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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솔
 칫솔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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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연휴가 길었던 이번 설에는 친정에서 2박이나 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손자와 자식들이 떠들며 정신을 쏙 빼고, 끼니마다 설거지가 산더미같이 쏟아져도 더 있다 가지 않는다고 아쉬워만 하셨습니다. 그래도 이쯤에서 가줘야 쉬신다고 우기며 간신히 떠나왔습니다. 이번 설 연휴엔 평소에 몰랐던 사실 하나를 깨닫고 왔습니다. 깨알같이 작고 사소하지만 가슴 따뜻한 그런 것 말입니다.

설 다음날 연을 만들어 날리고 싶다는 아이들의 요청에 아이 아빠 둘, 그러니까 우리집 사위 둘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마트를 다녀왔습니다. 종이 연이 아닌 비닐로 된 요즘 연을 보며 신기해 하던 사이, 막내사위가 5개들이 한 세트 칫솔 다발을 장모님이 움직이시던 식탁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고 나갔습니다.

"웬 칫솔 다발? 엄마가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아니, 쟤는 올 때마다 이걸 사다줘."

칫솔 다발을 챙겨 씽크대 옆 서랍에 넣으시며 좋아하시는 엄마 표정을 보면서도 이해가 안 갔습니다. 정초부터 장모님께 칫솔다발을 사다주는 사위? 제부는 맞벌이를 하며 출근시간이 빠른 동생을 대신해 아침에 아이들 밥 먹이고 옷까지 챙겨 입혀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낸 후 출근합니다.

제부의 놀라운 선물... 딸보다 사위가 낫네요

그래서 저는 동생에게 "아이고, 너희 남편한테 잘해줘라. 살림을 많이 해서 거의 주부가 다 되었네. 이렇게 생필품이 필요한 것도 알고"라고 한 마디 던졌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웃었습니다. 역시 필요한 물건도 알아야 살림도 보이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슬쩍 동생이 이런 말을 들려 주었습니다.

"남편이 언젠가 엄마랑 같이 마트에 간 적이 있었대. 자기가 카트를 밀고 엄마랑 같이 걸어가다가 칫솔 치약 있는 코너를 지나가는데 엄마가 그러셨대. '옛날 아버지 회사 다닐 때는 이런 세트들도 잘 들어왔는데 요즘은 별로네. 별것 아닌데 그래도 들어오면 요긴하게 쓰지'라고 말이야. 그래서 집에 갈 때마다 여러 종류의 칫솔을 사서 엄마 갖다 주는 거래. 엄마 좋아하는 거 봐."

아, 그거였습니다. 언젠가 나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뭐, 다 그렇지'하고 그냥 넘겼던 말. 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던 그 말을 사위는 가슴 속에 담아 두었다가 장모님을 뵈러 가면 꼭 깍두기처럼 칫솔 다발을 챙겼던 것입니다.

작은 물건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시골 사람인 장모는 사위가 사오는 칫솔을 화장실 안 장식장에 넣어두면 아무나 한 번 쓰고 버린다며 고이고이 자신만의 서랍장에 넣었습니다. 또 사위는 개수가 어떻든, 모양이 어떻든 좋아하시는 장모 얼굴을 보며 처가집에 올 적마다 칫솔뭉치를 사들었습니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져 바위돌을 패게 하듯이 그렇게 하나 둘씩 칫솔이 늘어가는 동안, 장모의 사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커졌을지 짐작 갑니다.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존중한다는 것은 마냥 큰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관심과 배려에서 시작한다는, 너무도 평범한 진리를 눈으로 직접 보고 마음으로 깊이 느낀 설 연휴였습니다.

처음보는 사람은 이상할지도 모를 '칫솔다발 사나르는 사위'를 둔 엄마, 엄만 참 복 많은 분이에요. 엄마 말대로 사위가 딸보다 낫습니다. 인정합니다!


태그:#칫솔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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