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드맨>의 리건 톰슨 (마이클 키튼 역) '버드맨'으로의 자아와 연극으로 성공하려는 자아 간의 충돌을 비현실적인 장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 영화 <버드맨>의 리건 톰슨 (마이클 키튼 역) '버드맨'으로의 자아와 연극으로 성공하려는 자아 간의 충돌을 비현실적인 장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 20세기폭스코리아


지난 22일 개최된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버드맨>이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부문 4관왕을 석권하며 국내 영화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해외 영화 시상식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데다, 여러 영화 평론가들의 칭찬이 끊이질 않다보니 <버드맨>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기대치가 점점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개봉 전 시사회 등을 통해 조금 먼저 <버드맨>을 접한 대중들의 시선은 냉담하기만 하다. 남우조연상, 편집상 등을 수상한 <위플래쉬>나, 미술상, 음악상 등을 수상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는 박수를 보내며 수상 결과에 공감하는 한편, <버드맨>의 수상 결과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버드맨>의 첫인상이 불편한건 사실이다. 영화 내내 현실인지 환상인지, 비극인지 희극인지, 연극인지 영화인지 헷갈리게 하면서 괴롭히더니, 끝내 결말마저 추락한 건지 날아오른 건지 알 수 없게 만들어 찝찝함을 한 아름 안겨준다. 스크린으로 보기에는 조금 과한 듯한 배우들의 연기와 대본 15페이지 분량의 긴 롱테이크 촬영기법, 타악기로만 구성된 비트감 강한 음향 또한 모두 낯설기만 하다. 그중에서도 제일 불편한건 <버드맨>의 주제다.

<버드맨>의 '버드맨' 리건 톰슨은 예술인이다. 아니, 예술인인줄 알았지만 아닌 게 되어버려서 다시 진짜 예술인이 되고 싶어 하는 배우다. 리건은 한 때 '버드맨'이라는 히어로물 상업영화로 톱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그 인기는 잠시 뿐이었다. 버드맨은 잊혀 졌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물 간 늙은 배우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리건은 브로드웨이로 갔고, 그곳에서 한 물 간 영화배우라는 자아는 잠시 접어 두고 연극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자 노력한다. 이 후 영화는 마지막 순간까지 예술의 양 끝에 서있는 두 자아 간의 충돌을 끈질기게 보여준다.

영화를 본 직후 이 점이 가장 불편하게 다가올 것이다. 앤딩크래딧을 향해 "그래서?"하고 냉소 섞인 웃음을 던질 수도 있다. 예술인의 고뇌와 내적 갈등, 진정한 예술에 대한 물음, 예술적 자아 간의 충돌. 이게 어쨌다는 것인가. 예술인 혼자 하는, 혹은 소위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그들만의' 고민은 재미있지도 않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그런데 <버드맨>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소외당한 기분이 들었다. 아카데미 시상 결과 소식을 듣고 나서는 더더욱 반감이 들었다.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자기들끼리 숙덕거리고 오늘 대화는 참 좋았다며 나를 등진 채 서로에게 박수를 쳐주는 모양새 같아 보였으니까. 심하게 표현해서 <버드맨>은 대중에게 낯설만한 주제와 영화적 장치를 모두 집어넣고선 '우리는 예술을 한다'고 자위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버드맨>은 철저하게 '예술인의, 예술인에 의한, 예술인을 위한' 영화라는 게 감상 직후 <버드맨>에 대한 인상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버드맨>은 불편했다. 그런데 처음 느낀 낯섦에 의한 불편함이 아니라, 오랫동안 제쳐두고 있었던 작년 1월 1일의 신년계획 같은 친숙한 불편함으로 점점 변해갔다. 리건의 고민은 비단 예술인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고, 그제야 비로소 <버드맨>의 메시지를 평범한 우리 인생의 것으로 끌어오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물 간 영화배우로의 자아는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하여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현대인을, 브로드웨이에서의 성공을 원하는 자아는 계속해서 이상을 좇으며 행복을 느끼려는 현대인을 대변한다는 것을 영화를 보고 한참 후에서야 느낀 것이다. 그러자 나 자신은 현실과 이상을 잇는 선 위 어디쯤에 서 있나 확인하게 되었고, 아득한 작년의 신년계획을 다시 올해의 계획으로 만들어버린 기분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버드맨>의 첫인상은 확실히 낯설고 불편하고 재수 없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버드맨>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숨은 이야기들을 하나 둘 발견하게 될 것이다. '버드맨'은 현실의 샐러리맨일 수도 있고, 취업 준비생일 수도 있고, 결국 버드맨의 고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우리 모두의 고민이라는 결론에 다다르면서 말이다.

국내 개봉 6일 전이다. <버드맨>과 함께 묵혀둔 작년의 계획을 앞으로의 평생 계획으로 삼고 끝이 잘 보이지 않는 자아 찾기의 첫 걸음을 떼보는 건 어떨까.

버드맨 아카데미 이냐리투 마이클 키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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