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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7일 오전, 파리에서 <샤를리 에브도>라는 프랑스 잡지의 편집회의에 테러리스트 2명이 침입하여 간부와 기자, 만평가, 직원, 경찰 등 12명을 총기로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민주 국가에서 언론에 대한 폭력은 드문 편이었고, 이번처럼 편집회의에 기관총을 들고 나타나 참혹하게 언론사의 수뇌부를 학살한 적은 없었다.

"나는 샤를리다"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지

테러당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추모 현장 방문한 시민 파리 시민과 관광객들이 3일(현지시간)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건물 앞 추모 현장을 찾아 메시지와 사진 등을 살펴보고 있다. 샤를리 에브도에서는 지난달 7일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형제가 테러를 저질러 12명이 숨졌다.
▲ 테러당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추모 현장 방문한 시민 파리 시민과 관광객들이 3일(현지시간)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건물 앞 추모 현장을 찾아 메시지와 사진 등을 살펴보고 있다. 샤를리 에브도에서는 지난달 7일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형제가 테러를 저질러 12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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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이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으며, 유럽의 수많은 국가 원수들이 연대의식을 발휘하여 파리 추모 시위에 동참했다. 민주 국가에서 사상의 자유, 표현과 언론의 자유는 사회의 기둥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은 표현의 자유를 테러로 공격하는 것은 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는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 시대에 민주사회를 지키겠다는 개인적 의지 표명이었다. 죽은 무슬림 경찰의 이름을 빌려 "나는 아흐메드다", "나는 경찰이다", 또는 언론사 공격과 동시에 일어난 유대인 슈퍼 테러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나는 유대인이다" 등의 메시지들이 등장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평소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인들은 흔히 경찰을 '닭'이라고 부르며 싫어한다. "나는 경찰이다"는 테러에 대한 반발과 항의의 의미이지 경찰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유대인이다"는 더 긴 역사가 있다.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여 유대인들에게 별표 착용을 강요했을 때, 유대인이 아니지만 이들과 연대감으로 별을 달고 거리를 횡보한 사람들이 수십 명 있었다. 폭력 국가는 이들을 '유대인의 친구들'이라 불렀고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체포하여 학살하였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연대해 나서는 태도이자 전통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나는 샤를리다"는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을 보호해야 한다는 일반적 의미이지 <샤를리 에브도>의 모든 표현 방식에 공감한다는 뜻은 아니다. 3만부 남짓한 발행 부수가 말해주듯이, 신랄한 스타일의 이 특수한 언론을 즐기는 사람은 소수였다. 이들은 과장과 유머를 통해 전통 종교인 가톨릭이나 개신교는 물론, 유대교와 이슬람을 모두 풍자와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다.

물론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는 반발이 있었다. 샤를리이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사회 원칙으로서 표현의 자유보다는 <샤를리 에브도>라는 특정 언론의 표현 방식을 문제 삼았다. 서구 사회에서 이민자이자 약자인 무슬림 집단의 종교를 모독하는 것은 강자의 오만이며,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주류 사회의 권력 남용이고 억압적 기제라는 주장이다.

한국 언론에서는 이런 극소수의 주장을 받아 크게 보도했지만 유럽에서 사실 이런 논쟁이 핵심이 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샤를리 에브도>는 반차별, 반 인종주의 투쟁에 그 어떤 언론보다 첨단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샤를리 에브도>는 유전자 검사나 국적박탈조치 등 외국인과 이민자, 그리고 이민 2세에 대한 다양한 차별을 지속적으로 반대해 왔다. 그리고 외국인의 투표권을 주장했다.

서방은 이미 오래 전부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원칙과 관습이 정해져 있다. 서방 내에서 미국과 유럽은 서로 대립되는 체제를 갖고 있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가 가장 절대적이고 넓은 편이다. 반면 유럽은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을 표방하지만, 이를 제한하는 다양한 제도가 존재한다.

신성모독과 공동체에 대한 증오는 처벌이 달라

 가톨릭과 유대교, 이슬람교가 함께 샤를리 에브도에게 "샤를리 에브도를 가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샤를리 에브도 표지 그림.
 가톨릭과 유대교, 이슬람교가 함께 샤를리 에브도에게 "샤를리 에브도를 가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샤를리 에브도 표지 그림.
ⓒ 샤를리 에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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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성적성향 등의 집단을 대상으로 한 차별이나 증오, 폭력을 유발하는 행위는 제재의 대상이다. 2010년 미국에서 테리 존스 목사가 코란을 불태우는 행위를 인터넷에 띄우겠다고 알렸다.

유럽에서 이런 행위는 처벌의 대상이다. 미국에서 발전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이런 종류의 메시지에 대해 대개 표현의 자유를 적용한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더욱 제한적인 법의 적용을 받는다. 특정 메시지가 제재의 대상으로 판단될 경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이를 신속하게 제거하는 의무를 갖는다.

표현의 자유는 보편 원칙이기 때문에 사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유럽의 경우 법적 소송을 통해 사후적으로는 처벌을 요구할 수 있다. 실제로 <샤를리 에브도>는 수십 건의 소송에 휘말렸다. 사법부는 독자적 판단으로 경우에 따라 처벌을 결정할 수 있다. 유럽에서 이슬람의 예언자 무하마드를 만평으로 그리는 것 자체는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신성모독을 법으로 다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만평이 이슬람교도라는 공동체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부추긴다고 판단되면 처벌의 대상이다.

언론의 경우 민주주의의 공기(公器)로서 상당히 넓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받는다. 언론에 실리는 만평이나 유머, 풍자 등의 영역은 그 특수성을 추가로 인정받는다. 1992년 판례에 따르면 이와 같은 영역은 필수적으로 과장이나 허구가 포함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나 분석 기사에서 요구하는 사실의 정확성을 캐리캐처에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엄격한 칼럼이나 사설의 기준과도 다른 잣대가 적용되는 셈이다.

유럽에는 또 각국의 판결을 초국적으로 재심할 수 있는 법원이 존재한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자리한 유럽인권재판소(ECHR)는 회원국 사법부의 판단을 뒤집을 수 있는 상위 기관이다. 이 재판소가 처음 설립된 1950년대에는 권한이 제한적이었지만, 유럽통합이 진전하면서 이제는 유럽연합 체제의 한 부분으로 포괄되어 막강해졌다. 회원국 법원에서 언론에 불리한 판결을 내릴 경우에 해당 언론이 유럽에 상소하면 유럽인권법원은 일반적으로 언론의 자유에 더 호의적인 판결을 내리는 편이다.

유럽 언론, 얼마나 언론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샤를리 에브도, 정상 발간 시작 지난 2월 25일 이른 아침, 프랑스 파리의 파리북역(Gare du Nord train station)에서 한 손님이 프랑스 풍자 잡지 <샤를리 에브도>를 집어들고 있다. 현지 언론은 <샤를리 에브도>의 새 판이 250만 부 가량 인쇄된 것으로 보도했다.
▲ 샤를리 에브도, 정상 발간 시작 지난 2월 25일 이른 아침, 프랑스 파리의 파리북역(Gare du Nord train station)에서 한 손님이 프랑스 풍자 잡지 <샤를리 에브도>를 집어들고 있다. 현지 언론은 <샤를리 에브도>의 새 판이 250만 부 가량 인쇄된 것으로 보도했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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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벨기에 정부는 특정 기자의 집을 압수 수색한 데 대해 유럽인권재판소로부터 벌금을 선고받았다. 재판소는 언론 기자가 주장한 취재원의 보호는 민주 사회의 기본적인 원칙에 해당하며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또 프랑스 정부가 "멍청이 사르코지, 꺼져!"라는 펼침막을 들고 대통령이 보도록 일인 시위를 한 개인에 대해 국가원수 모독죄를 적용하자 유럽인권재판소는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했다고 지적했다.

샤를리 사건 이후 유럽의 논쟁은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존엄성 관계보다는, 테러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자기검열에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느냐다. 언론이 어떤 주장을 펴기 전에 테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위험을 의식하여 스스로를 검열한다면, 더 이상 정상적인 언론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월, 덴마크에서 다시 일어난 테러는 의미심장하다. 프랑스가 대규모 이민자 거주 지역을 형성하여 사회적 불평등과 지리적 집중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면, 덴마크는 이민자에게도 적용되는 최고의 복지와 통합 수준을 자랑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또 덴마크는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식민주의 과거로부터도 자유로운 나라다. 이 사건은 유럽의 어떤 국가도 결국 테러의 범위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세계화와 정보화로 21세기는 한층 더 가깝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위험한 사회가 되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잣대를 가진 사람들이 갑자기 벌거벗고 한 방을 쓰게 되는 것과 같은 효과다. 과거에는 먼 나라에서 어떤 신문이 읽히고 어떤 농담과 유머가 유행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는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전파되는 상황에서 민주 사회의 다양한 자유가 다른 사회의 대중적 반발과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시대다.

개인의 자유와 타인과 공존

지난 2월 이란의 국민 여배우였던 골시프테 파라하니가 "파리는 지구에서 여성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유일한 도시"라면서 프랑스 잡지 <에고이스트> 표지에 누드로 등장했다. 신정국가 이란에서 이런 도발이 가져올 격한 반응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한국의 소년이 극단적 이슬람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도 세계화와 정보화의 한 측면이다. 특히 표현의 자유를 가장 혐오하는 극단주의 집단일수록 서방의 자유로운 체제를 최대한 활용하여 추종자를 모집하고 훈련하여 전사로 만들어 공격하는 모습을 보인다.

갑자기 가까워진 이방인과의 공존을 어떻게 조율할지가 인류의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민주사회의 입장에서는 자유를 수호하여 자신의 뿌리를 지키면서 동시에 다른 문화와 화합과 공존을 추구해야 하는 난제가 제기된다. 자유를 제약하면 자기부정이고, 자유를 유지하면 대외적으로 취약해지면서 상대를 자극하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홍식 시민기자는 숭실대학교 교수이며 숭실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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