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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기분이 내킬 때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 가을이와 뽀뽀 그녀의 기분이 내킬 때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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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진지하게 어머니께 여쭌 적이 있다.

"어머니, 내 자식이 못난이 축에 속한다면 부모는 엄청 짠하겠지요?"

어머니는 의외의 대답을 하셨다.

"무슨 소리! 내 자식에게 못난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을 리가 있나."

이런 것인가 보다, 어버이의 마음은.

나는 가을이를 입양하고 한참 후에야 이 아이의 객관적인 체격 조건이 눈에 들어왔다. 옷을 얻어 입거나 어깨 줄을 차거나 다른 강아지와 나란히 서 있을 때, 가을이의 신체 균형은 남달랐다.

'예쁘고 착하다'는 확고하되 관념적인 사실만 인지한 채 데려왔는데 두툼한 가슴팍과 긴 허리, 땅딸막한 다리, 이마보다 튀어나온 눈 등을 몇 개월이 지나서야 알아보게 된 것이다. 난 전생에 개였나 싶을 정도로 동물에 관심이 많고 스캔도 빠른 편이다. 그런데 어찌 가을이의 특징은 몰라봤을까. 그냥 마냥 '예쁜 내 새끼'로 가을이를 품은 내 자신이 좀 신기했다.

누가 봐도 '요다'와 똑 닮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려동물과 지독한 사랑에 빠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객관적 판단 능력'을 기꺼이 잃는다. 누가 봐도 '요다'와 똑 닮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개엄마, 살집이 투실투실 돋보이는 데 몸매가 맵시난다고 안아올리는 개아빠, 매일 같이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데도 성격이 좋다고 칭찬하는 개오빠들...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가을이의 코고는 소리가 내 귀엔 달콤하고, 발 냄새조차 내 코에는 고소하니까.

인간은 의인화시켜 사고하는 과정이 익숙하다. 어린이는 어떤 사물이든 작은 것은 '아기', 큰 것은 '엄빠'라 칭하며 놀고, 어른은 먹을 것이든 애장품이든 인간의 잣대로 묘사하고 감정을 이입한다. 헌데, 어린 애들이야 그렇다 쳐도 다 큰 어른(나를 포함한)들도 이러고 있는 것을 보면 좀 희한하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자동차, 시계, 신발, 가방 등에 '이 아이' 같은 표현을 쓰는 건 옳지 않다는 인식이 강했다. 동물에게 이름은 붙여주었더라도 '여아/남아' 같은 호칭은 어색했다. 왜 이런 변화가 받아들여졌을까? 물질만능주의? 동물의 권리 상승? 아무튼 추세로 보아 인칭대명사의 혼용은 점차 넓어질 것 같다. 반려인들이 털북숭이 막둥이를 지극히 주관적으로 찬미하는 것만큼이나 좋아하는 놀이를 보자. 바로, '우리 애가 사람이었다면' 놀이다.

영국 요크셔 지방의 뿌리 깊은 혈통이지만, 실상은 경기도 안산시에서 '쭈구리 변비 강아지'인 채로 입양 온 '고갱'은 자나 깨나 앙살을 부리기로 유명하다. 먹여줘, 놀아줘, 안아줘, 재워줘... 보호자가 잠시도 한눈을 못팔게 매달려 운다.

누가 이렇게 귀여운 모습 뒤에 악랄한 근성이 숨어있으리라 예상하겠는가.
▲ 사랑스러운 고갱 누가 이렇게 귀여운 모습 뒤에 악랄한 근성이 숨어있으리라 예상하겠는가.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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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이가 만약 사람이었다면 '꾀는 있되 머리가 좋지 않아 공부는 못하지만, 시험에서 찍기는 잘하고, 반 친구들에게 인기도 없으면서 쉴 새 없이 불평만 늘어놓는 애'였을 거라고 친구는 말한다. 그러나 미워도 내 자식이니 대학까지는 어떻게든 보냈을 거라면서.

안락사의 위기에서 간신히 입양된 슈나우저 '멍뭉'은 학습 의욕이 엄청나다. 명령어를 알려주고 몇 번만 반복하면 금세 수행할 수 있다. 누가 슈나우저는 말썽쟁이 사고뭉치라고 했는가. 멍뭉에게 "하우스! 짖어! 머물러! 돌아와!" 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다른 동물 친구들을 보살필 줄 아는 마음씨는 아빠 같고, 인형을 물고자는 습관은 아기 같다. '내신 1등급으로 일류 학교에 들어간 뒤 수석으로 졸업해 대기업에 들어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아들'이 멍뭉이라는 데에 친구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

배운 것은 바로 실천하고, 애정 표현에 적극적이고, 작은 생물에게 배려할 줄 아는 만능 강아지이다.
▲ 고양이를 보살피는 멍뭉 배운 것은 바로 실천하고, 애정 표현에 적극적이고, 작은 생물에게 배려할 줄 아는 만능 강아지이다.
ⓒ 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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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집착녀'라면, 가을이는 대표적 '밀당녀'

그렇다면 가을은 어떨까? 유기견 보호소에서 십 년간 한 방을 썼던 '밤비'가 아웅아웅~하는 야릇한 소리로 끊임없이 친구 곁을 맴도는 '집착녀'라면, 가을이는 대표적 '밀당녀'다.

가을은 집에 머무르기보다 외출을 즐긴다. 겁은 언제나 가득 집어먹은 상태일지라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낯선 냄새를 맡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걷다가 새로운 길을 찾거나 열린 문, 정차한 차를 발견하면 엄청난 호기심을 갖는다. 인기척이 없다는 판단 후, 거리낌 없이 전진해 구석구석을 직접 살펴야 만족한다.

산책은 이렇게 적극적이면서 나에게는 왜 거리를 둘까? 잘 때도 한 뼘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도 한 발자국 물러서서, 뽀뽀도 하루에 한 번만. 물론 내가 보호자로서 아직도 신임을 못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서운 상황에선 영락없이 내 뒤에 숨고, 간만에 보면 반갑다고 수줍게 꼬리를 흔들고, 기분이 좋을 땐 천천히 몸을 뉘어 배를 내밀기도 하니까 가을이도 나를 "사... 좋아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지. 마음을 줄 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이는 이 녀석이 밀당의 대표 선수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런 재미난 '인격화' 놀이에도 위험이 따를 때가 있다.

지난달 가을이는 입양 2주년을 기념하여 건강검진을 받았다. 엑스선을 찍고 피, 소변 검사를 통해 간이 작고 치석이 조금 있는 것 외에 결정적인 걱정거리가 발견됐다. 척추 사진에서 디스크로 추정되는 좁은 공간이 나타난 것이다. 등 가운데 부분에 다른 곳과는 차이가 뚜렷한 간격이 보였다. 지금까지 가을이가 뒷다리를 번갈아가면서 저는 원인을 고관절이나 슬개골, 발바닥 등에서만 찾았는데 정답은 허리였다.

의사선생님은 "평소에 가을이가 안으려고 하면 움찔하고 큰 소리를 유독 두려워하며 어두운 곳에 숨으려고 하지 않았냐"며, "이는 허리디스크가 있는 강아지들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가을이처럼 허리가 긴 개들은 뛰어오르고, 내리고, 달리면서 허리에 무리가 많이 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요통이 따른다고 한다. 가을이의 도도한 성격 때문에 사람의 손길을 싫어하는 거라고만 해석해 왔는데 정작 가을이는 아픔을 참고 있었다니. 늦게까지 조치를 안 취했다면 일이 커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디스크는 기립근을 강화시켜야 호전이 되지만, 개의 신체 구조상 불가능하니 무리한 운동을 하지 않고 체중 조절에 신경을 써야한단다. 그래서 침대에서 방바닥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만들려고 한다. 운동은 험한 산길보다는 평지, 이왕이면 푹신한 잔디밭에서 해야 한다. 노견이라 식품만으로는 영양분의 흡수가 부족할 수 있어 관절영양제도 샀다. 비만이 되면 뒷다리를 아예 못 쓸 수 있다고 하여 탄수화물을 제한 단백질 위주의 식단으로 바꿨다.

손만 뻗어도 깜짝 놀라는 가을, 머리를 쓰다듬다가 손이 허리 쪽으로 가면 몸을 피하는 가을이를 이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가을이가 접촉을 기피한 이유는 '통증'이었다. 동물은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섣부르게 인간의 입장으로만 해석하여 그들의 간절함을 간과하지 않아야겠다.


태그:#가을이, #유기견보호소, #입양2주년, #건강검진, #허리디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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