다.

설기현이 진로 문제에 대한 일방적인 결정으로 팬들과 구단을 당혹스럽게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 시즌을 앞두고 포항 소속이던 설기현은 전지훈련까지 소화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울산 이적을 결정하여 많은 이들을 당황하게 했다. 설기현을 중심으로 팀 전력을 구상했던 포항 구단과 팬들은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포항과 울산의 경기 때마다 포항 팬들은 설기현에게 야유를 보내며 양 팀의 대결이 한동안 '설기현 더비'로 불릴 만큼 묘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설기현은 프로생활 내내 '저니맨'으로 불릴 정도로 여러 팀을 전전했다. 인천은 그의 파란만장했던 프로 경력에서 마지막 팀이 됐다. 기왕이면 떠나는 이도, 보내주는 이들도 서로 박수치며 웃을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결과적으로 당혹스럽고 어색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설기현이 지금까지 한국축구에 기여했던 바를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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